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는 대체로 감상적이며 일상적인 것도 특이하고 대단히 좋거나 나쁜 것으로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에서 뒤적거려본 많은 여행기가 그러하고,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은 설렘과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반하며 여행자에게는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야 아무려면 어때, 하지만 짜증이 날 때는 책이 호들갑 감상 일색인 경우 -- 바라보는 풍경마저 쓸쓸하고 외롭다거나, 현지인과 잠시 나눈 몇마디에 많이 감동받고 대단한 인연인 척 한다거나, 화려한 낮거리의 이면에 빈민가의 풍경이 가슴을 저민다거나 (어딜 가도 그렇지 않나요? 당신이 사는 곳의 대조적인 사람살이를 들여다보고 그렇게 가슴아파한 적이 있나요? 라고 쏘아주고 싶다) -- 그런데 웬만한 여행기가 이러고보니 여행서는 인터넷 서점에서 고르기가 무섭고, 반대로 좋은 여행기를 읽으면 많이 반갑다. 예를 들면:

느린희망, 유재현 지음, 그린비, 2006

사색기행,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4

에세이 온 아메리카, 이윤기 지음, 월간에세이, 1997

 

김영하의 여행자 - 하이델베르크 (아트북스)는 반가운, 재미있는 책이다. 책은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조금을 곁들인 단편소설과, 하이델베르크의 이런저런 풍경 사진들과, 그 사진들을 찍은 카메라에 대한 에세이.

1. Short Story 밀회

작가가 소설가니까 소설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없으면 실망이지.
주인공(=화자)은 하이델베르크에 간 "여행자"이다. 첫 세장을 읽는 동안은 어? 이것도 에세이인가 했었다. 화자의 시선이 좀 이상하다 싶더니 결말에 이르면 숨이 턱 막힌다. 바로 첫페이지로 돌아와 두 번 읽게 되는,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

홍콩 같은 데서 쇼핑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일주일씩 잘 놀고 오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여행한다" 가 아니라 거기서 "살아보는" 거라고 한다. 나는 "거기서 밥벌이를 하지 않고 일주일 후건 한달 후건 돌아갈 집이 있는 경우에는 거기서 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여전히 이방인의 여행일 뿐이지" 라고 말했었다.

서사-플롯의 호흡이 좋은 소설가이고보니 거기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욕심내지 않을까 별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작가가 하이델베르크를 짧게 여행했는데, 사는 사람인 척 이야기를 썼다면 다음 시리즈는 안 읽었을 것이다. (허구라고 해서 삶의 무게를 가벼이 재거나 현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앞으로의 시리즈에도 계속 재미있는 "여행자"의 이야기가 있기를 바란다.

2. Eyes Wide Shots in Heidelberg 내가 만난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의 전경을, 도시의 대표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아니고, 카페에 앉아서 한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고성에 오르고 상점을 기웃거리는 여행자의 눈이 가닿은 이런저런 풍경이다. 방금 읽은 소설의 사진 버전이라 해도 좋다.  

3. Essay 콘탁스G1과 장 보드리야르

사진기와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8개의 카메라로 8개의 다른 도시를 담는다 한다. 사진기와 별로 친하지 않은 나는, 여행 자체에 대해 쓴 세번째 파트가 좀 더 길었으면 좋겠지만.


이 책을 읽고 하이델베르크에 가고 싶은가 하면, 그건 아니다. 하이델베르크에 간대도 나는 "죽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곳"과는 다른 생각을 할 것이고, 무서우니까 공동묘지는 절대로 안 간다. 소설가 김영하의 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자>를 좋아한다. 여행자니까 할 수 있는 말들 볼 수 있는 것들을, 여행자의 한계를 넘지 않고, 독특한 구성으로 맛있게 풀어낸 책.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하이델베르크를 둥실 떠다니다 온 것 같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몰래 빌려온 것만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가본 도쿄, 나도 가고 친구들도 가서 들은 이야기도 본 사진도 많은 도쿄, 거기서 <여행자>는 무슨 색다른 이야기를 할까, 다음 책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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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이 불어서, 가고싶어 가고싶어 노래를 부르지만, 멀지 비싸지 혼자 가기 난감하지, 게다가 나의 딜레마는 오로라가 너무 보고 싶은데 추운 건 딱 질색이란 말이지. 여름에 가자니 오로라를 볼 수 없고, 겨울에 가자니 춥고.  어쨋거나 사진으로 바람을 달래볼까나, 책을 골라들었다.

사진 좋네, 글도 좋고. 관광객으로서 들뜨지 않은, 하지만 자연의 긴 시간과 그 넓음 속에서 자연과 이웃에 신세지며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임을 아는, 게다가 외지인으로서 알래스카에 정착한 여행자의 시각. 

