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11쪽

   이것은 톨스토이가 1877년에 쓴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입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첫 문장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그의 저작  『총, 균, 쇠』에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글을 보면 이 첫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읽은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 문장에서 몇 마디만 바꾸면 바로 톨스토이의 위대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법칙을 확대하면 결혼 생활뿐 아니라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흔히 성공에 대해 한 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중요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234~235쪽

   안나 카레니나오빠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오블론스키가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바람에 올케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와 불화가 생기자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페테르부르크(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옵니다. 그녀는 기차 안에서 브론스카야 백작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모스크바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백작부인을 마중 나온 아들 브론스키와도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안나와 브론스키는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해버립니다.
   그러나 안나는 이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과 결혼해 세료쥐아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고, 브론스키 또한 다리야의 막내 여동생인 키티를 만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심지어 브론스키에게 반한 키티는 그가 청혼하기를 기다리며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의 청혼을 거절해 버립니다. 브론스키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눈치챈 안나는 스테판 부부를 화해시키자마자 서둘러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데, 브론스키 또한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녀를 따라 나섭니다.

   그가 그림자 속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얼굴과 눈의 표정을 읽었다. 아니, 읽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어제 그토록 강하게 그녀에게 작용했던 그 은근하고 황홀한 표정이었다. 요 며칠간 몇 번이나 아니 방금전만 해도 그녀는 브론스키 따위는 도처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는 여러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를 생각하는 것조차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혼자서 되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지금 이렇게 그와 만나게 되자, 해후의 첫 순간에 느닷없이 그녀를 붙든 것은 기쁨과 자부심이었다. 그녀는 어째서 이런 곳에 그가 와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 그저 당신이 있는 곳에 있기 위해서 왔다고 이야기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정확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1권 205~206쪽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 나타난 브론스키를 사람들은 '안나의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안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타나서 그녀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어 버립니다. 안나 또한 그런 브론스키에게 점점 빠져들어 그녀의 남편까지 둘 사이를 눈치챌 정도에 이릅니다. 남편 알렉세이는 그녀에게 조용히 경고합니다.

   '결국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녀의 감정이나 그밖의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그녀 양심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내 의무는 분명히 결정되어 있다. 가정의 장(長)으로서 나는 그녀를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고, 따라서 얼마쯤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발견한 위험을 지적하여 경계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 권한을 행사하여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1권 286~287쪽

   "내가 당신에게 경고하고 싶은 건 말이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부주의와 경솔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씨를 뿌릴지도 모른다는 거요. 오늘 당신과 브론스키가(그는 이 이름을 천천히 사이를 두고 정확하게 발음했다) 지나치게 활발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꽤 여러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던 모양이니까." 1권 290쪽

   남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자, 남편 알렉세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며 이혼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동안 아내를 의심해 온 알렉세이는 '오랫동안 앓던 이를 빼버린 것과 같은 느낌'(2권 86쪽)이라고 하면서도 '그녀가 타락하면서 그한테 튀기어 더럽혀놓은 진창을 털어내고, 활동적이고 명예롭고 유익한 자기 삶의 길을 계속 걸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고 가장 점잖고 가장 이로우며, 따라서 가장 정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2권 87쪽)로 고민합니다. 그는 '이혼의 시도는 다만 그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비방하고 공격하려는 적들에게 뜻밖의 기회'(2권 91쪽)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사실 안나와 브론스키도 확신이 없습니다. 알렉세이의 지붕 아래서 모든 것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고있는 안나가 그 편안함을 버리고 불륜녀라는 딱지를 평생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 세료쥐아를 평생 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브론스키는 돈도 없고 심지어 군대에 몸담고 있는데, 그녀를 데리고 떠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을까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안나가 브론스키의 딸을 낳고, 법적으로 알렉세이의 딸이 되어버려도 그들은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괴로움만 남긴채 이혼문제를 오랫동안 질질 끌어갑니다.

