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 -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2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EBS다큐 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4부 '반쪽을 위한 전략, 짝짓기'편을 기초로하고 1부 '소리없는 지배, 식물'편도 일부 반영하며 그동안 새로운 내용을 보강하여 <짝짓기>란 제목으로 탄생했다.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짝짓기>!

 

'짝짓기'란 무엇일까? 라는 단순한 질문 부터.

'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진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생물은 모두 '성'을 가지고 있을까?

남과 여,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하는 것이 정답일까?

생물들은 '번식'이 최고의 과제 일까?

왜? 끊임없이 변화할까?

어째서 짝짓기를 하고 자손을 남기려 하는 걸까?

인간에게 성은 무엇일까?

다른 생물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짝짓기는 본능일까?

본능은 무엇일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찾는게 답일까?

 

책을 접하는 순간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지적 호기심의 충족! 책에서 모든 의문을 풀 수 있을까?

 

책은 4가지 파트로 나뉘어 세세하면서도 쉽게 설명하고 있어 많은 질문들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파트 1. 성의 기원과 진화'에서는 생명의 시작부터 성이 탄생하기 까지 그리고 진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길고 긴 이야기를 줄이면 약 40억년전 지구에는 생명이 탄생했고 시간이 흘러 우연히 '성'이 나타났고 퍼졌다. 

'진화'란 세포분열, 번식의 과정에서 나타난 우연이다. '성'또한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에는 의미가 없다. '진화'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진화'에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진화'에 목적이 없기때문에 '진화'의 산물인 '성' 또한 목적이 없다.

단지 '성'이 나타났고 이 우연함이 살아남아 퍼졌다.

 '성'이란 감수분열이며 동시에 유전자재조합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에는 '성'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과 여', '암컷과 수컷'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들은 '번식'이 최고의 과제 일까?

왜 끊임없이 '번식'하는 걸까?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번식'한 유전자가 살아 남았을 뿐이다.

모든 생명에는 '수명'이 있다.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양분을 모으고 세포를 분열한 즉 '번식'한 개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생물 DNA에는 '번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번식'이 운명이 되어 버린 것같다.

 

후손을 남기지 못한 생물은 사라졌고, '짝짓기'는  살아남음의 증거가 됐다.

 

파트 2. 암컷과 수컷 부분에서는 눈물겨운 살아남음의 경쟁을 본다.

 

파트 1에서 우연하지만 '성'이 등장했고 그로 인해 지구상의 생물종이 다양해 졌다는 것을 알았다.

파트 2에서는 '암컷 과 수컷'이라는 더 깊은 호기심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동물과 식물 곤충까지 암컷과 수컷이 있는 모든 생물들의 눈물겨운 생존경쟁.

 

암과 수는 어떻게 구분할까?

생식세포의 크기로 구분한다. 생식세포가 큰 쪽은 암컷, 작은쪽은 수컷,

 

암컷과 수컷은 어떻게 결정될까?

인간의 경우에는 염색체로 결정된다. Y염색체가 있으면 남성, Y염색체가 없으면 여성,

포유류의경우 거의 대부분이 인간처럼 Y염색체로 암컷과 수컷이 결정된다.

파충류의 경우에는 주변 온도에 따라 결정되고, 개미의 경우에는 유성생식이냐 무성생식이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어떻게 결정되든 거의 대부분의 생물들은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이 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두가지로 구분되게 됐을까? 정립되진 않았지만 짝짓기하는 양쪽의 긴 타협의 결과라는 가설과 세포내 소기관들의 충돌이라는 가설, 그리고 또하나는 효율성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자세한 설명은 책에서)

 

이런 가설들이 다른 가설을 배척하지 않는다. 결국 성이 둘로 나뉜것은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했고, 결국에는 성을 둘로 나눈것이 생존률이 높았고, 시간이 흘러 퍼졌을 것이다.

 

'성'이 나뉘면서 수컷들은 목숨건 경쟁을 해야만 됐다.

생존을 위한 목숨건 투쟁! 경쟁에서 지만 사라진다. 반대로 이기면 살아남는다.

 

암컷은 선택을 하고 수컷은 경쟁을 한다.

짝짓기를 위한 경쟁은 결국 생존을 위한 경쟁이고 종을 보존하기 위한 경쟁이다.

 

어떻게 암과 수로 나뉘고 경쟁을 하게 됐을까?

