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는 법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돌아온 밤, 혼자 남는 밤은 허무한 기분이 든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어두운 집안에 불도 켜지 않고, 옷도 벗지 않고 혼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외로움과 허무함이 견딜 수 없이 밀려들면 다시 집을 나서 술을 사온다. 취해버리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것 같은 기분.


혼자가 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허무하고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땐 그저 오래전 혼자 자취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냥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별로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때도 일주일에 삼 일은 아이들과 함께 지냈고, 나머지 시간은 밖에서 모두 잠들때까지 술을 마시다가 들어갔다. 어쩌다 술자리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면, 괜히 일찍 들어갔다가, 아직 잠들지 않은 애들 엄마와 마주치는 것이 싫었다. 그 어색한 순간이 견디기 힘들었다. 혹 술을 함께 마실 사람이 없으면, 혼자라도 술을 마시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갔다.


그래, 지금도 일주일에 삼 일은 아이들과 지낸다. 나머지 시간은 거의 술이다. 그건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이 돌아간 밤이 되면 이렇게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될 줄은 몰랐다.



마로니에 2집 테이프를 즐겨 들었던 때는 90년대 초였다. 좋아했던 노래는 A면 첫 곡이었던 <안개꽃 꽃말은 슬픔>과 B면 첫 곡이었던 <혼자 남는 법>이었다. 둘 다 황치훈의 노래였다. 그땐 아직 아픈 이별을 몰랐을 때였을텐데, 혼자 가슴 아픈 이별을 상상하며 <혼자 남는 법>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딱 이 노래다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곡이 없었던 이 테이프는 박학기나 윤상이나 공일오비의 테이프에 점점 자리를 내주고 먼지가 쌓인채 잊혀졌다. 그런 이 노래를 다시 떠올렸던 건, 이 집으로 이사 온 첫 날이었다.


무척 더운 날이었다. 함께 이사짐을 옮겨준 후배와 나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책장 세 개 외에는 가구도 하나도 없었고, 그저 짐이라곤 옷과 책 밖에 없었다. 아니 이불 몇 개를 챙겨나오긴 했구나. 책이 워낙 많아서 생각보다 짐을 옮기고 정리하는데 오래 걸렸다. 아니 책 정리는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 그저 제목도 보지 않고 꽂아두기만 했음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책장에 다 들어가지 못한 책들은 여전히 끈에 묶인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고생한 후배에게 고기와 술을 대접할 생각이었다. 짐을 대충 부려놓고 지칠대로 지쳐 고기집으로 가려는 때, 애들 엄마는 애들을 맡기고 약속이 있다고 갔다. 고기와 술로 배를 채우고 후배는 돌아갔고, 아이들을 다시 애들 엄마에게 데려다주고 혼자 텅 빈 방으로 돌아온 밤, 낯설기만 한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다. 가스도 아직 연결하지 않아 뭘 해먹지도 못했던 밤,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과 컵라면을 샀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조심조심 가져와 소주를 마셨다. 가구 하나 없는 방에서 바닥에 앉아 라면을 씹고, 소주를 들이키며,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검색해 이 노래를 들었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이제 난 정말 혼자구나.


손빨래


다른 필요한 물건들은 하나둘 장만했지만, 세탁기만은 사지 않았다. 일단 돈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화장실이 좁아 세탁기를 놓고 나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 오래전 혼자 살 때에도 세탁기는 없었다. 그땐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씩 손빨래를 했다. 여름 옷은 뭐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겨울 옷은 좀 힘들긴 했다. 가끔 빨래를 커다란 가방에 가득 담아, 부모님 댁에 가서 빨래를 해오기도 했다. 겨울에는 자주 그랬던 것 같다.


