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싸움이나 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사문제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오프라인에서 이야기하지, 온라인 상에서는 이야기를 아끼는 편이다.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이야기를 하면, 쉽게 감정이 격해지고, 말실수를 할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늘, 주말에 대한 예의를 지킨답시고 어제 밤새도록 책을 읽고 새벽에서야 잠들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니 알라딘 서재에서 또 난리가(?) 났다.(라고는 하지만, 평소보다 관련 글이 조금 많은 정도) 어찌된 일인가 찾아보니, 한기호 소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출처 : http://blog.naver.com/khhan21/110157930257)



  솔직히 관련 글까지 쓴 내게 이 발언은 상당히 기분 나쁜 발언이다. 이 사람이 혹시 말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어 이 사람 블로그 목록을 띄워보니, 이 사람, 상당히 호전적이다. 어떤 '쓰레기들의 합창회’, 외톨이가 되어가는 알라딘, 알라딘에 대한 출판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알라딘은 강도이자 양아치인가?, 교보문고의 ‘지식과 지혜의 샘’은 ‘악취 나는 오물 구덩이’에 불과하다, 막나가는 교보문고 -- 등등. 개인적으로 아무리 일개 네티즌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어떤 발언에 대해 조롱하고 비난을 퍼붓는 것은 좋게 보지 않는다. 하물며, 무슨 소장 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이러고 있는 것은 상당히 보기 안 좋다. 아, 말투로만 비판을 하는 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될 수 있기에 잠깐 자제하고 글을 읽다보니, 이 사람이 논리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사람을 호도한다는 것을 쉬이 느낄 수 있었다. 아, 여기서 언급한 중고서점에 대해서는 또다시 할 말이 많지만, 일단은 접어두도록 한다.

  이미 링크한 '들어가보지도 않았는데, 알라딘 알바들 다수가 활동' 운운부터 이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아무리 화가 나고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아무리 모 연예인이 기분 나쁘고 자기 눈에 쓰레기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말은 연예인에 한정되어야 하지, 그 팬들까지 조롱과 비난을 퍼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직 정가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이나, 알라딘을 탈퇴하지 않고 꾸준히 책을 사고, 활동하는 사람까지 '알바'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알라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독자들에 대한 공격이고, 그 독자들의 선택에 대한 조롱이다. 심지어 이를 지적하는 댓글에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우리는 이런 것을 두고 '진영논리'라 부른다. 진영논리 - 내가 속한 진영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객관성을 따지기보다는 일단 같은 편이라는 것만으로 받아들이며, 대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논리성/객관성이 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그것이 상대방 진영의 주장이라는 것만으로도 반박하는 행위인 이 '진영논리'는 얼마나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인가. 이 정도 되면 링크한 글 말미에 '알라딘에서 일하는 노동자' 운운은 그저 가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서도 댓글에 '아직도 알라딘 탈퇴 안 했느냐'라고 하거나, 공공연히 '출판사들을 돌면서 알라딘에 책을 공급하지 말라고 하는 중이다'라고 한다거나, '적을 많이 만드는 것도 내 운명'이라며 피해자인 양 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벽'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알라딘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알라딘 알바'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다른 댓글에는 '미안하다'는 투의 댓글을 달긴 했지만, 27일 오후 2시56분 현재, 아직도 글은 수정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의 뉴스 중 일부다. 이것이 아마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내가 출판사들이 알라딘에게 출고 정지를 한 게 일종의 '파업선언'과 같은 행위가 아니라, 강자에게 약하고 (상대적) 약자에게는 강한 횡포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교*같은 온/오프라인 1위 업계가 알라딘과 같은 행동을 했어도 당당하게 보이콧 할 수 있었겠는가. 정말 그들은 독자들을 위하는 것인가. 내 눈에 알라딘을 보이콧했다는 출판사들이 생존권을 위해 투장한다기보다는 괜찮은 먹잇감이라며 일단 물고 뜯고 보는 비열한 행위로 보이는 게 단지 기분 뿐인가.

 

 뭐, 한기호라는 사람은, 이런 나도 알바로 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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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1-2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빌어요......