이역시 결국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다. 목적없는 진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다세포 생물로 진화를 했고 감수분열과 유전자재조합을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개체가 살아 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양한 종들이 등장했고, 유전자재조합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또 나눠졌다.

서로 유전자재조합을 할 수 있는 짝을 찾은 생물이 살아 남았고 역시 퍼져갔다.

 

시간이 흘러 점점더 많은 생물들이 나타났고 먹이경쟁이 심해졌다.

번식을 위해서는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필수 과정이다.

 

결국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생물이 생겼고 또 그 생물을 먹이로하는 생물들이 등장했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우연한 진화'의 결과이다.

 

살아남음, '번식'이라는 생명 최대의 과제를 위해 '암컷과 수컷'은 서로 경쟁을 한다.

경쟁의 대상은 같은 종의 암컷과 수컷이다. 경쟁에서 이긴쪽은 짝짓기를 하고 후손을 남긴다.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은 후손을...

 

파트 3. 성의 무지개는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성'의 다양성과, 종의 다양성, 생물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특성으로 써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성'은 정말 다양하다. 생식의 방법에 따라서도 다양성이 나뉜다. 종족의 생활 모습, 생활 환경에 따라서도 다양해 진다. 땅속에서 사는 종, 심해에서 살아가는 종, 하늘에서, 섬에서, 나무에서 주변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살아남은 다양한 종만큼이나 성역시 다양하다.

 

'성'의 다양성 뿐만 아니라 '관계'의 다양성 이기도 하다.

지구상에는 정말 여러 종의 생물들이 살아간다. 생물들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생활 모습도 다양하다.

현대 인간은 대부분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몇몇 지역에서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곳도 있다.

 

시야를 넓혀 지구를 바라보면 어떨까?

지구상에 많은 생물들중에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은 드물다. 인간과 같은 일부일처제는 발견하지 못했다.

 

일부다처, 일처다부, 다처다부 처럼 종에 따라  짝짓기를 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암컷과 수컷. 서로가 서로만 평생을 책임지는 종도 있고, 암컷 하나다 여러 수컷을 거느린 경우 반대로 수컷하나가 암컷 여럿을 거느린 경우, 또는 암컷 수컷 모두가 가리지 않고 짝짓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암컷 혼자 생식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종은 수시로 성을 바꾸기도 한다.

 

자연에서 바라보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인간의 경우가 예외에 속한다.

 

다양한 형태의 짝짓기 방법이 있는데 왜 인간은 일부일처제가 되었을까?

 

파트 4. 인간의 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인간이 가지는 진화적 특징, 특히 번식과 관련된 여러 특징들은 인류의 선조들이 몇 백만년의 시간을 통해 진화시켜온 것들이다.

 

둘째. 인간이 소위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고 발전시켜온 기간은 고작 1만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사회적 문명적 변화가 진화적 결론으로 드러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셋째. 수백만 년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적응 과제는 여타 동물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세가지를 명심하고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가지게 된것을 이해하기 쉽다.

다양한 요인적 특성들로 인해 일부일처제가 됐지만 결국 일부일처제는 과거 수백만년전 인류의 선조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특성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역사는 대략 300만년이라고 한다. 그중 299만년동안 축적되어온 유전적 변화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게끔 진화됐다. 그리고 농업혁명을 통해 정착생활을 하고 문명과 사회를 발전시켜온 역사는 겨우 1만년에 불과하다. 필요로 인해 인류의 가족형태는 다양하게 변했지만 기본적으로 일부일처제를 택한것은 선조들부터 누적되어온 진화의 결과!! 문명의 영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다.

 

 

최근 뉴스에서 성기능촉진제, 일명 여성용 비아그라문제가 크게 다뤄 졌다.

'성'은 목적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번식'이라는 목적과 '성'이 부합되어 '성'은 '번식'이라는 목적이 생겼다.

'오르가즘'이란것 역시 '성'과 '번식'으로 인해 생겨났다. 수컷에게 열심히 '번식'을 하도록 하는 보상 같은 것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흘러 현대에 와서는 관계, 교감의 영역으로 확장 되었다.

 

목적이 없던 '성'에서 '번식'이란 목적이 생겼고, 이젠 그 '목적'이 '오르가즘'으로 이동 하는 것 같다.

