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니, 학교 후문가에 장미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어버이날도 지났고, 스승의 날도 지났는데, 아직 뭐가 남았길래 꽃타령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하긴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은 카네이션으로 불이 났을 것인데, 오늘은 장미 한 송이 송이들이 어여쁘게 포장되어 거리에 진열되어 있었다. 아직도 꽃 줄 날이 남았는가보다 했다. 그러고보니 이 꽃 주는 5월에 어느 누군가에게도 꽃을 줘 본 기억이 없다. 멀리 계시는 부모님께 자못 송구스럽다.

왠 꽃일까 했던 의문은 이내, 오늘이 5월의 셋째 주 월요일, 성년의 날이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물어 듣고야 해결되었다. "만 20세가 된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성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을 부여하는 날"로 문화관광부까지 나서서 주관하는 날이란다. 기실은 장미꽃 상인들이 주관에 후원에, 북치고 장구치는 것도 모자라 꽹과리까지 요란스레 쳐 대는 날인 줄 알았다. 내가 성년이 되던 날, 후배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받은 기억도 나고, 더불어 백석의 시집을 받은 감회로 잠깐은 즐겁기도 하였다. 세월은 훌쩍 지나고 나는 낼모레 서른을 바라보는 서른 즈음,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고인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지금이다. 그런데, 이 땅의 젊은 동량(棟梁)들은 오늘 성인이 되었다. 기쁜 일이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이 땅의 성인이 된 그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 축하하는 바이다.

그런데 왜 일까? 어제 나는 이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은 탓으려니 했다. 이 땅의 이 젊은이들은 오늘 성년이 되었지만, 성년이 되기도 전에, 아니 세상에 태어나 울음 울고, 제 어미 아비에게 재롱도 부리기 전에, 굶주리어 죽어간 그들이 생각난 이유는. 브라질 세아라 주의 크라테우스라는 곳엔 "태어난 지 며칠 혹은 몇 주 되지 않아 배고픔과 쇠약, 설사, 탈수 등으로 숨진 이름 없는 아기들의 무덤", 곧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가 있다는데, 그들은 오늘 이 기쁜 성년의 날을 맞아 보지도 못하고 참혹한 굶주림에 그렇게 이름도 없이 죽어갔단다.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이것은 그 무슨 아이러니일까? 우리 이 땅의 아이들이 성년을 맞은 오늘은 그들, 그 '이름도 없이' 죽어간 그 아이들의 죽음의 또다른 비극은 아닐까? 갑자기 마음 한 켠이 답답하고 울울(鬱鬱)하다.

왜 하필 어제 나는 이 책을 읽었고, 또한 왜 하필 오늘은 '성년의 날'이어서, 붉게 활짝핀 장미꽃 한 송이 받아보지 못하고 굶어 죽어간 저 절반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울적해지는가? 오늘 이 땅의 성년을 맞은 이들에게 살갑게 축하의 말을 전하지 못하며 하루 종일을 힘없게 지내야 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그리고 그 절반은 굶주리지 않으며, 또한 그 절반은 배불리 먹으며, 또 그 절반은 배가 불러터져 남겨 버리는가? 무엇인가 불합리한 것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을 것만 같다. 또한 그래서는 더더욱 안 될 것만 같다. 아니 결코 그래서는 안 되어야 한다.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장 지글러는 그 원인들이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인해 구호 조치가 무색해지는 현실, 구호조직의 활동과 딜레마,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들, 소는 배불리 먹고 사람은 굷는 현실, 사막화와 삼림파괴의 영향,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특히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금융과두지배",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무차별적인 정책 등을 들고 있다. 가난은 결코 가난한 자들의 죄가 아니라는 것, 그들이 게으르고 무능력해서도 아니고, 타고난 원죄, 죄앗을 씨앗을 품어서도 아니라는 얘기다. 모든 것은 저 저열(低劣)한 이 세계의 돈의 지배자들의 탐욕과 그들의 교묘한 이데올로기에 갖혀서 절반의 굶주리어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무관심한 우리들에게 그들의 굶어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 아니, 그것은 큰 벌 받아 마땅할 죄악이다.

