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레시피
테레사 드리스콜 지음, 공경희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한동안 남편이 식탁을 책임져 주었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이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고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레시피로 자극이 되었던 그 무렵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요리를 해 왔던 남편이 색다른 요리로 식탁을 채워주고, 두 아이를 조수로 임명하면서 함께 주방을 채워주니 지켜보는 내 맘도 안정되고, 식탁 앞에 앉은 두 아이의 표정 또한 달라졌다. 땀 흘리며 셰프 흉내를 낸 신랑도 매우 만족해 했다. 이것이 소박하고도 참 소중한 추억이며 일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두 아이의 곁에 얼마나 오래도록 이 모습으로 살아갈지 잘 모르겠거니와 지금과 같은 평온함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함께 해 줄지 또한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혼자 남은 자식 또는 부모. 그들은 앞으로 얼마나 깊고 어두운 터널을 건너야 빛을 볼 수 있을까 한없이 걱정스럽고 함께 죽음을 맞았다면 혼자 남는 외로움과 두려움은 몰랐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하곤 했다. 그래서 한때 남편에게 우린 정말 사고로 떠나야 한다면 네 명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참 모질고 잔인한 말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혼자 견뎌내며 살아야 하는 그 시간을 누가 곁에서 봐 줄 것이며, 부모만 남는다 해도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까 너무나 무섭기 때문이었다. 그 때마다 남편은 말한다. 네 명이 다함께 살아남으면 된다고.

 

인생레시피』란 제목과 더불어 책소개 글을 보면서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그 뒷이야기를 미리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은 반가움과 걱정스러움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원하지 않았던,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문을 열어야만 했던 엄마 엘레노어. 그녀는 평범한 일상 생활 가운데 가슴에 멍울이 잡히는 아찔한 순간을 맞는다. 그것이 전환점이 되어 그녀의 삶을 또다른 방향으로 안내하게 한다. 여덟살 어린 딸을 두고 엄마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결코 나약한 모습으로 남지 않으려 노력하고  무너져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곤 딸에게 엄마가 꼭 필요할 때, 엄마의 부재로 힘겨움도 가슴으로 끌어안으려 할 때를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 동안 딸과 함께 해 왔던 요리와 그녀의 엄마를 통해 배운 요리들의 레시피를 쓴다. 레시피와 함께 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에 얽힌 추억 그리고 엄마가 너의 곁에 있음을 알리며, 함께 있어 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담담하게 글로 남겨두었다. 그 편지는 딸 멜리사가 스물다섯살이 되던 해에 전달된다.

 

죽음을 앞둔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 얼마나 애닳고 아팠을까. 자신에게 찾아온 암덩어리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며, 그 결과를 부정하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어린 나이에 엄마의 빈자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딸에 대한 미안함과 성장통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혼자 경험해 나가야 하는 그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함에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어 엘레노어의 담담한 편지글에 더 마음이 아파왔다.

그리고 여덟살 멜리사가 스물다섯살이 되어 엄마의 편지가 담긴 책을 받고 먹먹해 하는 모습과 아빠와 남자친구에게 보이지 않으며 숨죽여 한장한장 넘길 때 멜리사의 감정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내내 함께 숨죽여 읽게 되었다.

엘레노어가 떠난 빈자리는 남은 자들에게는 너무나 힘겹다.

남편 맥스는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하다.  다시 사랑을 한다는 것이 두려운 현실로 다가오며 먼저 등을 돌리고 엘레노어와 했던 그 사랑의 빛을 찾아 가슴을 열려고 한다. 혼자 남은 남편의 외로운 사랑에는 용기가 없다.

딸 멜리사는 남자친구의 프러포즈 순간이 두렵다. 한 남자의 부인이 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는 미래의 시계가 멜리사를 두렵게 한다. 타인을 향한 따스한 눈빛이 서툴고 자신의 감정 표현이 어색한 멜리사를 보면서 엄마의 사랑이 세상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게 한 건 아닌가 싶었다.

 

'가족'이란 구성원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을 채우고 있을 때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부모라는 사람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며, 자식이란 나의 핏줄들이 우리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을 거라는. 그러나 가족 구성원 하나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가운데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면 남은 자들의 혼란은 안정이라는 시간을 찾지 못한 채 오래도록 깨진 믿음으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엘레노어의 남편도 딸도 빈자리로 인한 상처로 새로운 삶에 첫발을 떼기를 두려워한다. 결정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상처가 너무나 확대되어 자신을 내려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엘레노어의 편지를 보며 멜리사가 과거를 회상해보고, 아빠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볼 때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그들이 살아갈 내일은 상처가 추억이 되고, 추억이 현실이 되어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생레시피』 속에 담긴 엘레노어의 담담한 표현과 요리에 담긴 맛과 의미를 통해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의 의미로만 단정지을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 부족하고 서툰 사랑으로 서로를 조율해가는 그 사람이 진정한  내 사람이며, '엄마'라는 이름표를 지어준 두 아이에게 세상의 두려움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다. 나는 함께 하는 이들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인생으로 발전시키며 서로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들에게 나는 '함께'하는 인생으로 살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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