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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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눈으로 글을 읽고, 뇌로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리고 가슴을 음미한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얼마 전 <뇌> 홍보차 방한한 모습을 부산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지적이고 딱딱할 것만 같은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포근한 느낌이었다. 세련된 외모는 물론, 통역자, 청중들까지 휘어잡는 부드러운 말투와 적당한 유머는 언어의 벽을 넘어 <뇌>라는 작은 '책감대'를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만남이었지만 그 여운으로 하루종일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복상사'라는 행복한(?) 죽음을 맞은 핀처박사와 '뇌'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두 기자(뤼크레스, 이지도르)의 이야기로 마치 '뇌'와 '동기'를 중심축으로 좌우를 오르내리는 시소놀이처럼 박사와 기자, 과거와 현재가 한 단락씩 교차되어 진행된다.
의학소설이라기 보다는 '이성과 감성', '자극과 반응'등 의식과 무의식의 기원을 찾아가는 심리소설, 철학소설의 형식이 강한 듯 하다. 우리 내부, 머리(뇌)와 가슴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파편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는 책이라고나 할까...

그 복합적인 파편의 중심에는 언제나 '동기(즐거움, 쾌락에 대한 욕구)'가 있다.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책을 읽든, 산을 오르든, 그림을 그리든, 종교에 심취하든, 게임을 즐기든, 섹스를 즐기든 '삶의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한 동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책에선 그 '동기'를 직접적으로 충족시켜줄, '뇌'속의 진원지가 밝혀진다. 더 이상 자아를 찾기 위해 일을 하거나 땀을 흘리지 않아도 인생의 목적, 인생의 즐거움(슬픔), 인생의 쾌락과 환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치 철부지 아이가 약간의 조작(?)으로 백발 노인의 미소깊은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양손을 들어 내 머리를 만져본다. 까칠까칠한 머리털 밑으로 느껴지는 둥그스름한 살과 뼈, 그리고... '뇌'. 그 표면을 이루는 수많은 골짜기와 그 속으로 얽히고 섥힌 신경세포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전기적 자극을 통해 수십만, 아니 수백만 개의 뉴런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생각의 흐름'을 느껴본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복합적인 인지는 어떻게 뇌 속에 존재할 수 있으며, 생각과 말, 행동의 근원이 되는 '동기'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물질적(뇌)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이 어떻게 하나로 융합되는지 놀라움과 신비함을 넘어 경외감까지 들게 된다. 마치 우주의 근원과 신비를 대면하는 듯하다.

'내 머리통은 우주다. 나는 우주를 안고, 우주를 누비며 살아간다 ! ?'

잘 넘어가면서도, 한편으론 심오한 소설... 하지만 <개미>와 같은 '쫀득'한 재미는 덜하다. 전신마비의 '식물인간'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핀처박사가 '따뜻한 의술인'의 모습에서 갑자기 프랑켄쉬타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이 조금은 의아하다. 아무리 의학적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강하다지만, 자신의 뇌(팔다리가 아닌, 인간의 물리적 존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를 실험도구로 사용하는 설정은 약간의 무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아테나'라는 인간의 생각을 돕는 '생각하는 프로그램'. 마르탱(리스환자)의 머리(뇌)에 이식한 전극을 통해 컴퓨터를 조작, 이 프로그램과 대화함으로 자신과 아테나의 사고를 넓힌다는 설정은 이해가 가지만, 초반부의 뭐든지 척척 알아서 처리하고, 스스로 개량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설정과는 달리 후반부에서는 이렇다할 역할도 없이 너무 허무하게(?) 'Shot Down'되는 상황은 조금 조급한 설정처럼 보여진다.

<뇌>를 통해 나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동기'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한 '동기'를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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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명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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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듯 보이는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 그것만큼 진솔한 얘기가 또 있을까. 화려한 겉모습은 아닐지라도, 미흡한 부분은 많을지라도 그 공백을 자기 나름의 생각과 웃음으로 채워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책으로 간단한 저자소개와 몇 편의 서평들만을 보고 바로 '구매하기' 버튼을 클릭 했었다. 약간은 충동성도 있었지만, 이런 '돌발상황'에서 오는 뜻하지 않은 즐거움(간혹 슬픔이 되기도 하지만...)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내가 마치 뛰어난 문학적 식견의 소유자라도 된 듯한 뿌듯하고도 즐거운 착각(!)속으로 빠져든다.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게 만드는 맛깔스러운 젓갈의 느낌처럼, 한국에서의 어린시절과 군대생활, 미국에서의 어려웠던 생활과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는 과정, 오늘날의 자신과 이웃, 사회의 이야기가 진시륜 님만의 '짭짤한' 언어로 적혀있다.

한국에서 젊은 날은 보냈지만 그후 미국과 타국에서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접해서일까. 한국적 사고와 어우러진, 형식이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표현들이 눈에 뛴다. 옆집 아저씨의 '취중진담'처럼 소탈하고, 무불도통한 선사의 '일갈'처럼 번쩍이고, 오랜 명상가의 '잠언'처럼 진지하게 전해진다.

