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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호 유고집 [눈물]
그때였습니다. 우연히 거울을 본 순간 저는 제 얼굴이 변화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얼굴이 서너 개의 표정을 거쳐 마치 하이드에서 지킬 박사로 변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신앙체험을 지금껏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고백하여도 좋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33
마흔 셋에 천주교 신자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밥 먹을 때 성호를 긋고, 말할 때마다 걸핏하면 예수님과 회개와 부활 같은, 성경의 용어들을 즐겨 말하는 이른바 ‘예수쟁이’가 되어버린 최인호를 맞닥뜨렸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던 최인호는 <잃어버린 왕국>에서 고구려와 백제 등의 역사를 힘있게 이야기하고, <상도>에서 자신의 길을 가는 거상의 이야기를 일구어낸 이야기꾼이었는데...
종교를 믿지 않는 내가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세요.”하며 애를 들쳐 업고 내 팔을 부여잡는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얼마나 곤혹을 치르곤 했는데...
죽어 버린 육체의 거부할 수 없는 마지막 자백이라며 오랜 투병 생활 속에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흔적 속에서 주저리 주저리 인용되는 성서의 구절과 “주님”을 영접하기엔 , 갑작스레 벌어져 버린 추억 속의 최인호와 유고 속의 최인호의 간극이 너무나 커서 , 나의 영혼은 삽시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머릿속이 꽁꽁 얼어붙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게 되는 “주님”들에 일일이 싫다는 반응을 채 표시하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들여다 볼 뿐이었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붙은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의 추모글들을 보면서, “아~최인호였지.” “그래, 이 글을 쓴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최인호야.” 되뇌일 수 있었고, 어렴풋이나마 병마의 고통 속에서 그가 택한 이 길이 있었기에 끝까지 작가로 남을 수 있지 않았나...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고 어머니. 엄마. 저 글 쓰게 해 주세요. 앙앙앙앙. 아드님 예수께 인호가 글 좀 Tm게 해 달라고 일러 주세요. 엄마, 오마니!(...)
선생은 자신의 이런 기도를 막무가내 떼쓰기 기도라고 했다. 항암 치료로 빠진 손톱에 골무를 끼워 가며 매일 30매씩 손으로 써내려간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바로 그 기도의 응답이었다. 선생은 늘 소설가로 죽고 싶다고 말했으니, 지금은 그의 소망이 마침내 이뤄지는 가을이다. 이젠 편히 쉬셔도 될 테지만, 아마 내가 아는 선생은 지금도 계속 소설을 쓰고 계실 듯하다. 거기가 어디든. -332
소설가 김연수가 최인호를 추억하며 쓴 글의 일부이다.
활달하고 다정하고 장난기 많은 최인호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의 추모하는 글 속에서 무수한 그리움과 존경과 애도를 읽었다.
짧고도 간결한 이 책의 제목은 [눈물]
작가 최인호의 눈물과 그를 추억하는 모든 이들의 눈물 방울이 합쳐진 값진 [눈물]이 아닌가 한다.
"주님이 오셨다"는 말과 함께 천사의 미소를 남기며 이세상을 하직한 최인호.
부디 평안하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