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 있어서 인터뷰란 것이 얼마나 재밌는 것인지를 알려준 사람이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명은 정성일이었고 한 명은 김어준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차곡차곡 세워나가는 정성일의 방법론은 인터뷰의 위력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촛점을 콱콱 찔러버리는 김어준의 인터뷰는 인터뷰의 즐거움과 유희란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딴지일보의 역할은 시간이 흐를수록 제대로 길을 못 찾고 헤매이고 있었습니다. 개성 강한 개인의 파급력을 앞세워 엽기와 이죽거림의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던 그들의 역할은 점점 신문이나 방송국과 같은 중소-대형 전달 매체를 통하지 않는 개인매체의 위력이 강해져가는 현실을 못 따라가고 수많은 개인블로그와 게시판 포털들 속으로 나눠지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미디어몹의 탄생으로 인한 딴지 주요 필진의 대거 이탈을 꼽기도 합니다. 아무튼지간에 딴지일보의 정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어준이 치뤄내는 여러 인터뷰들은 그런 딴지일보의 맥없는 양상을 배경으로 삼아 더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간에 그 인터뷰의 역할을 자그맣게 쪼개서 가져온 발본색언 코너의 아이디어들은, 예전의 딴지일보가 가졌던 자리를 거의 유일하다시피 보여주는 즐거운 성과였습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간간이 보여주던 마초적 편향성, 인간성에 끌려다니는 모습들 같은 것은 가끔식 우려가 되게 만드는 사항이었습니다만 즐기기 위한 인터뷰로서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적절하게 필터링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우스파크를 재밌게 보기 위한 것과 비슷한 방법론이었지요.
그런데 이번 황우석 사태에서, 딴지일보가 보여준 길은 놀라웠습니다. 이것이 과연 똥꼬를 찌른다던 그들의 모습이었는지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죠. 그리고 그 뒤엔 황우석 지지 성명을 내려는 걸 기자들이 뜯어말려야 했던 김어준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서울대 생명공학부 학생의 인터뷰를 실었다가 어제 결국은 내려버린 사건을, 몇명이나 딴지에 가서 봤는진 모르겠지만 그 인터뷰를 보면서 참, 훌륭한 인터뷰어가 이런 식으로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온통 썰로만 채워져 있던 그 인터뷰는 괴상한 인터뷰였습니다. 첫째, 저는 왜 인터뷰이를 그런 이로 꼽았는지 김어준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선택에는 천박한 자기과시와 권위에의 얄팍한 의존의식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둘째, 가설로만 가득 찬 인터뷰의 끝이 결국은 아닐 수도 있다로 결말 지어진다는 것은 현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힘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던 김어준의 말은 틀렸습니다. 진정 그가 진실을 바랬다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자신이 취재윤리를 어겼으면서도 피디수첩이 취재윤리를 어겼다는 드라마를 만들려고 보내졌던 와이티엔의 김진두기자를 약삭빠르게 인터뷰한 딴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반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디수첩의 가족정보가 퍼져서 그 가족들의 살해위협까지 겪어야 했던 때에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던, 황우석 옹호 발언을 했었던, 그런 행위자들에 대한 옹호 발언을 했었던 김어준이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http://www.hani.co.kr/kisa/section-paperspcl/book/2005/12/000000000200512292041825.html
그리고 한겨레 신문에 위와 같은 그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랍니다. 제발 좀 닥치잡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제발 좀 닥쳐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우선 딴지일보와 김어준이 지켜야 했습니다. 살해위협에 시달리던 가족을 봐야했던 피디들에 대해 가만히 보고만 었었던 김어준이 여기선 황우석에게 기회를 주자고 합니다. '원천기술'이란 단어 자체가 가지는 말장난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게 입증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합니다. 서울대 생명공학부생과의 인터뷰에서 음모론을 폭포처럼 쏟아내던 이가 이제는 소설을 그만 쓰자고 합니다. 김어준은 피디수첩의 진실이 기분나빴답니다. 재수없었답니다. 그래서 진실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사람들에 의해 피디수첩이 당해야했던 일은 기분 나쁘게 만들었으니 당연한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이번 진실은 부드러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야 했다구요. 딴지일보는 '똥꼬를 찔러야' 기존의 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체득하고 적극적으로 선보였던 이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언제부터 딴지일보의 김어준이 센세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중도주의자의 면모를 갖기 시작한 걸까요? 바로 그저께만 해도 딴지일보 대문에 올라와 있었던 문제의 인터뷰도 센세이셔널한 음모론의 일부를 도발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했는데요.
예전에 그의 말을 리뷰에서 인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불법 사례의 적극적 공범이었던 삼성의 모습이 드러났는데도 분노할 줄 모르던 사람들을 보면서 개탄하던 내용이었죠. 그러던 김어준의 잣대는 여기 와선 왜 이렇게 헝클어진 걸까요. 사람들은 배신당했고 상처 받았습니다. 장애인을 일어서게 하고 불치병을 치료해 준다던 수백억원 짜리 연구 뒤에는 불신과 음모와 조작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일궈낸 것은 주류 언론이었으며 그 망상을 부순 것은 진실을 믿었던 소수의 힘이었습니다. 그 무수한 왜곡과 몽상의 한가운데에서 딴지일보와 김어준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