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불편한 영화다. '인터스텔라'처럼 무한한 우주를 배경으로 블랙홀을 다루는 듯하지만, 공간으로부터 고립된 인물들을 통해 끊임없이 금단의 열매를 내밀며 시종일관 선을 넘나드는 암시와 장면을 쏟아낸다. 예술 속에서만 그려낼 수 있는 억압과 폭거에 대한 자유인가. 역시 어렵다.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줄리엣 비노쉬의 강렬한 연기와 로버트 패틴슨에의해 만들어진 작품 속 남자 주인공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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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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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 '아서 클라크의 3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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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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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불가능의 영역에 아주 살짝 도전해 보는 것 뿐이다. - ‘아서 클라크의 3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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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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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퍼스트 콘택트' 혹은 '미지와의 조우' 등은 소설과 영화의 제목과 함께 다양한 변조를 보이며 하나의 장르화가 되다시피한 주제이다. 「유년기의 끝」에서 사변적인 논조로 지적 외계 문명과의 접촉을 다루기보다는 인류 문명의 한계를 자조적으로 그려냈던 작가는 「라마와의 랑데뷰」에서 미스테리적인 필치로 지적 '외계 문명과의 접촉'을 다룬다.

  「유년기의 끝」과 마찬가지로 「라마와의 랑데뷰」는 우리의 과학문명을 훨씬 뛰어넘는 외계문명을 다루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배경과 주인공들의 반을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두 작품에서 인류와 외계 문명의 반응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유년기의 끝」에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해온 외계 문명에 대해 무력하게 외계 문명의 의도대로 순응하며 소극적이었던 인류의 반응과 달리, 「라마와의 랑데뷰」에 등장하는 외계 문명은 도무지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으며 탐험대와 행성대표회의의 행동도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외계 문명과의 접촉에 대응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유년기의 끝」(1953년)과  「라마와의 랑데뷰」(1973년)에 이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1982년),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1987년) 그리고 「3001 최후의 오디세이」(1997년)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우리 인류는 발전 가능성은 있지만 보다 성숙한 외계 문명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이제 막 눈뜬 문명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우주 개발을 막 시작하여 우주로의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하여 달을 정복하고 우주왕복선으로 지구 궤도를 상시 운행하던 시대이며 동시에 핵 억제력으로 유지된 냉전시대를 살았던 때문이리라.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 '아서 클라크의 3원칙'의 제3법칙은 이들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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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규 2019-12-29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로 7권까지 다 구해서 읽었어요.
와우 지성체 탐구 대장정의 끝까지.. 상상의 끝을 보여줍니다.
 
[eBook] 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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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F의 거장 아서 C. 클라크의 높이 평가받고 있는 소설에 별 3개는 너무 박한 점수일까? 하지만 계시록의 변주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작위적이기까지 한 중반이후 결말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아서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의 외계지성이 훨씬 더 공감가는 기대가능한 초고도 지성체의 전형이었던 것 같다.

  인류의 진화과정을 주물러대거나 행성 규모의 테라포밍이 가능한 외계문명이란 현재 어자피 우리에게는 이해 범위를 넘어선 신적인 존재로 이해될 수 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금단의 선을 그어 제한된 선택권이나마 준다는 점에서는 「유년기의 끝」의 외계지성보다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외계지성이 개인적으로는 반감이 덜해서 받아들이만한 과학적 상상이라고 생각된다.

  거장의 마음을 들어다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작품의 발표 시기를 봤을 때 작가 역시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사실 이 작품은 2015년  'Childhood's End'라는 제목으로 SyFy에서 제작되어 방영이 되었으며 어떤 경로인지 기억은 불분명하지만(?) 시청했었던 작품이다. 그 당시는 참 황당한 SF물이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원작이 클라크의 작품이었다니. 이 작품에 공감을 못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내 종교적 성향이 반영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작위적이라는 느낌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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