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을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리좀적 주체, 부정과 긍정의 詩人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강신주 지음, 천년의상상, 2012.

 

6월은 뜨거운 태양을 위무하는 바람이 있다. 혁명의 기운을 품었던 한국 근현대의 5월과 6월은 그 뜨거움으로 어지럽게 들뜬다. 그 역사의 한 지점에 태양 아래 고결한 한 줄기 선명한 바람결 같은 시인, 김수영이 있다. 삶에 직면하여 자기 길을 개척한 시인은 자기 초월을 통해서 영원회귀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이 아니라, 불모지를 개척하여 자신만의 길을 내어 당당하게 걸어갔다.

 

1921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68년 세상을 등질 때까지 그의 삶은 격정으로 가득했다. 초기 김수영은 현대문명과 도시 생활을 비판하는 모더니스트로 주목을 끌었다. 교편, 잡지사, 신문사를 오가며 시작(詩作)과 번역에 전념하던 그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반공포로의 한계 상황에서 사랑을 잃었고, 4·19혁명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 시인이 되었다. 그가 경험한 포로수용소라는 극단적 공간은 실존적 고민과 맞닿아 있다. 바닥을 내려가 본 사람은 관념으로 시를 쓸 수 없다. ‘반공 포로’가 가지는 정신적 혼란과 고뇌가 그의 시를 다른 시인의 것과 차별화한다. 그의 삶은 더 이상 연애시를, 서정시를 쓸 수 없는 의식과 체험으로 가득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1930년대 이후 서정주·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했다.

 

몇 편의 시로 ‘김수영’을 알고 있다고 자만하던 나를 반성하게 한 책이 바로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이다. 김수영을 통해 한 뼘은 성장했다는 강신주는 자신의 마음 키를 높여준 “김수영을 위하여” 고단했을 10주의 강의를 녹취하고, 정성들여 편집하여 한권의 책으로 박제했다. 아마도 기념비를 세우는 심정이었으리라. 김수영과 함께 기억해야 할 연도, 김수영의 나이를 자신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제한다. 그것은 외부적 압력에 주눅 들어 위축된 삶을 사는 ‘독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선물이기도 하다. 삶, 사랑, 시 쓰기의 매뉴얼을 필요로 하는 우리에게 - 참조할만한 매뉴얼은 없으나 -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참아서 유목할 용기를 주기 위해서 어깨를 토닥여준다.

 

“방법을 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삶을 기획하고 안전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자신이 경험했던 청춘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여 효율적으로 살아가도록 모든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설계사와 투자자 역할을 자청한다.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성공적인 삶은 과시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노후의 안정된 삶을 지키려는 무의식이 일정정도 작정한 것이겠으나, 그 표면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인생은 - 불행인지, 다행인지 - 단 한번으로 완성된다. 동일한 전제를 이유로 - 모험하지 않는 - 안정적인 매끈한 길을 갈수도 있고, 예측할 수 없는 길에서 타자와 부딪히고 어긋나면서 고단한 창조의 삶을 살 수도 있다. 리스크를 최소화한 삶, 정해진 길을 가는 삶은 타자와의 충돌로 미끄러져 가는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없다.

 

시대를 앞서 온 시인은 詩를 통해서 새로운 물결을 만든다. 시대의 요구에 반하는 시인은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체제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갈 수 없는 세포로 구성된 이질적 생물체가 된다. 체제의 억압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려는 주체만이 자각할 수 있다.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자각하는 사람만이 창조하는 삶을 산다. 그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상처 가득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 사랑을 한다. 너와 내가 분리되지 않는 서로 안에 갇힌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참조한 자기 세계를 깨트리는 사랑을 한다.

 

진정한 자유인은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시나 사랑이 가능하려면 타자나 자신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격렬한 사랑의 끝에서, 한 세계를 무너뜨린 시인은 사랑을 잃고 시를 쓴다. 더 이상 서정의 시대는 없다. 우주를 뒤흔들었던 창조의 여진은 시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블루에서 레드로

 

김수영은 나에게 ‘블루’였는데, 저자 강신주와 편집자 김서연에서는 ‘레드’였나 보다. 표지와 간지를 채운 빨간색을 보며, 열정에 비례하여 고단한 삶을 살았을 김수영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퀭한 눈빛의 김수영은 이른 새벽의 창백한 블루다. 그의 눈을 스치면 사물은 다른 존재가 된다. 비, 거미, 팽이가 시인 김수영의 처지를 함의하고 있었듯이 사물은 시인 그 자신이 된다.

 

시인 김수영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자기만의 삶을 단독적으로 살다 갔다. 중심을 해체한 리좀적 주체로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창조했다. 한번으로 해독되지 않는 글, 얇은 반투명 껍질 속에 내밀한 고통이 알알이 박혀 있는 시 세계를 창조했다. 답을 주지 않지만, 길을 보여주는 그는 현란한 언어로 모자이크하지 않았으나 충분히 매혹적이다. 김수영은 각자의 삶을 꿈꾸게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불멸의 시인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도둑 2012-06-18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으앙 어떻게 이렇게 리뷰를 맛깔나에 쓰셨는지요?....
숲님을 위하여~~ 추천을 열 번이라도 누르고 싶어요.
리뷰를 어느 관점에서 쓰는가에 따라 책의 내용이 풍성해 지는가 하면 또 쫀쫀해진단 말입니다
블루에서 레드로 는 압권입니다. 공감합니다...^^

더불어숲 2012-06-1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가 하수에게 분발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시는데요..ㅎ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꽃도둑 2012-06-26 23:37   좋아요 0 | URL
이 무슨 해괴한...^^
같은 하수끼리 왜 이러십니까?,,,,ㅋㅋㅋ
제가 오프라인 모임 중 하나가 '주류와 떨거지 사이에서'인데요...어떤가요?
이제 고수라는 말 못하겠죠?,,,ㅋㅋ
아, 오늘 김수영을 위하여 드뎌~ 올렸어요,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요..
좋은 밤, 웃긴 꿈 꾸세요..(저는 잘 꾸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