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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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무섭다 했다. 당장 목을 겨누지는 못하지만 서서히 숨을 끊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안겨 준다. 그 고통은 삶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어 놓을 만큼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번 쓰여져 세상에 나오면  진실은 중요치 않다. 믿는자에 의해 진실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해명이란 진실은,  믿는자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이 되어 억울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하고, 진실은 묻히고 또 다른 거짓이 진실로 둔갑한다.

 

내가 오늘 만난 이는 탄실이란다. 김명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너무나 낯선 이름에 정말? 우리나라에 여성 소설가가? 언제?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다가왔다. 너무나 낯선 이를 만나러 가는 첫 관문인 표지와 차례를 보면서 오랜 세월 우리에게 잊혀져 있어야만 했던 진실은 무엇일까라는 구체적인 의문이 시작되었다.

탄실에게는, 기생의 딸이자 첩의 딸이라는 시작점부터 그녀의 삶은 피폐화 되었다. 자신의 출생의 그늘을 지우기라도 하듯. 세상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열심히 공부했고, 자신을 따돌리고 외롭게 버려두는 현실에 맞서기 위해 자신을 규격화하여 가둬 두며 살았다. 따돌리고 비방하고 없는 소리 지껄여도 두 손 불끈 쥐고 해명의 가치도 없다는 듯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단단한 여인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그 시대의 남성들에게 도전이라고 받아들여졌을까. 단단한 껍질 속에 감춰둔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고자 하는 이기심과 남자라는 이름 앞에 철저히 무너져내리는 여성을 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탄실은 첫 순정을 빼앗기고 만다.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가 된 그녀에게는 부정과 음침함, 색을 밝히는 신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가면에 가려진 그녀의 삶을 치욕과 모멸로 치부하기에 이른다. 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던가. 탄실에게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한 그는 손익에 맞춰 새로운 인생을 걷지만, 탄실의 인생은 내리막길의 시작을 알린다.

탄실의 삶은 참 녹록치 않다. 잠깐의 반짝거림은 긴 어둠을 열어주고, 긴 어둠에서 발버둥치면 칠수록 그녀를 더욱 잠식시켜 버린다. 탄실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공부하고 더 애쓰며 자신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 애쓴다.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문장 하나 낱말 하나에 의미를 살피며 세상과 끊임없이 싸우고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의지는 번번히 허물어지고 갈 곳 없는 한없이 처량한 신세로 만들어준다. 글쟁이는 가난뱅이라고 했던가. 탄실의 가난은 글을 썼기 때문이었을까. 엄마와 이모. 동생들까지 나서서 그녀에게 용돈을 쥐어주지만 그녀는 항상 가난했다. 그리고 항상 새 일자라를 찾아 다녀야만 했다. 탄실은 항상 배움이라는 도피처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평양과 도쿄를 오가며 자신의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그녀의 삶은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며 그 속에서 그녀는 황폐해져갔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에 메말라가며 어떤 것이 사랑인지, 무엇을 사랑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인지 조차 알지 못한채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한다.

 

탄실의 삶을 들여보며, 그녀가 왜 실패를 거듭했어야 했는지, 왜 해명도 한 번 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고 투서도 한장 남기지 않았으며, 자신을 능멸한 남자들 집에 들어가 아내들에게 폭탄 발언조차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순간이 있었다. 탄실이 세상을 향해 소리치려는 그 시기 우리나라는 여성은 남성을 존중해야 하며, 남성의 죄를 덮어주는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다. 어떠한 진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밖에 되지 않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바닥이었다. 그 속에서도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을 쓰고 신문에 연재하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의 첫 문을 열어준 이임에 틀림없다. 그럼 탄실에게 친구는 어떤 존재였을까.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탄실의 도도함과 깊은 학식 그리고 당당함은 견제의 대상으로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일본과 치열한 투쟁의 시대였던만큼 누구에게나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남자들의 권력 앞에서 당당했던 그녀의 무너짐은 카타르시스적인 희열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나보다 잘 배웠다는 여자도 남자의 권력을 등에 업고 지내는 나약하고 부도덕하다는. 힘든 자신을 위로하려는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그 시대를 살았던 문학소녀이자 음악 감상을 취미로 가진 탄실은 미움의 대상이며, 어려운 처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의 대상이 된 사회의 희생양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세상으로 나와 당당히 서고 싶어했던 탄실. 김명순.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남자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짓밟히고 짓이겨졌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세상이 그녀의 단단한 심지를 받아낼 준비가 되지 않아 그녀를 쓸쓸하게 등져야 했던 그 시대. 그녀는 그 때를 어떻게 기억하며 눈을 감았을까.

