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양장 한정판)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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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저자는 왜 철학책을 썼을까?

 

게이오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저자가 주로 한 일은 컨설팅이었다. 그는 조직 개발, 혁신, 인재 육성, 리더십 분야의 전문 컨설턴트였고, 현장에서 철학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을 살려 유수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기업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단다. 그런 그가 쓴 철학 인문서라니,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의 책일지 짐작이 됐다.

학 전문가도 아닌 내가 왜 사회인을 위한 철학책을 쓰고자 했을까? 그 이유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이 사회를 이루고 영위하는 데 크고 작은 역할을 맡고 있는 개인들이야말로 철학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4쪽

물론 철학 전문가만 철학책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그의 말도 맞다. 그런데 뭔가 당돌한 구석이 없지 않다. 굳이 자신이 철학책을 쓴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소위 철학 입문서가 차고 넘친다. 인터넷 서점에 '철학 입문'이라고 검색하면 철학의 대가인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무려 만 권이 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까지 많은 입문서가 쓰였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대표할 만한 책이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증거이므로 새롭게 철학 입문서를 쓰는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이렇게나 많은 철학 입문서가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지금까지 쓰인 유사 도서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요소를 드러내지 않는 한 큰 의미가 없다. 26쪽

러셀이 일부 학자들의 혹평을 받고 있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러셀의 작품을 콕 집어 언급한 뒤에 아직 대표할 만한 책이 쓰여지지 않았다고 하다니. 자신감이 넘치는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각설하고 러셀, 군나르 시르베크가 쓴 『서양 철학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철학 입문서들은 연대기 순으로 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저자가 결정적으로 다른 요소를 둬야 한다고 언급했듯이) 이 책은 연대기 순이 아닌 네 가지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 네 가지 콘셉트는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인데 지극히 비즈니스 컨설팅 대가다운 콘셉트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이 네 가지 콘셉트에 맞춰 50가지 핵심 철학 사상들을 선정했는데, 이것을 선정한 기준은 철학사의 학문적인 중요성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쓸모(적용)'이다. 그래서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칸트도 저자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빠져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좀 더 솔직하게 덧붙이고 있는데, 사실은 '너무 대단해서' 저자가 사용하기에 불편하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책에서는 철학ㆍ사상의 핵심 개념을 다루는 데 철학사의 학문적인 중요성은 반영하지 않았다. 분명 철학이나 근대 사상에 익숙한 사람은 칸트, 스피노자, 키르케고르가 싹 빠져 있는 철학 입문서는 허용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비판도 고려하지 않았다.이 책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업인 조직과 인재에 관한 컨설팅과 실생활에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유용성을 토대로 편집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35쪽

저자는 이렇게 자신이 철학책을 쓴 의도를 시작부터 밝히고 있으니, 이 의도만 꼼꼼히 읽는다면 실패 혹은 실망하지 않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천여 명의 CEO가 극찬한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인문학?

앞서 저자가 밝혔듯이, 철학 사상을 나누고 있는 네 가지 컨셉트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이다. 사람, 조직, 사회, 사고에서의 철학의 쓸모를 이야기하다보니, 인문학적인 접근 보다는 경영이나 자기계발에 가까운 설명들이 많다. 특히, 읽다보면 왜 2천여 명의 직장인들이 아닌 CEO들이 극찬했는지 알 수 있다.

리더의 자리에서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황에 따라 환영받지 못하는 결정이나 부하에게 상처를 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비즈니스든 사회 조직이든, 혹은 가족 안에서든 장기적인 번영과 행복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리더는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134쪽

통상 비즈니스 세계에서 상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과급 정책이 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창조성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성과를 유도하기 위해 제공하는 '당근'이 조직의 창조성을 높이는 데 의미가 없을뿐더러 되레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대가와 학습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65쪽

CEO가 아닌 내가 위로 받은 부분도 있었는데, 바로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을 반론한 부분이다.

글래드웰의 주장은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면 1만 시간 동안 훈련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대담한 법칙을 제안한 데 반해 책에 나와 있는 논거는 일부의 바이올리니스트 집단과 빌 게이츠(프로그래밍에 1만 시간을 열중했다), 그리고 비틀스(데뷔 전에 무대에서 1만 시간 연주했다)에게서 이 법칙이 관측되었다는 것뿐으로, 주장의 근거가 너무나 취약하다. 이는 비단 글래드웰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재능보다 노력'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책에 나타나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259쪽

컴퓨터게임 : 26%

악기 : 21%

스포츠 : 18%

교육 : 4%

지적 전문직 : 1%

이 수치를 보면 글래드웰이 주장한 '1만 시간의 법칙'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얼마나 위험한 주장인지 알 수 있다.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주장에는 일종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어 매우 아름답게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이고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의미 있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공정한 세상 가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공정한 세상 가설, 즉 노력은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사고는 실증 연구에서 부정되고 있으며 노력의 누적량과 성과의 관계는 해당 경기나 종목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혀졌다. 다시 말해 섣불리 이 사고에 사로잡혔다간 승산이 없는 일에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261쪽

즉, '1만 시간의 법칙'은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 효과적으로 나타나는 분야는 컴퓨터게임, 악기, 스포츠와 같은 분야에 한정되어 있으니 승산 없는 일에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제목에서부터 일본스러움이 풍기는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철학 입문서보다는 경영서나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이 책은 핵심 철학 사상의 목록을 엿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더 깊게 알고 싶다면 진짜 철학 입문서나 해당 사상가의 저서를 직접 찾아 읽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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