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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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에 연애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한 다큐멘터리를 봤었다. 호감이 가는 이성에게 접근해 데이트를 하지만 결국 그 많던 데이트 상대 중에 단 한 명과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한 다큐였다. 연애의 과정이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단지 더 좋은 배우자를 얻기 위한, 그래서 좀 더 나은 후세를 얻기 위한 생물학적인 본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우리도 동물이라는, 섹스를 통해 자손을 만들어 종족을 번식해야 한다는, 다소 충격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행복의 기원> 역시 우리가 느끼는 행복에 대해 에둘러 말하지 않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확~ 까발려 놓았다.  자, 그럼 책에서 말한 행복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자.


 "인간은 동물이다. 행복에 대해 고민도 해보는 똘똘한 면은 있으나,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다. 생존과 짝짓기. 인간은 좀 더 세련되고 복잡하게, 때로는 대의명분을 만들어 자신도 모르게 그 목표들을 이룰 뿐이다." (p97)


  인간도 동물이기에 자신의 생존과 종족의 번식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몇 만 년 동안 진화되어 내려온 우리의 DNA에는 이런 내용이 강력하게 뿌리내려 있다. 특히 생존과 번식에 도움 되는 대상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기쁨과 쾌감과 같은 행복감을 통해 즐겨 찾게 되고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의 행동은 자신의 생존과 종족의 번식에 도움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하기 때문에 행복이 필요하다 점을 강조한다. 행복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이여! 사람을 동물이라 말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을 짝짓기라고까지 말한다.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보자면 더없이 불경스러운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행복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간 이전의 생물학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오히려 이런 도전적인 자세 덕분에 행복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냉철한 접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시중에 소개되고 판매되는 여느 '행복 지침서'들과는 많이 구별된다. 무엇을 통해, 혹은 나를 변화시켜 행복을 얻어야 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뇌가 느끼는 행복한 감정의 근원을 찾아봄으로써 외적인 모습으로 행복을 예단하거나 주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또한 행복에 대한 우리의 편견도 깨닫게 해준다. 행복한 감정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는 없는지, 슬픔이나 좌절 같은 불행은 모두 나쁜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준다. 

  만일 행복이 지속되면서 더 이상의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면 인간은 동굴 속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처럼 번성하지 않았으리라.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행복이라는 미끼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둔감지게 마련이다. 그래야 행복은 미끼로서 효용성을 갖고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니 말이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행복에  대한 가치 못지않게 우리 삶을 제어하고 경고한다는 의미에서 가치 있어 보인다. 불행을 알기에 더 달콤하게 기다려지게 되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행복의 기원>이라는 제목에서 '행복'을 좌절이나 슬픔과 같은 '불행'으로 적어도 될 것 같다. 어쩌면 제목에 적힌 '기원'이라는 단어 속에는 인생의 쓴맛까지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포용하고 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하게 방법을 말하면서 외향성을 중요한 조건으로 꼽기도 했다. 생존의 수단 중에 가장 큰 역할을 차지했던 부분이 동료들이기 때문에 이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외향성이라는 유전 요인에 따라 개인 간에 차이가 난다고 했다. 

  행복을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범위만 놓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람과의 관계가 우리 삶에서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니 놀라웠다. 최근 들어 강조되고 있는 사회성지능(SQ)과도 관련이 깊어 보인다. 결국 친구들과 잘 노는 것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자 최고의 생존 무기, 짝짓기 전략이 되는 것이다. ^^


 사람동물들이여! 우리는 인류의 번영과 국가의 발전을 말하기 앞서 스스로를 지켜내고 번식해야 하는 '동물'인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거창한 실천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간 밑바닥에 깔린 생리적 욕구를 인정하고 깨닫는 데서부터 숨겨진 행복을 찾는 작업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사람과 즐겁게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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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숲 - 긴팔원숭이 박사의 밀림 모험기
김산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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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는 '원북원부산'이라고해서 매년 한 권의 책을 정해 독서를 권장하고 있다. 학교에 있다 보니 독서나 글쓰기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선정도서를 무료로 나눠주거나 저자를 만나볼 수 있는 등 다양한 부록도 있기에 늘 관심 있게 봐 온 운동이다.

  올해는 <비숲>이라는 다소 아리송한 제목의 책이 선정되었는데 마침 부산시청에 원북원 도서 선포식을 한다기에 책 내용이나 저자도 궁금한데다 공짜 책이라도 한 권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참가했었다. 간단한 기념식이 끝나고 저자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는데, 멀리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면서 쓴 모험기라는 소개를 통해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모습의 노교수를 연상했는데 준수한 외모에 상당히 젊고 앳된 모습이라 많이 놀랐다.