기생의 딸로 낳은 엄마를 엄마로 부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엄마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아간 자신의 지난 날을 되새기며 얼마나 깊은 상처 하나를 가슴에 묻었을까. 탄실을 만나는 내내 마음이 아리고 답답했다.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꺾어버린 그 순간, 그녀는 꺾인 날개를 젓고 또 저어 새로운 둥지를 찾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날고 또 날았다. 그러나 세상에 김명순. 이름 석자를 알리지 못한 채 날개를 접어야만 했다. 거짓을 진실로, 진실은 또 다른 결과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이야기는 김명순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여성이라서, 흑인이라서, 장애인이라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약자라는 틀에 가두고 그들의 현실을 부각시키며 밟고 올라서려는 많은 이들에게 탄실의 억울한 누명과 힘들었던 삶은 되새김질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세상이 아팠던 그 때 그 시절. 자신의 누추한 삶을 감추기 위한 희생이 필요했던 그 시절.

 

많은 이들의 시기와 괄시를 받으며 꿋꿋하게 살아가야만 했던, 살아냈던 탄실. 김명순 작가에게 고개를 숙여 그녀의 힘겨운 삶을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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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레시피
테레사 드리스콜 지음, 공경희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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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남편이 식탁을 책임져 주었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이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고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레시피로 자극이 되었던 그 무렵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요리를 해 왔던 남편이 색다른 요리로 식탁을 채워주고, 두 아이를 조수로 임명하면서 함께 주방을 채워주니 지켜보는 내 맘도 안정되고, 식탁 앞에 앉은 두 아이의 표정 또한 달라졌다. 땀 흘리며 셰프 흉내를 낸 신랑도 매우 만족해 했다. 이것이 소박하고도 참 소중한 추억이며 일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두 아이의 곁에 얼마나 오래도록 이 모습으로 살아갈지 잘 모르겠거니와 지금과 같은 평온함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함께 해 줄지 또한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혼자 남은 자식 또는 부모. 그들은 앞으로 얼마나 깊고 어두운 터널을 건너야 빛을 볼 수 있을까 한없이 걱정스럽고 함께 죽음을 맞았다면 혼자 남는 외로움과 두려움은 몰랐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하곤 했다. 그래서 한때 남편에게 우린 정말 사고로 떠나야 한다면 네 명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참 모질고 잔인한 말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혼자 견뎌내며 살아야 하는 그 시간을 누가 곁에서 봐 줄 것이며, 부모만 남는다 해도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까 너무나 무섭기 때문이었다. 그 때마다 남편은 말한다. 네 명이 다함께 살아남으면 된다고.

 

인생레시피』란 제목과 더불어 책소개 글을 보면서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그 뒷이야기를 미리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은 반가움과 걱정스러움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원하지 않았던,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문을 열어야만 했던 엄마 엘레노어. 그녀는 평범한 일상 생활 가운데 가슴에 멍울이 잡히는 아찔한 순간을 맞는다. 그것이 전환점이 되어 그녀의 삶을 또다른 방향으로 안내하게 한다. 여덟살 어린 딸을 두고 엄마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결코 나약한 모습으로 남지 않으려 노력하고  무너져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곤 딸에게 엄마가 꼭 필요할 때, 엄마의 부재로 힘겨움도 가슴으로 끌어안으려 할 때를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 동안 딸과 함께 해 왔던 요리와 그녀의 엄마를 통해 배운 요리들의 레시피를 쓴다. 레시피와 함께 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에 얽힌 추억 그리고 엄마가 너의 곁에 있음을 알리며, 함께 있어 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담담하게 글로 남겨두었다. 그 편지는 딸 멜리사가 스물다섯살이 되던 해에 전달된다.

