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은 사는 게 그렇게 허무한 것만은 아니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행동의 중요한 법칙을 하나 발견해 낸 셈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들면 다들 탐내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톰이 이 책을 쓴 작가처럼 아주 위대하고 현명한 철학자였다면, 일이란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오락이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조화를 만들거나 디딜방아를 찧는 것은 일이 되고, 볼링을 하거나 몽블랑 산을 오르는 것은 오락이 된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영국에는 여름만 되면 날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30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다니는 부유한 신사들이 있다. 참으로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다. 만약 돈을 줄 테니 하라고 한다면 금방 짜증스런 일이라고 느껴져 당장 그만두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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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사들이 명작동화 완역본을 내주는 바람에 난 아주 행복해 하고 있다.

위의 대목은 톰이 하기 싫은 페인트칠을 아주 즐기는 척 하여, 친구들이 하고 싶어하도록 만든 후 친구들에게 시켜놓고 자기는 나무 그늘에서 편히 쉬면서 깨달은 것이다. 얄미운 녀석!

내가 깨달은 것. 마크 트웨인은 디게 잘난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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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8-2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나는 이 출판사 말고 다른 출판사 완역이 있는 것 같은데... 확인해봐야겠어요. 내 책은 파랬던 것 같은데... 아닌가?
 

  왕: 나의 성 안에서 나, 선량한 왕은, 웃을 수 없는 왕녀의 소문을 들었다.
        나 역시 진지한 남자로서 웃음을 경멸하노라.
       그래서 나는 그 왕녀를 나의 아내로 삼고자 하노라.
       내가 모르는 것은 그 왕녀가 사는 곳.
       내게 그것을 말해 주면 큰 상금을 받으리라!

뜨내기: 저는 폐하께 왕녀의 성을 일러 드릴 수 있습니다.
      마침 왕녀를 찾아가는 길이니까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미리 말씀 올리오니, 희망을 갖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가면 왕녀께서 웃으실 테니까요!

왕: 그대는 헛걸음을 하는 걸세. 들어 보라, 방랑자여.
     웃지 않는 것은 왕녀의 뜻이라네! 그것도 분명한 이유를 갖고.
     모든 것이 한 번은 죽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결국은 쓰디쓴 결론에 이르기 마련일세.
     세상은 둥근 것, 번쩍거리기는 하되 비누거품처럼 언젠가는 꺼지는 것이라.
     그럼 그 인간은 생각에 잠겨,
     웃음 대신에 심각하고 엄숙해지지 않겠는가?

뜨내기: 보아하니, 폐하께선 현명하신 분인 것 같군요.
    그렇지만 다른 면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죽음을 향해 사는 사람은, 폐하, 바보인 겁니다.
    왜냐하면, 폐하, 삶이란 현재이니까요.
    유리컵이란 깨어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포도주에 비춰 번쩍거리기 위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설혹 언젠가는 깨어질 것을 알고 있을망정. 하지만 그것이 유리잔으로 있는 한은, 그런 잔은 가득 채워져야 하는 법이지요!


왕: 언젠가는 깨어질 것을 알면서도 어찌 유리잔이 그 번쩍거림을 기뻐하겠는가?

뜨내기: 유리잔은 그것이 영원히 번쩍일 수 없음을 아는 까닭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왕: 방랑자여, 그대는 내 말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구나.
     우리 같이 왕녀에게로 가보세. 가서 웃어 보게. 그래서 왕녀도 어울려 웃는다면,
     그대에게 내 대신 왕의 자리를 갖게 하리라!

뜨내기: 내기는 성립된 것입니다, 폐하! 하지만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웃음은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언제든지 인간을 알아보는 대목은 인간은 적당한 시간에 웃을 줄 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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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나는 80년대 초에 읽었으며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88년도판을 헌책방에서 산 것이다. 지금 다시 읽으니 또 새롭다.

