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예상했던 바이지만, 전국이 파란색으로 뒤덮히게 됐습니다. 아, 정말 예상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투표 전에 이번 선거의 의의는 여당이 얼마나 박살이 나는지 기록을 세우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결국 기록을 세웠군요.

한마디로 정치불신이란 거겠죠. 정치판에서 일하는 놈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란 인식이 이렇게 민주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서 확인된 경우는 우리 역사에서 처음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추행에 공천비리에 뭐 별의 별 거 다 걸린 한나라당이 이렇게 올라올 리가 없는 거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자축연의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국민이 능력 없는 개혁 보다는 비리가 있어도 능력이 있는 자를 원했다.'

글쎄요. 도대체 어딜 봐서 한나라당이 능력이 있다고 하는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은 철저하게 현 여당에 대한 반작용적 의미에서 나온 것이고, 그 뒤엔 '능력 있었던 사나이' 박정희에 대한 아우라가 두둥실 떠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의 업적으로 인한 결과주의에 대한 추종과 마초적 미덕의 만연은 대한민국의 총체적 불안에 대한 강력한 구심점 역할로 다가왔던 거겠죠. 더군다나 그의 딸은 한나라당의 아이콘이고 마스코트이며(여기서 이명박 파벌에서 박근혜를 비난할 때 쓰던 얼굴마담이란 칭호를 다시 생각나게 만드는군요. 얼굴마담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그들은 너무 쉬이 생각했나 봅니다.) 동시에 순교 당할 뻔했다는 경험, 대한민국 정치사에서의 흔치 않은 신성마저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2대에 걸친 그 동화는 박정희 아우라에 씌인 사람들에게 거의 숙명론과도 비슷한 감동을 줄 것입니다.

덕분에 황선생 사태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그 사건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세훈이 홍준표와 얼굴생김이 같았다면 서울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요. 장담하는데 절대 그렇진 못했을 겁니다. 오세훈과 강금실의 대결은 이미지와 이미지의 대결, 어느 한쪽이 더 강하고 자신있게 보이며 호감을 불러 일으키느냐의 싸움이었습니다. 일단 강금실은 열린우리당의 리스크를 모조리 떠안고 게임을 이끌어가야 했죠. 그런데다 강금실의 선거전략은 강한-굳은이 아니라 부드러움과 유화였습니다. 혼란한 시대를 잡아채는 것은 강철 같은-능력있는-남성스런 이미지인 것이 당연한 법이죠. 그 과정에서 여성 투표자들마저 강금실이라는 여성 아이콘에 대한 동화보다는 오세훈이라는 남성의 세련된 마스크(그리고 이면에 자리한 이명박-한나라당이라는 마초적 마스크)에의 순종적 종속에 더 이끌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남성들이야 뭐, 워낙 강금실이란 캐릭터에의 거부감도 만연했었거니와 고전적인 성차별적 정서-정치권력을 지배하는 남성적 의지에의 무의식적 동조도 한 몫 했겠지요. 결정적으로 '어차피 다들 똑같은 놈인 거, 보기라도 좋은 놈으로 뽑자'라는 정서의 승리랄까요. 미란 이렇게 위대합니다.

일종의 선후배 사이인 한나라나 열우나, 민노당이라는 이념 통합집단의 모순성에도 질려있던 저로서도 이번 선거는 꽤나 무기력한 선거이긴 했습니다. 뭐 그래도 역사는 작용반작용의 원리로 끊임없이 유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소위 진보세력의 무기력함과 보수세력의 득세로 결판난 이 선거에 대해서 좀 한심하다는 생각외엔 크게 상심은 안 드는군요. 일단 소위 민심이란 것의 유동성이 인터넷의 발달 이후 부쩍 빨라진데다 그에 기반하여 한나라당 승리의 기반이란 것이 흡사 폭탄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고, 이후 다량으로 펼쳐질 부정선거 논란에 의한 자격박탈 심사들 같은 이벤트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충청도와 전라도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경남에서의 세력 점거에 대한 당외 홍보 집중과 강금실의 정치판 연착륙의지를 통한 당쇄신과 지지층 결속을 꾀하는 열우당의 다소 노련해진 솜씨에 비해 민노당은 제대로 된 작전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보여서 저쪽 동네는 여전하구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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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6-06-04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기분좋게 첫투표를 했건만,,ㅡㅡㅋ 제가찍은쪽은 골라서 피하더군요 ㅋ

hallonin 2006-06-0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나름대로 충격이 있었을 듯-_-
 


