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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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 온갖 물고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존재라면, 철학자는 그물로 끌어올린 물고기를 다시 확인하고 만져보는 사람입니다.-17쪽

이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사유'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바로 우리가 속한 거대한 전체는 언제든지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괴물로 손쉽게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지요.-80쪽

레비나스에 따르면 '전체'의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내가 타자의 속내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오만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반대로 '무한'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타자의 속내를 끝내 알 수 없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왜 전체주의적 사고가 위험한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149-150쪽

'사이-나눔'과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하이데거에게서 이 두가지는 결국 같은 것으로 사유됩니다. 밝지 않으면 사물들이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으로 말해서 사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밝음도 의미가 없겠지요. 김춘수의 시를 빌리자면 '유리알', '나전', '눈망울'등은 밝음이 있어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역으로 밝음은 '유리알', '나전', '눈망울'등이 있어야 자신이 있다는 것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이-나눔' 혹은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입니다. 밝음과 사물들은 서로에게 의지해 있지만, 동시에 구별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하이데거는 밝음과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면서-간직하는 품어-줌"이라고 말합니다. 존재는 존재자를 '밝혀주고', 존재자는 밝혀짐 속에서 자신을 '간직하지만', 존재와 존재자는 서로를 '품어 주는' 관계에 있다는 의미입니다.-231쪽

상대방이 현재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그의 자유로부터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가 나를 버리는 것도 역시 그의 자유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매우 역설적이지 않나요? 상대방이 나를 절대적으로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불가능한 소망 이면에는, 상대방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우리의 불길한 직감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 말입니다.-261쪽

질투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상대방이 언제든 나에게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발생하는 감정입니다.-371쪽

인간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메트로폴리스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385쪽

나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마주친 타자를 슬픔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418쪽

타자와 연결하여 기쁨을 향유하거나 타자와의 연결을 끊어서 슬픔을 피할 수 있는 힘은 이 자유 정신에서만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쁨과 자유, 이것이야말로 철학과 시를 포함한 모든 인문학의 궁극적인 꿈이자 인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4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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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4
허수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구판절판


막 옮기기 끝낸 고추밭에
편편이 몸을 누인 슬픔이
아랫도리 서로 묶으며
고추모 사이로 쓰러진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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