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0만 부 기념 윈터 에디션)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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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The April Bookclub

 

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새벽정오황혼으로 나누어 그에 맞는 철학자들을 넣었다.

새벽에는 꾸준하게 앞을 향해 가는 성실함

정오에는 인생의 황혼기로 즐기고 싸우고 투쟁

황혼에는 어떻게 늙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철학자들의 일상을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작가가 타고 가는 그 기차도 철학자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기차가 가진 철학적 의미를 통감하며 읽어야 한다.

 

500쪽 분량의 책이지만 가독력이 좋아서 술술 읽힌다그런데 술술 읽힌 만큼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은 왜 그런 것이냐읽고 나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것은 왜 그런 것이냐다음은 철학자별 마음을 끈 문구들을 정리해봤다.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오늘 네가 만날 사람들은 주제넘고 배은망덕하고 오만하고 시샘이 많고 무례할 것이다타인은 지옥이다마르쿠스는 골치 아픈 사람에게서 영향력을 빼앗으라고 제안한다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자격을 빼앗을 것다른 사람은 나를 해칠 수 없다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왜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신경쓰는 걸까생각은 당연히 내 머리가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이런 끔찍한 불평불만과 원숭이 같은 삶은 이걸로 충분하다너는 오늘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하지만 너는 그러는 대신 내일을 택한다.

 

사명은 내부에서의무는 외부에서 온다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소크라테스

명백해 보이는 문제일수록 더 시급하게 물어야 한다형언할 수 없는 것을 직감할 때 통찰의 순간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왜곡된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착각한다심지어 자신이 안 맞는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좋은 질문은 문제의 프레임을 다시 짜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루소

걷다 Walk : 굽이치고 요동치다태초에는 발이 있었다걷기는 자극과 휴식노력과 게으름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제공한다.

우리가 두 번째로 발을 담그는 강물은 절대로 전과 같은 강물이 아니며우리 자신도 전과 같은 우리가 아니다.

 

소로

좋은 철학은 좋은 전구처럼 방 안을 환히 밝힌다코키토에르고 숨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

보는 것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가끔은 주변을 살피거나 탐구하지 말고무언가를 열심히 보려 하지 말고온전히 자유롭게 걸어야 한다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쇼펜하우어

소음에 정신이 팔린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전경과 배경의 분리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자기 정신에서 현실을 구성한다는 의미다각자의 도식을 가지고 세상을 인식하고 바라본다.

 

쇼펜하우어는 다른 동물인 고슴도치의 도움을 받아 인간관계를 설명한다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 가까이 붙어 서서 옆 친구의 체온으로 몸을 덥힌다하지만 너무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만다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두 악마 사이를 오가며”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서로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관계는 끊임없는 궤도 수정을 요하며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그래서 우리가 신파 영화를 보거나 레너드 코헨의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극적인 사건에 덜 몰입하면 어딘가에 메이지 않고 감정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있으며슬픔 안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그 음악은 내 슬픈 기분과 잘 어울리고 내 감정을 인정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슬픔의 원인과 거리를 두게 도와주기도 한다나는 슬픔을 삼키지 않은 채또는 슬픔에 삼켜지지 않은 채 슬픔을 경험할 수 있다그 씁쓸함을 음미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그리고 마음껏 운다적당한 거리를 둔 슬픔 체험이다그곳에서 거기를 둔 슬픔을 온몸으로 경험한다그때에서야 비로소 음미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

우리는 습관의 폭압에서 벗어나려고 여행을 한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구나.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고 상상해보자의사를 불렀더니 의사가 즉시 포도 한 접시를 권한다뭔가 문제인가포도는 우리를 즐겁게 하는데그렇지 않은가이게 다 당신이 불필요한 욕망을 필요한 욕망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시몬베유

기다린다속도는 조급함을 낳는다기다릴 줄 아는 능력은 삶의 속도와 반비례하여 줄어든다.