 

죽음을 앞둔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 얼마나 애닳고 아팠을까. 자신에게 찾아온 암덩어리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며, 그 결과를 부정하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어린 나이에 엄마의 빈자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딸에 대한 미안함과 성장통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혼자 경험해 나가야 하는 그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함에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어 엘레노어의 담담한 편지글에 더 마음이 아파왔다.

그리고 여덟살 멜리사가 스물다섯살이 되어 엄마의 편지가 담긴 책을 받고 먹먹해 하는 모습과 아빠와 남자친구에게 보이지 않으며 숨죽여 한장한장 넘길 때 멜리사의 감정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내내 함께 숨죽여 읽게 되었다.

엘레노어가 떠난 빈자리는 남은 자들에게는 너무나 힘겹다.

남편 맥스는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하다.  다시 사랑을 한다는 것이 두려운 현실로 다가오며 먼저 등을 돌리고 엘레노어와 했던 그 사랑의 빛을 찾아 가슴을 열려고 한다. 혼자 남은 남편의 외로운 사랑에는 용기가 없다.

딸 멜리사는 남자친구의 프러포즈 순간이 두렵다. 한 남자의 부인이 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는 미래의 시계가 멜리사를 두렵게 한다. 타인을 향한 따스한 눈빛이 서툴고 자신의 감정 표현이 어색한 멜리사를 보면서 엄마의 사랑이 세상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게 한 건 아닌가 싶었다.

 

'가족'이란 구성원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을 채우고 있을 때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부모라는 사람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며, 자식이란 나의 핏줄들이 우리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을 거라는. 그러나 가족 구성원 하나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가운데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면 남은 자들의 혼란은 안정이라는 시간을 찾지 못한 채 오래도록 깨진 믿음으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엘레노어의 남편도 딸도 빈자리로 인한 상처로 새로운 삶에 첫발을 떼기를 두려워한다. 결정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상처가 너무나 확대되어 자신을 내려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엘레노어의 편지를 보며 멜리사가 과거를 회상해보고, 아빠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볼 때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그들이 살아갈 내일은 상처가 추억이 되고, 추억이 현실이 되어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생레시피』 속에 담긴 엘레노어의 담담한 표현과 요리에 담긴 맛과 의미를 통해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의 의미로만 단정지을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 부족하고 서툰 사랑으로 서로를 조율해가는 그 사람이 진정한  내 사람이며, '엄마'라는 이름표를 지어준 두 아이에게 세상의 두려움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다. 나는 함께 하는 이들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인생으로 발전시키며 서로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들에게 나는 '함께'하는 인생으로 살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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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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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내가 그 동안 읽은 책에서 만난 분은 인선이란 이름의 처자로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학식이 높아 여자로 태어났음이 안타까운 이이며, 이원수의 아내이자 이율곡의 어머니이다. 학문에 뜻이 없고 귀가 얇은 남편을 나라일 하는 관리로, 비리 파문으로 놓일 당시 그 친구와 인연을 끊게 하여 이원수가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길을 열어준 여인이며, 율곡에게는 배움의 고픔을 해갈시켜주는 첫 스승이자 최고의 스승이다. 우리들에겐 항상 현모양처의 표본처럼 불리는 여인 신사임당.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이 얼마 남지 않음에 어떤 삶을 살았고, 여인의 몸으로 많은 재주를 갖춘 그녀가 그 시대를 어떻게 이겨내며 살았는지 알 수 없음에 항상 신비로운 이로 남아있다. 

"권지예"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서 신사임당은 한 여인으로 가슴속에 핀 꽃 한송이를 평생 간직하며 살아내는, 어떠한 이름표도 필요치 않은 여인으로 우리 곁에 머물게 된다.   

 