  특히 초청강연 막바지의 끝인사가 압권이었다. 원숭이의 인사법으로 마무리하겠다며 "ㅇ와, ㅇ와, ㅇ와, 우와, 우~와, 우~~와"라고 원숭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가!  난데없는 괴성에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단순한 인사말로 여기고 지나치기에는 저자의 절절한 목소리와 몸짓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장면 속에 김산하 박사의 원숭이에 애정과 사랑을 고스란히 와 닿았다. 아프리카를 향해 박사가 동경해온 꿈과 원숭이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희망을 애타게 찾는 절규처럼 들렸다. 

  책은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원숭이 무리를 구분하고 이름을 붙여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원숭이의 눈에 사람의 존재가 익숙해져 더 이상 도망 다니거나 피해 다니지 않을 때까지... 그 길고 지루한 적응기간이 끝나면 무리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생활과 습성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렇다고 원숭이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오지에서 느꼈던 일상의 모습을 사랑, 손님, 가족, 도시, 친구, 관계, 기억 등 스물 개의 장으로 나눠 소소하게 전한다. 울창한 밀림 속을 헤매다가도 부모님과 함께 떠난 옛 기억을 떠올렸다. 동물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사라져가는 자연을 아쉬워했다. 어쩌면 홀로 오두막을 짓고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했던 소로우의 삶을 보는 것 같았다.

  또한 책 사이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밀림과 원숭이, 그리고 이를 관찰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박한듯하면서 아기자기하게, 정성스럽게 그려놓았다. 무직위로 찍어 바로 선별해 낼 수 있는 사진보다는 긴 호흡과 오랜 관찰이 있어야만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야말로 최고의 관찰도구가 아닐까 싶다. 그는 그림을 통해 긴팔원숭이와 자연을 더 잘 살폈음에 틀림없으리라.


 
긴 팔을 늘어뜨리며 나무 위에서 쉬고 있는 원숭이를 생각하자니 내 삶이 너무 갑갑하게 느껴진다. 평일에는 말할 것도 없고 주말이라도 그리 맘 편히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섯 시에 일어나 늘어나는 살을 줄여보려고 새벽 조깅을 했고 간단히 아침을 때운 후에는 세 아이와 함께 배드민턴을 쳤다. 운동에는 별 소질이 없는 아빠를 닮아서인지 몸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애비 노릇이랄까. 오후에는 온가족을 차에 태워 공공도서관으로 직행, 김밥을 먹고 아이들의 책을 한 아름 빌려왔다. 그리고 일요일마다 진행되는 과학교실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기 이해 급히 인근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한 시간 정도 쉰 다음 아이들은 본가에 내려놓고 집사람과 함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봤다. 수백 대 일을 능가하지만 로또보다는 확률이 훨씬 높은 청약을 기대하면서... 저녁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의 과제물과 일기쓰기를 봐줬다. 피곤과 짜증이 묻어있는 아이들을 달래가며 그날의 공부를 마무리시키고 여기 책상 위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비숲>을 남긴다.


  나의 주말은 이리도 빡빡한데 김산하 박사가 찾아다닌 긴팔원숭이들의 삶은 지극해 평온해 보였다. 물론 천적이 나타났을 때나 다른 무리와의 싸움, 짝짓기와 같이 급박하고 격렬한 순간도 있었지만 긴 팔로 나무 사이를 유유히 가르며 먹고 싶은 나무 열매를 따먹는다거나 나뭇가지에 쪼롬이 앉아 서로의 털을 손질하며 한가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은 마냥 부럽기만 했다. 질퍽한 지면에서 벗어나 하늘과 맞닿은 나무 끝을 타고 넘는 모습만으로도 일상의 반복을 벗어난 자유의 화신처럼 부럽기만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의 긴 팔 못지않은 자유를 나도 누리고 있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땀 흘릴며 운동할 수 있고, 아이들과의 놀이를 통해 때 묻지 않은 웃음을 즐겼다. 시원한 도서관에 앉아 책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모습도 구경하고, 잠깐의 여유시간에 즐기는 쪽잠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가족이 모여 살 근사한 새 집을 그려보며 행복감에 빠져들 수 있으니 이는 긴팔원숭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여유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내일이면 다시 월요일이고 그럼 다람쥐 쳇바뀌 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밀림을 유영하는 긴팔원숭이처럼 도시의 이곳저곳을 향해 힘차게 팔을 뻗을 것이다. 우리 가족의 행복과 학생들의 소소한 웃음을 위해 힘차게 교실을 누빌 것이다.