세탁기를 사주겠다는 선배가 있었다. 내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했다. 난 여름이라 아직은 괜찮다고 거절했다. 나중에 여름이 가고 날이 추워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하는 손빨래는 재밌었다.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였다. 비누 거품을 잔뜩 내고, 여러번 헹궈 깨끗해진 빨래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손빨래에 다시 익숙해지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곧 다시 예전의 노하우를 기억해냈다. 흰 옷, 비교적 깨끗한 옷부터 더러워진 옷, 짙은 색깔의 옷 순서로 비누칠을 하고, 대야에 넣어 거품을 잔뜩 내고 나서, 다시 같은 순서로 헹구기 시작한다. 대야에 받은 물이 더러워질 때까지 순서대로 하나씩 옷을 넣어 헹군 다음 꼭 짜고, 다시 깨끗한 물을 받아서 헹구고 짜기를 반복한다. 더이상 비눗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헹구면 마지막으로 물기를 짜내고 거실(이라기 보다는 개수대가 놓인 통로라고 불러야겠지) 바닥에 던져두고, 그 다음 순서의 옅은 색 옷부터 다시 헹구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물을 최대한 적게 쓰고, 시간도 훨씬 적게 들여 빨래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자고 가는 날엔 아이들의 속옷과 양말이 빨래더미에 쌓인다. 아이들의 겉옷은 엄마 집에 가져가서 빨아야 한다고 말한다. 속옷과 양말은 금방 빨수 있지만, 겉옷은 힘들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반드시 반 바지를 입어야 한다. 비가 오는 줄 모르고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가, 다 젖은 그리고 흙탕물이 잔뜩 튄 청바지를 빨아야 했던 날엔 진짜 힘들었다. 그 옛날 군대에서 군복 빨던 때가 생각났다. 요즘은 군대에도 세탁기가 있다던데, 당시엔 사병이 세탁기를 사용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두꺼운 야전 상의도 모두 손빨래를 해야 했다.


빨래는 거의 밤에 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크게 켜놓고 한 두세시간 빨래를 하고나면 거의 녹초가 된다. 하지만 깨끗해진 빨래를 널어놓고 나면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느껴진다.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만큼 지쳤지만, 기분은 좋은 상태로 잠들 수 있다. 


술에 취하지 않아도 지쳐 쓰러질 수 있으니 빨래는 좋은 것이구나. 하지만 이 짓도 하루이틀이지. 이젠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슬슬 긴 바지와 긴 팔 상의가 빨래로 나올 때가 되었다. 날이 더 서늘해지기 전에 세탁기를 사야 할 때가 되었다 싶다. 다음 달 중순 다시 이사를 하고 나면 꼭 세탁기를 사야겠다.


가사노동


집안 일은 귀찮고 힘들다. 밥과 반찬 만들기, 설겆이, 청소, 빨래 어느 것 하나 편한 일이 없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날, 혼자인 날은 그런 집안 일을 최소한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밥 그릇에 반찬을 함께 담아 먹기도 하고, 다행히 땀을 많이 흘리지 않은 날엔 냄새를 맡아보고 괜찮겠다 싶은 옷은 창가에 걸어두었다가 다시 입기도 한다. 아니 혼자인 날은 밥을 잘 해먹지 않는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밖에서 먹고, 저녁도 주로 술과 안주로 배를 채운 후에 돌아온다.


아이들이 오는 날엔 어쩔 수 없이 밥도 해야하고, 반찬과 국도 만들어야 한다. 설겆이도 훨씬 더 많이 나온다. 빨래해야 할 옷도 더 많다. 어떤 날엔 기분 좋게, 빠르게 집안 일을 해내지만, 대개는 귀찮은 마음에, 하기 싫은 마음에 일을 미룬다. 더이상 꺼낼 그릇이 없거나, 더이상 신을 양말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마음을 먹고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사를 나가기 위해 집을 내놓았을 때에는 꼬박꼬박 설겆이도 하고, 빨래도 해야 했다. 청소도 자주 해야 했고, 쓰레기도 자주 비워야 했다.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몸만 빠져나와 씻고 출근했지만, 이젠 낮에 내가 없는 동안 누군가 집을 보러 와서, 이불이 그대로 펴진 방을 보고 욕을 할 것 같았고, 개수대에 쌓인 그릇들과 화장실 입구에 쌓인 빨래감을 보고 욕을 할 것 같았다. 


매일 끝없는 집안 일을 하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어차피 누군가 대신할 사람도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을 고쳐 먹고, 기분 좋게, 미뤄두지 말고 집안 일을 하자. 그게 내가 나를 돕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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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7 08: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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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7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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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7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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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7 1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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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7 1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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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7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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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오는 날 다음날이 휴일이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행복하다. 만약 휴일이 아니라면, 그 때는 전쟁이다. 아이들을 깨우고, 준비물을 챙기게 시키고, 또 내가 챙겨주고, 씻으러 들어가라고 독촉하다가, 정 안 되면 짜증내는 아이를 꼭 안고 달래가며 화장일 입구까지 데려가야한다. 간단히 먹을 걸 준비해주고, 나도 씻고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아이들은 아침에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다. 양치나 세수를 하다가도 멈춰있고, 머리를 빗다가도 멈춰있고, 먹다가도 멍하니 가만있다. 그럴때마다 난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급기야 화를 내는 날도 있다. 다행히 이젠 큰 아이가 제 할일은 대부분 알아서 하는 편이라 한결 편해지긴 했다.