# 부모에게 든든하고도 마음 아픈 자식이자, 일곱 자식의 어미였던 여인이야기

​딸만 있는 가정에서 든든한 아들의 역할을 자처하며,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책임을 다한 그녀. 그녀는 사내가 가졌음 세상에 펼쳐보일 만큼의 학문의 깊이와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재주는 부모의 가슴을 애태우기도 하고 든든하게 하기도 한다. 조선이란 시대에 아들 하나 낳지 못한 부인과 평생을 함께 하면서 외동인 부인을 위해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아들과 남편, 아버지 역할을 해 낸 인선의 아버지는 그녀가 가진 재주를 세상에 맘껏 펼쳐보지 못함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재주 없음보다 나은 것이며, 그녀의 재주는 지금 그녀에게 뿐만 아니라 자식에게 그 후세에게 남을 좋은 것이라 그녀의 재주를 아깝다만 생각하지 말라 한다. 인선을 말에 태워 강릉바다를 달려주는 아버지, 인선은 아버지의 품에서 세상을 만나고 그 너머 세상에 대한 꿈을 꾸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계집으로 태어나 좁은 세계에 살다 가는 것이 가련하기도 하다. 여자도 사람인데 너한테만은 세상 구경을 싶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학식과 견문이 넓으면 오히려 여자의 팔자가 기구하다고 한다만 여자도 여자 나름, 그릇이 커서 다 포용할 수 있으면 그런 것들이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후대 자손들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어찌보면 아녀자의 인생은 단지 한생으로 끝나는 건 아니야. 어머니가 훌륭해야 자손이 훌륭한 법" (145쪽)

인선은, 부모의 거짓말로 사랑을 알게 한 준서라는 한 사내를 잊고 결혼을 한다. 살가운 신랑이지만 순간순간 잊을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일곱 자식을 낳아 기르는 어미가 되고, 그 어미의 자리를 위해 사랑 한 번 맘껏 꺼내보지 못한다. 인선은 사랑을 떠나보낸 20년 허망하기만 하고 외롭기만 했을까.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도, 그리 쉽게 꺾여 버렸음에 대한 원망은 남았겠지만,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정한수를 떠놓고 빌때 온 마음을 다해 함께 울어주었던 어머니가 있었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딸의 세상이 좀 더 평탄하기만을 바랬던 아버지가 있었고, 끝을 보일 수 밖에 없었음에 미안해 하며 가슴 아파 해 주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인선은 슬픔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마음의 끝을 서로가 아닌 부모의 힘으로 끊어졌음에 한이 되고 끝없는 애달픔으로 가슴에 한 점을 남겼으리라. 그래서 애닳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그녀도 한 여인으로 사랑하며 살고 싶었을텐데. 그거 하나 바라고 살았는데 그거 하나를 가슴에 묻어만 두어야 했으니, 안아주고 싶은 만큼 애잔하다.  

# 부족한 남편을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함께 걸어준 아내이야기

이원수. 인선의 남편이자 이율곡의 아버지. 그는 홀어머니의 외동아들. 귀하고 귀한 아들로 자란 그는 보호받는데 익숙하며 지아비로서의 책임에 대해 신중하지 못하며 학문이 짧고 끈기가 부족한 인선에게게는 막내동생 같기만 한 그였다. 인선은 그와의 갈증 속에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장점에 눈을 돌리고 그를 끝까지 바라봐주는 아내로의 소임을 다한다. 살가운 남편, 쉬이 포기해버리는 남편, 아이들의 스승 자리에 앉음에도 쉬이 실증내며 돌아서는 남편, 그렇지만 인선은 자신이 다른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어 부족한 사랑을 주었다 생각하며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가 아버지로서 지아비로서의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바라보고 또 바라봐준다. 그게 인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며, 그녀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아내로서의 책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곱디고운 손마디가 거칠어지고 상처로 남아도 자신이 가꾼 가정이 자신의 인내로 지켜진다면 그 고생쯤은 감내하고자 했던 아내였으리라. 얼마나 무너지고 싶었을까, 얼마나 손을 내려놓고 쉬고 싶었을까, 그녀의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갈등과 번뇌가 있었을까. 지아비의 아내로 무너지고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 않고 굳건히 살아온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웠을까 짐작이 된다. 그러기에 그녀의 죽음 앞에 이원수는 한없이 무너져 내린다. 자신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준 아내, 철부지 남편을 지아비로 모시며 훈계와 칭찬 그리고 세상을 바라봐 줄 용기를 준 아내, 이원수에게 아내는 곧 부모 대신이며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이지 않을까 싶다.