이카 2013-01-28 01:0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논쟁은 소모전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그 소모적인 논쟁 속에 독자들은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요즘 도서정가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도 지적했듯이, 문제는 이것이 찻잔 속의 태풍과 같은 일이라는 점이다. 독서인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도서정가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당장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명이 될까말까하다. 정작 사람들이 관심있는 것은 버스값이 100원 오르느냐마느냐 하는 일이고, 이번해 연말 소득공제 금액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책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현실에서의 책은 보는 사람들만 보는 물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읽을 시간에 영화를 보고 만다. 나조차 책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을 영화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 놓고 본다면, 영화가 훨씬 효율적이고, 쉽다. 책을 읽는 것이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여 자신만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면, 영화는 이미 민들어진 요리를 사 먹는 것과 같달까. 요리로만 봐도 알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 먹기보다는 사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는 귀찮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나는 도서정가제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조금은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책을 보는 사람들은 어차피 자기가 좋아해서 책을 보기 때문에 책값이 오른다고 책을 사지 않는 게 아니다. 그리고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정말 필요에 의해 책을 산다. 문제집이라거나 실용서라거나, 학교/회사 등에서 필요한 책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필요에 의해 책을 사는 사람들은 어차피 책을 꾸준히 사지도 않고, 책이 비싸다고 투덜거리긴 하겠지만, 구매 행위 자체가 가격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도서정가제 여부와 상관없이 살 사람들은 계속 살 거고, 안 사는 사람들은 계속 안 살 거라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정가제가 강화되면 구매율이 떨어질 거라는 반대측 의견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반대로 찬성측에서 말하는 '정가제가 강화되면 책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말 역시 믿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말단 직원들은 책을 사랑해서 가격을 낮춰 자신이 만드는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할지 몰라도, 출판사 사장은 책 못지 않게 (그리고 대부분은 책보다도 더) 돈을 사랑할 것이다. 원가 900원인 물건을 1000원에 팔아 100원 이득을 남기고 있었는데, 원가가 400원으로 떨어졌다면 사람들은 600원의 이득을 챙기지 물건을 500원에 팔기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뭐, 나로서는 책을 싸게 볼 수 있다면 좋은 것이지만, 내 소비 패턴을 보건데 구간 10%에 신간 90%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어차피 지금보다 더 낼 것 같지는 않다.

도서정가제게 얽힌 fact나 각계의 입장은 복잡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동네 서점이 살아나거나 온라인 서점의 위상이 지금보다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동네 서점은 불편하다. 동네 서점이 망한다면 그것은 가격 때문이 아니라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동네 서점에는 내가 찾는 책의 대부분이 없다. 그러다보니 가더라도 교보/영풍등의 대형 오프라인 서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바로 사오는 경우도 많고. 오프라인에서 책을 골라 온라인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이 가는 서점은 어차피 교보/영풍/반디같은 대형서점이지 동네 서점은 아닐 거라는 데 100원을 걸겠다. 게다가 당일 배송에 마일리지에 도서 구매 이력을 쫙 볼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의 편의성은 설령 할인/마일리지/쿠폰발행 금지가 되는 완전 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기에 크게 타격을 입을 것 같지도 않다. 때문에 알라딘이(그것도 온라인 업계 1위도 아닌 알라딘이) '도서 정가제 반대 서명'을 받을 때는 오히려 당혹감을 느꼈더랬다. 왜 굳이 이렇게 나서서 설레발이지?, 라고 했었지.

그런데 오늘 출판사들이 알라딘에 책 공급을 중단한다는 말이 들자 이게 이상한 쪽으로 감정적이 된다. 알라딘이 한 일은 분명 설레발 친 게 맞고,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출판사들이 하는 행동도 고와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알라딘을 보이콧해서 설령 내일 당장 알라딘이 망한다고 해서 현실이 크게 달라지나? 오랫동안 알라딘만을 주구장창 이용해왔고, 지금도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알라딘을 방문해서 어떤 책이 나왔고, 어떤 리뷰가 올라왔나 둘러보는 알라딘 죽순이인 내게, 이런 출판사들의 행동은 알라딘이 그들에게 부렸다는 '횡포' 못지않은 횡포로 보이고, 모 블로거분 말따마나 내 동생이 밖에서 맞고 돌아오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든다. 속상하고, 그냥 막 알라딘을 응원해줘야 할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든다.