또 사진인가 하고 주문했더니, 이일을 어째. 사진은 몇장 없고 에세이집이다. 그런데 추천 -- 선물목록에 넣는다.

광활한 대지를 경험하고, 사람의 삶도 자연의 일부임을 몸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럴까. 겸허하고 담담한 글이 읽기 편하고 때때로 재미있고, 슬픈 일을 소재로 한 것도 아닌데, 읽다가 자꾸 눈물이 난다.

의미는 다르지만, 서재 제목도 빌려왔다. 이참에 서재 이야기.  이 게으르고 썰렁한 서재는 <여행의 기록>이다. 관광객으로 1~3일 잠시 들른 곳들의 사진이 대체로이지만, 한동안 미국에 살면서도 오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왜 사진을 잘 안 찍어 두었을까)

그래서 "익숙한 곳, 정착" 을 그리워 했는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보니, 익숙하고 편안할 것을 너무 많이 기대했을까, 또 여기가 낯설다. 그리고는 가끔 다시 미국엘 가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변한 것들이 적고, 일주일 전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다. 그러니까, 늘 그만큼 낯설게 이방인으로 살았는지도...

이젠 처음 가는 어딜 가도 그다지 낯설지 않고 전에도 와본 것 같고,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비슷비슷하구나, 한국에 돌아온지 2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그러니 언제나 여행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디도 "딱 내 자리"라고 느끼지 못하고, 어디에 가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림을 볼 때도 다른 세계, 다른 이의 삶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세상인 SF, 판타지가 좋다)

그런가 하면, 부드럽고 따뜻한 땅에 뿌리내린 나무가 되고 싶다는 소망.
숲에 있어도, 들판에 혼자 서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무.
늘 새로운 곳을 밟고, 삶 자체가 여행인 것 같고, 하지만 "외로운 나그네, 떠돌이"가 아닌,
얼마간의 적적함에 초연하고 주위 풍경과 교감하고 발딛은 곳에 평온하게 녹아드는 나무이기를.

일본에서 전차를 타고 가다가 불쑥 알래스카의 곰을 느끼고 생각하는 호시노 미치오.
이 사진집의 글은 곰에게 말하듯 쓰여져 있다. 
해질녁의 풀숲 속에서 덜컥 마주친 곰의 얼굴이 재밌다.
책을 펼쳐든 것만으로도 빨려 들 것 같은 (동시에 밀어내는 듯도 한) 알래스카의 풍경.
불켜진 텐트 위 밤하늘에 펼쳐진 오로라, 숨을 삼킨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사진과 글은 좋고, 알래스카에선 계속 바람이 불어온다. 가고싶어, 가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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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7-05-3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하는 나무, 담에 빌려줘봐라.
저 위에 사진집 보고 왕창 감동먹은 건 아니지만(어째서인지 난 저런 책들에 동감도 감동도 잘 안 되더라구. 흠.) 보고는 싶네.

좋은사람 2007-06-0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가서 서점 들렀을 때 네가 이 작가 얘기한 게 떠올라서 찾았는데, 이넘의 고유명사 건망증이 도져서 작가 이름이 제대로 생각이 안 나더란 말이지.. 알라스카 샤신집을 외쳤으나 못 알아먹더라. ㅠ.ㅜ
 

고문진보 후집(산문)- 올해 꼭 읽기로 한 묵은 책 중 하나.
고문진보는 송나라의 학자 황견이 당송시대의 유명한 글을 묶은 것인데, 조선 선비들의 필독서였으며 중국에서보다 더 많이 읽히고 인용되었다.

간만에 한문 읽기가 쉽지 않지만, 모르는 글자는 애써 찾지 않고 한글 번역과 주석에 의지해 읽기로 한다. 고 김달진 선생의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바탕으로 최동호 선생님, 윤재빈 선생님이 보완, 교정을 본 데다 주석이 쉽고 충실해서 한자를 좀 띄엄띄엄 읽어도 뜻놓지지 않고 따라 갈 만하다. (그래도 어디 강독반이 있었으면 싶다)

굴원 (屈原 BC 343? - BC277?)은 초나라 懷王의 左徒라는 중책을 맡았으나 중상모략으로 왕의 곁에서 멀어졌고, 離騷는 그 분함을 노래한 것이라 한다. 아래는 나의 요약.