오늘처럼 휴일 아침이면 한결 여유롭다. 나도 아이들도 맘껏 이불 위에서 뒹굴며 늦잠을 잘 수 있다. 난 밤에 막 잠든 아이들의 얼굴과 아침에 아직 깨기전 아이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정말 좋다. 새삼 이 아이들이 언제 이만큼 자랐나 하고 신기하다 싶기도 하고, 이렇게 사랑스럽고 천사같은 얼굴이었나 싶기도 하다.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와 뺨에 입맞추고 꼭 껴안으면 왠지 벅찬 감정이 솟구친다.

오늘은 아마 7시 무렵 깼다. 아이들이 다 이불을 차고 자고 있어서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차례로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앞서 말한것처럼 이마와 뺨에 입맞추고, 한번씩 껴안은 후에 방을 나왔다. 확실히 가을이다. 맨 다리가 약간 쌀쌀한 느낌이다. 화장실을 다녀와 노트북을 켜고 중국어 강좌를 잠시 봤다. 왠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작은 아이 곁에 누웠다. 녀석의 고요한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울 것 처럼 소리를 냈다. 악몽을 꾸는 건가? 난 급하게 아이를 껴안고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아이의 귀에 낮은 음성으로 ˝괜찮아. 아빠가 옆에 있어. 아빠가 지켜줄게.˝ 라고 속삭였다. 녀석은 잠시동안 더 인상을 쓰면서 살짝 몸부림을 치다가 곧 내 팔과 다리에 매달렸다. 다시 표정이 평온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아이를 안고 누워있었다. 이런 시간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하며 누워 있었다.

밖에서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크게 나서 정신이 들었다. 아이들 아침 먹일 준비를 해야했다. 냉장고엔 김밥과 주먹밥이 있어서 밥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간밤에 행사장에서 남은 주먹밥을 잔뜩 가져왔고, 그 전날 밤엔 또 다른 행사를 마치고 남은 김밥을 가져왔었다.

애호박과 두부를 썰어서 묽은 된장국을 끓이고, 남은 애호박은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을 입혀 부쳤다. 냉장고에서 꺼낸 김밥도 계란을 입혀 부치고, 노랑과 빨강 파프리카를 썰어놓았다. 주먹밥을 어떻게 데울까 고민하다가 그건 그냥 먹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알라딘에 글을 쓰려는데 갑자기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도 자주 그런 일이 있어서 모뎀과 공유기 전원을 껐다 켰는데, 그래도 안 되었다. 또 한 번, 이번에는 끄고나서 한 5분의 시간을 두고 다시 켰다. 그래도 되지 않아서 인터넷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신호가 가다가 멈추는 현상이 있다고 일단 복구신호는 보냈지만 기사가 방문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내일 방문해도 되냐 묻길래 제일 바쁜 월요일이라 안 된다 하고 화요일 오전으로 약속을 정했다. 그럼 이제 화요일까지 인터넷은 휴대폰 엘티이 밖에 못 쓴단 얘긴데 난 데이터 양이 적어서 테더링을 할 순 없다. 노트북으로 쓰던 글을 포기하고(임시저장 되어 있겠지?) 폰으로 북플을 열어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스스로 재미없는 사람이라 여긴다. 매사에 진지하고 농담이나 장난은 애들하고 있을 때 외에는 잘하지 않는다. 회의,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 진행을 맡아왔지만, 파티와 같은 흥겹게 노는 자리의 진행은 스스로 잘 안 어울리더라는 생각을 했다. 몇 번 해봤는데, 재미없었다는 평을 들었다. 어제의 파티 진행도 그래서 안 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같이 가야하는데, 아이들을 돌봐야 하므로 안된다고 거절했다.