어쨌거나 아무쪼록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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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 베이컨시 

조앤 K. 롤링 

 : 이 소설을 기다린 사람들이 저 뿐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 페이퍼에 의외로 1월 주목 신간에 이 책이 안 보이더군요. 이미 주문한 분들이 많은 걸까요?(아무래도 저 역시 제가 주문한 책들은 빼고 신간페이퍼를 쓰게 되더라고요) 해리포터로 유명한 조앤 K 롤링이 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죠. 첫 작품으로 크게 성공한 작가가 두 번째도 성공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고, 작가 개인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녀의 도전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궁금하네요.


 1월의 추천 신간으로 가장 먼저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열쇠 없는 꿈을 꾸다

츠지무라 미즈키 

 : 연애·결혼·출산·육아 등에 대한 내용을 매우 리얼하게 그려낸 소설이라는 말에 진작부터 주목하고 있던 소설입니다. 이 세 가지 일은 문화권을 아울러 여자라면 공통적으로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연애든 결혼이든 출산이든 종종 아름다운 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들은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연애는 모르겠지만 결혼과 출산은 일평생 그 영향이 지속되는 것이죠. '열쇠 없는 꿈'이라는 말에 어쩐지 깊은 인상을 받게 되네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 아래에서의 혁명, 약자들의 반란. 이 말은 달콤할지언정, 그건 너무 쉽게 터져버리는 비눗방울과 같은 환상에 가까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유명한 프랑스 혁명마저 브루주아의 혁명이었다는 말도 있잖아요. 실제로 아래에서의 혁명은 그만큼 어렵고, 쉬이 실패합니다. 특히 이미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약자들이 반기를 든다는 것은, 그래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기대되고,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겁나기도 합니다. 혹여 처절하게 짓밟히고 꺾이는 내용이라면, 책에서마저 그러면 그건 너무 아플 것 같아서요.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 체홉의 단편들은 어떤 장편보다도 하나하나의 여운이 깁니다. 읽을 때보다도 이후 곱씹어보며 더 좋아진 이야기들도 많지요. 체홉의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가는데, 이번의 단편 선택이 참 좋네요. 꼭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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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11월까지는 늦가을이라고 우길 수(?) 있지만, 12월은 빼도박도 못하는 겨울입니다. 해가 부쩍 짧아지고 스산한 겨울에는 역시 추리/미스테리 소설을 읽기 제격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번에 추리 소설 위주로 골라봤습니다.

 

빅클락

- 케네스 피어링 (지은이) | 이동윤 (옮긴이)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11-06 | 원제 The Big Clock (1946년)

 : 사장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목격자를 찾도록 지시받은 주인공, 바로 그 자신이 목격자!, 라는 설정만으로도 너무너무 궁금해지는 소설입니다. 이 설정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감도 제대로 잡히지 않아요. 목격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으나(자신이니까) 순순히 자신이라고 밝히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이 상황 속에서 전개될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진진합니다. 11월에 나온 추리/미스테리 소설 중 가장 기대되는 소설 중 하나입니다.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 이든 필포츠 (지은이) | 이경아 (옮긴이) | 엘릭시르 | 2012-11-19 | 원제 The Red Redmaynes (1922년)

 : 엘렉시르 미스터리 책장에서 신간이 나왔습니다! 이전에 나온 환상의 여인/가짜경감 듀/어두운 거울 속에 모두 큰 만족도를 줬죠. 이 세 작품만으로도 이 시리즈의 미래를 기대하게 되기 충분했기에 이번 책도 기대하게 되네요. 표지 센스도 멋지고요. 환상의 여인은 워낙 유명하다지만 가짜 경감 듀나 어두운 거울 속에는 이 시리즈를 통해 처음 접해봤는데, 그 두 작품은 최근에 읽어본 어지간한 미스터리 작품들보다 재미있고 완성도 있더군요. 이번에 나온 이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역시 기대되네요. 특히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에 초점을 뒀다고 하니 더욱요.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흥미로워서 인 경우도 있지만(이번달 추천작 중 하나인 빅클락이나 유명한 '그리고 아무도 없다'같은 경우처럼요) 이 소설처럼 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 군상이 흥미로워서이기도 합니다.(이후 소개할 '광매화'와 '주인님, 나의 주인님'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 안의 등장인물이 매력적일 때, 그 소설은 시간이 지나도, 트릭을 알아도 오래 오래 손에 들게 되더군요.