 

'번식'에 성공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한 '짝짓기'가 이젠 '오르가즘'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가기에 발기부전치료와 여성흥분제 같은 약품들이 등장했고 시장이 커진것은 아닐까?

 

'성'에는 목적이 없다. '오르가즘'또한 목적이 없다. 우연의 산물이며 결과일 뿐이다.

'삶'역시 목적이 없다. 태어나면서 부터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생명은 없다.

그저 '짝짓기'의 결과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결과'다.

'목적'을 만드는 것은 '결과'를 보고 유추하는 인간들의 잣대다.

 

보편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인간의 시선일 뿐이다.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다.

경쟁력을 가졌으면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뿐이다.

 

지구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 했고 그에 맞춰 살아남는 종들도 끊임없이 변했을 뿐이다.

우연한 돌연변이가 살아남아 개체를 늘려 보편적인 것이 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진화'라 부를 뿐이다.

 

양분을 모와 둘로 나눠지는 것. 목적 없는 이 행위가 최초의 생명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DNA의 결과라면

살아가는 것의 이유는 '짝짓기'를 통한 새로운 DNA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성체가 될때 까지 긴~ 시간을 양분을 섭취하며 지내다 때가 되어 후손을 남긴다. 대부분의 물고기와 곤충들에게서 볼수 있는 현상을 동물로 옮겨본다면 어떨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개체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들이 필요했다.

한번에 늘닐수있는 개체를 한정짓는 것. 그리고 시간을 더 쓰게 되는 것. 그렇게 여러번 반복하며 개체를 늘려간다. DNA속의 명령에 의해서.

 

인간으로 보면 어떨까?

과거에 비한다면 수명을 늘었고 일생동안 출산하는 수도 줄었다. 개체를 늘리기 위함이라면 불리한 선택일 텐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어쩌면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 많아 이젠 개체를 늘리지 않아도 될거라는 DNA의 예견일까?

 

좀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인간의 수명이 더욱 길어지고 어쩌면 영원히 살아가는 개체가 되어 버리진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더이상 살아남기 위해 '번식'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죽기전에 단 한번만 후손을 남기지는 않을까?  마치 원시 원핵생물이 둘로 분열되고 사라지는 것처럼.

 

책을 다 읽고 원초적인 의문이 하나 생겼다.

최초에 DNA는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해서 원시단세포생명이 생겨났을까? 하는.

생명의 기원. 그 시작은 우주의 시작 만큼이나 비밀스럽다. 언젠가는 이런 의문또한 해소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저자의 마지막 말로 마무리 한다.

 

"어떤 한 가지가 성의 유일한 목적일 필요도, 절대 요소일 수도 없다. 그 선택은 1만년의 문명을 거친, 그리고 앞으로도 긴 시간을 진화론적인 삶과 더불어 문화적 삶을 살아나갈 인류 구성원 각자가 선택해나갈 일이다. 다만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만 않는 한에 있어서 모든 것은 성에 대한 인류의 이해와 활용을 더 넓고 깊게 해줄 것이다."-p.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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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로망스 -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이동섭의 로망스시리즈
이동섭 글.사진 / 앨리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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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이별여행을 떠난 이야기가 있다.

헤어짐에 그녀를 잊기 위해 떠난 남자의 파리여행기.

 

윤진서의 <파리 빌라>와는 다르게 여기선 주인공이 확실하다.

글쓴이 '이동섭'자신의 이야기!

 

잊기위함의 여행보다는 이별의 끝을 위한 여행...

 

남자의 이야기 이면서... <파리 빌라>만큼의 몰입은 없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연달아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미 마음속 상처가 치유됐기에 덤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랑'... 그리고 '이별'...

 

사랑으로 행복했고

이별로 성장했다는 남자의 고백...

 

남자의 이별과 여자의 이별...

 

이동섭의 글이 담담한건 아마도 남자의 이야기 이기에...

궁굼함도... 공감도 없었다...

 

새벽에 푹빠졌던 생각들은 이미 정리가 되었고.

'사랑'이란 역시 다시한번 그 감정을 느끼기 전까지는

새로움이란 없으며... '사랑'또한 관계속에 이어가는 것이기에...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럼에도 <파리 빌라>는 '그녀'의 이야기 였기에

잠시나마 궁굼했고, 잠깐이나마 기억들을 돌아보며 추억으로 남겼지만...

 

'나'의 이별은 '이동섭'의 이별과는 다르기에 그의 문장들이 담담하게 지나 갔다.