[동아일보 2006-01-20 05:07]    



[동아일보]
《“요즘 고등학생 문예공모전 심사는 심사가 아니라 ‘수사(搜査)’예요.”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문예공모전과 백일장에서 남의 글 도용과 표절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상당수 대학이 입학 전형에서 입상자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특기생 입학 혜택을 줌에 따라 문예공모전 열기가 과열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부산 모 대학은 지난해 5월 문학 특기생으로 이 대학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던 김모(22) 씨의 입학을 취소했다. 김 씨는 여고생이던 2002년 한국작가교수회의가 실시한 제1회 전국고교 소설 백일장에서 단편소설 ‘바리데기 꽃’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경력을 인정받아 입학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사실은 작가 이용석 씨가 쓴 소설을 인터넷에서 보고 전체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이 백일장에서 본심에 오른 한 고교생의 작품은 이미 이 학생이 다른 문예공모에서 입상했던 작품임이 드러나 ‘변칙 응모’로 탈락됐다.


작가인 이병렬 숭실대 겸임교수는 “고교생 대상의 문예공모 행사들에서 표절 등 변칙 응모를 의심할 만한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며 “당일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 백일장의 경우 심사위원들이 특히 골머리를 앓는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대상의 문예공모는 대학, 문학단체, 문학지들이 주로 주관하는데 1년에 100개 이상이 열린다. 여기에 문학과 관련 없는 청소년단체들까지 보장할 수도 없는 ‘입상자 가점 혜택’을 내세우며 우후죽순으로 행사를 열고 있다. 입상자에 대한 혜택 유무는 대학에 따라, 문예공모의 권위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대를 제외한 상당수의 대학이 문예공모 입상 가산점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겨냥해 시중에는 ‘문학 입시 가이드’류의 자료집까지 나왔고, 기출문제(백일장에서 제시된 작문 제목)를 갖고 ‘입시 공부하듯이’ 준비하는 학생이 많다.


이 때문에 백일장에서 흔한 제목이 제시될 경우 응모작의 수준이 현격하게 올라간다. 대회장에서 글을 써 내야 하는 백일장과 집에서 써서 응모하는 일반 문예공모 작품 간의 수준도 큰 차이를 보인다.


청소년들의 사고 능력과 문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된 문예공모 입상 가산점 제도의 취지가 왜곡돼 또 다른 형태의 입시 과열을 빚고 있는 것이다.


문예공모 입상 가산점을 받은 학생이 국문과, 문예창작과가 아닌 이른바 인기 학과로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시인인 김혜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한 명문대에 출강해 문예창작 특기생들을 가르쳐 본 적이 있는데 수준이 낮아서 (과연 특기생 자격이 있나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며 “최근 고교생 문예공모에선 표절 가능성이 있는 글을 ‘수사하듯’ 가려내는 게 주된 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작가 이용석 씨는 “청소년 대상 문예공모의 경우 문예반 지도 교사가 학생 본인이 쓴 글임을 확인한 후 응모하도록 해야 하며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들의 경우 면접을 통해 작의, 주제, 표현능력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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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입시 가이드라, 재밌는 것도 나오는군요. 특정 단어나 문장이 제시되면 성향과 주제에 따라서 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의 설명이나 문장이나 연상 같은 게 친절하게 예시되는 타입일려나.