작년에 작은 도서관 문학의 밤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나에게 와서 안아달라고 하더니, 곧 내 다리에 매달렸다. 사람들은 웃었고, 난 말을 멈추고 아이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아이는 더욱 꽉 매달렸다. 어쩔수 없이 아이를 왼팔로 안아 올리고,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진행했다. 큐시트를 왼손에 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볼 수 없었다. 기억에 의존해 즉흥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아이들을 데려가야하는 행사에선 아무것도 맡지 않으려고 애썼다.

작은 아이는 아마 낯선 어른들만 가득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놀아줄 수 있는 언니가 만화책에 푹빠져 반응이 없고,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도 글씨를 못 읽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언니가 안 놀아주니 아빠를 찾았을텐데, 아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떠들고 있었으니 아빠도 놀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다시 혼자 그림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겠지.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 되었을테고, 무조건 아빠한테 안아 달라고 했을 것이다. 혼자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보려고 애썼을 아이가 가여웠다.

하지만 행사 준비 회의에선 달리 진행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회의는 소강상태로 길어졌고 다들 지쳐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내게 맡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왔다. 마지막으로 고민이 되었다. 공간이 달라서 어쩌면 작은 아이도 잘 놀수 있을것 같았다. 또 하나의 고민은 내 진행이 재미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 단점을 보완해 줄 다른 한 사람과 공동진행을 하는 조건으로 승락했다. 다른 대안이 없었고, 긴 회의를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행사 하루 전 함께 진행을 하기로 한 여성 활동가와 짧게 준비를 위한 논의를 했다. 이 친구도 평소 회의나 간담회 진행을 보면, 나 못지않게 재미가 없던데. 이 파티 완전 흥행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진행 자체는 별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분위기를 띄울 것인가 하는 스킬이 중요하다. 둘이 함께 진행하려면 둘의 호흡도 중요할텐데, 지금 이 짧은 시간에 준비할 수도 없었다. 혼자 하는게 차라리 편할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엔 왠지 자신이 있었다. 재미있게 할 수 있을것 같았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평소보다 한 톤 높은 음성과 조금 더 흥분한 마음가짐으로, 조금 과장하고 오버해서 말했다. 하지만 또 차분할 때는 차분하게 했다. 내 목표는 낯선 사람들이 서로 조금이라도 더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아이스 브레이킹이 필요했다. 몇개의 프로그램을 알고 있고 종종 써먹어 봤지만, 파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적절한 걸 찾아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고민 끝에 `가위 바위 보` 게임으로 정했다. 진행자가 적절히 분위기를 잘 띄워야했다. 큐시트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가 맘을 바꿔, 감탄사와 손동작까지 표기한 대본을 만들었다.

행사장에 일찍 도착해 이것저것 준비를 도와준 후에 입 운동을 했다. 목도 가다듬었다. 작은 아이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뛰어다니며 노느라 보이지 않았고, 큰 아이는 맨 앞자리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이크와 대본을 들고 있는 날 보고, ˝아빠가 사회자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자기도 나중에 사회자 할 거라고 했다. 아빠 딸이니 잘 할 거라고 말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들이 늦게와서 시작이 좀 늦어졌고, 축하공연에서 두번째 앵콜이 나와서 또 진행이 늦어졌다. 총괄하는 친구(앞서 나와 공동진행을 하려던 여성 활동가)가 자꾸 시계를 보며 걱정했다. 밥도 먹어야 하고, 마쳐야할 시간은 계속 다가오는데 아직 본 행사는 시작도 못 했으니 그 초조함은 당연하다. 난 대략 계산을 해보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내게 맡기라고 했다. 순서 하나를 간략하게 진행하면 될텐데, 흐름을 자연스럽게 가져가려면 순서를 바꿔야했다. 그 친구에게 바뀐 계획을 알려줬다.

앞서 말한 아이스 브레이킹 게임을 뒤로 보내 밥 먹기 직전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다. 순서를 늦춰 늦게 도착한 사람들 포함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 중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동네에서 유명한 언니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내 말에 적절한 반응과 리액션을 보여주어 내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질수 있도록 해주었다.

밥 먹으면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느낀점을 말할 수 있도록 1분 발언대를 하자는 내 아이디어도 성공이었다.

파티를 다 마치고, 준비팀만 남아서 뒤풀이를 했다. 우린 모두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친 개운한 기분으로 술을 마셨다. 누군가 큰 아이에게 너희 아빠 어떻게 이렇게 사회를 잘 보냐고 물었다. 아이에게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들으라고 한 말이겠지.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공치사를 많이 받았지만, 사실 난 그리 한 게 없다. 무대 준비, 음향 준비, 현수막과 포스터를 비롯해 행사장을 꾸미는 일, 음식을 준비하고 세팅하는 일 등등 뒤에서 나보다 훨씬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는 이유로 혼자 공치사를 받는게 부담스러웠다.