 

파리 로망스는... '이동섭'자신을 위한 로망스...

스스로 이별했음을 확인하기 위한 그만의 방법...

아마도 그가 사랑 했던 그녀만이 이 글을 읽고선 조금이나마 생각했을 것 같다.

 

이별이란 함께 하지 못할 미래의 상실이란말이 남는다...

 

만남이란... 함께할 미래의 획득이려나?.ㅎㅎㅎ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지...

시간이 더 지나다 보면 죽는 순간까지 함께할 누군가를 만나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사랑'을 알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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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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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진서.

내가 아는 윤진서의 직업은 배우이다.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인터넷 뉴스로 종종 접할뿐 관심가지고 지켜보던 그런 배우는 아니다.

 

연예인이 또 책을 썼네.. 정도로 생각하던 윤진서의 '파리빌라'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서가를 정리하다가 보게된 한문장.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온다는 인생의 축제 같은 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이 한문장에 끌려 읽게 됐다.

 

연인과의 이별... 그 충격에서 도망치듯 떠난 여행...

별것 아닌듯 했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몰입했다.

 

<파리 빌라>에 등장하는 두 여자, 주인공과 친구의 이야기.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아니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윤진서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책을 읽는 독자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에 살면서 한번 쯤은.. 어쩌면 여러번 일수도 있는 일... 깊히 사랑했던 이와의 이별이란 감정에 사로 잡혀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무작정의 도망인지 치유의 여행인지... 떠나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것 같다.

당장의 아픔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말 그대로 '무작정'의 여행이였으니까.

뉴욕에서 파리로, 인도와 남프랑스 마르세유, 아비뇽으로, 아테네에 머물기도 하며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 남자'에... '자신'에... '사랑'이란 상념에 젖는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서 '자신'을 찾아 새로운 활력은 얻는다.

 

'무작정'에서 '치유'여행이 된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빰을 적시는 눈물을 느끼게 됐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온다는 그 시간...

오랜 기억속의 그 시간들이 떠오르며 <파리 빌라>속의 그녀와는 같으면서 다른 시간을 흘려보낸 '사랑'때문에...

치유되지 않고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상처가 그녀의 이야기에 아문다...

 

늦은 새벽시간에 읽은 <파리 빌라>  시간이란 녀석에 흐릿해진 기억이

다시금 뚜렸해지면서 말라버린 것 같던 눈물이 흐르고 나서야 게운함을 느꼈다.

 

<파리 빌라>속의 그녀 처럼...

나에게 찾아온 인생의 축제같은 시간을 이제서야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털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을...

 

한바탕 쏟고 나면 게운한 것을...

알게 모르게 참고 덮었던 것들...'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강함이라는 것이 정답처럼 살아 왔던 지난 날들을 털고 이제서야 새로운 시작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남자'의 만남과 '여자'의 만남

'남자'의 이별과 '여자'의 이별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

 

같으면서도 다름을... 또 다르면서도 같음을...

 

'나'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몰랐었다.

 

새벽 2시.. 라는 묘한 시간의 마력때문일 수도...

어쩌면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에게 '고독'과 '사색'이 필요하다고 말해줄 그 무엇을

윤진서의 소설 <파리 빌라>로 인해서 채워졌다...

 

아직 아물지 않은 사랑의 상처가 있다면...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둔 '사랑'이 있다면...

<파리 빌라>속의 그녀의 여행을 따라갔다 오면 치유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이란 것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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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 특강 - 생각 정리의 기술
김민영.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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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만 독후감으로. 아니.. 리뷰로??.. 당분간은..ㅎㅎ)

 

오랜만에 딱 마음에 맞는 책을 만났다.

그동안 어떻게 할까 고민만 많았고 발전은 없었는데.

내 문제를 파악하고 수정할 수 있는 작은 단서를 준 책!

바로 <서평 글쓰기 특강>!

 

서평? 리뷰? 블로그로 만들기로 한지 1년 6개월!!

아무런 방향성 없이 일단 마음에 드는 책을 무조건 읽었다.

글쓰는 것도 재주가 없어 무작정 작성했다.

 

리뷰, 서평, 비평, 독후감.

목적에 따라 글이 달라야 하지만...

