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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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끝까지 읽으며 고민하고 집중했던 문제가 있다. 바로 ‘제주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지만, 사건의 진실은 오랜 시간 묻혀 있었다.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법률에 따라 서서히 진상이 밝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언제일까? 일부에서는 사건의 발단을 1948년 4월 3일 있었던 좌익들의 무장 봉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주 4.3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한다. 또 두산백과에 따르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두 주장이 별다른 차이가 없는 듯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사건의 발단을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은 미군정이 바라본 사건의 발단이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이 제주읍에서 일단의 좌익 3.1절 행사 참가자들을 공격하여 몇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는 제주 섬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하여 일으킨 소요들은 제주도를 점령하고 있는 미군에 의해 비교적 느슨하게 억제되어 있었다. 공격을 받은 섬 주민들은 경찰에 대하여 즉각적인 보복을 하였고, 1년여에 걸친 유혈 폭력이 시작되었다.

-1949년 4월, 주한미군사령부의 정보 보고서-

이 글은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던 1947년 3.1발포사건에 대해 미군정 당국의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미군정도 3.1사건을 4.3의 발단으로 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그들이 어떻게 3.1사건을 분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다.(154-156쪽)

​1946년부터 이어진 대흉년과 역병으로 먹고 살기 힘들었던 당시 사람들은 미국의 미곡 수집령과 하곡 수집령으로 미군정에 반감이 높았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 나온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경찰이 탄 말에 의해 다친 어린아이에 대한 사과가 없자 이에 대해 항의를 하였다. 그러자 경찰이 발포를 하였고, 6명이 사망했고 8명이 중경상을 입게 된다.(이 중 5명은 등에 총상을 입음) 경찰은 발포에 대한 진상 규명없이 ‘경찰서 습격 사건‘으로 규정을 하였고, 이에 저항한 민중들은 3.10 민관 총파업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면 수많은 희생자를 낳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간주하고 본토에서 파견한 응원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개입으로 반발이 더욱 심해지고,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 때 무장대에 의한 민간인과 경찰이 살해된 것은 무장대의 과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주 4.3사건의 본질은 토벌대와 무장대의 무력충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사건의 본질을 이렇게 국한시킨다면 토벌대와 무장대가 각각 제주 주민들을 희생시킨 규모를 따지고, 단순히 양적 비교로 논쟁을 하거나, 둘다 나쁘다는 애매한 결론을 맺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양적 비교를 하여 희생자의 80% 이상이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고, 수십명 수백명을 집단 학살했던 토벌대가 나쁘다로 결론을 내리면 역사적 사건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했다고 할 수 있을까? 무장대도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으므로, 토벌대와 무장대는 모두 나쁘다라고 결론을 맺으면 제주 4.3 사건의 본질에 근접한 것일까?

나는 제주 4.3사건의 본질을 다음 글에서 찾아보고 싶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확보되고 상생과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227쪽)

-2006년 제58주년 4.3위령제 대통령 추도사-

국가권력이란 무엇일까? 국가가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행사하는 권력이고, 강제력과 물리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즉,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되어야 하고, 권력자가 국가권력을 남용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제주 4.3 사건에서 국가권력은 정당하게 행사되었는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고문, 총살하고 즉결처형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불법 행위이다. 법의 절차가 없는 학살, 국가권력이 저지른 무차별 학살을 이 사건의 본질로 규정하고 싶다. 무장대가 무고한 주민들을 사살하고, 보복했다면 법적 절차에 따라 처벌을 하면 된다. 하지만 서북청년단이 재판없이 민간인을 마구 죽인 것과 나이, 성별, 임산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집단 학살을 했던 것은 법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볼 수 없다. 1953년 1월 무장대가 거의 소멸되었다고 볼 수 있었던 시점에서 멈추지 않고,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을 다시 개방했던 시기까지 끊임없이 제주 주민들을 ‘붉은 사상‘, ‘빨갱이‘로 몰아붙였다.


이 역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1947년 3월 1일부터, 1948년 4월 3일을 거쳐, 1954년 9월 21일까지 시기를 놓고 보면 이승만 정부와 현지 진압 작전을 벌인 지휘관에게 책임이 있다.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이 벌어진 1948년 11월 17일은 계엄령을 선포했던 때이다. 이 때는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한지 3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기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서북청년회의 단원이었던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을 마구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증언도 있다.

그리고 미군정 하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미국의 책임도 물을 수 밖에 없다. 1948년 8월 24일 이승만 대통령과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이 맺은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에 따라 미군 수뇌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틀 후 주한미군사고문단이 설치되어 1949년 6월 30일까지 한국군을 지휘할 권한을 가졌던 것도 미군이 제주도에 직접 개입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사상가 노암 촘스키도 ˝1945년부터 1949년 6월까지 미군이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 통제했기 때문에 제주 섬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극과 잔혹 행위에 대해 미국은 윤리적 책임뿐 아니라 실체적이고도 법적인 책임이 있다˝라고 했다.(160쪽)

​1948년 12월 9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집단살해(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을 보면 제노사이드는 국제법상 명백한 범죄임을 알 수 있다. 제주 4.3사건은 이 조약을 위배한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짧지 않은 시간과 3만여 명의 희생자를 보더라도 결코 단순한 역사가 아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우위를 차지했던 역사 속에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는 커녕 유가족들은 슬픔조차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언론과 시민 단체, 제주도의회 등의 노력을 시작으로 1999년 특별법 제정과 2003년 진상 보고서 발표, 2014년 국가추념일 지정으로 이어지며 서서히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루지만, 미래를 위한 것이다. 제주 4.3사건을 통해 인간의 존엄한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는 것이 인류가 나아갈 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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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7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유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2021-05-07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5-08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좋은 주말 되세요~

지유 2021-05-08 19: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교사가진짜궁금해하는온라인수업2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알았고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을 받은 책

#구글클래스룸수업
구글로 수업을 하래서, 전체적인 것을 알아야 뭘 할 수 있는 나란 사람은 구글클래스룸이 뭔지, 어떤 기능이 있는지, 어떻게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지 대략적인 것을 알기 위해 읽었다. 전체적으로 도움을 받은 책

#최고의원격수업만들기
원격수업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언급한 책. 교육철학, 교육심리 등 교육학에 대한 재교육을 받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 및 방법도 있어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있지 않아 매우 도움이 되었다.

#나의첫쌍방향온라인수업
사립학교 샘들인가? 작년 한해 고군분투해온 이야기. 내가 원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동업자의 마음으로. 올해도 건승하시길.

#온라인수업의모든것
적당히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면서 읽었다.

#인터랙티브한쌍방향온라인수업강의
귀여운 팁을 얻은 책. 아이디어 줍줍

교사-학생 뿐 아니라 학생 간에도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새로 눈을 떴다. 왜 원격수업하면 인강 밖에 떠올리지 못하고, 거부감을 가졌던 걸까. 내가 가는 길이 나도 처음이고 너희도 처음이라 우리는 모두 잘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좀 부족해도 괜찮다고 빈번히 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음의 불편함은 이렇게 어루만지지만,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많이 시큰거린다. 그래도 어쩌리. 거부감은 현실에서 도태되는 길이다. 받아들이며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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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들리는 목소리

오늘 양정무 교수님 목소리를 들었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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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원격수업 만들기 - 학생도 즐겁게 참여하는 온라인수업 디자인
권정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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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작용을 하지 않을 거라면 학습자의 시간적 자율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실시간 수업을 할 필요가 없다. - P55

원격 수업에서의 가치는 대면 수업에서의 가치와 다르지 않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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