축하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큰 아이가 내가 써놓은 대본을 읽고 재미있어 했다. 특히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사회자가 왕이니 무조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등의 표현을 보고 웃었다. 그런 아이의 웃음도 내게 힘이 됐다.

밤에 잠들기 전 준비팀에서 홍보를 맡은 이가 찍은 페이스북 생중계 영상을 다시 돌려 봤다. 아! 내 목소리 왜 이렇게 이상한거지? 이게 진짜 내 목소리야? 예전부터 영상 인터뷰 한 거나, 행사 스케치 등에서 내 목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긴 했지만, 이번에 일부러 감정을 끌어올려 오버해서 진행한 목소리는 더 이상했다.

큰 아이에게 이 목소리가 아빠 목소리와 똑같은지, 그러니까 아이에게 내 목소리가 실제 이렇게 들렸는지 물었더니 그렇다 했다. 그렇구나! 이 이상한 낯선 목소리가 내 목소리구나. 아이는 다만 아빠가 평소보다 훨씬 소리를 크게 내서 놀랐다고 했다.

인터넷이 되지 않아 폰으로 긴 글을 쓰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다. 이제 점심 먹고 어디로 놀러갈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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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 비틀 걸음을 옮긴다. 새벽까지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았다. 열차의 흔들림에 따라 몸이 휘청인다. 통로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어깨를 부딪히고, 가방에 팔꿈치가 걸리며 앞으로 나간다. 다행이다. 열차의 흔들림 덕분에 내 취한 걸음이 들키지 않아서.

가야할 길이 멀다. 억지로 떠맡은 오늘 저녁 행사 사회 볼 준비를 해야한다. 사회자 큐시트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대략 순서와 해야할 멘트를 적어놓아야 한다. 적절한 소개와 표현을 위해 자료도 찾아야한다. 억지로 맡았으나 하겠다고 승락한만큼 잘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지금 내 머리속엔 아직도 그의 숨결과 목소리만으로 가득차있다. 저녁 행사따위 1%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미친척하고 펑크를 내버릴까? 그랬다간 이 바닥에서 매장당하겠지? 문득 머리가 아프다. 숙취 때문일까? 저녁 행사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아니 뭐 그깟 사회 한번 보는걸로 무슨 부담따위! 큐시트 따위 없이도, 별다른 준비 없이도 잘 해낼 자신있다. 그저 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냥 지금은 그를 떠올리며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만약 내가 [어바웃타임]의 주인공이었다면 그와의 시간을 무한반복 돌리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톡방에선 행사준비에 대한 소식이 계속 올라온다. 앰프와 무대장비를 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둥, 차랑 운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둥, 행사장 배치는 이렇고 저렇고, 몇 시까지 몇 명이 필요하다는 둥. 나는 그 모든 소식을 보고도 못 본척 무시한다. 난 아직 취했고 깨고 싶지 않다.

집에 가서 인도 영화나 한 편 보고 싶다.

아참, 북플에서 제목다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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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빠와 승모근


얼마전 친한 형과 술을 마시다가 요즘도 운동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늦은 봄부터 한창 더워지기 전까지 바짝 했었다가, 더워진 이후로는 안 했다고 말했다. 사실 가끔 잊을만하면 잠깐씩 하긴 하는데, 그 전처럼 제대로 하는 건 아니다. 암튼 그 형은 여전히 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참을 내 몸을 훑어봤다. 그러더니 갑빠와 승모근이 제일 부럽다고 했다. (사실 갑빠는 그 형의 표현이었고, 승모근이란 단어를 몰라서 내가 가르쳐 줬다)


갑빠는 흔히 흉근 전체(흉근은 상부, 중앙, 하부, 내측, 외측으로 복잡하게 이뤄져 있다.)를 말하는 것으로 대개 흉근 외측과 흉근 하부가 발달하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승모근은 목과 어깨를 연결하는 쇄골 위쪽 부위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즈음부터 약수터에서 돌로 된 역기를 들었다. 흔히 사람들이 주로 하는 벤치프레스만 한 것이 아니라 스내치(인상)과 클린 앤 저크(용상)를 제대로 배웠다. 그래서인지 흉근과 승모근은 10대 후반부터 발달했다. 그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도중에 제법 오랫동안 운동을 안 했지만, 여전히 이 두 근육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형에게 말했더니, 운동을 오래 안 했으면 근육이 줄어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불공평하다고 했다. 


