미국의 벽촌이라고 할 미주리에서 태어난 팻 매스니는 마이애미 대학에 기타 연주 전공으로 입학하여 1학기를 마치자 마자 강사로 초빙될 정도로 어려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21세이던 1975년에 게리 버튼의 밴드 멤버로 재즈 씬에 발을 들여 놓았고 곧 이어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와 함께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Bright Size Life]를 발표하게 된다. 이후 현재까지 30여 년간 수십 장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담은 앨범을 발표하며 재즈 아티스트로는 유례 없는 히트와 대중적 지지를 얻어 왔다. 그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어디에서든 수천 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채워 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즈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그가 이처럼 큰 성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유분방한 그의 음악적 행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분명 재즈 전통에 입각하여 공부하고 연주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그가 거쳐온 길은 언제나 정통 재즈에서는 조금씩 벗어나 있었다. 세월이 변하면서 새로운 앨범을 내 놓을 때 마다 과거와는 다른 음악을 끊임없이 선보여 온 것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나온 그가 발표한 앨범들에는 시대에 따라 포크에 가까운 어쿠스틱 재즈에서부터 뉴 에이지와 록, 또 팝적인 가벼움은 물론 매우 실험적인 프리 재즈, 정통 스탠다드 재즈 연주 등 온갖 음악 스타일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스타일의 다양함만으로 그처럼 큰 성공을 이끌거나 대중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유사한 활동을 해 온 퓨전 재즈 계열의 연주자들이 많이 있음에도 팻 매스니가 독보적인 영역을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독보적인 멜로디와 감성이다.

 
시전통적으로 재즈는 지적인 음악에 속한다. 빌리 할리데이나 쳇 베이커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한다면 재즈의 역사는 진하고 격렬한 감성의 표출보다는 화음과 리듬의 복잡성을 추구하는 쪽에 맞춰져 있었다. 재즈에 감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미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재즈의 중요한 특성이지만, 한편 재즈가 발전하면 할 수록 대중성이 떨어지는 요인으로도 작용해 왔다. 재즈를 듣고 이해하거나 즐기기 위해서는 다소나마 훈련된 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팻 매스니는 이탈리아계 특유의 속칭 '귀에 감기는' 멜로디를 무기로 일반적인 재즈에 비해 훨씬 감성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퓨전 재즈 아티스트들은 많지만 그들이 정통 재즈보다 더 복잡하거나 혹은 단순하더라도 차갑고 도시적인 음악을 추구할 때 팻 매스니는 세련되면서도 좀 더 인간 본연의 감정에 호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런 점은 작곡과 연주 스타일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팻 매스니의 작품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곡 중 하나인 'Are You Going with Me'에서 그는 기존 재즈곡에 비해 단순화된 멜로디와 함께, 감정을 고조시켜 폭발하도록 하는 전형적인 록 기타의 어법을 따르고 있다. 한편 'Letter from Home'이나 'James' 등에서는 도시적 세련미와 목가적인 단순성이 교묘하게 결합된 조용하고도 차분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전혀 다른 형식의 곡들이라도 재즈적 지성보다 촉촉한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 셈이다.

결국 팻 매스니의 인기와 성공은 재즈를 위해 훈련되지 않은 귀로도 듣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의 보편성을 추구한 데에 그 비결이 있다. 그래서 그의 팬 층 역시 재즈 애호가들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직업과 성향을 가진 성인 층에 골고루 퍼져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다.

 
그러나 이런 그의 스타일에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보다 정통적인 재즈 어법의 발전에 쏟지 않고 상업적인 방향만 추구한다는 것인데, 주로 골수 재즈 팬들이나 평론가 쪽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팻 매스니는 진지한 아티스트라기 보다는 거의 팝 스타에 가까운 존재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 재즈 아티스트들은 팻 매스니의 연주에 재즈적 실험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때로 테크닉에 너무 의존한다는 지적을 내 놓기도 한다. 실제로 곡 자체는 감성적이고 쉬운 편이라고 해도 솔로 연주에 있어서의 빠르고 복잡한 기교적인 면모를 그가 자주 드러내온 것은 사실이며 이는 특히 라이브에서 확연하다. 동료 연주자들에게 있어서 이런 그의 모습은 일종의 과시욕으로 비치기도 하고, 또 알고 보면 단순한 연주를 패턴과 기교로 눈속임한다는 식의 신랄한 비난도 있다.

그러나, 팻 매스니의 음악이 대중적이긴 하지만 그 대중성은 오직 히트만이 목적인 천박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진 적은 없다는 점에서 상업성에 대한 비판은 때로 지나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팻 매스니를 통해 재즈가 더 널리 알려지고 그 결과 보다 정통적인 재즈 아티스트에게까지 관심이 돌려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테크닉에 대한 비난은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전문가들 수준에서의 논의에 가깝고, 일반 음악 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듣고 즐기는 입장에서는 지나친 분석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고, 더욱이 팻 매스니의 테크니컬한 연주 특성이 지금까지 팬들에게 천박한 과시욕으로까지 느껴진 경우는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를 크게 문제 삼는 것은 별로 공정하지 못한 일 같다.

이렇게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 영웅이자 이단아로서의 두 얼굴을 가진 팻 매스니. 어쩌면 지난 30년간 그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논쟁의 주제인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그의 줄타기는, 비슷한 시도를 하면서도 사실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둘 다 잃고 마는 다른 많은 경우들에 비해 훨씬 훌륭하게 이루어져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팻 매스니는 분명 뛰어난 아티스트이고 또 성공한 전략가인 셈이다. 누가 뭐래도 예술가에게 있어서 자기의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는 것 이상의 보람과 기쁨은 없고, 그는 지난 30년간 그 일을 너무도 훌륭하게 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웅이던 이단아건 간에,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따듯함의 인간미는 세상에 음악이 존재해 온 이유 그 자체와 관련되는 보편적 감성이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바로 그 힘으로 인해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것이다.
※ 음악 포털 사이트 도시락(www.dosirak.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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