 

# 약속을 잊을 수 없어 가슴에 품어야만 했던 사랑이야기

​인선의 가슴에 따스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연과 함께 날아든 소년 준서. 초롱이의 오빠이자 첩의 아들이며 역적 집안의 아들로 인선과는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준서. 인선과 준서는 서로의 가슴에 불어온 바람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는다. 새어나갈까 두려워 꼭꼭 가슴에 담아두었다 동심결로 서로의 마음을 잘 묶어두지만 세상은 둘의 사랑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준서의 거짓된 죽음으로 서로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고, 준서는 인선의 곁에서 머물며 항상 따스한 바람이 되어 불어오지만, 끝내 인선의 가슴속 준서는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남는다.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그 사랑 한 번 맘껏 펼쳐보이지 못하고 가슴 속에 붉은 비단보 안에만 감추고 몰래 열어보아야만 했던 사랑. 그 사랑은 인선의 딸 매창에게는 애절함으로 율곡에게는 어머니이자 한 여인에 대한 낯설음과 배신으로 자리한다. 인선은 모든 거 다 버리고 다른 세상에서 준서와의 삶을 꿈꾸지만 그 삶은 세상이 허락치 않는다. 애절하기만 했던 그들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끝내는 눈물이 방울되어 흐른다. 한번쯤 살아봤으면 한번쯤은 세상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을까. 숨어서 하는 사랑이 아닌 당당하게 얼마나 내보이고 싶었을까. 인선이 그린 금강산을 돌아가는 나그네의 모습에서 준서와의 재회를 꿈꾸는 인선의 마음이 아프다.

 

# 자식에게 스승이자 사랑을 심어준 어머니이야기

일곱 남매의 엄마 인선 그녀는 자식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어머니이다. 타고난 재주가 다르고 성격이 다른 일곱을 바라보며 다른 꿈을 꾸고 다른 기대를 하면서 서로간에 예를 갖추는데 기본을 두었다. 그들에게 어머니는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미물을 사랑으로 표현할 줄 아는 특별한 아녀자이며 첫스승이며 배움이 막혀 길을 잃을 때 해갈을 하며 세상으로의 길을 열어주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첫딸 매창은 어머니의 재주와 모습을 그대로 닮아낸다. 닮아서였을까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가 세상에 내놓지 못했던 비밀을 감추고 가슴으로 끌어안아주는 포용력을 보이며 어머니가 감춰둔 아련한 그리움을 가슴에 담아둔다. 어머니 곁에 앉아 어머니의 그림을 보고 배우고, 어머니의 화첩을 통해 세상을 배운 매창은 어머니가 보여준 세상이 그녀에겐 새로운 세상이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기본인지 충분히 배웠으리라. 매창의 삶이 어머니보다는 좀 더 편안하기만을 바래본다.

이이 율곡은, 어머니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은 자식이다. 배움의 시작도 어머니요, 사랑의 시작도 어머니이다. 그래서였을까. 어머니가 남긴 붉은 비단보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어머니에 대한 믿음의 색이 바래진다. 완고하나 부드러운 어머니, 자식앞에 선 어머니의 모습이 전부일거라 장담했던 자식들에게 어머니의 비밀은 너무 낯설다. 어머니의 비밀을 모두 알고 나면 내가 사랑한 어머니의 모습이 퇴색될까 비밀을 묻어두려 한다.

 

# 여인으로 살아내야만 했던 그 시대 동무이야기

인선에게는 가연이와 초롱. 두 친구가 있다. 서로의 미래 남편을 그려보기도 하고, 서로 열여덟살까지는 결혼하지 말자고 약속도 하는 서로가 가진 재주를 부러워하면서도 인정하는 동무이다. 조선이라는 시대에 여자의 삶은 그들에게 편안함을 주지 못한다. 학식이 깊고 글쓰기에 재주가 뛰어나고 집안이 좋은 가연은 집안 좋은 서울로 결혼해 출가하면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지만 가연의 삶은 외롭고 고독하며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껍데기 인생을 살다가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목숨을 끊는다. 학식으로 반질반질 윤이 나던 가연의 눈은 총기가 없어지고 누군가의 간섭조차도 신경쓰지 않는 여인으로 사랑받지 못하고 가진 재주마저도 그의 삶과 함께 세상에 남겨지지 않은 채 그녀와 함께 목숨을 다한다. 초롱은 첩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그녀의 삶도 누군가의 첩으로 생을 살아간다. 인선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초롱. 초롱은 준서와 인선의 이별을 두고 오해가 쌓였고, 인선이 간직한 준서의 모습에서 미안했으며, 준서의 옷 속에서 나온 동심결에서 그들의 사랑이 맺어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던 두 연인의 사랑 앞에 마음이 무너져내린다. 초롱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인선의 딸 매창을 통해 소녀 인선을 만나며 그리움으로 오해로 쌓인 친구와의 늦은 만남이 한없이 후회된다.

