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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꿴 호랑이 ㅣ 옛이야기 그림책 2
권문희 글.그림 / 사계절 / 2005년 8월
평점 :
"꿀꺽 쏙~"
"꿀꺽 쏙~"
내가 이 부분을 읽을 때 쯤이면 벌써 아이들은 웃고 난리가 난다. 자기네들도 호랑이 마냥 꿀꺽 삼키는 표정을 했다가 쏙!하고 자기 똥구멍을 꿈실거린다. 내가 꿀꺽, 하면 쏙, 하고 말을 주고 받으며 읽다보면 어느새 책이 끝나 있다. 책에서 눈을 떼고 아이들을 바라보면 너무나 재미있어서, 벌써 끝난게 아쉬워하는 마음들이 보인다. 그 책이 뭔 책이냐고? 바로 <줄줄이 꿴 호랑이>이다.
그림책은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한국 그림책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을 고르자면 바로 이 책 <줄줄이 꿴 호랑이>이다. 저학년이고 고학년이고 이 책을 안좋아하는 어린이는 본 적이 없다. 그러면 어른은 어떠한가. 어른들은 재미있어하다못해 책 주인공을 부러워한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그림책에 홀딱 빠지게 하는 묘미는 무엇일까.
"옛날에 게으른 아이가 살았어.
어찌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고,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정말 저렇게 게으른 아이가 있었다. 어느날 아이의 엄마는 화가 나서 외친다. 아이는 느긋하게 괭이 하나만 달라고 한다. 요 때 아이의 표정을 보면 정말 여유롭고 한가하다. 화면 가득 엄마는 화를 내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 하는데 책 구석에서 실실 여유롭게 웃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차서 웃음이 난다. 아이들도 이 장면에서 피식, 하고 웃는다. 마치 자기네들 엄마같아서 일 것이다. 나도 사실은 우리 엄마를 떠올렸으니까 말이다.
괭이로 커다란 구덩이를 판 후, 동네 똥을 다 모아 붓고, 참깨 한 섬을 그 위에 몽땅 뿌린다. 참깨에서 싹이 나자 가장 튼튼한 녀석 하나만 남긴다. 참깨는 어마어마한 참깨 나무가 되어 주먹만한 참깨를 우르르 쏟아내린다. 아이는 그걸로 참기름 수수십 항아리를 짜서 강아지에게 바르고 먹이고 한다. 여기까지 읽을 때쯤이면 아이들은 왜? 그냥 그거 갖다팔면 부자되잖아요, 한다. 이미 제목은 잊어버린 것이다.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미 사고는 정지 수준이다. 게다가 과장된 그림들은 이야기가 정말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표정들이 살아있는 인물들의 표정은 우리 아이들의 그것같다.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은 정말 살아있는 얼굴을 한다. 이래서 책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를 맡은 호랑이들은 강아지를 낼름 삼키지만, 금새 똥구멍을 빠져나온다. 그렇게 줄을 매단 강아지에 엮인 호랑이가 산을 감쌀 정도였다. 앞 선 호랑이가 뒤의 호랑이에게 먹지마, 라고 말하지만 호랑이들도 아이들처럼 하지말란 건 꼭 한다. 어른들은 이 부분에서 꼭 자신들의 아이를 떠올리며 웃는다. 하지말라해도 해보고 싶은 심정은 비단 아이들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어른들도 얼마나 제약당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야기를 통해 힐링해야하는 것은 아이고 어른이고 마찬가지이다.
호랑이를 수수십마리 잡은 아이는 그 후로 평생 놀고 먹고 부자로 잘 산다. 실제로 가능하냐고 묻는 아이는 여지껏 한 번도 없었다. 그 정도로 거짓말투성이 이야기임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책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아이들은 감정적 해소를 경험한다. 특히 꿀꺽 쏙! 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신나게 웃는다. 어쩜 권문희 작가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만들었을까 늘 읽으면서 감탄한다. 이야기도, 그림도, 말들도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출중하게 재미있다. 재미있어야 읽는다. 그래야 읽고 또 읽는다. 그러다보면 생각을 하게 되고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만약, 배경이 현대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바뀔까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게으른 아이는 구덩이가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려나? 호랑이가 아니라 광고 배너를 달려나? 아님 아이디어로 후원을 받으려나? 그럼 과연 재미있을까? 아마 정말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사실적 판단에서 벗어나 있기에 아이들이 자유로워지게 하는 옛이야기들.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옛이야기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