 

 

- 김산하 작가 강연 모습(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선포식) :http://cafe.naver.com/pusanedunews/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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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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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을 중심으로 우리 근대사를 되돌아보는 흑백 다큐멘터리 영화 같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의 우리 한반도의 모습은 물론 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웠던 국제정세가 고뇌 섞인 윤동주의 행보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그래서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우리 역사와 이를 둘러싼 전체적인 상황까지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특히, 윤동주 시인에 대한 많은 연구와 자료가 있었겠지만 이를 매끄럽게 연결해놓은 저자의 솜씨가 돋보인다. 동주의 시를 중심으로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 그가 머물렀던 장소까지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어가며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물론 윤동주의 행보를 통해 지나치리만큼 세세하게 그 시대상황을 설명하려다보니 조금 산만해지는 경향도 없진 않지만 이는 그의 푸른 시구를 만나면서 다 잊혀 버렸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한 윤동주의 삶은 별을 노래했던 그의 서정성과 대비되면서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최근 영화 <동주>로도 개봉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책을 다 읽고 영화를 보려고 아껴두었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벌써 '동주'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각인되어 버렸다. 화왕산이었던가? 별이 되어버린 친구를 기린다는 비석의 문구처럼...

  자라나는 우리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세상 모든 이들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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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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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름진 얼굴에 삐딱하게 치켜든 노인의 얼굴이 심상찮게 그려진 책 표지를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오베라는 남자>는 연노랑 표지에 아담한 서양식 집 앞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 꼬장꼬장하게 생긴 노친네와 고양이 한마리가 조그맣게 그려진 책이다. 도서관이라는 특성상 겉표지를 벗긴 것인지, 아니면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오베라는 노인의 클로즈업한 표지의 책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베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갔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구두쇠에다가 모든 것이 정해진 시간에 제자리에 위치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불통의 오베를 보니 오래 전에 봤던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외골수 할머니(데이지)가 생각난다.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투덜이 할머니와 이런 괴팍함을 다 받아주며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운전기사의 이야기인데 그런 풍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책 초반부 몇 페이지만 읽고서 전체 내용을 어림한다는 것이라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왠지 휴먼드라마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강했다. 어쩌면 세상과 연결해주는 그 핵심 고리 역할을 오배와 함께 표지에 등장한 그 고양이가 담당해 줄 것이 아닌지도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정직하지만 무뚝뚝한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오베는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배운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동료의 모함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화마에 휩싸인 옆집의 이웃은 구했지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집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생활하고, 새 것 보다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았던 오베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이웃과 친구를 밟고 올라서는, 새로 구입한 신제품에도 금방 싫증내 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련스럽도록 묵묵한 아날로그형 인간, 오베라는 남자가 새삼 돋보인다. 한마디로  "마치 보석을 둘러싸고 있던 회반죽이 갈라지는 것 같은"(p207) 남자였다.


  혼자 살아가던 오베는 퇴근길에 우연히 만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곧 그녀와 함께 생활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섰던 스페인 여행에서 뱃속의 아기는 유산되고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된다. 음주운전을 한 버스 운전사와 물론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오베를 진정시킨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소냐. 그들을 다시금 일어서는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오베의 이야기에는 그의 굴곡진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의 괴팍한 성격은 힘든 세월을 버텨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삐딱하게 주름 속에 감춰진 사연을 보니 그의 날 선 까칠함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도 해고된 오베는 죽기로 결심한다. 아내 이외에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는데다 고정적인 직장마저 사라진 마당에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천정에 목을 매달아보기도 하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셔보기도 했지만 절묘한 타이밍의 우연과 이웃과의 소소한 사건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한다. 이렇게 이웃들에 의해 오베의 자살은 연기되어지고 점점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몇 가지 일도 도와주게 된다.
   앞집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제는 텔레비전의 미담코너에 나올 만큼 진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는 오베의 투박함이 아름답게 보인다. 어려운 이웃을 도움으로써 오베는 사회에 동화될 수 있었고 개인적인 아픔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오베라는 남자> 초반부터 나왔던 길고양이는 책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분신이 되었다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되기도 했다. 또한 오베를 괴롭히는 '하얀 셔츠'의 인간으로 대변되기도 하면서 늘 오베 곁을 지켰다.