인선. 가연. 초롱 그들의 삶은 모두 편치 않았다. 재주 많은 세 여인이 조선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의 삶을 보며 위로받고 힘을 얻고, 상대의 슬픔을 보면서 내 삶은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얕은 위로를 받으며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초롱이 인선의 거친 손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힘든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바느질감을 준다고 할 때 인선은 녹록치 않은 살림살이지만 자신이 살아온 지금을 부끄럽다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일궈낸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재주를 자식에게 나누면서 살아가는 지금의 인생이 고맙다 여긴다.

 

-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인생을 본다. 자신의 생이든 타인의 생이든. [중략] 나의 손은 가난한 양반가로 시집와서 떡을 만들고, 삯바느질하느라 바늘도 잡고, 일곱 아이들의 똥 기저귀도 빨던 손이었다. 그러면서도 평생 붓을 놓지 않았떤 손이었따. 애써서 살았꼬 부끄럽지 않은 손이다. 나는 내 두 손을 펼쳐 바라본다. 예쁘지 않다. 필부(匹婦)의 손이다.  (375쪽) 

 

세 여인의 삶과 우정, 그들이 여인으로 살아가면서 소리내어 한 번 울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다갔음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 가슴에 담아두고 종이에 쏟아낸 그녀의 예술이야기

인선은 타고난 예술가이다. 학식 또한 깊었으니 예술가의 길을 가는데 당당했으며 보는 것만이 아닌 그 속에 숨겨둔 의미까지 드러내는 재주를 발휘한다. 미물이 모두 다른 빛을 하고 있으며, 계절마다 피는 꽃 또한 다른 색과 다른 향을 풍긴다 여겼다. 자연을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그것에 노력을 기울여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하여 아낌없이 나누었다. 인선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재주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열정과 사랑 그리고 고이 간직하며 혼자만 꺼내어 보아야 했던 첫 마음이 그녀를 더욱 매진하게 한 것이리라. 그녀가 바라본 세상은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책 속에 남아있다. 마치 살아숨쉬는 듯 사실적으로 표현된 곤충과 꽃과 나무. 그 속에 그녀가 담아두고 싶었던 애잔함과 신비로움 그것이 그림에 생명력을 심어주는 것일 것이다.

- "그림이란 그리움이다.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그리워하듯, 마음이 고픈 것을 그리워하며 참을 수 없어 그리는 건지도 몰라." (28쪽) 

- 그림은, 글씨는 내 상처를 먹고 자랐다. 상처가 아플수록 나는 그림을 욕망했다. 그것들은 나의 정인이었다. 오히려 정인이 있어서 내 앞의 삶을 더욱 반듯하게 살아냈다. 모순이었다. 그래, 모순이었다. 그게 삶이 아닐까. 모순이 아니라면 삶이 아니지. 모순을 껴안지 않으면 삶이 아니지. 후회는 없다. (393쪽) 

인선은 힘든 순간마다 그림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해소 방법이며, 내일을 살아가는데 일어설 용기이다. 그림이 있었기에 사랑도 품을 수 있었고,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원망까지 안을 수 있었으며, 자신에게 의지하는 남편과 일곱 자식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녀에게 그림과 글씨는 재주를 넘어 그녀를 살아숨쉬게 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며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애쓴다.

 

"권지예" 작가가 조심스레 풀어놓은 이야기. 읽는 동안 마음이 참 아팠다. 재주가 많아서, 가슴에 품은 사랑 하나를 고이 간직하며 살얼음 걷듯 살았던 날들이 그려져, 힘든 살림살이에 시댁과 친정 보살피며 일곱 자식 어미 노릇하느라 단 한 번 지친 내색할 수 없었던 그 삶에 아팠다.