 

책을 읽고 어떻게 남겨야 될지 막막한 상황에서

글쓰기에 대한 기초없이 무작정 읽은 책은 어떻게든 남겨보고 싶어서 시작한 블로그

 

블로그 이웃과 하루 방문자수에는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그저 하루 하루 책을 읽고 다 읽고 나면 무조건 남겨두기를 1년 남짓.

어느날 부터인가 재대로 된 글을 쓰고 싶어졌다.

 

글의 목적조차 정하지 않고 무작정 쏟아 냈던 꽤 많은 양의 글들...

이젠 그 글들은 독후감상문... 이라는 아주 큰 틀속에서만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리뷰...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있는 그대로 아주 주관적으로 작성한 것

이라고 한다면

 

서평...

책을 읽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한 글을 말한다.

그 대상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되기도 책을 읽은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평에는 "객관성"이 확보 되어야 한다는 것

 

작가에 대한 정보, 책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되고, 책의 내용을 요학한 글과

작가가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방향성을 읽어 내고, 책 속의 키워드를 찾고

간략한 의견이 함께 쓰인다면 그것이 바로 서평!

 

서평은 비평의 한 종류라고 봐도 무방하니..

내 선택이 남았다.

 

우선 리뷰를 쓸것인지 서평을 쓸것인지 먼저 결정하는 것.

최근 여러 서평들을 접하고 나니 단순한 나열의 감상인 리뷰 보다는

객관적인 정보가 첨가되고 방향성이 있는 서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앞으로의 글들을 서평을 써보도록 노력해야 겠다.

(오늘까지만 리뷰로 쓰는 걸로.ㅎㅎ)

 

책에 별점을 주는 것도 그저 막연하게 3점을 기준으로 보통 4점이나 5점을 주곤 했는데

이젠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선택 해야 겠다.

 

정말 보통 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면 3점.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팍팍 들면 4점.

이건 정말 꼭 읽어봐야되!! 라면 5점...

 

2점은.. 생각보다 내용이 부실하다. 방향이 어지럽다.

책임에도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는 것.

 

1점은 그것 조차 안되는.. 사고의 확장과 생각의 깊히가 느껴지지 않고.

그저 문자의 나열들 뿐인 책들이 되겠지...

 

음.. 1점을 주는 책들이 과연 있을까?

 

책으로 탄생하는 순간 쓰레기 같은 것은 없을텐데...

 

그럼에도 배울점을 하나라도 못찾았다면 과감하게 1점을 주기로!!

 

.

.

.

글 쓰기에도 전략이 필요하고 공부가 필요하다.

글의 목적을 정한다.

어떤 글을 쓸지 주제도 정한다.

 

서평은

목적과 주제가 이미 잡혀 있다. 책만 객관적으로 잘 읽을 수 있다면 쉽게 두단계를 건너뛸 수 있으니

알고보면 쉬운 글쓰기가 될거라는...

 

서평을 처음 써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5가지의 서평의 틀도 있으니 틀에 맞춰 써보는 연습도 할 수 있고.

 

보통 4문단으로 구성되며 서평의 양은 ... A4 용지 1장에서 2장사이가 적당한가보다.

너무 많은면 지루해 지고

너무 짦으면 정보를 다 담기 힘들다니.

 

전문가분들의 경험에서 나온 양이니까 그게 딱 정당한 듯...

 

책에서 소개하는 서평에 비교를 해본다면.

이글은 역시나 리뷰에 해당하며 양과 질, 형식에서 서평이라고 불릴수 없겠다.ㅎㅎ

 

음... 독후감? 이라는 리뷰는 지금처럼 이렇게 남기고.

이것을 기초로 해서 서평란을 따로 만들어 봐야겠다.

 

서평도 써보고 지난번 읽었던 이보영의 에세이처럼.

책과 '나'를 연결한 그런 에세이도 한번 써보고 싶다.

 

어떤 글이 되었는 주제가 명확해야되고 일관성있어야 된다는 것을 명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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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9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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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선의법칙>


 


편혜영작가를 만난건 2014년 이상문학상 수상집 몬순 에서다.


세월호 사건이후 읽게 되어 많은 충격을 줬던 작품 몬순... 당시 김애란님의 평가?도 깊이 읽어보면서


편혜영님의 소설들이 많이 궁굼했다.


 


그러던 차에 신작으로 먼저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다.


 


편혜영님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오던 독자는 아니여서 기존 작품과 뭐라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선의법칙>을 읽을때는 꼭 시간이 오래 흐를 수록 생명력이 살아나는 고전 작품을 읽는 듯 했다.


