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을 '밥이 끓는 시간'이라고 붙인 저자의 의도가 무어라고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전해진다. 밥 때가 되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나는 집, 사람이 사는 집이다.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집, 밥 냄새가 나지 않는 집, 며칠 동안 창문이 열리는 일이 없는 집,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집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겠는가.

정상적으로는 중학교에 다녀야할 여자 아이 순지는 아침이면 부엌에서 엄마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아침을 준비하고 밥 끓는 냄새가 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도 형편이지만 이제 네 살이 된 동생을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순지는 학교에 제대로 다니질 못한다. 데리고 가서 교실 밖 복도에 앉혀 놓기도 하지만 추위를 못 이긴 동생은 자꾸만 누나가 공부하는 교실로 들어오고, 선생님의 배려로 교무실에 데려다 놓기도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아침에 쌀독에 쌀이 있으면 그나마 밥을 짓고, 없으면 배를 곯는 생활. 누구 탓도 하지 않는 어린 소녀는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무심한 듯,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는 한 소녀의 얼굴이 읽는 동안 그려졌다. 새엄마가 아기를 낳고 바로 나가버리자 순지의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통해 갓난 아기는 고아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차에 실려 가는 동생을 순지와 네살 동생까지, 울며 불며 못 데려가게 하려고 애를 쓰지만 동네 사람들의 만류에 의해 아기와 이별을 하고. 집을 나가 연락도 없이 몇 해를 떠돌던 아빠가 어느 날 나타나고 순지는 오랜만에 아빠 몫까지 밥을 지으며 실낱 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아직도 전국에 상당수의 결식 아동들이 있다고도 하고, 며칠 전에 TV에서 본 어느 프로그램 생각도 났다. 하루 종일 나물을 팔면 이만원 정도. 그것 가지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께서 두 손자를 키우는데 매일 저녁은 라면이고, 다른 반찬도 없이 손으로 밥을 김에 싸서 허겁지겁 두 어린 아이의 먹는 모습을 보았다. 실로 겸허하고 감사해야할 밥 한 그릇 아닌지. 작가의 가슴 속에 남아있던 어떤 추억이나 경험이 이런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였을까. 서문에 맨드라미 피는 집에 살던 어떤 소녀에 대한 회상이 나온다.
요즘 청소년들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lin 2007-07-1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를 돌아다니면 든 생각...제가 주로 읽는 책들 말고도 동화나 이런 책들을 읽으면 좋겠다!에요. 두분의 댓글을 보니, 저만 해도 보지 않고, 겪지 않아서 인지 좀 멀게 느껴집니다. 책에나 나올 것 같은...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상상은 잘 안되는...어쩜 그래서 더 이런 책들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hnine 2007-07-20 07:12   좋아요 0 | URL
책에서 우리가 얻을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이겠지요. 우리가 겪어보지 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요. fallin님, 동화를 읽으면서 의외로 얻는게 많더라고요.
오늘도 빗소리에 잠을 깨었어요. 오늘도 힘차게!! ^ ^
 

휴...

마음이 아프다.

이게 다만 책에만 있는 얘기가 아니란 말이다.

리얼리즘? 먼데서 찾을 것 없다, 어려운 말 쓸 것도 없다.

리뷰는 내일 쓰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를 데리고 외식을 할 일이 있을 때
어디로 갈까 결정권 제 1순위는 아이이다.
뭐 먹고 싶니?
아이가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을 때에는
예전에 갔던 장소들을 돌이켜 보다가
아이가 그 때 잘 안 먹었던 기억이 나면 그곳은 일단 후보에서 탈락

일단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시킬 때에도
1인분 혼자 다 못 먹는 아이,
음식 남기는 것을 못 보는 성질의 이 엄마,
자연히 나는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으로 1인분 시켜 먹고
모자라면 나중에 세식구가 함께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것을 더 시키는 식이다.

아이 없고 남편과 둘이서만 점심을 먹으러 나간 오늘
돌솥 비빔밥 집엘 갔다.
낙지가 들어간 매운 비빔밥을 시켰다.
밥 한 톨도 안 남기고 싹싹 긁어먹고서 남편에게 자랑했다 "이거 봐라~~"
남편이 놀란 눈치.
그동안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을 시키느라
맵고 뜨거운 돌솥비빔밥을 정말 얼마만에 먹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먹으니 얼마나 맛이 있던지.
흠흠...지금까지 배가 부른 것 같다.

참,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만족, 흡족, 행복한 기분을 느끼다니.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07-07-16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러면서도 아이때문에 먹고 싶은 것 못 먹는다는 생각은 안 하고 아이가 잘 먹나 하는 것에 신경쓰지요. 엄마 맘인가 봅니다. 제가 이날, 낙지 볶음이나 돌솥비빔밥 먹고 싶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낙지가 들어간 비빔밥이란 메뉴가 있었으니 제가 좋았을 수 밖에요 ^ ^

미설 2007-07-16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유치원 같이 보내는 엄마들과 얘기하는데 된장찌개에 풋고추 넣어서 칼칼하게 먹고 싶은데 그걸 못해먹는다 하면서 아쉬워했었네요. 정말 아이들 입맛 맞추느라 맵고 칼칼한거 제대로 일인분 시켜먹어본 적이 아득해요. 저도 군치이 고입니다^^

hnine 2007-07-1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설님, 그러시지요? 엄마는 다 똑같아요 ^ ^

LovePhoto 2007-07-17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낙지 볶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매운 음식, 이 곳에서 무지 잘 먹고 있습니다.
음식점 점원이 놀랄 정도로..... -_-a
 

 

x월 x일

아무거나 해도 되는, 아무거나 해야 하는 토요일이다.

