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영화 공식 원작 소설·오리지널 커버)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강미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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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19세기를 산다는 것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 오랫동안 읽는 바람에 2020년에 마지막으로 완독한 책이 되어버렸다. 초등학생 때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책, 그 기억으로 선택한 책이다. 내가 얼마나 이 이야기를 좋아했냐면, 소설 속 네 자매들처럼 친구들과 연극도 하고, 조처럼 그 연극 대본을 직접 쓰며 조 흉내도 냈었다. 실제는 조의 성격을 닮았었지만 나는 매그처럼 차분하고 우아한 현모양처를 꿈꿨었다.(그런데 지금 보니 매그는 허영덩어리였고, 현모양처라니. 세상에!)

왠지 크리스마스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찾았다.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 읽었던 책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아씨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선물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크리스마스야."

조가 양탄자 위에 벌렁 드러누우며 불만을 터뜨렸다.

"가난한 건 정말 싫어!"

메그가 낡아빠진 옷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떤 애들은 예쁜 물건을 많이 갖고 있는데 누구는 하나도 없다는 건 불공평해."

막내 에이미가 마음이 상했는지 코를 훌쩍이며 거들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아빠, 엄마 그리고 언니, 동생들이 있잖아?"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베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ebook, 12쪽


마치 부인(네 자매의 어머니)이 모두에게 힘든 겨울이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 없이 지내자고 하자 네 자매는 이렇게 한 마디씩 던진다. 이 첫 장면은 짧지만 네 자매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아버지가 종군 목사로 전쟁터로 떠나자, 집에는 어머니와 네 자매만 남게 된다. 어머니는 매일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메그와 조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가정교사 일을 하거나 대고모에게 책을 읽어주며 돈을 번다. 부끄러움이 많은 베스는 집안일을 돕고, 에이미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난 이후로는 여유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들보다 더 가난한 이웃들을 돌볼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을 먹으려는 자매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제 막 아기를 낳은 불쌍한 여자가 살고 있지 뭐니. 지금 그 집에 갔다 오는 길인데 난로가 없어서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침대 하나에 모여 웅크리고 있더구나. 게다가 먹을 것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견디다 못한 그 집 큰애가 와서 사정 얘기를 하더구나. 얘들아, 우리 아침 식사를 그 집 아이들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게 어떻겠니?" ebook, 40쪽


다들 어머니를 기다리느라 배가 고팠지만, 작은 아씨들(이것은 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다.)은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자기들 몫은 남한테 줘버리고 빵과 우유만으로도 만족하는 이들 자매보다 더 기분 좋은 사람은 도시 전체를 통틀어 아무도 없었으리라. (ebook, 43쪽)


한편, 작은 아씨들의 이웃에는 부유한 할아버지와 손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그들은 왕래가 없었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의 선행을 전해들은 로렌스 씨가 그들에게 근사한 저녁식사를 선물로 보내준다. 이것을 계기도 두 집안은 마치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게 되는데, 작은 아씨들은 외로운 로런스 씨와 로리를 위해 가족이 되어 주었고, 로런스 씨도 마치 일가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도움을 준다. 결국 메그는 로리의 가정교사와 결혼하고, 막내 에이미는 로리와 결혼한다. 로런스 씨가 특히 예뻐했던 베스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서 안타깝지만, 모두들 베스의 자리를 잊지 않는다.


"난 나이가 차서 미스 마치라고 불리는 것도 싫고, 기다란 드레스를 입는 것도 싫어.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얌전한 척하는 것도 싫어. 노는 거든 일하는 거든 남자들 생활 방식을 좋아하는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야. 내가 남자가 아니라는 게 참을 수 없어. 게다가 지금은 내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원망스러워. 마음은 온통 아빠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싶은 생각뿐인데 집구석에 틀어박혀 할머니처럼 뜨개질이나 해야 하다니." ebook, 17쪽


참! 자매들 중 작가를 꿈꾸며 가장 활발했던 조는 집을 떠나 잠시 머물던 곳에서 만난 독일인 바에르 씨와 결혼한다. 친구 로리의 청혼까지 거절한 조였는데, 결혼이라니. 아무리 조의 성격을 독립적으로 그렸다고 해도 당시에는 한 여자가 '결혼'이라는 제도의 틀 속에서 벗어나는 건 어려웠나보다.(아니면 자신과 성향이 닮은 바에르 씨를 너무나도 사랑했거나)


올해 개봉한 영화 덕분에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작은 아씨들』이 있었는데, 어릴 때 읽었던 책의 표지도 이런 표지였던 것 같아서 선택했다. 찾아보니 이 표지가 1868년 초판본 표지였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조'가 들고 있었던 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다시 만난 『작은 아씨들』은 지금 읽기에는 너무 두꺼웠다. 시간 대비 가심비가 떨어지는 책이다. 어릴 때는 이런 이야기가 재미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런 내용의 책을 1000페이지나 읽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힘들다. 그래서 완독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어릴 때 내가 읽었던 책은 이 정도로 두껍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1부만 읽은 모양이다. 이 책은 1부, 2부 합본으로 2부에 그들의 결혼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히, 이 책에는 영화 스틸컷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스틸컷들이 내 독서를 방해했다. 한 명씩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스틸컷도 함께 등장했는데, 내가 상상했던 인물들과 너무 달라서 그때마다 읽는 흐름이 깨져버렸다. 아직 영화를 보진 않았는데, 소설 속 주인공들은 꽤 어린 나이부터 등장하는데, 캐스팅 된 배우들은 그보다는 나이가 더 들어보여서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특히, 매그가 저런 얼굴형에 이런 헤어스타일이었다고? 승무원처럼 단정하게 망 안에 머리를 집어 넣고 있는게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아지는 책이 있는 반면, 감동이 반감되는 책도 있다는 걸, 최근 자주 깨닫게 돼서 아쉽다. 그저 어릴 때 좋아했던 『작은 아씨들』로 간직하고 싶다.


"나도 아빠가 우리에게 붙여준 '작은 아씨'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ebook, 29쪽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런 놀이를 못 하는 일은 절대 없단다. 에이미. 왠지 아니? 형태는 다르겠지만 살아가면서 우린 늘 천로 역정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짐은 여기에 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단다. 그리고 선의와 행복에 대한 갈망은 수많은 역경과 실수를 헤치고 진정한 하늘의 도시인 평화로 향하도록 인도하는 길잡이란다. 자, 어린 순례자 여러분, 이제 놀이가 아니라 진짜 생활 속에서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니?" ebook,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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