뭐 그러고보면 신춘문예가 수능시험처럼 변한 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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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1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6-01-2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시험 보기 전 날 한시간여의 벼락치기 끝에 얻은 신기 넘치는 마법의 펜으로 되는대로 숫자들을 찍는 기분으로 대하고 있다고나 할까요-_-
 

제 인생에 있어서 인터뷰란 것이 얼마나 재밌는 것인지를 알려준 사람이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명은 정성일이었고 한 명은 김어준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차곡차곡 세워나가는 정성일의 방법론은 인터뷰의 위력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촛점을 콱콱 찔러버리는 김어준의 인터뷰는 인터뷰의 즐거움과 유희란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딴지일보의 역할은 시간이 흐를수록 제대로 길을 못 찾고 헤매이고 있었습니다. 개성 강한 개인의 파급력을 앞세워 엽기와 이죽거림의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던 그들의 역할은 점점 신문이나 방송국과 같은 중소-대형 전달 매체를 통하지 않는 개인매체의 위력이 강해져가는 현실을 못 따라가고 수많은 개인블로그와 게시판 포털들 속으로 나눠지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미디어몹의 탄생으로 인한 딴지 주요 필진의 대거 이탈을 꼽기도 합니다. 아무튼지간에 딴지일보의 정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어준이 치뤄내는 여러 인터뷰들은 그런 딴지일보의 맥없는 양상을 배경으로 삼아 더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간에 그 인터뷰의 역할을 자그맣게 쪼개서 가져온 발본색언 코너의 아이디어들은, 예전의 딴지일보가 가졌던 자리를 거의 유일하다시피 보여주는 즐거운 성과였습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간간이 보여주던 마초적 편향성, 인간성에 끌려다니는 모습들 같은 것은 가끔식 우려가 되게 만드는 사항이었습니다만 즐기기 위한 인터뷰로서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적절하게 필터링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우스파크를 재밌게 보기 위한 것과 비슷한 방법론이었지요.

그런데 이번 황우석 사태에서, 딴지일보가 보여준 길은 놀라웠습니다. 이것이 과연 똥꼬를 찌른다던 그들의 모습이었는지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죠. 그리고 그 뒤엔 황우석 지지 성명을 내려는 걸 기자들이 뜯어말려야 했던 김어준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서울대 생명공학부 학생의 인터뷰를 실었다가 어제 결국은 내려버린 사건을, 몇명이나 딴지에 가서 봤는진 모르겠지만 그 인터뷰를 보면서 참, 훌륭한 인터뷰어가 이런 식으로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온통 썰로만 채워져 있던 그 인터뷰는 괴상한 인터뷰였습니다. 첫째, 저는 왜 인터뷰이를 그런 이로 꼽았는지 김어준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선택에는 천박한 자기과시와 권위에의 얄팍한 의존의식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둘째, 가설로만 가득 찬 인터뷰의 끝이 결국은 아닐 수도 있다로 결말 지어진다는 것은 현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힘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던 김어준의 말은 틀렸습니다. 진정 그가 진실을 바랬다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자신이 취재윤리를 어겼으면서도 피디수첩이 취재윤리를 어겼다는 드라마를 만들려고 보내졌던 와이티엔의 김진두기자를 약삭빠르게 인터뷰한 딴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반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디수첩의 가족정보가 퍼져서 그 가족들의 살해위협까지 겪어야 했던 때에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던, 황우석 옹호 발언을 했었던, 그런 행위자들에 대한 옹호 발언을 했었던 김어준이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http://www.hani.co.kr/kisa/section-paperspcl/book/2005/12/000000000200512292041825.html

그리고 한겨레 신문에 위와 같은 그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랍니다. 제발 좀 닥치잡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제발 좀 닥쳐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우선 딴지일보와 김어준이 지켜야 했습니다. 살해위협에 시달리던 가족을 봐야했던 피디들에 대해 가만히 보고만 었었던 김어준이 여기선 황우석에게 기회를 주자고 합니다. '원천기술'이란 단어 자체가 가지는 말장난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게 입증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합니다. 서울대 생명공학부생과의 인터뷰에서 음모론을 폭포처럼 쏟아내던 이가 이제는 소설을 그만 쓰자고 합니다. 김어준은 피디수첩의 진실이 기분나빴답니다. 재수없었답니다. 그래서 진실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사람들에 의해 피디수첩이 당해야했던 일은 기분 나쁘게 만들었으니 당연한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이번 진실은 부드러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야 했다구요. 딴지일보는 '똥꼬를 찔러야' 기존의 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체득하고 적극적으로 선보였던 이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언제부터 딴지일보의 김어준이 센세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중도주의자의 면모를 갖기 시작한 걸까요? 바로 그저께만 해도 딴지일보 대문에 올라와 있었던 문제의 인터뷰도 센세이셔널한 음모론의 일부를 도발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했는데요.

