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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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전에 사다가 책장에 꽂아둔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노랫소리를 따라 남도 뱃길을 흘러간다.
‘공 격 하 라 ~ 물 러 서 지 마 라~!’라 외치던 한 사극의 장군상 때문인지 공격을 독려하는 이순신 장군의 칼짓이 눈앞에 그려진다.

짧고 간결한 문장은 장군의 심리적 상황뿐만 아니라 명랑과 노량에서의 전투를 박진감 있게 표현한다.
둥.둥.둥. 출진 북소리가 울리면 책장위로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그 위로 대장선과 거북선이 적을 향해 돌진한다. 이순신의 마음이 되어, 그의 칼이 되어 왜선을 무너뜨린다. 시퍼런 칼날의 군더더기 없는 순수함으로, 단칼에 쓸어버리는 '일필휘지'의 간결함으로 이순신을 노래한다.

또한 여러 기록(난중일기, 선조실록, 장계 등)을 바탕으로 백의종군할 때부터 마지막 노량해전까지의 이순신을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어떻게 성웅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죽어야 할 사지(死地)를 찾아가는 무장의 모습으로, ‘적군의 적군’으로 전쟁에 임하는 군인의 모습으로 담담히 그려진다.
위인전에서나 볼 수 있는 신화화 된 인물이 아닌 고뇌하고 갈등하는 한 인간으로서 마주게 된다. 군대를 통솔하는 지엄한 사령관은 물론 한 가정을 책임지는 아버지로, 전쟁 속에 휘둘리는 중년 남성으로 그를 만난다.

검푸른 남해바다와 울렁이는 대장선은 아니지만, 번잡한 도심의 비좁은 지하철에서 <칼의 노래>를 들었다. 전쟁의 혼란함과는 대조되는 단순하고 절제된 표현들에 몰입되어 나만의 배에 오른다. 졸고 있는 앞사람은 상상도 못할 필살의 해전이 지하철 귀퉁이에서 펼쳐진다.
한 여인을 몸에 품고 적군을 생각한다. 그리고 군율을 세우기 위해 부하의 목을 배고, 출진을 명한다. 넘실거리는 바다에서 학익진으로 적선을 몰아붙인다. 날아드는 적탄을 피하며 칼은 '피'를 노래한다.
순간, 목적지에 도착한 ‘나’를 발견한다. 칼에 묻은 피를 뿌려 씻으며 지하철에서 내린다. 대장선에서 내린다.

남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새벽, 인근 산에 올라 해우가 낀 남도 바다를 굽어보고 싶다. 그래서 칼을 잡고 굽어봤을 장군의 사지을 둘러보고 싶다.
나의 사지는 어디인가...

PS : 이순신 할아버지! 거북선으로 ‘Sea Of Japan'의 ‘다께시마’부터 몰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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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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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자! <순정>이란 이름으로 가장한 성석제님의 ‘구라’속으로...
이 새롭고도 신나는, 엉뚱한 여행의 주인공으로는 좀도둑질에 만족하지 못한 체 한 여심(女心)을 도둑질하려는 이치도가 등장한다. 그는 한때 수많은 남정네를 설레게 했던 춘매의 아들로 우연히 왕학을 대부로 맞아 도둑질의 근본이념을 익히지만, 그의 딸 두련에게 그만 ‘뿅!’ 가 버리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한마디로 한 도둑놈(이치도)를 중심으로 한 각 남녀들의 사랑법, 지고지순(?)한 순정을 성석제님의 기똥찬 말 빨로 얘기하고 있다.

마치 혓바닥으로 요리조리 굴려먹는 사탕의 달콤한 느낌이랄까. 입안에 달달한 침이 고이면서 이빨에 부딪치는 사탕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린다. 하지만 그 맛이 너무 강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입안이 텁텁해지고, 혀가 둔감해지는 느낌이다.
석제님의 단편에서 느낀 강열하고 화려한 글맛은 장편이라는 긴 시간 속에선 그 빛이 발산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새로우면서 발칙하기까지 한 글 형이지만 그 사용빈도가 높아지면서 정형화되는 느낌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다음 대사기 머리에 떠오르는 그런 코미디프로처럼...

또한 너무 잔재미에 치우쳐서인지 극 전개부분은 다소 미약하게 느껴진다. 성석제님의 화려한 글 빨에 가려 정작 이치도라는 인물의 설정이나 내면의 변화 과정이 잘 드러내지 못한 것 같고 모범소녀 왕두련이 갑자기 날라리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자신을 혹사하면서까지 타인을 보살피는 천사(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가 되어있는 부분 역시 이상하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이자 이치도의 스승(스승이란 부분도 쪼매 애매하다)인 왕학은 난데없이 일본에서 우리문화재를 도둑질해 와서는 뜬금없이 박물관에 기증한다.

