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꿈 열린책들 세계문학 12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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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는 24세 때인 1845년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 당대 최고의 평론가였던 벨린스키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하지만 이내 사회주의 이론과 혁명적 사상을 옹호하고 당대 러시아 상황에 대한 비판적 모임이었던 뻬뜨라셰프스끼 서클의 회원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창작 활동은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기준으로 초기ㅡ중기로 나눌 수 있는데, 『아저씨의 꿈』은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로 유배를 다녀온 뒤 처음으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을 통해 중기 창작 활동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아저씨의 꿈』은 허영심도 많고 말도 많지만 수완 역시 좋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모스깔료바가 자신의 딸 지나를 쇠약한 K 공작에게 시집보내려는 계획에서 비롯된 사건들을 담고 있다. 지나에게 구혼 중인 모즈글랴꼬프는 마리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차 사고를 당한 K 공작을 친척 집 대신 마리야의 집으로 모셔온다.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진 K 공작은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하고 기억력과 판단력 또한 흐려진 상태다. 마리야는 폐병에 걸려 병석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가정교사에게 마음을 뺏긴 지나에게 K 공작과 결혼하라고 설득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입도 뻥긋 못하게 했던 지나는 자신이 부유한 공작의 미망인이 된다면 가정교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결국 승낙하고 만다. 수완 좋은 마리야는 K 공작 역시 잔뜩 술이 취한 상태에서 지나에게 청혼을 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를 모두 엿듣게 된 모즈글랴꼬프는 잠에서 깨어난 K 공작(사실 모즈글랴꼬프의 아저씨뻘쯤 된다.)에게 그것은 '꿈'이었다고 말한다. K 공작 역시 나이 어린 지나에게 청혼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아마 꿈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원래 작은 소도시에서는 소문도 빨리 퍼지는 법. 모즈글랴꼬프의 방해로 계획도 들통나고 결혼도 무산된 마리야 일가는 서둘러 그곳을 떠난다. 모즈글랴꼬프 역시 취직해 그곳을 떠나게 되는데, 가장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간 곳에서 시장의 아내가 된 지나를 만나게 된다.

불행은 언제나 한 가지만으로 그치는 법이 없는 모양이다. (…) 운명이 한번 어떤 사람에게 불행을 안겨 주면 그 불행의 타격은 끝없이 계속되게 마련이다. 232쪽

한 편의 드라마(혹은 연극)를 보는 것처럼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왜 '아저씨의 꿈'일까? 처음에는 '어머니 마리야의 꿈(신분 상승)'이었다가 '모즈글랴꼬프의 꿈(결혼)' 때문에 결국 '아저씨의 꿈(백일몽)'으로 끝나버리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그렇게 끝나버리니 '아저씨의 꿈'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텐데, 그렇다면 '지나의 꿈'은 무엇일까? 한때 꿈꿨던 가난한 가정교사와의 사랑이 그의 죽음으로 끝나버리자 결국 체념해 버린 것일까? 정작 본인의 결혼을 두고 가장 목소리가 작았던 지나. 지나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소설을 쓴 이유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주제의 결이 사뭇 달라 보이는 이 소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을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평하는데, 그 이유를 다음의 글에서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동안 유형 생활을 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여전히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유배 생활을 통해 인간 도스토옙스키도, 작가 도스토옙스키도 모두 성장했다고.

15년 동안 나는 『아저씨의 꿈』을 한 번도 다시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다시 읽어 보니 형편없군요. 나는 당시 출옥한 직후 시베리아에서 이 작품을 썼는데, 그때 유일한 집필 목적은 문학 활동을 개시하는 데 있었고 또한 검열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어쩔 수 없이 검열에 걸리지 않을 온건한 작품을 썼던 겁니다. 이 작품은 가벼운 보드빌로 만들 수 있겠지만, 희극을 만들기에는 내용이 부족하며, 이 중편소설에서 유일하게 진지한 인물인 공작에게서도 내용은 부족합니다. 283~284쪽,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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