   가정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꾀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완전한 분열이나 혹은 사랑의 일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애매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3권 369쪽

   한편, 키티에게 거절 당한 레빈은 시골로 내려가 농장 일에 집중하지만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키티에게 달려가 다시 청혼을 합니다. 키티의 마음을 얻어 결혼하게 된 레빈은 늘 고민이 많습니다. 평생 일하지 않아도 즐기며 살 수 있는 계급과 평생 농사를 짓고 일을 해도 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계급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이라던지, 비합리적이지만 지금까지 늘 해오던 방식만 고수하며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방식이나 사교계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3권 216쪽)이라고 말합니다.
   레빈의 이런 고민들은 톨스토이의 사상과도 일맥상통 합니다. 톨스토이는 농노제와 같은 불합리한 계급제도에 반대했고 자본주의가 몰고 온 부의 불평등을 혐오했지만 혁명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168쪽) 그는 각자가 욕망을 줄인다면 골고루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레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레빈은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러시아에서 고민하는 지식인이었던 '톨스토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아니, 자넨 행복한 사내야. 자네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 가지고 있거든. 말을 좋아한다면 말이 있고, 개가 있으니 사냥도 할 수 있고, 농장도 있으니 말일세."
   "그건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만 만족하고 없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는 덕분이겠지." 1권 320쪽

   안나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안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레빈 조차 그녀를 보자마자 마음이 흔들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그녀는 마지막 또한 치명적으로 끝내버립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브론스키를 선택한 안나는 브론스키의 사랑이 변할까봐 의심하고 괴로워하다가, 끝내 그 괴로움 때문에 달려오는 열차 속으로 뛰어들어 갑니다. 비록 그 방법은 잔인했지만 그녀는 열차 속으로 뛰어들 때 조차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합니다.

   '저기로, 저 한가운데로. 그리고 나는 그이를 벌하고 모든 사람들과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자.' 3권 427쪽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성호를 긋는 이 익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에 처녀 시절과 어렸을 때의 일련의 추억을 온전하게 불어일으켰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를 위해서 삼라만상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걷히고 한순간, 생이 그 모든 빛나는 과거의 환희화 더불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오는 두번째 차량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한가운데가 그녀 앞까지 온 바로 그 순간에 그녀는 빨간 손주머니를 내던지고 두 어깨 사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 손을 짚고 차대 밑으로 넘어지면서, 그리고 곧 일어나려고 하는 듯한 가벼운 동작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공포를 느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 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한 농부가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쇠붙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불안과 기만과 비애와 사악으로 가득 찬 책을 그녀에게 읽게 해주던 촛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확 타올라 지금까지 어둠에 싸여 있던 일체의 것을 그녀에게 비추어 보이고는 파지직, 소리를 내고 어두워지다가 이윽고 영원히 꺼져버렸다. 3권 427~428쪽

   1870년대에 쓰여진 러시아 소설, 3권을 합치면 1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등장인물이 150명이 넘고, 그들의 이름 조차 너무나 길어서 압박이 심한 톨스토이의 대작. 그러나 읽기 시작하면 의외로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 물론 초반에는 이름 때문에 일일이 노트에 정리하며 읽느라 고전했지만, 그 이름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눈에 익기 시작하면 놀랍도록 술술 잘 읽힙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상황, 그리고 나라까지 다르지만 결혼에 임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책임감은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 시절 사람들도, 특히 남자들도 결혼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갖춰야 했고, 아무리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여자들은 집안일과 육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공감가는 문장이 많은데, 특히 그 중에서도 안나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브론스키에게 동료가 해 준 말이 인상적입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두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졌을 때뿐이야. 그리고 이것이 결혼이야. 난 그 사실을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느꼈지. 말하자면 갑자기 손이 자유로워졌으니까.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고 이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있는 날에는 손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2권 151쪽

      『안나 카레니나』를 덮으면서 고민에 빠집니다. 어떻게 사는게 옮은 일일까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주위 사람들, 특히 가족의 행복까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반대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불행쯤은 눈감아도 되는 것일까요?
 
    완독을 하고나니, 문학동네가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하면서 왜  『안나 카레니나』를 첫번째로 내세웠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리뷰를 통해 안나의 치명적인 결말을 이미 알아버렸다고 읽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저 또한 그 결말을 알고 읽은 책이었지만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유파 사람들은 결혼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이며 단연코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파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가정생활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에게 이렇다 할 만족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의 기질과는 아주 딴판인 허위와 기만을 강요했다. 1권 23쪽

   난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사람의 머리가 각기 다르듯이 생각도 다르다고 한다면, 마음이 각기 다른 만큼 사랑의 종류도 다를 것이라고요. 1권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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