마지막 부분 역시 ‘문득 눈을 뜨니 모든 게 간밤의 꿈이었다.’ 식으로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이치도와 그 주변사람의 거짓말 같은 삶이나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태자관의 허상을 마지막까지 끌고 감으로써 ‘순정’이라는 부분을 더 강조하려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의 무게중심이 말미에 엉뚱한 곳으로 옮겨가 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마약중독의 금단현상과 같이 한번 길들여진 ‘성석제표’ 맛은 쉬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언제고 다시 한번 성석제님의 소설을 집어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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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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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문구님의 자전적 연작 소설로 여덟 편의 독립된 이야기가 관촌부락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전개된다. 연작의 단편 영화들이 극장 스크린에 비춰지듯 눈앞에서 흘러간다. 순간 ‘빗줄기’ 가득한 흑백영화 속의 관촌을 거닌다.

작가는 자신과 이웃, 관촌을 회상한다. 변덕스럽지만 점점 성장해가는 어린 화자의 눈매가 다정하면서 예리하게 그려진다. 순박한 이웃들이지만, 때로는 고집 세고, 무지하고, 어린(심지어 어린 화자의 눈에도) 관촌사람들...

유교적이고 고지식한 할아버지가 지켜내고자 했던(일락서산), 전쟁으로 황패한 몸과 마음이 잠시 쉬어 갈만한(화무십일), 억척스러우면서도 따뜻이 맞아주는 누나 같은(행운유수), 여기저기서 손가락질 당할망정 믿음직하고 든든한 기둥 같은(녹수청산), 다 떠나고 점점 퇴색될망정 처음의 풋풋함을 그대로 지키나가는(공산토월), 인정도 못 받고 굳은 일은 도맡아 하지만 없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은(관산추정), 순박한 나머지 산업화 속에 어수룩하게 당하고만 살아가는(여유주서), 새로운 환경을 찾아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월곡후야) 농촌, 농촌사람들의 이야기다.

각 단편(일락서산,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유주서, 월곡후야)을 담당하는 주연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 한파도 다 녹여버린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속에 따스함이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다. 언젠가 친구의 할머니가 끓여준 청국장, 나무화덕에 숯을 넣어 그 위에 솥을 올리고 먹던 그 구수한 맛이 입가에 맴도는 느낌이다.

내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1970년대 중반에 발표되었지만 30여년의 거리감은 들지 않는다. 케케묵은 옛날애기처럼 들릴 것을 이문구님이 구수하고 다정하게 풀어놓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반들반들 손길을 타는 목가구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그 향기를 더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70, 80년대에 한창 밀어붙였던 ‘공업화’와 ‘새마을’의 열병 역시 관촌수필에 담겨있다. 농촌의 젊은이들은 돈을 찾아 도시로 떠나버리고 할아버지들만 남는다. 허울뿐인 농사는 최소한의 생계수단으로 전락하고, 유입되는 도시의 구정물로 농심 역시 흐려진다. 그 허전함을 감추려는 듯 지붕들만 빨강, 파랑으로 번쩍이게 뜯어고친다. 우리들의 고향은 농지를 가르고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처럼 점점 삭막해져 간다. 그 과정이 이문구님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 녹아있어 씁쓸한 웃음을 띠게 만든다.

책을 덮고 뒤표지의 ‘헐크’같이 산발한 머리로 나무를 다듬는 이문구님의 모습을 본다. 관촌을 여행할 때 느꼈던 구수함과 털털함,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조금 어설퍼 뵈지만 따스함이 있고, 부족한 듯하지만 넉넉함이 있는 질그릇 같은 모습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그 무엇을 발견한다.