약 한 달 전쯤 동네에서 열린 작은 축제에 몸쓰는 일을 하러 갔다. 더운 날씨였고, 땀을 많이 흘릴 것을 예상해 소매없는 셔츠를 입고 갔다. 땀을 흘리며 짐을 날랐더니, 셔츠는 곧 땀에 젖었고, 근육은 팽창했다. 평소 동네에서 자주 마주쳤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특히 50대 언니들이 그랬다. "그렇게 입고 있으니 달라보인다."라는 의미를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분들이 서너분 계셨다.


그리고 마주친 형님 한 분은 나를 보자마자 "가슴을 만지고 싶다"고 말했다. 이거 여성에게 했으면 심각한 성희롱일텐데. 마침 근처에 있던 친한 형(아까 저 위에서 갑빠와 승모근이 부럽다고 했던)이 "쟤는 예전부터 갑빠가 장난 아니었다"고 한 마디 거들었다.


글쎄 운동 전후로 거울을 보면 난 아직 멀었다. 약 4년 전쯤 다시 20대 때의 몸매로 돌아가고 싶다 생각하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아직 돌아가지 못했다.
















저탄수화물 식단


한 두어달 전에 [내 몸에 독이 되는 탄수화물]이란 책을 읽고, 이후 탄수화물을 적게 먹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돌아보면 그 전의 나는 밥만 많이 먹는 편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반찬은 적게 먹고 밥만 많이 먹었다. 도시락을 싸가면 친구들보다 1.5배는 큰 밥통 때문에 다들 놀랐는데, 그 밥통은 깨끗이 비웠지만, 친구들에 비해 종류도 양도 적은 반찬은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학에서 엠티를 갔을 때, 밥솥을 끌어안고 밥을 먹었던 나를 보고 동기들은 다들 놀랐다. 지금도 가끔 혼자 사는 대학 동기네 집에 놀러가는데, 그때 그 친구가 늘 하는 말이 "밥만 많이 해놓으면 돼지?" 였다. 그랬던 내가 밥 먹는 양을 확 줄였던 건 30대 후반이었다. 아마 활동량이 확 줄어들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데, 한번 양을 줄이고 나니, 다시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어쩌다 과식을 하게 되는 날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예전의 반도 못 먹고 있다.


거기서 이젠 아예 밥이나 면 종류를 안 먹거나, 아주 조금만 먹는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먹으려면 일단 돈이 많이 든다. 게다가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다행히 4년 전쯤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대개 하루에 한번, 많으면 두번 식사하는 방식으로 습관을 바꿨다. (물론 그래놓고 밤에 술을 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요즘은 저녁에는 아예 밥이나 면 종류를 안 먹고 술과 안주로 배를 채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효과가 있느냐? 확실히 효과가 있다. 그 두 달동안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던 그 전 두 달에 비해 아랫배의 군살이 더 많이 빠졌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골반 위쪽 아랫배와 옆구리의 군살은 어쩔수가 없었는데, 어느날 거울을 보니 군살에 덮혀 잘 보이지 않던 아랫쪽 복근도 윤곽이 보이기 시작해서 놀랐다. (위쪽 복근은 운동 시작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정도 선명해졌는데, 아랫쪽은 군살에 덮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두 달동안 술을 거의 매일 마셨던 걸 생각하면 더욱 효과가 있다고 하겠다. 요즘은 술과 안주 때문에 다시 아랫배에 군살이 붙고 있는 느낌인데, 날이 서늘해졌으니 슬슬 다시 운동을 병행해야 겟다.


독서대가 왔다!



저번에 알라디너 유레카님의 글을 보고 저 독서대를 꼭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 뒤로 계속 잊어버리고 있었다. 집에서 책상도 없이 밥상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마다 불편해서 독서대라도 사면 조금 더 낫겟지 생각했는데, 그것도 계속 생각만 하고, 주문은 계속 잊어버리다가, 지난 연휴에 책을 주문하면서 함께 구매했고, 어제 도착했다. 덕분에 지금 이 글은 노트북을 독서대에 올려두고 편하게 쓰고 있다. 


