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오는 일요일

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극장에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드디어 보았다.(스포일러 주의)

 

고레에다 감독은 자식이 뒤바뀌면 부모들이 아이를 기른 세월과 상관 없이 생물학적 친자를 택해 아이를 서로 교환한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생물학적 아이와 기른 정이 가득한 아이 중 누가 우선일까?

 

진정한 부모란, 좋은 부모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

 

답을 내리기보다는 계속 질문을 만들어가는 영화였다.

 

료타는 자신을 닮은 반듯한 아들과 상냥한 아내를 둔 성공한 대기업 직원이다. 아이를 사립초에 보낼 수 있고 원하는 교육은 얼마든 시킬 수 있는 여유로운 가장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시기에 료타는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출생 직후 아이가 바뀌었고 바뀌어 자라고 있는 친자의 상황은 자신의 집안보다 열악하다. 친아이를 기르는 아버지는 가난하고 애들도 줄줄이 딸려 있다.

 

친자를 처음 만나자마자 료타는 아이가 콜라를 서슴없이 마시며 빨대를 잘근잘근 씹어둔 걸 보고 경악한다. 건강을 위해 하루 먹는 달걀 양도 정해두었을 정도이고 집안은 아이 있는 집답지 않게 호텔식으로 잘 정돈되어 있으니 부부가 보기에 얼마나 개탄할 상황인가.

 

료타는 아이가 바뀌었다는 걸 알고 부인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도 역시 그랬었군, 이라든가 아내의 본가가 있는 시골병원에서  아이를 낳아 이렇게 된 거라며 아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교환을 염두에 두고 하루 생활해 보니 친자인 아이는 게임을 자주 하고 (중상층의) 생활습관이 잡혀 있지 않다.

 

상사와 집안일을 상의하니 상사는 료타에게 두 아이를 다 키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이기주의의 극한이다.

상사의 조언에 힘입어 두 아이를 다 기르려 변호사까지 알아본다.

 

키즈카페에서 료타는 류다이네 생각은 하지도 않고 이 얘기를 아주 가볍게 꺼낸다. 이런 분노를 부르는 상황에서도 상대편 부모 류다이는 참다 못해 가볍게 머리를 살짝 치는 정도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이런 상황에 가난한 부모는 눈물 지으며 아이의 미래를 위해 부자집으로 아이를 보내거나 따귀를 올려붙이겠지만.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에서의 선택을 핵심으로 최루적 상황을 남발하는 허다한 유사 소재의 TV드라마나 영화들과 달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결국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조용히 그리고 깊게 묻습니다.(이동진, 2013)

 

류다이는 시종일관 여유 있다. 시골에서 전기상회를 운영하고 있고 부인은 파트로 일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셋이나 되지만 아등바등 살지 않는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말자, 주의.

 

그렇지만 류다이는 키즈카페에서 아이들과 온몸을 부딪혀 놀아주고 아이들 장난감을 고칠 수 있고 목욕도 같이하는 그런 아버지이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병원측과 부모들이 아이들 문제를 논의하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총싸움하며 겨누자 빵 소리에 다들 죽는 시늉을 하며 쓰러지는 장면이다. 현실에서는 이렇지 않지만 언제나 이럴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들이 모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류다이네와 료타네는 처음에는 교환을 염두에 두고 만남을 이어가다 나중에 아이들 짐을 다 실어보낸다. 료타는 아이를 보내며 케이타에게 적절한 설명도 없이 강해지기 위한 미션이라고만 한다.

 

교환을 통해 두 아이 다 힘겨워한다. 적극적인 류세이는 자기 집을 몰래 찾아가고 케이타는 홀로 잠못이루고 힘겨워한다.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었던 료타는 류세이를 적응시키려고 가족과 시간을 내기 시작하고 집안에 고가의 캠핑장비를 들이고 단란한 가정 코스프레를 한다. 류세이 사진을 찍고 확인하다 료타는 전에 케이타가 자신의 모습을 찍어둔 걸 보고 회한의 눈물을 쏟는다.

