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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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Every Fear,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공포'와 '폭력'!
   히치콕 감독은 영화에서 극적인 전개를 위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의문에 빠트리는 장치를 미리 보여줘 관객이 스스로 추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종종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관객이 줄거리를 따라잡지 못하게 하는 히치콕식의 속임수 장치'맥거핀(Macguffin)'이라 하는데 사건, 상황, 인물, 소품 등이 모두 맥거핀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전작인 『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피터 스완슨이 이번에는 히치콕 스타일의 서스펜스를 표방하는 소설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히치콕 스타일이 뭔지 몰라서 글로 배웠습니다. 영화를 찾아서 볼 시간은 없었구요.)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는데, 304호 여자가 먼저 등장합니다. 데이트폭력으로 악몽에 시달리며 외출 조차 맘 놓고 할 수 없었던 케이트는 6개월 동안 얼굴도 모르는 육촌(원서 표현이 궁금한 단어입니다)과 집을 바꿔서 생활해 보기로 합니다. 런던에서 보스턴으로 날아온 첫 날, 303호 여자가 죽었고 육촌의 집은 바로 304호입니다. ㄷ자 구조의 아파트라 303호 건너편에 있는 312호에서는 303호가 보인다고 합니다. 312호 남자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거의 집착하듯이 303호 여자를 창문으로 지켜봤다고 고백합니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탓에, 죽은 여자의 전 남자친구라는 수상한 남자가 아파트 근처를 돌아다닙니다. 심지어 육촌의 집에서 304호 열쇠까지 나타납니다. 여러 정황들이 그녀의 육촌이 죽은 여자의 남자친구라고 말하고 있는데, 혹시 케이트는 지금 살인자의 집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케이트의 남자친구 또한 케이트를 죽이려고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이 소설의 특성상 더이상의 줄거리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케이트가 겪고 있는 '공포'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한국어 제목과는 다른 『Her Every Fear』입니다. 케이트는 전 남자친구의 집착과 살해 위협으로 불안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이제 더이상 위협할 수 있는 남자친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케이트의 증상은 나아지지가 않습니다. 원래 앓고 있던 공황 장애는 더 심해졌고, 심지어 머릿 속에는 온통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생각 뿐입니다.

   케이트는 유리 테이블을 싫어했다. 물건을 올려놓을 때마다 유리가 박살나거나 적어도 금이 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언제나 곧 다가올 비극적인 순간에 살았다. 따라서 낮은 난간 앞에 서거나, 차들로 붐비는 도로를 건너거나, 수북이 쌓인 접시를 들고 가는 웨이터를 보면 질색했다. 짜증 나고 골치 아픈 공포증이었다. 그러다 5년 전, 조지와의 사건이 터지면서 케이트의 삶은 영원히 바뀌었다. 그녀는 일 년 넘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니, 단순히 못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나간다고 상상만 해도 공포와 슬픔으로 몸이 마비되었다. 부모님과 심리치료사가 케이트를 서서히 그 구멍에서 끌어냈고, 삶은 한결 나아졌다. 38쪽

   이렇게 조금 나아진 케이트가 겨우 용기를 내어 한 것이 이번 여행인데, 또다시 공포와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나 또한 약간의 불안 증세가 있지만, 이 소설에는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공포'가 모두 등장합니다. 살인, 데이트 폭력, 관음증에 가스라이팅까지. (물론 우리 여성이 느낄 수 있는 공포는 훨씬 더 많지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케이트의 '공포'에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릅니다. 우리집이 보스턴에 있는 육촌의 집처럼 여러 개의 방과 창고를 가진, 운동장처럼 넓은 집도 아니며 벽장도 없고 현관 외에는 외부로 통하는 다른 비상구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하지만 샌더스 같은 고양이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아쉽습니다. 누군가 몰래 숨어들더라도 샌더슨이 있다면 분명 할퀴어 줄테니까요.

   이 소설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문이 생겼다면, 또 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해 해결해 줍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매순간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일종의 '맥거핀'을 심어두었기 때문입니다.

   반은 코빈의 몫, 반은 내 몫, 둘이 공평하게 반반. 380쪽

   이 문장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문장인지, 이 소설이 얼마나 긴장감이 넘치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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