  어쩌면 이 고양이는 우리 삶에 스며있는 희로애락이었는지 모르겠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행복과 불행이지만, 언젠가는 시간과 함께 모두 아름답게 지나가리란 것을...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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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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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즈의 <Norwegian wood>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룸의 첫 신호탄이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때부터 시작된 하루키의 유명세를 꾹 참고 기다리다 1999년에야 읽었던 기억난다. 뭐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고 그 어렴풋한 느낌, 마치 안개 속을 걷고 있는듯한 모호함만이 '상실'이라는 단어와 함께 남아 있었다. 이렇게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혼란스러움은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르웨이의 안개는 여전히 짙게 깔려 한치 앞을 가늠키 어려웠다. 다만 비틀즈의 노래 속에 남겨진 여운이 책의 이미지와 많이 오버랩 되면서 그 혼란의 정체에 조금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의 전체 구성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나(와타나베)에게는 기즈키라는 오랜 친구가 있는데 그는 나오코와 연인 사이로 우리 셋은 늘 함께 만났다. 그러나 가즈키가 갑자기 자살하자 나오코는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녀와의 연락도 자연스레 끊겼다. 얼마 후 나는 시내에서 우연히 나오코와 마주친 후 그녀에게 가끔 만나게 되었고 점점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켰던 나오코는 요양원으로 떠나게 되고 함께 수업을 듣던 미도리를 알게 된다.  

  와타나베가 알고 있거나 만나는, 혹은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씩 들려주면서 이야기는 점점 깊어진다. 꼭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심리적 갈등이나 사회에 대한 혼란스러운 인식, 남녀 간의 불확실한 사랑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성장'이라는 화두를 통해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렇다고 명확한 해답이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뒤엉켜 더 깊은 혼란과 갈등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나오코가 기즈키를 생각하며 와타나베 한 말 속에는 안개 가득한 <노르웨이 숲>이 그대로 함축된 것 같다.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우리는 지불해야 할 때 대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청구서가 이제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그런 선택을 했고 지금 나는 이렇게 되었어. 우리는 무인도에서 자란 벌거벗은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어.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먹고 외로우면 둘이서 끌어 안은 채 잠들었지. 그런 사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잖아. 우리는 점점 커 갈 거고 사회 속으로 나가야만 했어." (p224)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 개개인은 결국 시간과 함께 성장해간다. 남들보다 돋보이거나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화려한 외형을 갖고 있든, 심오한 깊이가 있든, 설사 깨어지고 어긋난 모양일지언정 결국 성장해가는 것이다. <노르웨이 숲>은 그 성장통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어딘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을 안개 속을 화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랑하고 슬퍼하며, 만나고 헤어지며, 기억하고 잊혀지며... 와타나베는 이렇게, 그렇게 성장한다.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 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 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p415)

 

  소설책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인상적이다. 클래식부터 비틀즈의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는데 특히 와타나베의 갈등을 현실의 문제로 끌어다놓으며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레이코의 기타선율이 잔잔하게 들려온다. 책을 읽으면서 비틀즈의 <Norwegian wood>(노르웨이의 숲)을 몇 번씩이나 찾아 듣게 만들었다. 바람이 흘러가는 듯한 그 기타소리가 무심코 지나쳐왔던 내 젊은날의 시간들처럼 아쉽게 느껴졌다.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
그녀는 내게 자신의 방을 내게 보여주었어. 근사하지 않아? 노르웨이산 가구(목재)야

She asked me to stay and she told me to sit anywhere.
그녀는 내게 머물다 가라며 아무데나 우선 앉으라고 그랬어.

So I looked around and I noticed there wasn't a chair.
그래서 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의자 하나 없다는 걸 알았어.

I sat on a rug. Biding my time, Drinking her wine.
난 그냥 방석 위에 앉았어. 그리고 시간을 보냈지. 그녀가 주는 와인을 마시며 말이야.

We talked until two. And then she said, "It's time for bed."
우리는 2시까지 이야기 했어. 그 때 그녀가 말했지, "잘 시간이야"

She told me she worked in the morning and started to laugh.
그녀는 아침에 일하러 가야 한다고 그랬어. 그리고는 깔깔거리기 시작했어.

I told her I didn't and crawled off to sleep in the bath.
"난 일이 없어" 라고 그녀에게 말하고는 잠을 자려고 욕조로 기어갔지.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s flown.
그리고 깨어났을 때 나는 혼자였어. 그 새는 날아가 버린거야.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Norwegian wood.
그래서 난 불을 붙였어. 근사하지 않아? 노르웨이산 가구(목재)야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우리는 지불해야 할 때 대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청구서가 이제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그런 선택을 했고 지금 나는 이렇게 되었어. 우리는 무인도에서 자란 벌거벗은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어.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먹고 외로우면 둘이서 끌어 안은 채 잠들었지. 그런 사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잖아. 우리는 점점 커 갈 거고 사회 속으로 나가야만 했어.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 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 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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