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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부국 - 현대한국정치사 강의
김일영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수정주의 논쟁’은 오랫동안 역사학계의 화두였다. 수정주의는 미국 학자 브루스 커밍스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한국전쟁을 둘러싼 기존의 정통적·우파적 시각에 도전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정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오랫동안 침묵해 있던 우파적 시각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 소장 정치학자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가 최근 펴낸 ‘건국과 부국 : 현대 한국 정치사 강의’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은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보수적 학자들이 한꺼번에 쏟아낸 다섯권의 ‘한국 현대사 강좌’ 시리즈 중 가장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김교수는 자신의 시각을 ‘포스트수정주의’라고 말한다. 그것은 “미시적·일국적·도덕적 시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좀더 거시적이고 비교사적 시각에서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커밍스와 그의 아이들’이 가진 시각은 한국 현대사를 ‘오욕의 역사’로 폄훼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의 현대사 해석은 ‘아버지 죽이기’에 다름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는 수정주의에 의해 버림받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건국과 부국’의 아버지로 되살려 놓으려 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1945년 해방에서부터 1972년 유신체제의 성립까지다.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그리고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통치 시기인 셈이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의한 단정 수립은 “통일 정부 수립의 실패”가 아니라 냉전체제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석한다. 현재 “남한 사회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이 전 대통령의 단정 노선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서로 다른 체제 선택은 결과적으로 남한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장면 정부의 경제 발전 계획안을 전면 수정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라는 두가지 선택지 중 박 전 대통령이 택한 것은 후자였다. 세계적으로 이 두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병행시킨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진단. “이러한 가치 선택에 입각할 경우 박정희 정권 하의 경제 발전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수반된 많은 희생은 가치 선택의 결단에 부수되는 불가피한 손실”이 된다.
김교수는 ‘남한은 민족 분열세력이 세운 나라’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해석은 ‘체제 부정적 사고’라고 비판한다. 이 책이 참여정부 등장 이래 계속되고 있는 과거사 논란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최근 상황을 “기억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진보적 시각에서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에 맞서는 보수주의의 도전이라 할 만하다. 그의 보수주의는 과거의 냉전적 보수주의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자료에 대한 꼼꼼한 해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보주의자들에겐 오랜만에 만나는 호적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