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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데 - 고양이 추리소설
아키프 피린치 지음, 이지영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이 책은 고양이를 소재로 한 판타지이다. 고양이가 말을 하고, 책을 읽으며, 예술을 비평하고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동화같은 설정이 그렇다. 고양이가 암암리에 조직을 이루고 지구를 지배한다는 것은, 이 도도한 종족과의 개인적인 첫번째 조우에서 그가 내 손을 화악 할퀴고 간 후에 늘 해오던 생각이다. 고독하면서도 비밀스러우며, 민첩한 이 종의 이미지에 추리소설만큼 잘 어울리는 얘기도 없다.
여기다 음침하고 거대한 저택, 비밀스러운 실험실, 납골당, 사교 집단의 예배,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 다른 시간대에서 온 것만 같은 미인 고양이들 같은 고딕 소설 스타일을 첨가하니 실로 암울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무용담이 되었다. 읽어갈수록 속도가 붙는 책은 대개 재미있다는 인상이 남는데 이 책이 바로 그렇다. 트릭이나 동기가 좀 스케일이 커서 와닿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책을 읽어갈수록 나는 '푸른수염'군과 그의 고통스러우면서도 쿨한 이미지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불쌍하게 그려지는 구스타프에게도 연민이 가는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무리 똑똑해도 돈을 벌 수 없는 프란시스의 지적 창고를 채워줄 '자료'를 제공한 것은 바로 그 주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속편까지 번역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다음 권에서는 구스타프를 좀 덜 구박해 주길 바랍니다, 프란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