아. 이 남자가 이렇게 울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사건의 전말을 알고도 대응책 마련에만 힘쏟던 그였는데.

 

나도 아이들이 내 사진을 찍어둔 걸 보고 울컥한 적이 있어 그 마음을 알 듯하다.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부모를 깊이 사랑해주고 있다. 부모만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섬세하고 유약한 케이타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린 데 상처받아 교환 이후 처음 만났을 때 도망가버린다. 아이를 따라가 머리를 쓸어주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양어머니로 추정되는 료타의 어머니는 료타가 지난날을 사과하려고 하자 너랑은 그런 진지한 얘기말고 시시한 얘기 나누고 싶다고 한다.

 

가족의 시간이란 류다이네같이 정말 시시하고 지루한 나날의 시간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 같다.

 

료타는 가족의 미래를 기획하고 가정을 위해 돈을 벌고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 함께하려 한다. 반면 류다이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두 가정을 교차시키며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묻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모든 가정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

 

내가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딸아이 친구 엄마가 우리딸을 데리고 목욕을 가주었기 때문이다.

 

홀로 외롭게 자라던 케이타는 류세이네 가족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료타 역시 평소라면 말도 섞지 않았을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연달아 <기쿠지로의 여름>을 보았다. (스포일러 주의)

온라인에 자주 올라오는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면 안 되는 이유의 결정판. 

 

이십대 중반에 기타노 다케시에 버닝하던 시기에 보았는데 아이 낳고 나서 보니 참 마냥 웃긴 영화는 아니다. 

 

이런 장면도 있었구나, 싶은 장면이 많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중에 영화를 다시 보니 계속 마사오가 한데서 자는 거나 밥을 못 먹고 있을 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 철없는 야쿠자가 한없이 미워졌다. 어처구니없는 장난을 치며 웃게 해주는 것도 좋지만 좀 밥이나 제대로 먹이며 다녀라 이 양반아, 하게 된다. 애를 어두운 데 두고다녀 변태 영감이나 만나게 하고 애 앞에서 온갖 범법은 다 저지른다. 막무가내 진상인데 밉상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사오가 친엄마를 보게 해준다.

그런데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았을 상황이다. 이미 엄마는 다른 가정을 꾸려 잘살고 있다.

 

상심한 마사오 일행에게 폭주족, 소설가 지망생이 다가와 별별 캠핑을 벌인다. 이 소동은 다시 봐도 너무나 즐겁다. 역시 아이를 기르는 시간은 이런 잉여의 시간들이다. 할일없는 한가한 한량들이 모여 몸으로 놀아주니 마사오는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된다.

 

특히나 대머리 아저씨 다시 봐도 짠하다. 한여름에 들판에서 모기에게 뜯겨가며 외계인 상황극 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다들 자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아이보다 어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야쿠자로 살아가며 인생에서 여름방학다운 방학은 한번도 맞지 못했던 기쿠지로는 마사오를 만나서 진정한 인생의 여름방학을 보낸 것이다. 한껏 잘논 마사오는 다시 할머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힘차게 달음질쳐 갈 수 있게 된다.

 

여름방학마다 생각나는 영화인데 이상하게 아이들과 아직 본 적이 없다. 다음 여름방학에는 꼭 보여주어야겠다.

 

지난 겨울에 <P짱은 내 친구>를 너무나 잘 봐서 이 영화도 무지 좋아할 것 같다. 이제는 초등이니.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팬이라 자처하지만 작품을 사실 겨우 네 편 보았다.

 

2005년 하이퍼텍 나다에서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환상의 빛>,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순으로 보았다.

 

에세이는 전에 사서 보았고 <걸어도 걸어도>, <태풍이 지나가고>는 우선 책으로 봐야겠다.

 

성공한 덕후인 류배우는 감독을 직접 만났지만 나는 이 정도로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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