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몇 주 전에 힘겹게 읽었다. 마침 체육계 미투 조재범 코치 사건으로 시끄러운 시기였다. 제목만 들으면 하이틴로맨스 같기도 하지만 어둡고 힘겨운 소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팡쓰치들이 있는 것일까.

 

행여나 나까지 말을 보태 상처가 될까 글을 쓰기 망설여졌다.

 

아침에 조간 뉴스를 클릭하기 무서운 세상이다. 세상 젠틀하고 성실하게 사는 이미지를 밀었던 아이돌 출신 사업가는 실상은 유흥업계와 깊이 관여되어 있다고.

 

너무나 더럽고 흉포해 호기심에 하나만 선택해 읽고는 당분간 보지 않기로 했다.

 

*

소설 속 팡쓰치, 류이팅은 둘도 없는 친구이다. 집안은 유복하고 학업성적도 뛰어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이 소녀들은 리궈화라는 문학강사를 만나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이원이라는 소녀들 주변의 인물은 중상류층 새댁이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무기력한 여성이다.

리궈화에게 찍혀 제물이 되어 인생이 망가진 또다른 학생도 나온다. 꼭 다시 찾아 이름을 기억해둘게. 이 학생의 사연도 너무나 마음 아팠다.

 

작가 린이한의 자전적 경험이 담겨 있어 팡쓰치의 절절한 내면을 보는 것이 너무 아팠다.

 

읽고 나서 한동안 예전 동네 골목에서의 일이나 만원 지하철이 꿈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알았던 어떤 선생님들 얼굴도 스쳐갔다.

 

선생이기보다 한 '남자'로 보이고 싶어했던 그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요? 어째서 피해자가 입 다무는 걸 교양이라고 해요? 어째서 남을 때린 사람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죠? 정말 실망스러워요. 언니에게 실망한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이든 인생이든 운명이든 아니면 신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정말 형편없어요. 요즘은 소설을 읽다가 인과응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울음이 나와요.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왕자와 공주가 결국에는 결혼하는 해피엔딩이 혐오스러워요.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세상에 영합하는 비열한 결말인지!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더 원망하는 게 뭔지 알아요? 차라리 내가 세속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차라리 내가 세상의 이면을 본 적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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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동안 리궈화라는 아동성애자가 타깃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심리상태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일단 리궈화의 원칙은 가난하고 부모의 영향력이 적은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팡쓰치는 이런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 부유한 집안의 아이였다.

 

그렇지만 리궈화는 팡쓰치의 결벽에 가까운 자존심이 자신을 안전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범행하고 팡쓰치를 길들여간다. 팡쓰치는 혼돈과 공포 속에서 차차 자신을 잃어간다. 리궈화는 팡쓰치를 만나면서도 다른 대상을 물색하고 동료들과 다른 나라로 원정 성매매를 가기도 한다.

 

팡쓰치는 자신의 생활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범행 사실이 알려진 후에 팡쓰치는 이미 손쓸 수 없게 심신이 망가진 상태였다.

 

팡쓰치의 교양 있는? 부모는 나이 많은 그와 팡쓰치 사이를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손쉽게 딸을 내어준다. 친구인 류이팅은 처음에는 팡쓰치와 함께 리궈화를 두고 인정 경쟁을 벌인다. 팡쓰치의 속사정도 모르고 다만 친구가 자신보다 스승의 관심을 더 받고 있다고만 여긴다.

 

팡쓰치는 고통 속에서 선생님을 사랑해보려고 한다. 차라리 그 편이 고통을 견디는 데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고회로가 망가진 상태였다.

 

그루밍 성폭력의 전형적인 사례.

 

농담으로 하는 말인 '키워서 잡아먹지' 하는 류의 멍멍소리들이 섬뜩하게만 들린다.  

 

 

*

2017년 대만에서 출간된 책에 실린 작가 소개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타이난에서 출생. 전공이나 학력은 없다. 모든 신분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은 정신병 환자라는 것.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말처럼 책벌레가 독서 애호가가 되었다가 다시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책이 나오고 폭발적 반응을 얻었지만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부디 그곳에서는 고요하게 원하는 책 많이 읽고 산책도 하기를.......

 

어제 <롤리타>를 빌려왔다.

하도 고전이라고 하고 롤리타 컴플렉스니 뭐니 하는 말이 고전을 왜곡했다고 해서 좀 제대로 보고 싶었다.

 

한 다섯 장 읽고 벌써 불편하다.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17쪽

 

주석에 4피트 10인치는 147센티라고 나온다.

자연스레 키가 그 정도 되는 딸아이가 떠오르면서 엄청 불편하고 무섭다.

표지의 젓가락같이 마른 다리는 딱 딸아이의 다리 모양이다.

 

다 읽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

오후에 딸아이가 공원에서 잠시 친구랑 노는데 어떤 남자고등학생이 어느 학교 다니냐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교육받은 대로 친구랑 일단 다른 데로 가서 놀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공원의 다른 지점에서 다시 그 학생과 마주쳤는데 반갑게 손을 흔들어서 집에 왔다고 한다.

 

엄마, 그 오빠는 왜 모르는 우리한테 인사한 거야, 하고 해맑게 묻는다. 

 

물론 그냥 심심하고 너희들이 귀여워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일단 안전한 쪽으로 생각해야 해.

 

친절보다는 안전이야.

 

아주 잘했어, 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딸아이가 이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좀더 많이 지켜봐주어야 한다.

 

 

동네에서 많이 예민한 엄마 소리를 듣지만

시사 프로그램에 나왔던 갑자기 사라진 소녀들을 생각하면

좀더 과잉 보호해도 지나친 것은 아닐듯.

 

집에서 이십 분 거리에 성범죄자가 거주하고 있고

한 시간만 가면 나오는 군에서는 6월마다 여자 아이가 사라졌다.

 

내 아이가, 내 아이 친구가 피해갔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은 없다.

 

 

지금부터 운동 많이 해야겠다.

 

20년 후엔

노란 형광 조끼를 입고

유흥가를 돌면서

술 취한 학생들을 깨우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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