재밌게 읽혀지는 다양하면서 소박한 내용들, 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깊이와 날카로움은 어느 '유명 철학자' 못지 않다.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 흔히 접하는 평범한 사실, 문득 떠오르는 엉뚱한 생각들을 단순한 일상사나 객기로 넘겨버리지 않고 되짚어 보고, 느껴본다. 다시 말해 자신만의 '철학'으로 승화시킨다.

제자들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하는 그리스인이나, 뿔테 안경을 낀 어수룩해 뵈는 천재들만이 철학을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바로 이것 자체가 철학이 아니던가. 인생을 참으로 즐기려는 자세, 철학이 멋지게 다가온다.

정말 유쾌하게도 자-알 읽었다.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작은 용기들이 일상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가꿔주는 듯하다. 부러움 속에서 지켜본 한 '촌놈'의 희극인생...

책 말미에 소개된 서머셋 모옴의 말이 기억난다. '행복의 관건은 골목길에 순경이 서 있나 없나를 살펴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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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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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입한 뒤 읽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오히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즐겁게 다가온다. 장롱 뒤에 숨어있을 꿀단지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입 속에 침이 고이듯 '이외수'라는 이름만으로도 진한 묵향을 느끼게 된다.

신선하고 감동적인 <꿈꾸는 식물>에서의 첫만남. 그리고 <들개>, <칼>, <사부님 싸부님>, <벽오금학도>로 계속되는 치열함과 즐거움, <산목>에서의 아쉬움과 <외뿔>에서의 실망감 등 20대를 함께 했었던 외수 형님의 소설을 오랜만에 마주한다. 기대 반, 설레임 반으로 책을 펼치지만, 손은 자꾸만 책표지를 쓰다듬게 된다.

괴물,
서로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 스스로를 인식하며 결국에는 독립된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나. '나'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모여 '우리'라는 사회를 만들어가듯, 사회라는 말속에는 여러 가지 다양성과 변화성, 그리고 모순과 혼동을 내포하고 있으리라.

혼란스러운 나, 우리,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이렇다라고 말하기엔 저런 것 같고, 저런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가변적인 모습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음침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존재가 우리들 자신과 우리가 구성하는 사회가 아닐까? 마치 괴물처럼...

전생에 억울한 누명으로 자신을 죽게 했던 원수를 찾아 복수하는, 아니 세상에 대한 원한을 무차별적인 살인으로 보복하는 전진철. 그리고 연쇄살인이라는 중심축을 따라 전개되는 여러 이야기들은 마치 단편영화 여러 편을 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각각의 줄거리, 독립된 영화들의 중요장면을 부분부분 잘라 하나의 영화로 엮어놓은 듯한 놀라운 편집력이 돋보이다. 초반의 산만한 듯한 이야기가 종국에 가서 점점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외수님이 자랑삼아 말씀하신 '조각보'식 구성, 최초로 시도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여러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 볼 수 있었던 이 '짜집기' 편집은 글을 더욱 긴박하게 표현하는 느낌이다. 일부 독자들은 난해하게, 혹은 복잡하게 생각되는 부분이지만 오히려 글의 성격으로 봐선 적절한 형식인 듯 보인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다각적인 면들, 아니 우리 인간이 갖는 계층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심리가 단편적인 조각구성으로 빛을 발하는 느낌이랄까...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암울하다. 아니 암울하다 못해 비참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더욱더 철저하게 절망적으로 몰아간다. 그러다 마지막 절정에 가서야 약간의 틈 속으로 한 가닥 빛줄기가 비춘다. 엉망진창으로 썩어문드러진 고름덩어리 같은 현실, 오래 전에 희망과 꿈은 시궁창에 빠져버렸고, 진실 역시 실종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뒤뜰 담벼락에 핀 들꽃을 보며 새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외수의 소설을 약간은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진행은 약간은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의 유려한 문장과 어우러진 독특한 이야기 패턴은 욕구불만에 허덕이는 현대인에게는 하나의 이상향, 탈출구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잠시나마 외수 형님이 만들어놓은 안식처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하늘은 언제나처럼 잿빛이고, 도시는 온통 스모그로 뒤덮여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타인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이 종횡무진 설치며 뛰어다닌다. 이젠 쉬고싶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푸른 산내음이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땅을 살피는 노동과 그 사이 휴식의 짬을 즐기며 살고싶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의 많은 제약은 나의 발을 잡는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손놀림과 낱장의 문자를 들여다볼 수 있는 두 눈이 있기에 마음속에서나마 그 곳을 찾아간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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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도종환 지음 / 사계절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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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종환의 디스크 쇼'가 아닌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를 듣는다. '이종환'이라는 DJ와 동명이라는 것 때문인지 도종환님의 육성으로 직접 이야기를 듣고있는 기분이다. 선생님에다가 시인, KBS 바른언어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처럼 책 속의 고운 말들이 아마도 이런 상상을 유발한 건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미사어구나 수식어 없이 단아하게 적혀진 글들은 곱게 늙으신(세상을 아름답게 살아오셨다는 느낌이 얼굴 속에 팍! 팍 묻어나는 그런) 어르신을 뵙는 듯 마음이 밝아지고 정화되는 느낌이다.