나(굴원)는 혜(蕙)초(椒)난(蘭) (향초 이름들)처럼 높고 곧은 사람이다. 임금이 그런 나를 버리고 간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니 임금이 정사를 잘못할까 걱정스럽다. 요순과 삼왕(하 우왕, 은 탕왕, 주 문왕)의 크고 밝음은 어진 신하를 높이 쓴 데 있다. 이에 비하여 간신의 말에 흔들리고 어진 신하(나)를 내치는 회왕은 약속을 어기고 쉽게 변하는 덕이 부족한 왕이다. 어진 신하를 소금에 절여 죽인 하 걸왕과 다를 바 없다.

반복되는 향초의 비유는 고매한 어진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참한 비유이며 글을 향기롭게 하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니 어째 좀 뻔뻔스럽다. 게다가 왕에 대해서 저렇게 말하면, 듣는 왕은 마음이 돌아서려다가도 더 화가 나겠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아침 저녁 향초 사이에 서 있으며 나의 곧고 바름은 변할 수 없고, 왕이 노여워 하더라도 할말은 해야겠다. 나의 이러한 행동은 지금의 세태에는 맞지 않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세속은 그릇되어 질시하고 아부하는 것을 법도라 하고 나를 모함한다. 어쩌겠나, 나아갈 길을 잘못 살핀 것은 내 잘못이다. 그러나 나의 아름답고 향기로움은 변치 않는다. 나는 그저 옛 성인의 본을 받아 정도를 지켰을 뿐인데, 쫓겨나고 이 지경이 된 것이 분하다.  (상상 시작) 상수를 건너 순 임금을 만나 이 억울함과 나의 변함없이 곧음을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번 토로하고, 네 마리 용이 끄는 봉황 수레를 타고 어진 이를 찾아 이리저리 떠돈다 (상상 끝) 임금에게 다시 한번 내 마음을 전할까 하였으나 말을 건넬 사람은 모조리 간신이니 도로 포기한다. 어진 이를 질투하고 향초가 향기로운줄 모르는 혼탁한 세상에 나는 차마 어울릴 수가 없다. 내 아름다움이 꺾일까 걱정스럽고 잡초가 무성하니 나의 향기로움을 지킬 수 없을 듯하다.

아침에는 목란(木蘭)의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지는 꽃잎을 먹으며 "선녀에게 꽃을 전하고 미인에게 중매쟁이를 보내 결합을 꿈꾼다"는 말로 임금에게 다시 쓰임을 얻고 싶다는 뜻을 전하는 비유와 신화 속 고운 것들을 꺼내어 쓰는 문장은 아름답다. 그러나 세상은 다 이지러지고 나쁘며 나 홀로 곧고 향기롭고 아름답다는 말의 반복은 좀 짜증이 난다. 그러면서 다시 쓰임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구차하게 들린다. 그 역시 말이 서투르게 전해지거나 모략에 의해 왜곡되어 전해진다고, 또 남 탓이다.

(다시 상상 시작) 내 향기로운 뜻과 같은 곳을 찾아 떠돌아 볼까나. 옥과 상아로 만든 수레를 타고 비룡을 몰아 곤륜산, 천진, 적수, 부주산에 들러 황천 가는 길에 옛 고향을 굽어보니 슬프다, 말(비룡)도 마부도 머뭇머뭇한다.
(맺는말) 그만두어라. 날 알아주는 이가 없는 고향을 그리워해서 무엇 하겠는가. 아름다운 정치(美政事)를 할 수 없으니 차라리 팽함(彭咸 은나라 현신. 임금에게 애타가 직언을 하다가 임금이 듣지 않으므로 물에 빠져 죽었다)이 있는 곳을 따르리라.

이소는 문장과 비유가 아름답지만, 간신들에게 둘러싸인 임금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어진 신하의 글이 아니다. 나쁜 것은 남과 세상이고 자신을 내친 왕은 부덕하다고 폄하며 나만 억울해, 억울해 하는 글이다. 스스로 옳고 곧고 향기롭다고 자꾸 말하는 것도 거슬리거니와, 군자는 때를 잘 만나고 그 그릇의 크기를 알아보는 어진 임금을 만나야 제대로 쓰임을 얻는다고 했다, 그렇게 세상이 어지럽거든 때를 잘못 만났다 하며 왜 그저 은둔하지 못하는가. 어부사의 어부처럼,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으리라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 물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