조급함은 미래를 향한 탐욕이다인내는 시간에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나설 때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때다관심의 반대말은 산만함이 아니라 조급함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우리가 주의를 기울인 것만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원대한 아이디어를 낚아채려고 열심히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심리 상태를 본다그들은 원대한 아이디어가 자신을 그저 그런 사상가에서 선구자격 사상가로 바꿔주길 바란다그들은 아이디어를 숙고하는 것보다 포장하는 데 더 관심이 많고아이디어가 충분히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에 내보밴다.

 

머독은 그날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불안과 분노를 느끼며 창문밖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하늘을 나는 황조롱이 한 마리가 보였다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뀐다자만심에 상처 입은 음울한 자신은 사라졌다이제 황조롱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다시 내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다른 문제들은 전만큼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간디

끝난 것처럼 보이는 논쟁이 어쩌면 그저 다른 갈등 상황의 시작일 수도 있다베일을 쓴 폭력

 

파트너를 반대자로 보는가적으로 보는가만약 적으로 본다는 그건 문제다간디에게는 반대자가 많았지만 적은 없었다목표는 비난이 아니라 변화이므로.

 

공자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어진 사람은 행동거지가 수수하고 말을 느리게 한다.

 

니체

과거의 삶을 멀리 내던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영원회귀를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준으로 삼아보라당신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정말로 그 데킬라를 다 마시고 영원한 숙취에 시달리고 싶은가영원회귀는 자기 삶을 무자비하게 검사할 것을 요구한다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하게 한다영원히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영원회귀는 우리의 환상을 벗겨내고 우리의 성취가 거짓임을 드러낸다.

 

에픽테토스

스토아철학은 몇 번의 전투를 이겨내고패배도 몇 번 해보고상실도 경험해본 이들을 위한 철학이다크고 작은 인생 역경의 시기를 위한 철학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해야 할 일을 하라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자기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대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소설을 쓸 것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말 것그러니 걱정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네가 말하고듣고걷고숨쉬고삼키는 능력을 잃었다고 상상해보라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고난이 가진 영향력을 빼앗고 지금 가진 것에 더욱 감사할 수 있다우리는 어디에서나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보부아르

카이로스딱 맞는 적절한 때/기투우리는 타인이 자유로운 만큼만 자유롭다./사실성/키케로

 

제한된 미래와 얼어붙은 과거이게 바로 노인들이 맞이하는 상황이다많은 경우 이 상황은 노인들을 마비시킨다모든 계획이 이미 수행되었거나 폐기되었고삶은 스스로 제 문을 닫는다그 무엇도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노인들은 더 이상 그 무엇도 할 것이 없다.

 

수용은 체념과 다르다체념은 수용을 가장한 저항이다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척하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척하는 것과 같다.

 

소냐에게.

모든 것을 특히 너 자신의 질문을 물으렴경이로워하며 세상을 바라보렴경건한 마음으로 세상과 대화하렴사랑을 담아 귀를 기울이렴절대로 배움을 멈추지 말렴모든 것을 하되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가지렴네가 원하는 모든 높이의 다리를 건녀렴네가 가진 시시포스의 돌덩이를 저주하지 마렴받아들이렴사랑하렴.

 

몽테뉴

내 자리에 익숙해지자마자 다시 쫒겨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커다란 아름다움은 커다란 고통에서 나온다.

 

눈 돌리는 곳마다 시선 끝에 책이 보이는 것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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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의 삶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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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일 금요일

The April Bookclub

 

어느 독일인의 삶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박종대 옮김

 

나치 시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그 속에서 독일인으로, 히틀러 지휘 아래 살아갔던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무엇을 생각하라고 이 책이 나왔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몰랐다는 주장을 하는 폼젤. 지금 나도 그 무지의 밭에서 나뒹굴고 있다. 정치하는 인간들은 다 극악무도한 것들이라고 욕만 하고,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런 인간들의 깔아주는 판 속에서 허우적대며 불안을 다독이려 애쓴다. 세상이 썩은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저항은 아무것도 없다. 입만 나불대고 있고, 실상은 내 몸사리기에 바쁘다. 더는 괴롭히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밖에 없다. 가만히 있는 게 중간은 가는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판의 그릇 안에 집어 넣는다. [거짓과 증오의 확산으로 동조자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아닌 것에 대해서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멋진데. 건강한 건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독일은 국가 이기주의와 그에 따른 행동으로 벌을 받았어요. 거기엔 사회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한몫했겠죠.] 무지보다는 외면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나도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계속 당하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계속 당하게 된다.