예전에 그의 말을 리뷰에서 인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불법 사례의 적극적 공범이었던 삼성의 모습이 드러났는데도 분노할 줄 모르던 사람들을 보면서 개탄하던 내용이었죠. 그러던 김어준의 잣대는 여기 와선 왜 이렇게 헝클어진 걸까요. 사람들은 배신당했고 상처 받았습니다. 장애인을 일어서게 하고 불치병을 치료해 준다던 수백억원 짜리 연구 뒤에는 불신과 음모와 조작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일궈낸 것은 주류 언론이었으며 그 망상을 부순 것은 진실을 믿었던 소수의 힘이었습니다. 그 무수한 왜곡과 몽상의 한가운데에서 딴지일보와 김어준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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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6-01-0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전에 EBS에서 직업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엇습니다.. 각기계층의 성공가능성이나 뭐 자기분야를 이끌어나가는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던거 같은데 그때 황우석박사님이 나오셨죠.. 학교에서 진로와직업시간에 틀어주길래 안맞을라고 열심히 봤습니다(졸면 맞아서) 농가를 찾아다니며 일명 '슈팅'이라는 난자채취 과정(직접 손을 집어넣어 뽑아내더군요)을 보면서 아 저래도 먹고살기 힘들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황우석박사가 줄기세포로 엄청난 도약을 하시길래 '진인사대천명'이란말을 실감하며 응원했죠.. 그런데 이렇게 순식간에 매장당하실줄은.. '슈팅'이 아무리 고달프셨더라도 너무하셨다는 말밖에.. 재기가능성은 없으실라나

hallonin 2006-01-07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러난 것만도 산더미인데,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죠. 혹여나 민간기업에서 축산 관련 기술 차원에서 돈으로 기용하는 케이스가 있을지는 몰라도 학자로선 끝났다고 봐야 할 겁니다.
 

다시 이 양반의 이름을 꺼낸다는 게 참 고역입니다.... 이 이후로 황우석 얘기는 아예 안 하거나, 정말 못 참을 것 같은 순간에도 되도록 자제하기로 하겠습니다.

황우석이란 사람이 일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겠지.... 하는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자회견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 사람, 확신범이라는 걸.

오늘 기자회견은 말그대로 두리뭉실한 진실과 말장난으로 화제를 고의적으로 돌리고 책임회피를 향해 전력질주한 쇼타임이었습니다. 황우석은 이 자리에서 스스로 2005 논문의 가치를 파기시켜버리고, 2004 논문의 기술력이 사실이라는 것에 생뚱맞게 촛점을 맞췄죠. 딱 한가지만 보겠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줄기세포가 하나든 세개든 만드는데 일년이 걸리든 무슨 상관이냐고. 이미 기술이 갖춰져 있는데, 라구요. 무슨 상관이라뇨. 누가 얼마나 잘 생긴 세포를 빼내는 걸 뭐라고 했답니까. 바로 성공확률, 2000개의 난자에서 2개를 뽑아내던 기술이 2005년에 와선 2000개의 난자에서 11개를 뽑아내는 기술로 진화했다는 걸 보고 장애인들과 불치병 환자들이 희망을 가졌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든 셋이든 일년 후든... 이라뇨. 이것은 아예 대놓고 2005년 논문의 가치를 파기시켜버린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당당함은 뭡니까. 300억을 들여 만든 연구실에 침입해 들어온 수퍼 곰팡이 때문에 그간의 연구성과를 날렸다고 주장하고 고향집에 금송아지 한마리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로 지금까지 그 엄청난 소모전을 치루게 만든 사람이, 열흘 뒤에 하나든 세개든 세포를 보여주겠답니다. 어찌됐든 세포가 있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세포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죠. 과학이 무슨 미수 끌어다가 돈놀이하는 주식시장도 아니고-_-