노래하며 노 젓지 못하는가. 어째서 이 글이 버전에 따라서는 <이소경> 이라고도 하며 왜 그렇게 높이 평가되었을까. 쓰임 받지 못하고 당쟁에서 밀려 좌천되거나 유배된 선비들의 심정이 이와 같아서일까. 굴원은 결국 이소에서, 또 어부사에서 스스로 말한 것처럼 "차라리 푸른 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어부사의 사공은 지나가던 은자였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굴원이 스스로 자신의 뜻을 투영하기 위해 지어낸 인물이라고 한다. 물에 빠져 죽을 만큼 강직한 자신의 성품과 "성인은 모든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라 변해가는 것입니다" 고 한 어부의 삶의 자세를 대조하기 위해 등장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죽기 전에 굴원은 어쩌면, 차라리 발씻고 떠나 잊고 사는 어부의 초연함을 따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라고, 내 입장에서 억울한 일 당하고 "나라고 왜 잘못한 일 없겠어" 라고 말할 수는, 당연, 없지. 나야 억울함이 받치면, 어디 자연과 고사에 기댄 비유로 글 쓸 생각이나 하겠어, 실컷 욕이나 하겠지.  남들 다 좋다던 영화 기대 만빵에 보고나니 별로더라, 와 비슷한 기분일거다. 큰 맘 먹고 펼쳐든, 한시간에 네 페이지도 잘 못 읽는 책에 선비들 사랑을 받았다는 글이 어째 맘에 안들고 보니, 제갈량의 출사표를 비롯하여 충신의 도리가 주제인듯한 권1은 일단 뛰어넘고 나중에 읽으리라, 유유자적, 소요하며, 초연한 글들을 먼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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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인가 <현대물리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마지막으로 과학에는 참 문외한으로 살았다.  "우주는 빅뱅으로 생겨났고, 은하간 간격은 멀어지고 있고, 엄청난 질량의 암흑물질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 여기까지.

나름 생물학이라 하면 복제양도 있었고 황우석 난리도 났었고 해서 두런두런 들은 말들도 있지만, 양자물리학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핏 들은 것도 같으나 어차피 그건 콩보다도 작은 세상, 원자가 더 작아져봤자 커져봤자 이러고 있었고, 우주, 그건... 외계인이 있을까, 시간 여행 진짜로 할 수 있게 될까 좀 더 관심은 있지만 나는 아직 달에도 가볼 수 없으니, 우주는 "여기까지" 그대로 아직 깜깜하고 별들이 빛나고 있겠지...

10년이 흘렀다. (페이퍼를 쓰다가 알았다. 젠장!) 강산이 변했다. 내가 흘려 듣지도 않은 사이 물리학은, 나를 둘러싼 우주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이 세계에서 선택하지 않은 다른 가능성들은 버려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우주는 여러 가능성 중 한가지만이 실현되고 있는 우주이며 평행하게 놓인 무수히 많은 다른 우주에서는 또 다른 가능성들이 실현되고 있다... 보르헤스 한때 무지 좋아했었는데... 문학적 상상력만이 아니다. 다중우주 이론은 양자물리학의 실험으로, 위성 프로젝트로 실험이 구상되고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것은 입자가 아니라 끈이나 막이고 11차원에서 구현된다 (초끈이론/M-이론).
빛보다 빠르게 여행할 과학적 가능성. (진짜로 엔서블을 만들어서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고, 우리의 우주가 얼어버리거나 붕괴하기 전에 다른 우주로 이주하려면 과학적으로(!!) 어떤 방법들이 가능할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이론들의 각축, 상호 반박을 시시콜콜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이 또 신이 어쩌구 저쩌구 했는데 어느 물리학자가 "제발 신타령 좀 그만 해라" 랬던가?) 그 관계들은 뜻밖에도  매우 정치적이어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닥 놀랄 일도 아니다만),  처음에는 모두 황당했고 아직 그 어느 것도 증명할 수 없는 이 이론들, 학계에서 어느 줄에 섰는가 어느 학교 출신인가에 따라서 더 지지받고 여러 사람 도움이 받아 공식이 발전하고 실험을 구상할 만큼도 되었겠구나, 누군가의 아이디어는 학계에서 사이가 안좋아 발표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PC에 처박혀 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 미치오 카쿠는 자주 [우아한 방정식] [우아한 이론]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책을 읽을수록 문학적 상상력과 음악과 물리학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들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총물질과 에너지의 4%에 불과하다. 게다가 4% 중...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물질들은 우주의 0.03%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보면 우주론은 현대과학을 원자가설이 탄생하기 전인 100년 전의 시점으로 되돌려놓은 셈이다... 우주의 23%는 미지의 암흑물질dark matter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의 73%는 미지의 암흑에너지dark energy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 이다. 지난 10년간의 발견이 대단한 것도 알겠고 새롭고 다양한 이론들에 우주의 원리가 밝혀질까 하는 기대감도 생기는데, 알긴 뭘 다 알아, 더 모르겠고 궁금하기만 하다 -- 정말 우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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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7-01-1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마저도 재미있게 읽었단 말이냐! 오오! +.+

좋은사람 2007-01-18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마저도 어렵구나...

merced 2007-01-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바뀌는 연휴에 이불 속에서 한시간 읽고 두시간 자고... 이러면서 읽었습니다. ^^
 

을 읽고 있는데 (1/3 조금 지났다) 속도가 느리다.  읽다가 자꾸 딴 생각이 든다.  도정일 교수, 최재천 교수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혼자서 딴데로 가지를 치고 있다.

