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문지 푸른 문학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와 학생을 중심에 놓고 써내려간 연작 소설로 문학에 관심이 많은 선재(학생)의 일기를 빌어 다섯 편으로 묶여있다.

1. 구름 그림자
구름에 가려지고 벗어나는 ‘구름 그림자’를 화두로 일상을 소담하게 그려나간다. 일기 형식의 글이 구름을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폼이 여간 흥미롭지 않다. 개인적 감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구름 그림자처럼 세상을 집어삼킬 듯 맹렬히 돌진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저 멀리로 허허롭게 흩어진다.

2.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허생전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교사와 그 조직(전교조)에 대해 얘기한다. 허생전의 사회성이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쉬 와 닿지 않았지만 허생과 홍길동의 이상향을 비교 토론하는 장면에선 무언가 분명한 것이 전해진다. 둘 다 이상을 위해 싸웠지만 홍길동은 그 싸움 속에 있었고 허생은 그 주변에서 맴돌기만 했다는 것...
누가, 어떻게 교육을 바꿔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한다. 어쩌면 교육의 문제를 교육 내부에서 혁신하지 못하고 저 멀리서 뒷짐만지고 해결하려는 ‘공상’을 경계하라는 건 아닐까.

3. 반성문 쓰는 시간
중심에서 비껴서 있는 생활지도의 모습이 씁쓸하게 그려진다.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도 없이 ‘처벌을 위한 처벌’의 규정뿐이다. 교사는 오로지 학생을 처벌하기 위한 존재인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4.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모두 아름답다. 일등이나 꼴등이나 ‘범생이’나, ‘날라리’나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아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학교와 가정은 순위와 규칙들로 가득하다. 자연은 원래 그대로, 그저 자기 위치에 존재할 뿐이지만 우리들만이 이런저런 잡스런 의미를 갖다 붙이며 자르고 갈라버린다.
여기선 ‘비둘기’와 ‘기운의 밤’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말하지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흩어질 뿐이다. 그만큼 모두 아름다울 수 없는, 모두 1등이 될 수 없는 현실의 벽이 높기 때문인가...

5. 섬에서 지낸 여름.
제일 난해하게 느껴진다. 마치 꿈속에 들어앉은 느낌처럼 뿌옇게 다가온다.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우리 학생들의 공허함처럼...

이렇게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교육에 얽힌 문제 속에 갇혀버린 것인지, 여러 모순점들만 열거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린 탓인지 편을 거듭할수록 난해해지는 느낌이다. 어쩌면 공교육에 대해 무의식중에 갖게 된 나의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학생의 시각치고는 지나치게 논리정연하고 수려한 문체가 오히려 사실성을 떨어뜨린다. 자신과 사회 속에서 갈등하는, 조금은 엉성한 글(일기)이 오히려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좀더 엉망(?)인 학생의 문장을 통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날개지에 소개된 ‘최시한’이라는 작가를 계속 훔쳐보게 되었다.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학생의 시각에서 교육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이 아름답게 보인다. 다시 한번 그의 글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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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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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칼의 노래>의 문학적, 대중적 성공 이후 대박 영화의 성급한 속편들처럼 얄팍한 상술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있었기에 읽기를 망설였었다. 하지만 주중에 김훈님의 독서토론회가 부산의 모 서점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고 ‘칼’을 읽을 때의 정갈한 느낌이나 멋진 글에 대한 기대보다는 독서토론회에 대한 궁금증과 참여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로 급히 책을 들었다.

<칼의 노래>가 이순신과 칼의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내면적인 본성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현의 노래>는 우륵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현’이 갖는 외적인 모습에서부터 글이 시작된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뛴다.
열두 줄로 구성된 가야의 현, 가야금. 금! 금? 가야금(金)? 쇠 금? 그럼 ‘현’의 노래이자 ‘쇠’의 노래도 된다는 말 아닌가! 책의 제목과 내용을 구성하는 현이 단순히 가야금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현의 내용 못지않게 쇠와 전쟁의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현의 금(琴)과 쇠의 금(金)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로 뭉쳐지지 못하고 별개의 얘기로 놀아나는 느낌이다. 가야금에 치우쳐져야할 힘이 여러 갈레로 분산되었다고 할까. 두개의 화두가 좀더 밀고 당기면서 하나의 ‘금’으로 합쳐졌다면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것을... 독서토론회에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예술과 폭력(국가나 권력)의 대비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못한 듯 하다.

그리고 의외의 장면들이 몇 개 눈에 띈다.
소리와 관련된 선문답 같은 이야기도 지나치게 난해하지만 ‘오줌 싸는 여자’로 이상하게 묘사된 아라(우륵 제자, 니문의 부인이 된다)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갑자기 튀어나온 비화(우륵의 부인)와 아라의 동성애적인 부분이라든가. 비화의 엽기적인 죽음 역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뭔가 더 깊은 뜻이 있는 진 모르겠지만, 이야기와 별 상관없이 보이는 내용들이 소설의 힘을 떨어뜨린다. 한 서평에서의 ‘김기덕 식의 여성비하’라는 문구가 심상찮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독서토론회에서 김훈님은 인간 자체의 아름다움을 오줌 같은 하찮음이나 허무한 죽음을 통해 더욱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역시 난해하다.)

