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무용도, 남정호라는 무용가도 잘 몰랐는데 지난 여성영화제 기간에 <구르는 돌처럼>이라는 다큐를 통해 남정호 교수님을 만났다.

 

현대무용이나 발레 하면 뭔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고급예술 같아서 외면했다.

사실 나에게 현대무용은 접하기 힘든 것이 맞았다. 여아들 키우는 엄마들의 로망이 발레복 입혀서 예쁘게 공연하는 건데 그마저도 부담이 되어 시도한 적도 없다.

 

그런데 <구르는 돌처럼>을 보고 아, 무용이란 저렇게 인간의 신체를 통해 다양한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거구나, 여유로운 계급의 유희만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는 펜싱을 했고 소녀 티가 나면서부터는 무용을 하게 되었다는 남정호 교수님은 1988년에 무용가, 선생, 딸, 아내, 엄마 등 자신이 맡은 수많은 역할에 짓눌림을 느끼며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다시 그 옷을 다시 입는 자전적 무용극 <자화상>으로 주목받았다.

 

거의 30여년이 지난 후 남정호 교수는 정년퇴직을 앞둔 무용가의 내면을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에 빗대어 표현한다.

 

흔하게 듣던 노래인데 아, 이렇게 해석될 수 있구나 싶어 놀랐다. 이제 정년퇴직을 하면 알아주는 이 없이, 특별히 해야 할 일 없이 그렇게 잊혀진 존재가 될 수도 있다.

 

*

교수님은 하자센터 학생들과 마스터클래스라는 수업을 분기별로 5년간 진행하셨고 그 결과 <구르는 돌처럼>은 재해석된다.

 

제도권 엘리트 무용가와 제도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학생들과의 만남이 정말 신선했다. 가르치는 쪽도, 배우는 쪽도 생기가 넘치고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런 무용수업이었다면 학생들 모두 얼마나 자연스럽고 즐거울까.

 

제도권 아이들이 공부에 찌들고 아이돌 군무를 연습할 때에 저들은 저렇게 자유롭게 표현하고 웃을 수 있구나 !

 

극이 진행되며 학생들이 차차 소개되는데 그중 인상 깊은 학생은 '고다'라는 무용가였다. 선생님과 수업한 것이 전부이지만 남정호 교수님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표현력이 뛰어나고 몸짓이 살아있었다.

 

남정호 교수님의 작품 <자화상>에서는 다시 자신이 옷을 걸쳐 입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고다'는 벗어던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친구들과 춤을 추고 영상을 찍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찾는 고다가 인상 깊었다. 하자센터 학생들이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모습과 남정호 교수님이 은퇴후 펼쳐질 새인생을 고민하는 접점이 만나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밥 딜런의 노래 가사와 이들의 상황, 나의 상황이 너무나 들어맞았다.

 

나도 구르는 돌처럼 구르고 굴러서 이곳에 왔다. 집에서 줄곧 아이들을 키웠지만 늘 집이 없는 기분이었고 항상 북적였지만 아무도 없는 그런 마음 누가 알까?

 

어떤 기분인지 알까?

 

영화 보는 내내 엄마도 생각나고 일년에 절반이 겨울이던 강원도에서 아이 키우던 때도 생각 나 또 울컥했다.

 

같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도, 함께 하는 가족들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는 이렇게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게 엄청 두려웠다. 강원도 어느 산 밑 고장에 살 때 벌판에 한 동 달랑 서 있는 아파트 밖에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열이 난 아이 곁에서 꼬박 밤을 샐 때의 그 기분이란.

 

진짜 온 지구가 멸망하고 세상에 덜렁 이 아이와 나만 남은 느낌이었다.

 

정말 우습지만,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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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멋진 옷을 입고

으스대며 부랑자에게 푼돈이나 집어 주었지,

사람들은 너에게 말했지, "아가씨, 추락하는 걸 조심해" 라고

그들이 농담하고 있다고 생각한 너는

떠돌이들을

비웃곤 했지

하지만 이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당당해 보이지도 않는구나

다음 끼니를 찾아 헤매야 하다니.

 

어떤 기분일까?

어떤 기분일까?

집 없이 사는 것이

알아주는 사람 없이

구르는 돌처럼 사는 것이

 

 

Once upon a time you dressed so fine

You threw the bums a dime in your prime, didn't you?

People'd call, Say, "Beware doll, you're bound to fall"

You thought they were all kiddin'You

You used to laugh about

Everybody that was hangin' out

Now you don't talk so loud

Now you don't seem so proud

About having to be scrounging for your next meal.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without a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이번 영화제 기간에는 유난히 우는 분들이 참 많았다. 이 다큐는 특히 중년 여성들이 객석에 많았는데 다들 훌쩍훌쩍.

 

노래 가사와 교수님, 하자센터 학생들, 자신의 상황 모두가 이해되면서 서글픈 지점이 있다.

 

 

*

영광스럽게도 상영 이후 이 다큐를 찍은 박소현 감독님과 남정호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밤늦은 시간에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 해도 감동인데 직접 뵐 수 있어 좋았다.

 

영화를 보고 은퇴 이후의 삶이 두렵지 않다고 어떤 분이 말씀하셨고 강의를 광주에 개설하실 생각은 없냐는 요청도 들어왔다. 진짜 저렇게 멋진 무용 수업이라면 몸치 중의 몸치이지만 들어보고 싶다. 중년이 의외로 질풍노도의 시기라서 누구나 분출할 통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막 굴러다니지 말고 다른 구르는 돌과 만나면서 둥글게 둥글게 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고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에 외롭다.

 

어떤 기분일까?

 

어떤 기분일까?

 

부끄럽지만

정말 외롭다.

 

그러니 이렇게 며칠 내내 페이퍼를 연이어 쓰고 있나보다.

 

 

TMI 하나

 

한예종 학생들 공연 <구르는 돌처럼>을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사진은 남정호 교수님이 좋아하신다는 젊은 시절의 모습

 

나도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그런 얼굴을 남겨보고 싶다.

 

억지로 웃지 않고 그냥 내 본연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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