어제 저녁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골목에서 콘돔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무슨 알약인가 싶었다가 자세히 보니 그것이길래 좀 놀랐다. 이게 왜 이런 골목길에 떨어져있지 하고 궁금해했는데, 주위를 보니 여러 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 흘리고 간 걸까? 아님 일부러 뿌리고 간 걸까? 아이들은 별 신경쓰지 않고 걸어가버렸고, 난 잠시 뒤에 서서 이걸 주울까 말까 생각했다. 아니 본능적으로 이걸 주워가려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지금 이걸 굳이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거나 아님 쓰레기 봉투에 버려지는 것이 너희들의 운명일 것 같다고 여기고 돌아섰다.


어제 저녁 큰 아이는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 나서 갑자기 흔들리던 이에서 피가 난다고 말하더니, 곧 혼자 이를 뽑아버렸다. 그 전에는 이를 뽑아주려면 난리도 아니었는데, 저렇게 쉽게 혼자 이를 뽑다니! 워낙 이를 늦게 갈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어제 밤에는 꼭 술을 한 잔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명확한 일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미련이 남는 어떤 생각 때문에 취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올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재워놓고 한 잔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불을 끄고 아이들을 재우려다 함께 잠들고 말았다. 뭐 이런 경우가 한 두번도 아니지만, 어제는 정말 술 한 잔과 함께 고민이 필요했기에 아쉽다. 그 고민은 오늘 밤 다시 이어가는 걸로 해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잠든 덕분에 일찍 깨서 중국어 공부도 좀 하고, 음악도 듣고, 이 글을 쓰고 있었는데, 금방 바쁜 아침이 되어버렸다. 큰 아이는 조금 전에 무거운 가방에 배드민턴 채를 꽂고, 커다란 바이올린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작은 아이는 오늘 소풍이 있어서 일찍 가야 하건만, 아직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짓고 작은 아이를 일으켜 준비시켜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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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1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1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9-21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근육맨 이십니까.
감은빛님의 근육을 응원합니다. 저는 특히 좋아하는 남자들의 근육이 있는데요, 팔에 알통 있는 것도 그렇지만, 왜,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거기를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근육있는 거 보면 돌아버리겠더라고요. 막 마음이 몰랑몰랑해지는데, 사실 그 부위에 근육이 있는 남자를 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ㅎㅎㅎㅎㅎ

감은빛 2016-09-21 11:5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예전 한번 글에 쓴 적이 있는데,
저는 근육이 큰 편은 아니고, 근 선명도가 좋은 편에 속합니다.

근육이 큰 것과 실제로 힘이 좋은 건 또 다른 문제인데,
그건 얘기가 길어지니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말씀하신 근육은 통상적으로 `전완근`이라고 부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무척 많은 근육이 있는데,
이중에 가장 큰 근육 두 개가 상완요골근과 수근요골굴근입니다.

그렇죠. 이 근육이 발달한 사람이 많지 않죠.
이게 근육의 크기가 작고,
상대적으로 저중량 고반복 운동을 해야 하기에 키우기 쉽지 않거든요
배우 장혁이 이 부위를 따로 키우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하더군요.

무해한모리군 2016-09-2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근육맨이시군요... 부럽습니다... 역시 키는 저탄수화물식인데 외식이 주니 쉽지가 않네요..

저는 남자분들 보면 팔이라던가, 운동할때 팔을 들면 윗옷이 들리면서 살짝 보이는 골반뼈라던가 이런게 섹시한거 같아요 힛.

감은빛 2016-09-27 11:41   좋아요 0 | URL
모리님, 근육맨이라 불리기엔 근육의 크기가 크지 않아서요.
전 다행히 근 선명도가 좋은 편이어서요.
남들이 보기에 근육이 눈에 잘 띄는 편이죠.

저도 외식이 대부분이라 저탄수화물 식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혼자 먹는 날에는 그래도 처음부터 밥을 적게 달라고 하거나,
양을 조절해달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은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을 때에는 그게 쉽지 않더라구요.
요즘 유난히 회의나 행사 후에 함께 식사하는 날이 많아서,
다시 아랫배가....... ㅠㅠ
 
[수입] Kuch Kuch Hota Hai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두근 두근 가슴이 뛰어!