오랜만에 문학다운 문학을 읽은 느낌이랄까. 톨스토이와 괴테의 작품을 읽는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어쩌면 익숙한 배경에 익숙한 이름들이 그들의 작품보다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요인이 되어


고전보다 더 멋진 독서가 된 기분이다.


 


무겁게 다가오는 삶의 무게들과 <선의법칙>이 선사하는 깊은 사색이 즐겁다.


 


<선의 법칙>은 신기정과 윤세오의 이야기가 축이 되어 흐르며 점으로 흩어진 이야기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저 법칙을 만들어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삶을 시작하는 윤세호의 이야기


데면데면한 관계를 이어오던 이복동생의 죽음을 통해서 관계의 의미를 새롭게 찾은 신기정의 이야기가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의 의미와


삶의 자세에 대한 깊은 생각을 가져다 준다.


 


 


'사람'은 어떤 걸까? 존재의 의미란? 삶이란 또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꾸준히 생각했던 질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살기에 삶의 방식 또한 다양하다.


무엇이 삶에서 정답이라고 말 할 수 없을 만큼...


 


그럼에도 '바른' 또는 '괜찮은'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윤세오의 삶은 어떤 삶일까...


20대의 많은 시간을 두려움에 숨어 지낸다.


그러다 우연한? 일로 외출을 하게 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던 그 때.


사고가 생긴다. 157번지...


생에 첫 새옷을 선물 받고 집에 돌아오는길...


불에탄 157번지... 극심한 화상을 입고 중환자 실에 있다 결국 숨을 거둔 윤세오의 삶의 의미.


'아버지'... 그리고 '복수'라는 힘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그녀의 삶...


 


신기정의 삶은 또 어떤 삶이였을까.


어떻게 해서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교사가 된다.


자신이 바란 방향은 생각도 않고 부모가 정해준 방향대로만 살아왔던 삶.


어느날 갑자기 터져버린 연속적인 사건.


담당하는 반 학생의 상습적인 절도사건. 주동자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내용...


그런 와중에 경찰에서 이복동생의 죽음을 알려 온다.


불행은 한번에 찾아 오는 걸까?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때.


'화'를 내고 싶어서 일까. '화'가 난 것일까. 과잉 채벌로 잠시 일을 쉬게 된다.


 


윤세오의 아빠, 그리고 신기정의 이복동생.


소설에서 이 둘의 죽음은 명확하지 않다. 사건이 될것인가 사고가 될것인가.


경찰에서는 자살로 몰려고 하는 윤세오의 아빠의 죽음.


신기정의 동생역시 자살이 유력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이 둘의 죽음으로 인해 이야기에 생명이 살아 난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신기정과 윤세오 모두 이 둘의 죽음으로 부터 삶이 변한다.


윤세오는 '복수'를 위해서 살아가기로 한다.


신기정은 동생의 죽음의 의미를 찾기로 한다.


 


선의 법칙...


무수히 많은 점들의 연결일까?


선들 속에 점들이 숨어 있음을 보는 걸까?


'선'이란 말속에 담겨 있는 많은 의미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윤세오의 이야기 속에서 이수호의 삶또한 힘겹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저 나이만 젊음인 그의 삶.


화려한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꿈만 있는 그의 삶.


어떻게 해서 그가 원하던 정장은 입게 됐지만.


그가 꿈꾸던 '정장'은 밝은 희망의 빛, 현실은 어둠의 무게가 된다.


 


원하진 않았지만 어쩔수 없음이란 선택으로 점점 비참해 진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그리고 보게된 죽음들...


죽음에 이르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의도한 죽음은 아니였더라도..


결국은 죽게되는 사람들... 그 점이.. 선이 되어 돌아와 결국 이수호 그도 죽음에 이른다.


 


<선의 법칙>은 극심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다단계의 위험성과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와


또 하나의 사회 문제인 제 3금융권의 실태를 고발 한다.  아니 그저 담담하게 보여 준다.


통계청의 수치로 보면 겨우 20% 내외의 삶들... 돌고 돌아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돌아 빚이 되는 무시한 법칙


 


"무엇보다 사람이란 본래 그럴일 없는 일도 하는 존재" -p70


 


라는 문장속에 내가 읽은 <선의 법칙>이 담겨 있다.