"예전부터 대담서는 잘 못읽겠더라" 며 별로 읽을 마음 안 갖고 있다가, urblue 님과 참 친한 분이 개인적으로 대담서를 좋아한다며 "남이 공들여 쌓은 지식을 날로 먹는 재미가 있다" 는 얘길 했는데, "오옷! 그런 즐거움이 있을 수 있군요" 하며 urblue 님한테 빌려서는 (그것도, 무거우니까 택배로 받는다) "나도 한번 날로 먹어보리라" 는 일념으로 읽고 있다.

어쨌거나, 학교를 졸업한 이래 주로 보는 책은 소설인데, 그것도 첫 챕터는 대체로 두 번 읽는다. 첫번째는 책의 나레이션에 익숙해지느라 그냥 읽는 거고, 두번째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간다. 1인칭이건 3인칭이건 스토리텔러의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데 힘이 좀 드는 것 같다 (고 스스로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책 한권을 다 읽고 나면 허전하고 새 책을 펼 때는 늘 조금 두렵고, 어느 책이건 반쯤 읽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여러 작가의 단편이 묶인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담서를 볼 때는 말이 오고 갈 때마다 각기 다른 화법을 듣는 모드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자꾸 생각이 새는 것이다. (그나마 이책은 다행인 것이, 계속 같은 두사람이다. 간간이 진행하는 이까지 세명. 네다섯명의 말이 오가는 건 몇페이지 안되는 잡지 기사도 안 읽는다.)  게다가 나는 지금 하는 그 얘기가 재미있는데, 계속 좀 더 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누가 자꾸 말을 막고 다른 얘기를 해버린다. 집중할만 하면 딴 얘기 하고 또 집중할만 하면 딴 얘기 하고... 

나는 인문학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최재천 교수가 해줄 이야기가 많이 궁금한데,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최교수는 슬쩍 몇마디하고 주로 도정일 교수가 이야기한다. 도정일 교수 이야기에도 내가 몰랐던 것 많고, 샤샤삭 걸러지고 정리된 엑기스 (이게 그 "날로 먹는 재미"에 가까운 것이다) 가 있기는 하지만, 그 소제목들로부터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DNA 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등등) 기대했던 바에 비하면 "어, 이 얘긴 벌써 다 끝난 거야?" 하게 된다. 서로 조심스러워 하느라 너무 삼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여전히 왜 최교수님은 별 말씀이 없으십니까, 불만이 쌓이고 있다. 

어쨌거나, 계속 읽어야지. 투덜거린다고 아직 안읽은 나머지 페이지들이 바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사족: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 만 아니라면, 나는 스포일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인물이 죽는지 사는지, 범인이 얘인지 쟤인지 너무 궁금해도 참을 수 없다.  그럴 땐 뒤로 휘리릭 넘어가서 궁금한 걸 해결하고, 읽던 데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계속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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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12-07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내가 대담을 싫어하잖아. 그래도 이 책은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다. 뭐 하던 얘기 중간에 끊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근데 너의 책 읽는 방식이 그런 줄은 몰랐는걸. 빠릿해보여서는 말이지. 아, 느릿느릿 움직인다는 얘기도 하긴 했었지. ㅋㅋ
책 보내준지가 꽤 된 것 같은데, 다 읽어가나?

좋은사람 2006-12-07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대담서 재밌던데. 남이 알고 있는 걸 날로 먹는 재미도 그렇고, 이 사람은 말투가 이렇구나 싶은 것도 있고 그래서 말야. 희곡 읽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가?

나도 스포일러 별로 상관 안해. 그래서 너랑 얘기하는 게 좋아. 책이든 영화든 내용에 관해 마구마구 떠들 수 있어서 말야. :-)

merced 2006-12-0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 선배, 빌려놓고 딴 책들 읽는다고 아직 절반도 안읽었어요 -.- 느리고 게으르다니까요... (하지만 다음주쯤 택배 한 번 쏩니다)

좋은사람, 그러니까 난 그 얄포름한 백한개의 모놀로그도 못 읽겠더라. 하루에 한개씩 읽어야지,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결말 좀 알았다고 스포일드 할 게 뭐 있냐.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