 

광매화

- 미치오 슈스케 (지은이) | 한성례 (옮긴이) | 씨엘북스 | 2012-11-15

 : 치매에 걸린 노모를 보살피는 중년 남성, 노숙자를 죽이려는 초등학생 남매. 중요한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사람들은 슬픈 거짓말을 한다.  인간의 연약함과 따스함을 그린 감성 연작 장편소설.(알라딘 책 소개 중)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만 봐도 벌써 눈이 가는 작품입니다. 특히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슬픈 거짓말'이라는 문구에 절로 시선이 머무네요. 대개 이런 추리/미스터리 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의 모습들은 추악합니다. 어둡고, 음습하고, 사악하고, 비열하고,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모습들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은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안전하게' 그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은 욕망, 자신의 어둠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바람의 모습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그 욕망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의 비틀린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따스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주인님, 나의 주인님

- 전아리 (지은이) | 은행나무 | 2012-11-08

 : 소설은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과 달리 그림은 분명 같은 대상을 묘사하더라도 작가에 따라 부드럽게 바뀌기도 하고 보다 날카롭게 바뀌기도 합니다. 같은 나무를 그리더라도 부드러운 빛을 그려내는 인상파와 날카로운 선과 색으로 표현되는 추상화가 같지 않은 것처럼요.

 아직 읽어보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책 소개와 서평으로 짐작해 볼 때, 광매화가 인간의 비틀린 모습을 부드러운 빛으로 감싸안아주는 느낌이 드는 책이라면, 이 '주인님, 나의 주인님'은 그런 인간의 본성을 밝아서 더욱 폭력적인 빛 속으로 까발려 놓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이것 역시 흥미롭지 않나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말입니다. 이 책의 부제가 '총천연색 이야기의 아릿한 맛'이죠. 어떤 맛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지옥설계도

- 이인화 (지은이) | 해냄 | 2012-11-12

 : 제목과 작가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가상과 현실의 조화를 그려냈다고 하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 소설을 읽는 재마 하나만큼은 절대 보장해 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여러 목적이 있겠습니다마는, 무엇보다 그것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요? 겨울에 딱 어울리는 오락소설이 뭐가 있을까 둘러보다보니 이 책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줄거리 만으로는 자칫 평범한 사건 해결물 같지만, 설정을 보면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해집니다. 경험 상으로, 이런 이야기는 대박이거나 혹은 평균 이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던데, 이 책은 어느 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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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왕복서간
- 작가 : 미나토 가나에
- 역자 : 김선영
- 출판사 : 비채

: 가끔 궁금한 점이 있다. 한 사람의 예술가에게 자신이 어떤 특정한 작품 하나로 대중들에게 각인된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라디오헤드가 아무리 수많은 명곡을 남겼어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라디오헤드의 노래는 Creep이고, 프랭크 와일드혼이 아무리 많은 작품을 쓰더라도 그는 지킬&하이드의 작곡가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조앤롤링이 아무리 새로운 소설을 쓴다 하더라도 해리포터와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이렇게 예술가 자신이 아무리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발표하더라도 계속해서 비교당하는 것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작품일 때, 작가는 그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저주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그나마 그 한 작품이라도 남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인 '고백'은 등장할 때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설이었다. '우리 반에 내 딸을 죽인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선생님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 사건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등장인물 각자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들을 접할수록 다가오는 사건의 무게와 깊이에 저릿할 정도의 서늘함을 느끼게 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 가차없는 결말은 한편으로는 섬찟하고 또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한 기분이라 이 작품을 접하고 나서 나 역시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랬다.

이 정도 작품 쯤 되면 독자가 다음 작품을 볼 때 전작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후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이라면 모두 다 읽어봤지만, 사실 모두 '고백'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졌던 교차 서술은 '이 작가는 이렇게밖에 못 쓰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으며, '소녀'를 읽었을 때에는 작위적인 설정과 결말에 실망하기까지 했었다. 원체 필력이 있는 작가다보니 흡입력은 평균 이상이었지만, 살인사건으로 시작하여 그 사건을 둘러싼 교차서술로 이어지며 밝혀지는 진실이라는 틀은 슬슬 식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별 기대없이 집어든 야행관람차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미나토 가나에를 보게 되었고, 이것은 가장 최근작인 '왕복서간'을 읽으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 작가는 어떤 한 단계를 넘어 성장했다고.(*국내 출간은 'N을 위하여'가 너 늦게 되었지만, 작품이 쓰여진 순서는 고백-소녀-속죄-N을 위하여-야행관람차-왕복서간 순이다.)