사임당이 살았던 그 때를 누가 알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사임당의 손에서 그려지고 자식들이 세상에 내놓은 몇 점의 작품과 글을 바탕으로 그려낸 또 하나의 이야기지만 조선시대에 태어난 여인으로, 세상을 빛을 보지 못했을 재주 많은 아녀자의 삶이기에 느껴지고 짐작되어지고 그렇게 여겨져서 더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그녀를 "현모양처"라고 부르며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한 가벼운 보상을 하려 한다. 그녀도 사람이었고, 한 여인이었다. 마음에 품었던 사랑 하나 키워내며 그 사랑 먹으며 살아보고 싶었던 아이따운 여인이었다.

 

- 내 마음은 내 것이다. 나는 나, 내 마음의 주인은 나다. 온갖 생명 가진 존재들 중에서 인간만이 으뜸가는 지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가. 나는 자유로울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우주 안에 혼자이다. 그러니 이 우주 안에서 홀로 자유로이 노닐 것이다. 삶을 조롱하든 숭배하든.(234쪽)

 

이제 인선이자 항아였으며, 사임당이었던 그녀는 일곱 자식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 재주를 남긴 귀한 여인이 되었다. 지아비를 두고 가슴 한 켠에 다른 이를 사랑한 응큼한 여인네라 욕하지 말라. 그녀는 그 응큼함을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포용하며 한 평생을 살아왔다. 그녀가 비우고 간 자리에 여인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누구의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귀한 사랑 품은 여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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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세트 - 전4권 - 1950 ~ 1980년대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김종엽 외 지음, 김종엽 외 / 창비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 창작과 비평사 펴냄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는 역사이다. 아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동안 긴 학창시절동안 너무나 사회데 대해 무관심한 채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무지함을 느끼면서 요즘은 뉴스도 책도 자주 접하며 나만의 공부를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기사를 다루면서 1994년이라는 연도가 나오는 순간, 난 그 때 몇 살이지? 뭐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시대에 난 분명 살아있었고, 갓 대학에 들어갔던 시기인데 저런 사건이, 저런 일이 있었나 하는 멍한 상태가 되었다. 무얼 했을까? 난 그 때 무엇에 열정을 다하고 있었을까를 떠올려보려 했지만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아찔하면서도 지나온 시간이 흐릿하기만 하였다, 그로 인해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하게 되었다.

 

창비에서 출판한 한국 현대 생활문화사가 꼭 나의 과거 같기만 하다. 분명 치열했고, 열심히 살아왔고, 그 시간 속에는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부딪쳐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가 변하면서 그 치열하고 뜨거웠던 그 시대의 기억은 흐릿하기만할 뿐, 그게 지금의 우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현대 생활문화사

1950- 삐라 줍고 댄스홀 가고

1960근대화와 군대화

1970새마을운동과 미니스커트

1980스포츠공화국과 양념통닭

으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할 수 있는 10년 주기로 우리 사회의 변모를 시민들의 삶과 더불어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분단국가이며 민주사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쟁의 아픔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여전히 차별받으며 누군가는 외롭게 그 고통을 짊어진 채 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분명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40년 전의 과거의 모습이 우리의 삶 속에 투영되고 있음을 알아갈수록 마음은 내내 불편하고 아프고 쓰렸다. 많은 이들에게 손가락질 당해야만 했던 양공주도, 강압적인 발길질에 채이고 무너져 내렸던 학생과 많은 시민도 우리의 이웃으로 지금껏 함께 살아가고 있다.

 

21세기의 우리들이 누리는 여유,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가정한다면, 이 또한 감사와 함께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자유로움 그리고 풍부한 문화 생활의 향유가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변화되었고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할 수 있다. 이 또한 과거를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삶만을 위해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 내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어려서 몰랐던, 부모님 세대의 일이라서 몰랐던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싶다. 오늘의 나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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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의 거미줄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5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샬롯의 거미줄 / 엘윈 브룩스 화이트 글 / 시공주니어

 

책을 보면 읽는 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어느 정도의 교양과 수준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책을 권장도서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고 그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들었던 그림책에서 여운을 느낄 때와 청소년들을 위한 책에서 삶의 지침을 자연스럽게 배워나가는 순간, 왜 이 책을 어린이만, 청소년만으로 국한지어 그 연령대가 아니면 잡기 어색하게 만들어놓는지 답답하게 느껴지곤 한다.