관촌수필을 통해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와 닿는 까칠까칠한 느낌과는 달리 봄 햇살 같은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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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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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얘, 만수야~ 만그이 읍냐(없냐)?’ 코믹하면서 빠르게 전개되는 만근이의 일대기에서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한 드라마의 대사가 오버랩된다. 그만큼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황만근’은 다가온다. 반편이라 놀림을 당하기 일쑤인 우리들의 만근이는 아무런 불평 없이 엷은 미소로 답하며 자신의 맡은 일만을 묵묵히 해 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농사꾼은 빚을 지마 안된다 카이.” 농사꾼은 어때야하고, 농사는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를 말하면서 우리의 만근이는 짜라투스트라가 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설파한다. 사람은 어때야하고,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쾌활냇가에 모인 계원들의 미묘한 상황, 마치 몸은 한곳에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고있는 듯 하다. 그때 나타난 깡패들! 놀이동산에 야유회라도 온 듯하다. 따뜻한 햇볕 속에 털컥거리며 오르는 롤러코스터,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무게중심을 천천히 아래로 내려 꽂는다. 몸속의 심장이 허공에 붕- 떠 있다 기차가 급회전을 하는 순간 온몸을 쿵쿵거리며 돌아다닌다. 이런 즐거운 카타르시스가 굽이굽이 넘쳐난다. 바람을 가른 기차는 ‘쾌활냇가’를 지나 다음 소설로 향한다.

- 천하제일 남가이
‘천하제일 남가이’에서 성석제의 ‘구라’까는 재미에 푹 빠졌다. 파트라크의 <향수>에서처럼 구리한 냄새와 ‘Feel’ 하나로 모든 사람들을 설레게 했던 남가이. 허황된 듯하지만 유치하지 않다. 소설의 깊이라든가 의미를 따지기에 앞서 책장에서 전해지는 즐거움에 환장한다. 마치 외수 형님의 초기작들을 보는 듯하다. 점점 성석제의 구라빨이 좋아진다.

- and...
죽인다. 재미난 단편극이라도 본 듯하다. 빠르고, 경쾌하고, 발랄하다. 그리고 알듯말듯한 결말만 던져놓고 사라진다. 마치 총잡이가 지나간 황량한 사막처럼 내 머릿속엔 온통 뿌연 먼지만 날린다. 하지만 그 먼지가 가라앉기가 무섭게 다시 그를 쫒아간다. 성석제를 쫒아간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성석제’라는 구렁텅이에 기분 좋게 빨려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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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인 것 사계절 아동문고 48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고바야시 요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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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거나 자격증을 따서, 혹은 청소 잘해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예뻐서(?) 우리 15반 아이들(고2)에게 책을 한권씩 선물하고 있다. 하지만, 서른한 명의 학생들에게 중복되지 않게 책을 주려다 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너무 어렵진 않을까, 지나치게 두꺼운 건 아닐까, 내용은 재밌겠지? 그런데 이건 누구한테 선물한담?

그러던 중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과 마주쳤다. 펜으로 그린 듯한 삽화가 투박하지만 옛 동화책처럼 정겹게 다가왔고 ‘아동문고’라 인쇄된 표제를 통해 밝으면서, 쉬 읽혀지는 내용이라 짐작되었다. 거기다 서평 역시 “부모와 아이의 치열한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어 (일본에서)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라 평하여, 80년대 도덕책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씌어진 책으로 보였다. 이렇게 간택된 선물용 책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읽게 되었다.

내용은 학교와 집(엄마)에서 문제아로 찍혀버린 히데카즈가 우연히 가출하면서 목격하게 된 뺑소니 사건과 다케다 신겐의 보물이야기, 그리고 여자친구 나츠요에 얽힌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룬다. 한 꼬마의 이야기가 한 가정,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는 사회의 문제로 확대되면서, 무너지는 가정과 그 파편들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씩 구체화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벌려놓은 사건을 비해서 너무 엉성하게 결말인 듯 하다. 나츠요의 ‘황당한’ 가족사가 ‘갑자기’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따라다니는 떨떠름한 느낌 역시 지울 수 없다. 주인공 히데카즈를 자신의 감독 하에 있어야 될 소유물쯤으로 대하는 엄마, 이에 거부감을 갖고 가출한 아들을 더욱 통제하고 ‘갈구기’만 한다. 마치 한번 ‘찍’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소유할 수 없다면 부셔버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도착증 환자처럼 그려진다. 그래서 엄마로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질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망가뜨려 버린다.

우리나라에 출판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인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아동문고’가 아니었던가... 신선(?)하고 파격적인 ‘사회적 이슈’를 뛰어넘어 어린이들이나 청소년이 보기에는 너무 과장되고, 극단적인 내용들로 채워진 듯 하다.

결국, 우리 반 아이에게 이 책을 선물하려던 계획은 보류하고 다른 책을 골랐다. 책의 내용이 조금 엽기(?)적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아직은. 그래도 아직은 순수한 우리의 아이(청소년)들에게 아름답고 따뜻한 것부터 먼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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