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가끔, 어떤 책은 밑줄을 그을 수가 없다. 책 그 자체가 이미 작가가 그어놓은 거대한 밑줄이기 때문이다. 다만 밑줄을 들키지 않는 작가의 노련함과 배려에 감탄할 뿐이다. 이 책 <바다>가 그렇다. 온통 푸른 밑줄이다.   

저자 쥘 미슐레는 프랑스 태생의 역사학자이자 문필가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한 1850년대는 요동치는 사회였다. 종교가 쇠락하고 이성과 과학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며, 시대는 인간이라는 개인을 발견하게 되지만, 조명을 받기 시작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한다.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을 세우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신비의 영역이었던 자연을 개척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결과는 설명이 필요없게 되었다. 여하간, 저자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잠시 접고 [바다]와 [바다와 더불어 사는 생명체]와 [바다와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역사학사적인 고증과 문필가적인 감성으로 풀어낸다.  

책은 크게 1부 바다를 바라보며, 2부 바다의 기원, 3부 바다의 정복, 4부 바다의 르네상스로 구분되어 있다. 먼저 저자는 [바다]를 이렇게 묘사한다.  
"세상의 큰 운명인 굶주림은 육지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바다에서 굶주림은 예방되므로 있는지조차 모른다. 식량을 찾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 삶은 마치 꿈처럼 떠다닌다. 그런 힘을 무엇에 쓸까? 힘의 소진은 불가능하다. 그 힘은 사랑을 위해 비축한다.....이것이 바다다. 바다는 지구의 거대한 암컷이다.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영원한 수태로 새끼를 낳는다. 절대로 끝이란 없다." 

"이 신성한 작업을 지켜보자. 바닷물 한 줌을 쥐어보자. 거기에서 원시의 창조가 다시 시작된다.....이렇게 나타나는 물방울은 식물성의 실일까? 그것은 어떤 존재라고 하기 어려운 가벼운 솜털 같다. 이미 예민하고 사랑스러운 솜털이다."
 

그는 바다에 서식하는 단세포 생물의 느릿한 움직임부터 어느 날 갑자기 들끓는 폭풍과 해일을 그리고 적도의 숨막히는 고요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해와 달의 움직임에 따라 부푸는 바다라는 거대한 암컷을 샅샅히 훑으며 생명이 태어나기 전 이미 그들을 사랑한 생명의 신을 노래한다. 이제 이 푸른 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 [고래]를 생명의 신이 얼마나 가학적으로 사랑했는지 묘사하고 있는 저자의 글들을 살펴볼까 한다.

"움직이는 불덩어리 같은 이 애인들은 일순간 몸을 치켜세우고, 노트르담의 탑처럼, 너무 짧은 팔에 끙끙대면서, 서로 부둥켜안으려 기를 쓴다. 그들은 그 거대한 체중으로 다시 밑으로 떨어진다."

"자연의 창조력이 처음으로 시적인 상상을 발휘해 내놓은 놈 같다. 우선 숭고함을 겨냥했지만, 그 뒤에 가능한 수준으로 복귀했다. 지속 가능한, 즉 생존 가능한 수준으로. 크기와 힘에서 모두 감탄할 이 짐승은 피는 뜨겁고 젖은 따뜻하며 선의에 넘친다. 오로지 생존 수단만 부족하다."   

"멋지게 10미터 높이로 뿜어올리는 물기둥과 분수구멍은 바로 유치하고 야성적인 기관이라는 표시이자 증거다. 힘껏 공중으로 분수를 쏴올리면서 그 '숨 가쁜 통풍기'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오 자연이여, 왜 나를 노예로 만드셨나이까?" 

이 아름답고 힘찬 더불어 선량한 생명체를 지면으로 옳겨온 저자를, 또한 저자의 글들을 도무지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어서 저자는 바다를 정복한 인간의 역사와 바다를 두고 싸웠던 전쟁의 역사, 뒤를 이어 바다를 끼고 꽃피웠던 아름다운 문화들을 소개한다. 참으로 바다에 관한 모든 것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바다의 정복편에서 저자는 허기진 인간은 무섭다,고 썼다. 그리고, 과거의 영웅들이 숭고한 것은 무지한 데다 그 맹목적인 용기와 절망적인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그렇게 바다의 길을 찾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심지어 둥근 지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태풍을 제압할 수는 없었지만, 무지는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웅들이 밟았던 땅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의 삶은 영혼 대신 돈을 긁어모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피폐해질 수 밖에 없었다. 원주민들의 존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뒤에 일들은 입에 담기도 민망할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다루는데, 동물은 또 어찌했겠는가. 학살하고 또 학살하고, 죽이기 위해 죽인 고래와 바다코끼리와 해표와 수많은 물고기들. 이제는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험에 놓여있다. 어느 여름 대륙을 강타했던 폭풍과 해일이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절규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그런 책이 있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 어느 페이지를 들춰보아도 고마운 책. 위로가 되는 책. 울렁거리게 하는 책. 쥘 미슐레의 <바다>가 그렇다. 바다가 요동치는 것 처럼 마음이 요동치고, 바다가 고요한 것 처럼 마음도 고요해진다.

이제 <바다>에 수장된 심정은 언어로써 언어의 바깥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책을 덮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먹먹할 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실재한다면 이럴까, 마음으로 마음을 넘어설 수 없는 막막함. 마음을 전달하려고 발화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잠시 하얗게 부푸는 물거품에 불과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초라함. 추태를 부릴 수 없음에 두근거리기만 하는 민망함. 몰려드는 무력감에 좌초된 독자는 허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곳, 욕망이 끓어오를 틈을 주지 않는 곳, 그렇다고 금욕도 절욕도 아닌 곳, 해석이 아닌 사실이 존재하는 곳, 영원히 검푸른 바다를 두고 고래처럼 솟구쳐 오른다. 오 자연이여, 왜 나를 바보로 만드셨나이까.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0-12-23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님은 <바다>를 감명 깊게 읽으셨군요. 저는 전반부에 저자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느겼던 것을 기록한 부분만 좋았던거 같습니다.

굿바이 2010-12-23 09:20   좋아요 0 | URL
책이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면, 혹은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개인의 감수성과 취향은 얼마든 다양할 수 있고, 또 그런 다양함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0-12-23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0-12-2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로 30분 달리면 푸른 동해바다를 볼 수 있는 데 사는 메리포핀스예요.
안녕하세요? 알라딘서재달인 링크 따라 와봤어요.
주황색 날개 달린 연미복 신사가, 바다를 배경으로 인사를 건네주시네요.
연장 마니아, 라는 한마디가 관심을 끌구요. 굿바이라는 닉네임은.. 좀 뜻밖이네요. 하이 또는 하와유, 굿모닝, 이런 닉네임에 비해서는요.
반갑습니다. 굿바이님! 메리 크리스마스!!!

굿바이 2010-12-27 00:04   좋아요 0 | URL
이제야 댓글 봤습니다.
메리포핀스님, 성탄은 잘 보내셨는지요?

굿바이라는 닉네임이 좀...^^ 메리포핀스라는 이름은 발음도 그렇고, 동화적이고 예쁘네요. 여튼 이렇게 인사나눌 수 있어 반갑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