또한 <현의 노래>를 읽는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칼'에 대한 잔재가 이번 책읽기를 방해한 느낌이다. <칼의 노래>를 얼마 전에 읽어서인지 아니면 내 글 읽기의 이해가 짧아서인지 계속해서 전작과 비교하게 된다.
‘칼’의 현란함에 가려 ‘현’의 깊이와 우아함을 찾기가 힘들고 오히려 그 아류작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순신과 칼에 대한 단순하면서 역동적인 글, <칼의 노래>와 화장기 없는 인간본연의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한 최근 작, <화장>의 어정쩡한 비빔밥처럼 느껴진다. 좀더 시간을 갖고 칼의 그늘에서 완전히 해방된 이후에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디서 나의 심사가 꼬여버렸는지 수려한 용모의 <현의 노래>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 그만큼 기대가 커서 그렇지 않을까.
훈 형님! 관심이 그만큼 많고 더 사랑하기에 ‘딴지’를 건다고 어여삐 봐주십쇼~

끝으로 독서토론회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자면,
“연민, 다른 작가들은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글을 쓰지만, 난 아니죠. 앞으로도 연민 없이 개인적인 내면을 파고들 생각이죠.” 라 말하며 강단 있게 자신의 ‘이즘(ism)’을 밝히는 김훈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이라는 관심대상을 놓고 두세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그 열기, 그 분위기가 좋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나 막연하게 넘어간 내용들이 구체적인 용어와 예문으로 이야기될 때의 그 진지함이 나를 Upgrade 시켰다.


PS:
전작과 같이 “이 책은 다만 소설이다. 사서에 실명이 등장하는 인물이나 장소조차도 이 소설에서는 허구로 읽혀져야 옳다.”는 말이 책 첫머리에 잠시 나온다. 옳은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지라 오히려 이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얄팍한 ‘줄거리 보기’와 '유행의 책! 책! 책!'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읽자.
그리고 소설은 소설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내공’을 제-발 좀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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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데아 - 대안 학교에서 만난 바람의 아이들
최병화 지음 / 예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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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찡해지는 코끝의 감동으로 책을 덮었다.
거침없이 치닫는 아이들과 이들 곁에서 가슴으로 보살피는 선생님. 그리고 교육현실과 그 대안...

합천의 한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에서 수계월간 학생,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리얼드라마로 촬영(iTV)한 내용을 다시 글로 옮겨 논 책으로 작가의 주관적인 설명이라든가 논조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학교 모습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사춘기 남녀의 미묘한 감정에서부터 폭력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폭동, 자해에 이르기까지 한 대안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일관된 시각으로 적고 있다.

기존의 사회에서 버림받고, 상처받은 원경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이미 한 두번씩 '짤려'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로 사회에서 튕겨져 나온 '문제아'.
하지만 외적인 모습과는 달리 마음속 한 구석에 보여지는 그들의 순수함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조금만 더 사회와 가정에서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생님 역시 학생 못지 않은 마음고생으로 자꾸만 밖으로 빠지려는 아이를 바로잡으려 눈물 흘리는 모습이 인상깊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포기해서도 안되고, 포기할 수도 없는 아이들, 그들에게 적대감이나 무관심이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대하는 '어머니' 같은 모습에서 진실된 교사상이 느껴진다.

선생님의 아낌없는 관심과 더불어 학생들을 끝까지 지키고, 인도해 주려는 학교의 모습도 아름답다. '문제아'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추방된 아이들이지만 마음 붙이고 다닐 수 있도록 묵묵히 보듬어주는 학교의 모습이 보기 좋다.
물론 '대안교육'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특정한 학교와 시설에 국한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들의 또다른 시각에서 학교와 교육을 바라보는 모습이 희망적으로 보인다.

교실 이데아...
"됐어. 됐어. 이젠 그런 가르침은 됐어-"
이 노랫말처럼 이제는 변해야 한다. 더 이상 선생 혼자 떠드는 교육은 무의미 할 것이다. 우리들 모두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살아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교육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한마디로 사회와 학교, 교사와 학생이 함께 느끼고 생각해봐야 할 진지하면서 감동적인 책...