히틀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들의 잔혹성이 세상에 알려지고, 폼젤이 수용소에서 생활을 마치고 난 뒤, [요즘은 속으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요. 너한테 일어난 그 모든 일을, 그렇게 고약하고 나빴던 일들을 네가 참 잘 이겨 냈구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삶이 살아져서 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인간이었기에 그 지난했던 시대를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일본인들도 조선인들을 외면하면서 살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그리고 폼젤처럼 생각하면 끝이었겠지. 멀지 않은 시대에 겪었음에도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노력보다는 안일한 현재만을 살고 있는 나에게 쉬이 가라앉지 않는 먹먹함을 안겨주는 말이었다.

 

나에게 피해가 없다면 다른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쉽게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는 오히려 순종하는 가운데 조금씩 서로를 속이고, 거짓말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에 익숙해졌어요.] 나만 건드리지 말아줘. 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삶을 개인 이기주의 삶으로 착각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붕괴. [우리가 무관심과 수동성으로 도덕적 붕괴에 빠질 위험은 상존한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무덤덤하게 대하고, 자신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폼젤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한참을 엮은이가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포퓰리스트들에 대항한 우리들의 자세를 함양하고 행동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바로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늘 타인들을 조심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러는 나는 내 속의 보통 사람입니다. 그 보통 사람 속에는 군대 전체의 배반과 폭력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관성적 부조리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다들 얼마간 품고 있는 폼젤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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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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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10

The April Bookclub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몇 주 머물다 가는 날 위해 귀한 주말 시간에 긴 산책을 함께해주고, 아늑한 홈파티에 한 자리를 내어준 분들의 환대가 얼마나 깊은 마음에서 나왔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감사하게 되었다. 그분들께 안부를 전하고 싶다. 내가 아는 뉴욕 사람들, 이제는 뉴욕에 없는 뉴욕 사람들에게.

역시 사랑스럽다.

인생 최고의 소풍이었다.]

 

[시선으로부터] 초반을 읽고, ‘글을 잘 만지는 사람이구나싶었다. 이 책도 초반에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서 매료될 수 밖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압도적인 작품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원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이든 드라마든 처음에 강렬함도 중요하지만 이끌어가는 힘이 더 중요하다. 이 책은 잘 읽히고,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지나치게 다 좋은 점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여행한 곳마다 각각의 색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같은 곳을 간 것 같은 다 좋았다는 결론이 현실이 아닌 판타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해졌다. 그런데 그 지나친 밝음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자양분이기도 했다. 역설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근사하다가 씁쓸해졌다는를 반복했다. [인생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초췌하게 얼어 있던 나를 다정히 포옹해주어, 긴장과 두려움과 피로가 씻겨나갔고 그렇게 얻은 용기로]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싹이 고개를 내밀게 해준다. 내가 쓰는 문체, 방향이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나는 부정의 단어들로 향연하고, 작가는 긍정의 단어들로 향연하는 것. 부정적인 것도 최대한 긍정적인 단어의 언저리에서 찾아 쓰는 것이었다. 작가는 생소한 단어를 적제적소에 잘 섞어 우려내고, 다독하고 성장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계가 얼마나 크게 변하는지, 나쁜 쪽으로 변할 수 있다면 좋은 쪽으로도 변할 수 있기를 늘 바랄 뿐이다] 작가는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나는 온통 부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채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면 확실히 무리하게 된다]라니. 나는 누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좋아한다고 매달려주기만 바라고, 무리는커녕 재지나 않으면 다행인 삶인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진 세상이지만,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분명 더 행복하지 않을까?]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기르게 돕는다.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에세이 형식이지만, 자체 검열 속에서 무뎌지다 못해 더 이상 칼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글을 매만지고 있는데, 작가는 고백하며 [놀라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말해도 되는구나. 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약한 부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라니. 내가 쓰는 글이 무슨 시사포럼도 아니고, 무슨 자체검열을 그리도 해서 살을 모조리 파먹고 있는지.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표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아프니까].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중용의 힘을 기르는게 필요하다.