책은 도종환님이 집에서,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것들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직접 현장을 발로 뛰시는 분인지라 어느 말하나 쉬 놓칠 수 없다. 때로는 한숨 속에서, 때로는 미소 속에서 책을 읽으며 우리들의 교육과 선생님, 학생을 만난다. 우리 아버지 시대에 비해 우리가 받은 교육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상당히 발전했으며 오늘날의 교육 역시 민주적이고 학생중심으로 많이 발전해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와 문화(특히 청소년 문화)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부족한 부분에서 오는 오해와 모순을 일상생활을 통해 하나하나 집어나간다. 그리곤 그 틈을 메우기 위한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역할까지 조심스레 얘기하고 있다.어쩌면 이 책에선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의 괴리를 한 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엮어나가자 노력하는데 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책 내용 중에서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을 향해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일, 하지만 다 올려놓았다 싶으면 또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곤 하는 바위 이야기다.

도종환님은 말한다. '교육은 어쩌면 매일 그런 일을 되풀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지만 거기서 다시 일어서서 허무와 절망과 실패로부터 매일 다시 시작하는 일, 그게 내가 매달려야 할 교육이라 생각한다.'

나태한 나, 우유부단한 '문샘'에게 일침처럼 다가온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쉬 바꿔나가지 못한다. 이런저런 핑계거리로 현실의 교과서안에서만 안주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까지 든다. 점점 작아지고 옹색해지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아래로 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돌은 아이들의 돌이 아니라 선생님, 아니 나 자신의 열정인지도 모르겠다. 언덕위로 올려놓으려 하지만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바위...

끝없이 이어지는 희열과 추락의 반복일지라도 오늘의 주어진 무게만큼 밀어올리려 노력하고 싶다. 내일 다시 굴려 떨어진다 하더라도 오늘의 몫을 채우고 싶다. 아이들을 훌륭한 인격형성을 위해서라든가 국가나 민족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말은 삼가더라도 자신과의 줄다리기에 열심히 임하고 싶다.

오늘도 언덕 위를 향해 열심히 바위를 밀고 있을 도종환 선생님을 생각한다. 나 또한 오늘 실망하고, 내일 좌절하더라도 다시, 다시 도전하리라 다짐한다.

PS: 전혀 초면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글, 특히 수필이나 산문의 경우 마치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 진면목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도종환 선생님, 수필 형식의 잔잔한 일상이지만 그 평범함 속에 들어있는 비수는 예리하고 따끔하기만 하다. 보면 볼수록 도종환님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인 듯 하다. 그래서 글을 사랑한다. 수필과 산문에서 묻어 나오는 작가의 이미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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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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쑈킹하군... 한편의 유태인(전쟁)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잔잔하면서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폴리쳐상'이 전혀 아깝지 않은 느낌의 만화. 만화 같으면서 만화 같지 않은 만화... 저자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작은 전쟁사로 독일의 침공과 함께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수용소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전쟁의 끝과 함께 잃어버렸던 아내를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전쟁'과 '인간'이라는 무거운 문제를 다루면서도 만화만이 가지는 장면들의 연상력과 동물들의 의인화로 어렵지 않으면서도 직설적으로 잘 표현했다. 유태인을 쥐, 나치를 고양이라는 동물로 빌어 표현했는데 단순히 전래동화 식의 '토끼와 호랑이'라는 구도로만 볼 수는 없다. 못생겼지만 어둡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쥐와 약싹빠르게 그들을 쫓아다니는 고양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본다면 더없는 흥미른 제공하리라 본다.

거기에 보통의 편견을 가진 만화와는 다른 진지한 그림들... 단순히 내용을 설명하는 부수적인 산물에서 벗어난 그림들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전하기에 충분하리 만치 충실하게 그려졌다. 책 뒤의 부록에서도 나왔었지만 13년간의 작업이 느껴질만큼의 노력이 보인다. 구도를 만들고, 모델링을 하고, 스케치를 하고, 사진을 찍고... 한컷씩 한컷씩...

만화가 아닌 만화책...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매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실험적이고 진지한 만화가 많이 나와서 천편일률적인 형식의 만화와 만화에 대한 일반적 시각에 새로운 바람이 일었으면 한다. 투박하면서 섬세하고... 거기에 무척이나 사실적인 '쥐' 책으로 보는 또다른 '아름다운 인생'이 아닌가 싶다. 독일의 유태인 정책의 무자비함과 그 속에서 생명을 존속시키기 위해 싸우는 유태인. 그리고 전쟁 속에서의 사랑과 꿈... 우리 일제침략기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아트 슈피겔만... '쥐' 멋진 책이다. 쥐라는 동물이 예뻐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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