"철이 없는지라 졸업을 해도 걱정인 아이들. 나는 아주 많이도 포기했었다. 아주 자주. 그러나 그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그토록 실망시켰던 내 새끼들, 바로 그 바람의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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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다 타조
이외수 지음 / 리즈앤북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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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하지만 이외수는 이렇게 말한다 !
“다 땔 치아라!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를 보라”

백수, 돈, 사랑, 자살, 부모와 같은 여러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대해 조언한다.
당신은 백수다. ‘먹이를 포식한 봄날의 코알라’처럼 빈둥거리는 백수로 살아간다. 정말 죽을 맛이다. 하지만 너무 고민하지 말라. 이러저러하고 요러요러하니 때를 위해 준비하라며 유머러스하면서 제치 넘치는 말빨로 책은 구성된다.

다 좋고 아름다운 말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외수식’ 표현에서 오는 식상함도 없진 않다.
엉망진창, 시궁창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들은 아름답고 순수한, 정신적인 가치를 존중하면서 인생을 살아가야지 않겠냐는 ‘외수주의’가 현란한 문자 속에 은근히 강조된다. 이외수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고, 책이 몇 권씩 출판되면서 여러 방식으로 말을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이 한가지다. 물론 이런 부분이 외수님을 구성하는, 오늘날의 외수님을 있게 만든 ‘이니셜’이지만 자칫 고루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다른 작가(내가 생각하기에)들처럼 자신의 입장을 낮추면서 두루뭉수리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물 흐르듯 생각을 펼쳐나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또한 우리가 살면서 새겨들어야 할 가시 같은 내용도 눈에 들어오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너무 미화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미려한 말로 포장된 글이 과연 지금의 현실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와 닿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날다 타조,
덩치만 컸지 못생긴데다 ‘새’라는 본래의 기능마저 망각해버린 기형적인 동물, 타조.
겉만 번지르르했지 ‘나’라는 존재도 모른 체, 가식적인 치장만 덕지덕지 붙인 나...
날자, 가볍게, 쓸데없는 것을 다 버리고, 바람처럼 가벼운 몸으로 사뿐히 날아보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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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김나미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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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허탈감이 무겁게 짓누르는 요즘이다. 내 어깨에 짊어진 온갖 무게와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에 그 어떤 의욕도 사라졌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해 버리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으로 한숨짓는다. 탐욕이나 성냄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는 제쳐두고라도 나 스스로의 가식적인 허울부터 벗어던지고 싶다. 이제 정말 ‘물같이 바람같이’ 살고 싶다.
그래선지 책 서두부터 도니 도인이니 말하는 부분이 조금은 떨떠름 하지만 한때 나를 몰입하게 했던 그 순수한 열정으로 다시금 나를 몰아세우고 싶었다. 세상이치에 도통한 양 자신감과 오만함에 차 있었던 철없던 기억 속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찾아간다.

긴 한숨으로 한 단락을 읽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가진 것이 너무 많기에 안타까워하고 속상해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불교 관력 서적이나 이런 글들을 읽으면 늘 드는 생각이다. 물론 그 말미에 붙는 ‘하지만...’ 역시 함께 붙어다닌다. 한창 책 속에 빠져들 때면 아집과 욕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다그치고 책망하면서도 현실 속으로 돌아오면 ‘그런건 다 이상적인 얘기일 뿐이야’ 라는 혼잣말로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버린다.

다시 책을 펼치고 그 이상에 대한 답을 살핀다. 도는 물론 삶, 욕망, 좌절. 그리고 무위, 자연, 업 등의 이야기들이 저자가 찾은 다섯 명의 인물을 통해 전해진다.
자신을 숨기고 세상을 따뜻하게 보시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단출하게 살아가는가 하면, 요가 수행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기도 한다. 마치 한 마리 물고기처럼 유유히 헤엄치며 자신과 티베트를 여행하기도 하고 동네 노인들을 돌보면서 스스로를 다스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무를 가꾸면서 평온과 자연스러움을 채득하기도 한다.

모두가 지난날의 사연과 아픔은 다를 테지만 지금의 모습들은 상당히 비슷하다. 촌락에 살건, 숲이나 강에 살건 세상과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는 점이나 현실에 만족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물 흐르듯 사는 모습이나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던 단출한 것들이다.
그러나 ‘단출함’을 체득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가족과 건강, 사회와 직장, 돈과 명예 등 무시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누구나가 동감하지만 섣부르게 행할 수 없다. 결국 자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현재의 정체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그 뒤얽힌 관계를 풀어줄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하지만 그 ‘용기’는 우리사회의 중심에선 실천할 수 없는 것일까. 진정한 도인(용감한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수련(?)하면서 자신은 물론 여러 사람에게 산림욕장 같은 휴식처를 제공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회속에서 도인의 길을 택하고 싶다.
아직은 조그만 물건에 연연하고, 사소한 일에 삐치는 ‘쫀팽이’지만, 이 모든게 나를 발견하고 깨우쳐가는 과정이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용기있게 맞서고 싶다. 남이 손가락질 한데도 나 스스로를 신뢰하면서 살고싶다. 그래서 물같이 바람같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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