이 조작이 명쾌해짐에 따라 황우석이란 사람에 대한 세계 학계의 신뢰도는 땅에 추락했습니다. 네이쳐든 사이언스든 포토샵으로 꾸미고 5년 전에 나온 딴 논문 사진을 잘라다 붙여 만들었던 그의 논문을 실어 줄 곳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300억을 곰팡이 때문에 날려버린 사람에게 정부가 계속 지원을 해줄까요? 정부가 만약 바보집단이라면 가능한 얘기겠죠. 그럼 대기업은 어떻습니까. 삼성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작업이 그토록 돈을 펑펑 쏟아내는 수익 사업이라면 기업체 스폰서가 없었을까 하고 반문할 수 있을 겁니다. 난자확보에서부터 그 빈약한 성공률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이 사업은 무지막지하게 돈벌이가 불투명합니다. 기업체 스폰서가 있었다면 벌써 있었죠. 자, 상황이 이러한데 황우석의 획기적인 다음 논문은 과연 어디에 올려진다는 걸까요.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 부속 프리메이슨 잡지에라도 싣겠다는 걸까요.

소위 황우석이란 브랜드는,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논문에 대한 진실과 대국민 구라가 규명됐다는 이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얻어야겠죠. 그래서, 현재 이뤄지는 논쟁이 노성일과의 진실규명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좀 여유롭게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아귀다툼으로 보이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 양반에게 농락 당한 사람들과 시간들을 생각하면, 정말 정이 안 떨어질래야 안 떨어질 수가 없군요 이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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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으기 아래에 제가 썼던 글을 보면, 그때만 해도 모든 일이 술술 되면되면 잘 풀리길 바랬던 마음이 보이는군요.... 하지만 결국 사태는 최악의 결과를 내놓고 말았네요.

이번 건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탈감과 자괴감에 휩싸여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합니다. 결국 결론이라고 나온 게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다'였으니까요. 조사위원회에 포함된 서울대 모교수가 오늘을 국치일이라고 이름 붙인 게 각 포털에 붙어다니고 있군요.

하지만 전 이 상황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국치일? 황우석이 곧 대한민국 자체도 아닌데 무슨 국치일입니까.

이번 사건이 밝혀지는데는 이 나라의 소장파 생물학, 생명학자들과 민간연구자들, 파시즘을 경계하는 인문계 사람들 모두가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황우석박사의 전세계를 상대로 한 거짓말을 밝혀낸 거죠. 바로 우리 손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열고, 우리가 끝낸 일입니다.

또한 세계 과학계의 두 중심축 중 하나인 사이언스지의 검증능력의 문제점을 그대로 증명해냈구요. 외국에서 먼저 밝혀졌으면 톡톡히 망신 당했을 수도 있었던 일을 우리가 자체적으로 찾아내서 정화해낸 겁니다. 이 과정에서 본체인 브릭과 놀이터였던 디시 과갤에서 보여줬던 작업과 성과들은 과학에 대한 맹목적 신앙을 부정하는 합리적 비판정신과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 보게끔 만든 결과들이었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허무함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낙담하고 있을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낙담이야말로 진실이 그분들에게 있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증거도 됩니다. 그러니 너무 절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분들이 자신들을 갖고 놀았던 어용언론들에 대한 분노만큼은 참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제발 이참에 그들의 물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쓴맛은 위장의 힘을 키워줍니다. 저는 미래를 보고 싶습니다.

 

 

....사족이랄까 이 양반(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90&article_id=0000010450§ion_id=102&menu_id=102)은 과연 어떻게 될지.... 죽자니 명분이 없고 살자니 쪽팔리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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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2-1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참 슬픕니다. 많은 난치병 환자들을 기만했잖아요.

hallonin 2005-12-1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기만.... 제 친구도 어머니 때문에 이 연구 성과에 꽤 기대를 걸고 있었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된다 보다는 된다에 더 끌리기 마련이니까요.... 늦었지만 이제야말로 진짜 잘 마무리되는 방향으로 가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