 

둘째가 찾아오고, 봄의 먼지처럼 공황이 왔다. 숨을 쉬지 못해서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는 게 낫겠다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공황이 오기 전의 신체증상(목이 아프고, 감기 증상)을 알아차리고 공기정화 식물을 사들였다. 공황 약을 먹지 않아도, 신체 증상을 미리 조절하고 호흡을 하면서 나름 잘 이겨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할 운명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니까.

베란다에는 식물이 많다. 화분, 흙을 사다가 거기에 씨앗부터 심는다. 물을 주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식물들이 올라온다. 올해 5월부터 집안에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서 계속 피어났는데, 그만큼 식물들도 죽어갔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잘 지내던 식물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 마냥 다 죽어갔다. [느슨한 동행이 있어 한층 즐거웠다]. 그러다가 소강된 상태, 용암의 불이 덮여 있는 휴지기에 이르자, 식물들이 다시 살아났다. 신기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식물들을 좀 더 자주 보게 된다. 식물들도 다 느끼고 있구나. [화분에 새잎이 나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이 기분 좋음을 만끽할 필요가 있구나.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구나. 식물들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완벽하게 근사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폭력이 근사하게 나아갔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뒤로 돌려버린다는 사실을 몇 년에 걸쳐 알게되었다.] 과장의 신임을 얻은 후임이 갑자기 나를 불러 직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나가라고 했다. 일의 방식을 계속 논의해왔고, 열심히 해왔다. 그런데 익명의 게시판에 욕을 한 이들과 한패가 되어 나가라고 했다. 가해자들이 휘두르는 횡포는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나갈 수 없다고 버티고 있지만, 내 마음은 떠나라고 한다. 휴일이 끝나는 날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뒤로 물러나 버린다.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처럼 삐뚤어진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죽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조금만 경계를 낮추면 악의는 습기 높은 계절의 곰팡이처럼 기세를 떨치며 확산하고 지우기 어려운 얼룩을 남긴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내 삶을 매도하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잘 지내는 것 같을 때면 무참히 폭격을 해온다. 무시하고 있는데, 내 마음은 실상 그렇지 못해 인권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인권센터에서는 휴직을 하거나 이직 이야기를 건냈다. 고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토로하는 시간이었기에, 상담사도 실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발끈했다. 그런데 그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들고 있다. 그들과 싸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버티는 것도 힘들다면,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다.. 내 운명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가혹하게 내몰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다. 히틀러, 괴벨스같은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빨리 손절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데.

 

[아끼는 사람들에게 기댄 채, 지나치게 좌절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마음 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그것이 망가진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사실 이미 고장 난 타인의 저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저 내 저울의 눈금 위로 바늘이 잘 작동하는지 공들여 점검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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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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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이창희 옮김

 

2021813

The April Bookclub

 

열역학 1, 2 법칙으로 지구의 모든 현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법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 법칙을 이해한다고 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는 항상 한시 앞도 보지 못해 끙끙대지 않던가.

 

그럼, 열역학 법칙을 간단하게 보자.

 

열역학 제 1 법칙: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따라서 창조될 수도 없다. 단지 그 형태만 바뀔 뿐이다. 우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

 

열역학 제 2 법칙: 일명 엔트로피 법칙.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고 규정한다. 즉 유용한 상황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한다.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측정하는 수단이다. 어떤 시스템 내에서 존재하는 무용한 에너지의 총량.