그럴일 없는 그들이 그럴일 없는 '일'을 하게되면서 감당하는 무게들


 


소설속에 '선'이 된 것은 어쩌면 이수호가 아닐까?


제 3금융권에 입사해서 행하는 일들. 채무자들에게 채무이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수호는 채무 발생 경위를 잘 알았다. 채무자들은 몰랐다. 함부로 돈을 가져다 쓴 주제에 빚이 생기는 경로와


빚이 불어나는 과정, 빚에 파먹히는 속도에 대해서는 이수호 만큼도 몰랐다. 어리둥절해 하다가 억울해하고 화내고 대드는게 전부였다."-p.90


 


"잘 들어. 전문가들은 보통 이렇게 말해. 규제 없는 금융이 문제라고. 금융이 나서서 저금리 중독자를 양산한다는 거야. 금리를 낮춰서 돈을 막 빌려줘. 무리해서 빚을 지게 해. 자기 돈인 줄 알고 대출해서 차도 사고 집도 사. 돈도 없는데 다들 뭘 믿고 그러냐고? 그러게 돼 있어. 믿을 게 있다고 보는 거지. 부동산. 땅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아파트도 사고 땅도 사. 맞아. 땅은 거짓말 안 해. 시장이 거짓말을 하지. 시장이 얼면 부동산이 제일 먼저 얼어. 소비 침체. 가계 부실, 부동산 침체, 이건 말하자면 서로 맞물린 톱니야. 맞물려서 굴러. 구르고 구르다가 결국 서민들만 망해." - p. 92


 


"정부는 언제나 가계보다 은행을 먼저 구하게 돼 있어. 가까스로 시스템이 구제되면 그걸로 끝이야. 지들끼리 배불리는 거지.  개인은 파산하건 죽건 나 몰라라 해. 무슨 얘긴지 알겠어? 사람들이 바보 같아서 거지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야. 제도가 좆같아서 거지가 되는 거라고. 알겠어?" - p.93


 


이수호가 일하는 제 3금융과 빚의 실상...


이 거짓 같은 현실속에서 겨우 겨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 누구의 잘 못도 아닌... 이유 없는 불가항력이 되어 버린 삶의 시간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아니 가해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는


그저 시스템 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들...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는 그들.. 죽음으로서 '선'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악의가 악이 되는 것은 언제 부터일까. 상상하고 품는 것만으로 악이 되는 걸까, 실행될 때 비로소 악이 될까, 실행하더라도 실패하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악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행동을 바꾸고 거처를 옮기고 생활을 바꾸게 해도 좋은 것일까. 그렇다면 악의는 환상이나 몽상인 걸까. 환상이나 몽상은 종종 현실을 바꾸기도 하니까." - p. 96


 


"악의는 윤세오 에게 할일을 주었다.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게 했다. 기운차려 움직이게 했다. 밥을 먹게 했고 누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다니게 했다. 고시원에서의 단출한 생활을 군말 없이 꾸리게 했다. 덥고 어두운 밤 창도 없는 고시원에서 소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저 누워만 있는 시간을 견디게 했다. 아무와도 말하지 않는 시간을 참게 했다. 재만 남은 157번지로 돌아가지 않게 했다." -p. 100


 


윤세오를 버티게 한것은 그런 '악'이였을까? '선'이였을까.


악과 선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일까? 행동하면 악, 그렇지 않으면 선...


답은 모른다. 악이되었든 선이 되었든. 그저 하루 하루 살아 가게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좋았을 테니...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대체로 그럴 나이였다. 뭔가를 준비하거나 준비한 것에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나이. 뭔가를 끊임없이 채우려 하지만 채워진 것 없는 나이." -p. 114


 


대체로 그럴 나이에 내가 포험 되고 보니 이젠 소설속 한 인물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로 바뀐다. 아무것도 없는 그런 나이 무엇인가 채우려 하지만 채워짐이 없는 나이.


목표도 방향도 그 무엇도 정해짐 없이 방황하는 그런 나이...


그런 나이에 다단계...는 꺼져가는 작은 불꽃을 살릴 그런 희망이였을까?...


 


의미가 무의미가 되고, 희망이 어둠이 되어버리는 그럴 나이.


무의미가 다시 의미가 되고 어둠이 빛이 되는 그럴 나이기도 한... 그들..


