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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에 관한 검은책
에마뉘엘 피에라 외 지음, 권지현 옮김, 김기태 감수 / 알마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검열의 사회 문화사, 금하거나 혹은 허하거나.
『검열에 관한 검은 책』 에마뉘엘 피에라 외 지음, 권지현 옮김, 김기태 감수
벤담의 판옵티콘이 떠오른다. 감시하는 자는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 위치하는 다수는 눈부신 빛 속에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는 ‘감시자’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느 시점이 되면 감시하는 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한다.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순간, 이제 다수는 스스로를 감시하고 처벌한다. 18세기 군대와 교도소의 완벽한 모형으로 디자인되었던 판옵티콘은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사회 통제 시스템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철저하게 검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검열은 전 방위로, 타자와 자아를 가리지 않고 도처에 존재한다.
‘나는 꼼수다’의 스타이자,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김용민은 과거에 인터넷 방송의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진보, 보수 양날의 매서운 비판을 감당해야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검열에서 이탈하는 관계로 접기로 한다.) 김용민에 이어 방송인 김구라 또한 십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가 쟁점이 되면서, 잠정적으로 방송을 접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공중파로 진입했지만, 언제나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말들 때문에 제대로 기뻐하지도, 잠을 이루기도 어려웠다는 그의 고백이 과장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지난밤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해도 별로 놀랄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CCTV가 국토 대비 가장 많이 설치한 나라로 유명하다. 치안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사생활 침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는 CCTV 주연배우다.”라고 한다.
『검열에 관한 검은 책』은 - 제목 자체에서 충분히 드러나듯이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여 - 검열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체계적인 책이다. 이 책은 언론, 영화, 조형예술, 서적, 연극, 음악, 게임, 대중매체 등 메시지를 금하거나 제한하는 분야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미풍양속, 권력, 종교와 같은 전통분야와 건강, 인터넷, 시장의 법칙, 소수자 집단, 청소년의 현대분야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스스로를 검열하는 자기검열까지 다루고 있으니, 검열에 관한 한 중요한 키워드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 출신의 철학자, 판사, 변호사, 작가 다수가 집필에 참여하였다.
다양한 검열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2장 변호사인 마갈리 로테가 쓴 <자기 검열>이다. ‘사적 삶’이 중요하다는 것은 현대의 이야기다. ‘사적 삶’은 원초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주체’의 탄생과 함께 발명된 사회 현상이다. 사적인 생각을 표현하는데도 저자의 검열이라는 여과 장치를 거쳐야 한다. “자기 검열은 저자나 기자의 생각을 뿌리부터 뽑아버린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검열보다 더 나쁘다.” 다른 검열은 갈등 상황이나 법적 분쟁을 거치게 마련이지만, 자기 검열은 존재부재로 마무리되고, 여론 형성 자체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해약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를 유지하는 힘은 공권력을 앞지르는 체화된 자기검열에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유머’에 관한 검열은 느슨하다는 점이다. 다수의 국가와 사회에서 유머는 감추고 억압한 감정을 토해내는 특권의 장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대담한 유머는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상징자본으로 기능한다. 유머에 정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반응한 사람이 옹졸한 사람이 된다. 유머에 관대해야 한다는 담론이 사회적인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 개그맨 최효종의 ‘국회의원’ 개그를 가지고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정색을 한 - 국회의원 강용석의 주장이 옳았다 하더라도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유머는 “정치적 부당함이나 저질 취향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신성한 것’에 대한 토론을 재개시킨다.”는 다수의 믿을 때문이다.
“유머는 나의 힘”
최근 유행하는 “소셜테이너”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생각 자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유리한 그들의 직업 세계를 고려한다면, 그들의 용기가 일반인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소셜테이너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기검열의 여과 없이 소신발언을 하는 그들의 용기와 신념에 찬사를 보낸다. 일부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다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엔터네이너는 자신의 업에 충실해야지 사회 참여를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광대 가면”을 벗고, 영향력 있는 시민으로서 의견을 내놓는 순간, 장벽과 위협에 부딪히게 된다. 얼마 전 ‘손석희의 시선 집중’의 인터뷰에 참여한 김제동은 민간인 사찰의 대상으로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들이 사찰 자체가 억압이거나 무섭지는 않았다고 했다. 문제는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는 비슷한 언급을 했다. 검열은 결국 사회참여를 포기하게 만든다.
인권과 관련된 ‘민간인 사찰’ 은 쟁점으로 잠깐 반짝하더니 이제는 어느 매체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연예인 기획사 대표의 연습생 성폭행, 10년도 더 지난 B급 인터넷 방송의 막말 파동 등이다. 민간사찰을 덮은 의제로 세팅된 것이다. 사회 어디에나 검열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런 현상이 되는 순간, 인권은 상실된다.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다양하기 때문에, 독자가 관심 있는 검열에 관해서만 읽어도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 검열이라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권리를 지키는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