 

세상이 점점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지고 있다. ?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사태로 나아가니까. 이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너지는 창조될 수 없다.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사람들은 적절한 기술만 개발하면 우리가 소모해버리는 것을 거의 모두 재생하여 재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다. 고립된 시간과 장소에서 엔트로피 과정을 역행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전체 환경의 엔트로피 총량은 증가한다. 재생이라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원을 희생하고 전체 환경의 엔트로피 총량을 증대시키는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하다. 미래의 생명체에게 유용한 물질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된다.

 

사유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도 모두 포함된다. 사람이 죽는 것도 엔트로피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유용에서 무용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에너지를 모두 쓰면? 죽음에 이른다. 그러면 사고로 갑자기 죽게 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지? 또 병으로 요절하는 것은 그 사람의 에너지 총량이 거기까지 였던 것이라는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먹이사슬 구조도 엔트로피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먹는 것. 결국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것. ... 내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어야 한다는 생존의 법칙이 엔트로피로 설명되니, 다시금 뜨끔해진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모두 다른 사람의 희생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굉장히 철학적이고 현학적이어진다.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데 있다. 소유와 소비는 계속 열악해져 가는 세계의 일시적 현상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려 삶을 어지럽힐 뿐이다. 우리가 소유하는 것들은 결국 우리를 소유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거기에 집착한다. 소유물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졌는가에 따라 스스로를 판단한다. 바가바드 기타(흰두교의 경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물질에 대해 생각하면 인간은 거기에 집착한다. 집착함으로써 갈망이 생기고 갈망함으로써 분노가 탄생한다. 분노함으로써 망상이 생기고 망상은 기억을 지워버린다. 기억을 잃으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분별력이 없어지면 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은 자연과 화해하고 생태계와 협동하며 살아가려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바로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안겨준 숙제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도 [덕분에 자연이 좀 쉴 수 있겠군. 그동안 계속 못살게만 굴었으니]

 

과학이란 결국 우리 세대의 가장 어리석은 사람조차 지난 세대의 천재보다 앞서갈 수 있는 학문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잘 나가려고 부단히 애쓰기보다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데 도움되는 노동에서 가치를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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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32
칼릴 지브란 지음, 황유원 옮김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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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8일 목요일

The April Bookclub

 

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황유원 옮김

 

이 글에 대한 소회는 번역한 황유원의 [작별 전에 하는 말] 중 일부로 대신한다.

 

예언자는 오르팔리스 성이 있는 한 가상의 섬에서 열두 해 동안아니 자신을 고향으로 데려다줄 배를 기다리던 예언자 알쿠스타파가 자신의 배가 오는 것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곧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히지만, 도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찾아와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아무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그에게 또 다른 예언자인 알미트라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당신의 진리를 말로써 전해 주세요.“ 그러고는 우선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하여 총 스물여섯 개에 달하는 인생의 여러 국면들에 대한 시민들의 질문이 차례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칼릴 지브란이 이 책에서 펼치는 논리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며 크게 새로운 것도 없다. 진정한 삶이란 각종 흑백논리 너머에 존재하며, 우리가 곧 신은 아니지만, 신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몸과 행동을 빌려 이 세상에 도래한다는 것. 그럴 때 우리는 신과 하나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어찌 보면 매우 교조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칼릴 지브란이 오래도록 갈고 닦은 문장들, 쉽게 공감을 이끌어낼 법한 지혜를 품은 문장들로 인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다만 번역 내내 나를 좀 괴롭히던 것은 초반의 망설임과는 상반되게 거침없이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는 예언자 알무스타파의 자아도취적인 어조, 그리고 이 글이 질문과 답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도 거기서 어떤 토론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번역의 끝에 이르러 나는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그가 한 답변에 대한 반론과 토론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 나는 그것이 예언자에서 아무런 토론도 벌어지지 않았던 진짜 이유라고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곁에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과연 당신이라면 이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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