'비참(悲慘)'하다는 말은 오늘날 이 세상의 현실에 두고 말해야만 타당할 것이다.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직"한 현실이 이것 말고 그 무엇이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의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저 브라질의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는 늘어만 가고 있다. 젖먹이 아이들의 분유에도 세계의 자본과 금융과두지배자들의 돈놀이가 존재하고, 쌀 한 톨, 밀 한 알 가지지 못해 굶주리 배를 부여잡을 힘도 없는 아프리카의 참혹한 민중들 뒤로 몇몇 금융자본가들의 베팅게임에 남아돌아 썩아가고 있는 이 불합리한 현실 말고 그 어디에 '비참'이란 말을 붙일 수 있으랴? 나는 다른 것을 찾는 것을 포기하겠다.

저자 장 지글러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해 무척이나 염려하고 있다. 부록으로 주경복 교수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명료한 설명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잘 신자유주의를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신자유주의가 그 무엇이더라도, 이 세상을 어떤 놈들이 좌지우지하며 주물러 대더라도, 저 죽어가는 이들을 밟고 내가 살아간다는 현실은 정말 말도 안된다는 사실을. 굶어 죽어가는 절반을 두고, 우리 절반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곧 그 절반이 굶어 죽어 사라진 후, 우리 절반의 절반이 또 그 꼴을 당하고야 말 것이라는 자명한 예측을 나의 이 멍청한 머리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말하나 마나, 세상의 절반이 굶어 죽어가는 이 현실은 불합리와 비참함과 죄악이라는 것을, 나는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겠다.

몇몇 매체들에서 오지를 탐험하고, 기아와 전쟁의 현장을 탐방하고, 구호의 손길을 사뿐히 뻗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때 몇 번의 전화다이얼을 돌려본 기억으로 오늘 나는 생색이라도 낼 수 있는 그런 인종이 못된다. 가끔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찔끔했었다고, 어떻게 저런 일이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느냐고 분노의 혈기를 머리끝까지 솟아올렸다고, '쯧쯧쯧' 세치 혀로 세상의 현실을 한탄했었던 적 있었노라고 자랑스레 떠버릴 수 있는 그런 인종 또한 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오늘 이 성년의 날이 마냥 기쁘지 않았던 것은. 아 이 못난 인간아! 아 우리 못난 인간들아! 오늘 우리는 울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글러의 말에 난 겸허히 귀 기울여 경청해야 할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과연 그럴까? 내가 그런 생명체이긴 할 걸까? 오늘 내가 하루 종일 우울했었던 것에서 내가 그런 생명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을 뿐이다. 누가 그랬을까?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그런데 '빵'도 없이는 더더욱 살 수 없고, 어느 꽃 피는 봄날 화창한 5월의 셋째 주 월요일에 붉은 장미 한 송이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 저 성년의 장미 한 송이 받아든 그 젊은이는 알고 있을까?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했다지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픈 맘도 전혀 없이 배부른 우리들은, '배부른 돼지'가 못내 부러울 저 굶어죽어가는 세상의 절반의 사람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우리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내, 내가 이런 글쓰기의 여유나마 즐기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굶주리어, 너무나 굶주리어 배고픔의 울음 한 번 크게 울지 못하고 죽어간 아이들의 영령들에 미안한 마음 가득하다. 또 답답해진다. 그냥 희망만을 부여 잡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댓글(8) 먼댓글(1)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1:58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마늘빵 2007-05-2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곧 읽어볼 생각입니다. :)

멜기세덱 2007-05-2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셔야 합니다. 그들이 '아프'지 않게 말이에요.ㅎㅎ

마노아 2007-05-31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이군요! 멜기세덱님 축하해요^0^

멜기세덱 2007-06-01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황스럽네요.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한숨쉬고 한탄하고 푸념에 절망만 늘어놓은 것을...이주의 마이리뷰라니...

프레이야 2007-06-0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이매지 2007-06-01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님 조금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멜기세덱 2007-06-01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배혜경님, 이매지님>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7-06-0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많이 늦었지만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