이 책은 악마에게 자기 웃음을 팔아버린 소년이 그걸 되찾기 위해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참 좋은 책인데, 난 이런 책이 절판되는 걸 볼 때마다 이 세상에 얼마나 좋은 책이 많을까, 난 그걸 못보고 죽어야 하니 참 아깝다, 하릴없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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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명성은 몇년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남들이 좋다거나, 베스트셀러라거나,무슨무슨 상을 받았다거나 하면 어쩐지 더 안 읽게 되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 탓에 선뜻 집어들지 못하고 있다가 얼마전 이 작가의 '지구영웅 전설'을 읽은 후 '이 사람에게는 뭔가 있다'는 생각에 드디어  이 유명짜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진짜 뭔가 있었다.

삼미 슈퍼스타즈ㅡ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며(순전히 아빠의 연고에 따른 선택으로, 자식들은 당연한 듯이 그 뒤를 따랐다)  TV앞에 앉아 빼놓지 않고 경기를 관람하던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참 못했고, 그 다음 해에는 어쩐 일인지 잘했으며, 그래서 해설자들이 도깨비팀이니 뭐니 했던 것 같고, 유니폼 촌스러웠고, 장명부는 경이로웠다.

노인이 되면 옛일을 떠올리기를 좋아하여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고 했던가. 슬슬 나이 먹어 가면서 어릴 적 얘기를 소재로 삼은 것들이 참 반갑게 느껴지고, 내가 희미한 색채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분명하고 화려하게 떠올려주면 왜 그리 반갑고 고마운지.........

처음 <삼미.........>를 읽기 시작하면서는 그래서 너무도 반가웠다. 내가 희미하게 기억하던 80년대의 풍경들과 그 때 나도 좋아했던 프로야구의 이모저모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것이 너무도 반가웠고 거기에 내가 미처 부여하지 못했던  의미들과 숨겨진 음모들을 까발려 주는 것이 또한 통쾌했다.  거기다가 작가의 재기발랄한 것 같기도 하고 유치찬란한 것 같기도 한 문장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너무도 유쾌한 책읽기를 할 수 있었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이 이야기는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가 속고 살아왔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우리 인생을 망쳐왔다는 사실에 대한 폭로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얘기하면 난 언제나 좀 뜨끔하며 가슴이 아리는 걸 느끼게 되는데, 그건 아마 내가 진실에 가깝게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프로가 돼! 최선을 다해! 뛰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 이런 말에 이 책은 "왜? 누구 좋으라고?"라고 아주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대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난 이 책이 너무 맘에 든다. 내가 바로 이런 말을 하고 싶었거든.

인생의 목표 : 널널한 삶
가장 싫어하는 말 : 야망
이런 사람에게 <삼미....>야말로 가장 어울리는 책이 아니겠어? 널널한 삶, 하고 싶은 것 하고 살기(치기 어려운 공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 잡지 않기) 이런걸 원하면서도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런 류의 말 때문에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박민규씨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야.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어.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 아름다워. 따라 뛰지마.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이, 우리의 관건이야."

난 이 사람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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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볼 것 까지야...ㅎㅎㅎ
박민규 매력적이죠?

깍두기 2004-08-0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긴 해요?...ㅎㅎㅎ
만나도 할 말도 없겠죠?

책읽는나무 2004-10-1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시면...
헤어스타일 죽입니다...
어떻게 관리하시나요?...라고 대신 물어봐주세요..^^

깍두기 2004-10-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옛날 리뷰에 댓글이 달리니 새롭네요. 책읽는 나무님 반갑습니다. 우리 인사는 했던가요?^^
 

올 여름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ㅡ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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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점 더 우리는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를 이해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중요한 문제였고, 신이 우리에게 부과한 중요한 숙제 중의 하나였다. 비록 윤회론자가 아닐지언정 나는 그 일주일의 어느 어귀쯤에서 ㅡ 지금의 삶이 무언가 본리그를 앞두고서 행하는 일종의 전지훈련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 전지 훈련의 어느 어귀쯤에서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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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삼미.....>를 읽었다.  남들도 이 장면을 읽으며 울었을까. 난 창피스럽게도 울고 말았다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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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깍두기 2004-08-0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속지 않고.... 중요하죠?^^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잘 읽지 않았는데

이제 김소진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

이 책의 리뷰는 귀찮아서 안 쓰는 게 아니라

쓰려니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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