흡입력 있는 문장으로, '읽어볼 만한 추리소설'정도로 넘길 뻔 했던 야행관람차가 이토록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한 장면 때문이었다.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에는 어쩐지 제대로 된 인간이 나오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다들 하나씩 어딘가 뒤틀려 있고, 어둠을 가지고 있다. '복수'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고백처럼 야행관람차는 '행복'과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완전히 행복한 가정은 없다' '어느 가정이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꾸만 주변 사람들의 '겉모습'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족은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던가. 야행관람차는 행복한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울뿐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밖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아야카네 가족(엔도 가족), 이에 대비되는 완벽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카하시 가족과 이 두 가족을 지켜보는 고지마 사토코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서로 다른 이유로 고통받는 각 캐릭터들의 모습에 서로 다른 이유로 치를 떨었다.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그렇게 그리워하고 집착하던 어머니를 살해하게 만든 고백의 결말을 보며 나는 이 작가는 도대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실망하고 인간의 어두움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으면 이런 결말을 쓸 수 있었나 생각했었다. 오히려 깔끔하고 완벽한 복수이기에 더욱 서늘한 복수가 아니었던가. 야행관람차의 결말은 이런 결말과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아야카의 지나친 히스테리에 그만 폭발하고 만 마유미(엄마)는 아야카의 입에 흙을 쳐 넣으며 아야카를 질식시켜 죽이려고 한다. 아야카가 바닥에 질질 구토를 해도, 숨이 얕아져가도 이미 눈이 뒤집혀버린 마유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건이 끝나게 되고 엉망진창이 된 거실에 아야카와 엄마, 아빠가 힘없이 줄지어 앉아 있다. 바닥에는 흙과 깨진 유리 파편이 널려 있고, 아야카가 죽을 뻔하며 왈칵왈칵 쏱아낸 구토물 때문에 공기 중에는 시큼한 냄새가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자리에 앉아 생각한다. 내일이면 또 이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또 함께할 것이라고. 그것이 가족이라고. -- 이 장면을 보는데 정말 가슴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아, 그렇구나. 아야카는 왜 마유미가 그렇게까지 눈이 뒤집혔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엄마가 왜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그렇게 했는지, 그 동안 엄마 나름대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하겠지. 아마 엄마도 딸이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고 있었으며, 히스테리를 부리는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이 가족의 문제를 얼마나 크게 키웠는지 여전히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모습으로.

이 작은 한 장면에서는 나는 작가의 변화를 보았고, 작가의 성장을 보았다. 일종의 가치관의 변화라고 할 만한 무엇을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고백'에 가장 심하게 매여 있었던 것은 작가 자신이 아니었나 생각도 들었다. 전작들이 독기가 가득했다면, 그래서 도리어 인간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착시 효과를 줬다면, 야행관람차부터는 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 변화는 왕복서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이상하게도 기교 없이 내려놓고 부른 가수의 잔잔한 노래에 마음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분명 콕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이 정말 좋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고나 할까. 아, 그래. 야행관람차 이전까지의 작품들이 자신의 어둠에 파묻힌 인간이 내지르는 비명같은 작품이었다면, 야행관람차에서 드디어 그 인간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렇게 만신창이인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왕복서간에서 드디어 타인을 향한 위로의 말을, 자신의 아품과 같은 아품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간의 작품들이 '독백', 즉 철저히 '자기 중심의 발화'고, 그것의 종착지가 수신자가 있는 '편지글'의 형식이란느 점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게 아닐까. 눈을 닫고 귀를 막고 자신의 말을 외치던 사람이 이제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과연 지나친 비약인 걸까.

여전히 미나토 가나에는 '고백'의 작가다. 그러나 이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작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큰 인연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의 지금까지의 노력과, 변해갈 앞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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