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여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랑자 헤세, 여행하다. 글쓰다. [헤세의 여행]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196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국적은 스위스라고 한다. 독일과 스위스는 서로 이웃한 국가다.

 

 

 

그의 삶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기보다 정처없이 옮겨가며 이어져 왔다. 어디가 그의 진정한 고향인지는 그 자신만이 짚을 수 있으리라. 꽤 오랜 기간동안 작가로 살아오면서 많은 글을 썼기에 그의 흔적을 알아보려면 그가 남긴 글들을 읽어보면 된다. 신기하게도 그가 지내온 이력들이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헤세를 처음 만난 것은 사춘기 때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청춘의 문을 막 들어서려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헤세의 문장은 매혹 그 자체일 것이다.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등등.

앞날이 막막하고 속시원한 대답이 내려지지 않은 채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시기에 있던 나에게  헤세는 그 당시의 꽉 막힌 심정을 읽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에 나오는 청소년들과는 이상하게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첫사랑의 실패를 이야기했고  학교 안에서의 거친 반항을 실천했으며  동성간의 막연한 끌림도 문학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는 그 유명한 구절을 곱씹으며 아프락사스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기도 했다.

만년의 헤세를 그대로 드러내는 <유리알 유희> 또한 헤세의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그 스스로 이룩한 사상의 완결체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웬만큼 겪고 나서는 헤세에 자연스레 흥미를 잃게 되었고 딱히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열의도 사그라들었다.

최근, 헤세의 헤세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게 되면서 소설가로서의 헤세, 나의 청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헤세가 아닌 인간적인 헤세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헤세는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의 모습으로 내게 다시 다가왔다.

 

헤세의 진면목을 이로써 보게 되었다고 만족하던 그 때, <헤르만 헤세의 사랑>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편지와 문서를 찾아내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는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삶 자체를 사랑할 수도 없다.

-헤르만 헤세-

 

 

위대한 작가로서의 헤세,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로서의 헤세를 만날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으면서는 헤세를 거의 우러르기까지 했던 독자로서의 경외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여인들과 짝을 이룬 헤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아내였던 마리아가 아이를 낳는 그 순간에도 여행을 떠났던 헤세.

 

이제 인간 헤세에 대해 실망했던 내게 "헤세의 여행"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의 맨 앞에 실린 1904년의 <여행에 대하여>라는 글에는 여행을 대하는 헤세의 심정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36

 

여행의 목적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더욱 풍요로워지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발견하며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황무지에서의 목동의 눈초리나 피스토야의 소가족과의 경험 등 여행의 낭만주의라 부르는 것들도 첨가된다고...

 

이 책에는 1901년 최초의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으로 1904년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 등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기록들이 주루룩 등장한다.

 

아름다운 목사관 앞을 지나가며 헤세는 그리움과 향수를 느낀다고 말했다.

밖에서만 보았을 뿐 그 안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이 목사관에 대해 나는 언젠가 진짜 고향 같은 향수를 느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 지낸 곳에 대한 향수 같은 것 말이다. 이곳에서 15분 동안은 정말이지 아이였고 행복했으니까. -302

 

이 집에 산다 해도 목사로 살지는 못할 것이고, 지금처럼 정처 없이 무해한 방랑자로 살 것이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학자가 되고, 때로는 미식가가 되고, 때로는 지극히 게을러져서 술독에 빠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젊은 아가씨에게 빠져 있기도 하겠지. 때로는 시인이나 광대가 되고, 이따금 가난한 마음에 불안과 아픔을 담고 향수병을 앓을지도 모른다. -301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방랑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여기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첫사랑에 실패하고 자살 시도를 한 후, 서점에서 일하다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헤세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고도 길고 긴 생애 동안 그의 곁을 지킨 아내는 세 명이나 된다.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방랑자로서의 삶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모순 투성이의 삶 속에서 무척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별로 여행하지 않는 조용한 마을 주민이자 서재에만 틀어박혀 사는 문필가에게는 다다음달 12일에 이런저런 도시에서 마지못해 낭송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끔찍한 일이다. (...)

작가는 빈둥거리며 불규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시간을 낭비하며 미심쩍은 인생을 보낸다. 규칙적이고 틀에 짜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388

 

 

무지 까칠한 작가였지만 그의 문체는 무척 아름답고 묘사는 섬세하다.

무수한 여행을 통해 그가 얻은 것들은 그의 문학 혹은 에세이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

 

여행시기에 맞추어 그가 쓴 글들(여행기 외에 소설, 기고문 등)을 다 읽어보지는 못하지만 그의 여행기와 수기 등을 통해 그가 말하는 여행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괴팍한 성격의 인간 헤세와 문학작품 작가로서의 헤세를 연관시키는 일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데미안의 작가로서의 헤세만 알았더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랜 인생을 산 작가, 혹은 인생 선배의 녹록지 않은 연륜이 들어 있는 글들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어서 이 책을 읽은 것이 그리 후회스럽지는 않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