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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리토피아시인선 39
최동문 지음 / 리토피아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2006년을 동고동락한 책을 꼽아보니 시집인『아름다운 사람』이다.
시집은 참으로 묘한 매력이 있다. 내게는 단번에 샤샥 읽히지도 않을뿐더러 설혹 그렇다 해도 어김없
이 어느 순간에는 멈추게 된다. 책의 매력이 그렇게 잠시 쉬면서 곱씹거나 다른 생각으로 전이되는 특
별한 매력을 갖고는 있지만 시집은 시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왠지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뇌, 다정한 마음, 일상사가 담긴 소중한 책을 접하면 어느새 나도
시인의 궤도를 따라 도는 듯하다.

시집제목과 동명의 시 <아름다운 사람>은 예전에도 포스트에 올린 적이 있는데 다른 분들도 많이
좋아하는 시. <말의 파편>은 아래쪽에 옮겨볼 예정이고 <고뿔아?! 나 잡아봐라>는 독감에 걸린 시인
의 생활을 위트 있게 말해주고, <호수 편지>는 이웃인 왕눈이님도 마음에 들어 하신 거 같은데 동감
한다. <환상수첩>도 좋았으며, <작은 풍경 소리>에서 '하마'라는 말을 보고 친근함을 느꼈다.
'하마'는 동물 하마가 아니라 강원, 경상, 충북의 방언이라 사전에도 정의 되어있는데 실제로 충북
에서 쓰는 말이다. 예) '하마(벌써) 퇴근하셨어요?' <어느 이상주의자의 고백> 그리고 <사람의 마
을 6>, <나쁜 시>... 읽을수록 마음에 들어온다.

리토피아에서 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보며 내가 느끼는 시인은...
무중력을 즐기며(10쪽), 중력의 법칙을 모르고 더불어 가벼움도 모르는 이다.(15쪽)
자연, 꽃씨의 소중함을 알며, '특별시엔 성형수술로 반짝이는 가면이 아주 밝구나.'(말랑한 세상),
<사람의 마을 3>, '백로는 나일론 덫이 풀리자 관절이 부러졌다.'(사람의 마을 4), '이십일 씨는
눈알을 빼고 그 자리에 HD TV를 끼웠다.'(21세기의 이십일 氏), <수서역 통신> 등에서 들려주는 현
실의 비유에 동시대에 살아숨쉼이 느껴진다. 시인이야말로 '험한 세상을 부숴 비린 흙내를 만드는
사람'(어느 이상주의자의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지상에서 만들어지며 그의 시집은 그 아름다운 사람들의 몫이다.
피곤한 세상에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멀었다 하지만 어떤 삶이든 꿈꿀 권리는 있다. 갈증이 나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게 삶이라도 희망이라는 중독적인 단어로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버티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이다. 살다 보면 '맑은 바람이 헹궈낸 물맛'(말랑한 세상)을 느낄 때가 오겠지.


말의 파편

너에게 맞았다.
아프지 않았다.
같이 걸었던 바람 많던 골목길이
네가 던진 파편에 숨어 있어서.

실반지도 흘러내리는 야윈 손가락이
어둠 속으로 문득문득 묻혔다.

내게 던진 너의 파편은
사과를 훔쳐 달아나다 넘어진
어린 너의 무릎을 타고 흐르는
멈추지 않는 피를 닮았다는 걸
나는 알아서.
아프지 않았다.

계절은 언 발 아래서 늘 잊혀졌다.
너의 눈물이 마르는 밤을 위하여
나는 네 가슴을 밤새 쓸었다.

미안하다, 너를 말의 파편이라고 해서.
너의 입술,
너의 오래된 구두뒤축이 만든
굳은살에 향수를 발라주었다고 해야 옳다.

심장에 박힌 너의 파편은
나의 다른 이름이어서
배고픈 새벽이면 순식간에
나에게 번지곤 한다.


:: 시인의 블러그 = http://blog.naver.com/gave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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