 

몇 년 전, 읽고 참 좋다.’라는 느낌으로 접어두었던 책을 지난 달 중고서점에서 다시 구입하여 책장에 꽂아두었다. 더위가 물러나고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조용히 햇살 아래 책을 읽을 짬이 생겨 다시 빼들었다. 책을 접었던 그 느낌 그대로 여전히 좋고, 첫 느낌보다 더 큰 공감과 가슴 한 켠이 뿌듯해져옴을 느낄 수 있었다.

 

표지 속 동물들 사이에서 너무나 편안해 보이는 소녀 펀은 무녀리(한배에서 태어난 돼지 중 첫 번째로 태어난 새끼 돼지)로 태어난 돼지는 약하고 보잘 것 없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아버지의 도끼를 보고 알게 되었다. 펀은 아버지에게 생명의 불공평을 따지며 무녀리 돼지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의 이름이 바로 윌버

윌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곧 헛간의 우리로 들어가 거위부부, 양가족, 생쥐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된다. 윌버는 친구가 있었으면, 놀아줄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 회색거미 샬롯을 만나면서 대단한 돼지, 근사한 돼지, 겸허한 돼지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윌버의 삶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이가 바로 샬롯이다. 샬롯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거미줄에 만족하며, 주어진 삶에 도전하는 멋진 친구이자 조력자이다. 샬롯은 윌버의 고민과 다가올 슬픔에 맞서기 위해 거미줄로 글씨를 만들어 인간들의 눈을 속인다.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믿고 윌버의 위대함으로 흥분하고 윌버의 남은 삶을 편안하게 보장해 준다.

샬롯은 오래도록 윌버의 곁에 머물지 못한다. 자신의 위대한 작품 알주머니를 만들고 생을 마친다. 그 곁을 이제는 윌버가 지켜준다. 여물통을 함께 쓰는 템플턴에게 조건을 걸고 알주머니를 땅으로 내려와 우리 한 켠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봄이 오는 날까지 보살피고 기다려준다. 알주머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새끼거미들은 바람을 따라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고 세 마리는 윌버의 곁에 남아 샬롯의 자리를 메워주며 또 다시 친구의 인연을 맺어간다.

 

샬롯의 거미줄은 인간과 동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인간이 동물들에게 경험과 지혜라는 이름으로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죽음,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무지를 꿰뚫어보는 동물들의 세상. 이것들이 윌버와 샬롯의 만남이 이어지고, 닥쳐오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 잘못을 꼬집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재미있다. 이 한마디로 단정 짓기에는 이야기가 주는 감정의 깊이는 쉽게 결정지을 수가 없다. 윌버의 탈출에 흥분하는 헛간 식구들에게서는 자유의 열망,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자처한 샬롯을 기다리며 깊은 밤을 보내는 윌버의 설렘, 친구의 슬픔에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용기와 위로, 떠날 시간을 알고 정리중인 샬롯의 마지막을 지켜봐주고 샬롯이 남기고간 새끼들에게 첫인사를 남기는 윌버의 책임과 의리. 이 모든 것이 헛간에서 이루어지고 헛간에서  내일을 기다리게 만든다.


윌버의 우직함과 샬롯의 지혜로움, 템플턴의 불평 속에 감춰진 따스함은 인간들의 모습에서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친구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함께 있었기에 생명을 지켜나갈 수 있었으며, 더 나은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그들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 엮어나가며 서로에게 보인 관심이었다고 본다.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이야기.

샬롯의 거미줄​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로 입력완료한다.  

"하지만 불공평해요. 작게 태어난 건 그  돼지 잘못이 아니잖아요.  

만약 제가 태어날 때 몸집이 아주 작았다면, 아빠는 저를 죽이셨겠지요?"(10쪽)


"물론 아니지. 하지만 이건 다른 거야. 작은 어린아이하고 작고 약해빠진 돼지는 같을 수가 없는 거야."


"다르지 않아요. 이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나쁜 일이에요." (11쪽)


"우리의 친구 암거위가 4주에 걸친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의 결과로 지금 모두에게 무언가 보여주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새끼거위들이 태어났습니다. 축하드립니다!" (62쪽)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생명은 무게를 잴 수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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