일요일 아침, 유튜브로 인도 영화 음악을 틀어놓고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깨더니 음악 소리를 쫓아 나왔다. 난 엉금엉금 기어서 방을 나오는 녀석을 안아올려 이마에 입을 맞췄다. 녀석은 잠시 양팔로 내 목을 감싸 껴안더니, 곧 버둥거리며 내려와 노트북 화면을 보려고 했다. 난 장난을 치며 일부러 녀석을 더 높이 안아 올렸다. 녀석은 양발을 쭉 뻗어 발 뒷굼치로 내 쇄골 부위를 찍어 눌렀다. 생각보다 아파서 녀석을 내려놓았다.


난 녀석의 이마에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음식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마침 큰 아이도 깨어 이불 속에서 나를 불렀다. 안아달라는 거였다. 이제 훌쩍 키가 커버린 녀석을 안기는 쉽지 않았다. 큰 아이의 이마에도 입을 맞추고, 일어나 밥을 먹자고 했다. 큰 아이는 다시 이불을 덮어 쓰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내며 투정을 부렸다.


그러는 사이 유튜브는 자동으로 노래를 바꿔 [데브다스]의 어떤 노래를 들려줬다. 화면에서는 아이쉬와라 라이가 인도 전통 춤인 듯한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본 지 오래되어서 이게 어떤 장면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샤룩 칸과 아이쉬와라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몇 차례 밥 먹자고 채근한 후에, 난 큰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나오기를 기다리며 노트북 화면에서 춤을 추는 아이쉬와라에 집중했다. 섹시한 사리를 입고,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모습에 눈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작은 아이는 자연스럽게 내 무릎에 앉아 함께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춤을 보며 작은 아이는 내 가슴에 기댄 머리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유튜브가 선곡한 노래는 놀랍게도 [꾸츠 꾸츠 호타 해]에서 클라이막스 즈음 나온 노래였다. 샤룩 칸과 까졸이 다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노래 속에 담은 장면이었다. 이 노래를 듣다보니 [도스타나]에서 주인공들이 따라한 유명한 장면,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를 맞은 후 춤을 추는 장면이 보고 싶었다. 그 장면을 유튜브에서 찾으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노래와 춤이 섞인 맛살라 장면이 아니라서 검색이 안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런데 나 이 영화를 갖고 있는데, 왜 힘들게 검색해서 찾으려는 거지? 난 이 장면만 보고 큰 아이를 불러 밥을 먹으려고 영화를 켜서 찾고 있는데, 큰 아이도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 셋은 그 유명한 장면을 함께 봤다. 큰 아이는 놀랍게도 예전에 함께 보았던 기억을 떠올려, 까졸이 "노 뮤직"이라고 말하자, 다음에 이어지는 샤룩 칸의 피아노 치는 듯한 손동작을 그대로 따라했다. 게다가 까졸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흠칫 놀라, 갑자기 뛰어가는 걸 보고는, 약혼반지 때문이냐고 내게 물었다. 어느새 그런 걸 다 이해할 정도로 자랐구나 싶어 놀랐다. 아이들은 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어했고, 난 밥을 먹고 나서 보여주겠다고 했다.


밥을 다 먹고 약속대로 영화를 처음부터 보여줬다. 라니 무케르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장면. 이 영화 몇 번을 보았지만, 이 샤룩 칸과 라니의 눈물 연기는 참 어색하다. 아니 영화 전체가 다 촌스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게 또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여러 곡의 노래 중에 나는 '코이 밀리 가야'라는 곡을 가장 좋아하고, 큰 아이는 '꾸츠 꾸츠 호타 해'라는 주제곡을 가장 좋아했다.


영화의 중반 이후 샤룩과 까졸이 서로에게 "두근 두근 가슴이 뛰어! 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바로 이 영화의 전부라 볼 수 있다. 




몇 번이나 이 영화를 봤지만, 이번에 보면서는 남다른 감정이 들었다. 제법 오랫동안 가슴이 뛰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저 일상에 떠밀려 주어지는 대로 따라왔다.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최근 이젠 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근 두근 가슴이 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느끼고 싶다. 그리고 그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처럼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불안, 좌절, 슬픔, 아쉬움 등이 늘 따라다닐 것이다.


큰 아이와 함께 '꾸츠 꾸츠 호타 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이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바라는 것 만으로 바뀌는 것은 없으니, 이제라도 노력을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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