아침 잠이 원래 없어 늦잠이라는 걸 누려보지 못하고 결국 학교 갈 때와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 네 군데 TV채널을 한번씩 돌려보고는, 옷차림새 한번 쓰윽 보고 -보기만 하고- 길 건너의 shop에 간다. 두께가 평일의 두 배나 되는 주말 판 신문을 사기 위해서. 값도 평일 신문의 거의 두 배이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shop이다. 물건이 많지 않아도 좀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손가락으로 훑어보면 뽀얗게 먼지가 묻어나올 것만 같은 식료품들이 진열대 위에 드문드문 놓여 있는, 아무리 좁은 구멍가게라도 물건이 빽빽이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의 구멍가게와 너무나 대조적인 썰렁한 식료품점이다. The Times나 Independent, 혹은 Guardian중 한 부를 사가지고 방으로 돌아온다. 침대에 걸터 앉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정독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내 나라 신문이 그리워진다. 죽죽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내 나라 소식이 담겨 있는 그런 신문. 그 때부터 줄줄이 사탕처럼 두고 온 식구들이 생각나고, 친구들이 생각난다. 잠시 침대에 벌렁 누워 본다. 그리운 사람들을 실컷 그리워하다보면 배가 고파진단 말이다. 시간을 보면 정오 무렵. 아, 이제 뭔가를 먹어야 하는구나. 귀찮은데 커피나 마시고 건너뛸까, 아니지, 그래도 적절한 영양분을 먹어줘야지. 내 몸에 연료가 들어가줘야 하잖아. 무엇을 먹어야하나, 어디서 먹어야 하나. 우리 뭐 먹을까 하고 물어볼 사람이 옆에 있다면.

외로움. 이것으로부터 하루라도 자유로운 적이 있었던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이것을 자유라고 한다면 그 댓가는 바로 외로움이다. ‘혼자’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 두 얼굴 (자유로움과 외로움)모두를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오로지 한 쪽 얼굴만 본다.

--- 10년 전 어느 토요일의 일기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7-07-1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자유의 반대말은 '관성'이란 표현을 보았는데, 외로움도 일리가 있어요. 전 외로워도 좋으니까 좀 자유로웠음 좋겠단 생각도 하고 있어요. ^^;

hnine 2007-07-16 06:20   좋아요 0 | URL
자유의 반대말은 관성이라...
자유를 누리면 반드시 그 댓가가 있는 것은 사실언 것 같아요.
결혼한 사람들 중에 가끔 화려한 싱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혼자 저렇게 몇 년을 보내보고는 가족없이 혼자 지내는 것,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내가 나인 것 사계절 아동문고 48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고바야시 요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주인공 히데카즈는 초등학교 6학년.  대학생, 고등학생 형이 하나씩 있고, 중학생 누나, 두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그리고 잔소리꾼 엄마와 엄마말에 무조건 예스맨 아빠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이다. 어디 하나 특출날 것도 없는 히데카즈는 엄마로부터 늘 못났다는 소리를 듣는 구박덩어리. 엄마한테 야단맞는 도중 무심결에 집을 나가버리겠다고 하고, 엄마는 나갈테면 나가라고 하며 다른 형제들에게도 히데카즈가 가출을 할 예정이라고 비웃듯이 알려준다. 쓸쓸해진 히데카즈는 정말로 목적지도 따로 없이 가출을 하고, 무작정 들어간 나츠요라는 동갑내기 여자애와 할아버지가 사는 어느 집에 신세지며 한동안 얹혀 지낸다. 짧지 않은 시간을 그 집에서 지내다가 큰맘 먹고 다시 들어간 집에서 엄마가 오랜만에 찾아들어온 히데카즈를 맞는 방식은, "너 누구니?, 뉘 집 자식인지 모르겠다만 멋대로 남의 집에 들어오지 말아 줘!" 엄마가 어떻게 받아줄까 안그래도 두근두근하며 들어선 히데카즈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된다.

이 책은 물론 히데카즈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지만, 정작 문제가 있는 것은 히데카즈의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히데카즈는 평범한, 그저 보통의 소년일뿐. 그리 풍족치 않은 살림에 다섯 남매를 뒷바라지 하는 엄마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다 너를 위해서 한 일이야." "네가 어떻게 엄마인 내게 이럴 수 있어!" 라는 히데카즈의 엄마의 말은 이 가정의 문제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보여주는 말이다. 엄마의 스스로 희생이라 생각하는 그 일방적인 희생을 식구들 아무도 희생으로 알아주지 않는 엄마의 인생, 또 그러한 불만이 가슴속에 늘 큰 덩어리로 존재하는 엄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모든 비난과 구박을 받아내야하는 자식들.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끝까지 엄마의 이해를 포기하지 않고, 나는 엄마의 아들임을, 그리고 나는 나라는 것도 알려주겠다는 히데카즈의 용기에서 그래도 이 가정의 희망을 본다.

일본에서는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인 것 같은데, 지금 읽으면서도 전혀 시대 흐름을 못느끼겠는 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7-15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인 것 같아요. ^^

hnine 2007-07-15 13:18   좋아요 0 | URL
혜경님, 글쎄 이 책이 1969년에 처음 나온 책이지 뭐에요. 이 정도까지 오래된 책일줄 몰랐어요. 그러니까, 혜경님이랑 제가 몇살때인거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