누구는 죽었고.. 누구는 살았다. 살아남은과 죽음은 무엇이 결정하는 걸까?


무엇으로 인해서 죽었고, 무엇으로 인해서 살았을까?...


 


윤세오의 삶에서 새로운 점이 선으로 연결 된다.


신재형과 김우술... 그들이 있었기에 윤세호는 악에서 선으로 돌아설 수 있었던 걸까?


윤세호가 어쩌면 꿈꿨을 평범한 삶의 한 모습을 그들에게서 발견 한 걸까?


 


"두 사람은 윤세오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선의를 가진 인간들의 세계. 그러나 인간이 선량한 존재라는 생각에 취해 있을 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도 그들이 일러주었다. 시시한 비아냥거림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고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기분 나빠 툴툴대다가도 의기투합하는 걸 보면 인간은 선과 악 같은 구분과는 상관없는 존재였다." -p. 135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절, 벗어나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벗어나 도달한 곳이 다시 벗어나야 할 곳이 되던 시절, 밤과 낮이 같고 여름과 겨울이 같고 오늘과 내일이 같은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과 별다르지 않았다. 당시는 그걸 몰랐다. 생의 가장 참호한 시기를 지나는 줄 알았다. 그 시절을 건너고 나면 또다른 시절을 건너기 위해 발목을 적셔야 한다는 걸 알 수 없었다." -p. 136


 


그시절.. 윤세오의 삶에 조미연과 부이가 등장한다.


우정으로 알고 있었지만... 혼자만의 집착이기도 했던...


조미연... 그리고 그들사이에 부이... 윤세오가 집밖에 나가지 못했던 이유는


조미연에 대한 집착이 두려움이 되었기 때문이였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조미연으로 대표하는 다단계에서의 기억에 조차 없는 수 많은 이름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윤세오의 발버둥 이였다...


 


이수호의 삶에선 구기인이 '선'이 된다. 아니.. '가난'이 '선'이 된다.


 


"구기인은 언제나 가난 했으므로 새삼 가난이 압박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가난은 일단 낯을 익히면 계속 들이닥친다. 살수록 빚이 느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지경이 되도록 근본 원인을 모른다는 것. 그게 구기인의 가장 큰 문제였다. 상가에 있어야 할 구기인이 회사까지 찾아온 것은 딸애의 갑작스런 죽음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돈이나 무능한 아버지말고 다른 것을. 그렇게 찾아낸 게 이수호였다." -p. 237


 


문제인 지도 모르면서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 '가난'...


아니 무엇이 문제가 되어 원이이 되는 지도 알 수 없는 것.


문제와 원인이.. 결과가 서로 뒤섞여 만들어 내는 혼란,,, 무엇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없어


해결할 수 조차 없는 것... 그것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슈퍼마켓을 나서며 윤세오는 잠시 머뭇거렸다. 김우술과 신재형이 얘기를 나누고 자주 웃고 가끔 진지한 표정으로 일하고 비관없이 미래를 걱정하는 장면 속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일과나 일상의 반복으로도 인생이 즐거워졌다. 두 사람은 윤세오에게 사람이 서로 밑천이 되는 존재가 아님을 가르쳐줬다.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했다.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다. 의지가 될 때도 있고 서운할 때도 있었다. 기쁨을 느끼게도 하고 화가 나게도 했다. 그게 보통의 관계였다." -p.244


 


보통의 관계속에 조금더 머물고 싶어한 윤세오.. 그래서 였을까...


결국... 윤세오의 선택은... '선'이되었을까..


'선'도 '악'도 없는 그저 '사람'만 남은 선택...


결국 윤세오는 살았고, 이수호는 죽었다. 구기인은 모든걸 잃고 '이수호'를 죽였다.


아니 이수호가 죽은걸까?... 남은 것은 없었다.


 


"왜 세상의 불행은 모두 비슷할까. 이수호가 목격한 불행은 따질 것도 없이 돈 때문이었다. 불행과 가난만큼 상투적이고 뻔한 게 없었다. 사연이 그렇다는 게 아니었다. 진행 과정이 그러했다. 돈 때문에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는다." -p. 250


 


결국... 남는 것은 없었다.


모든 걸 잃고.. 삶 마져.. 시간 마져 잃었다.. 돈 때문에...


이수호도 불행이였고 구기인도 불행이였다. 돈 때문에...


윤세오도 그렇게 불행이 되었다.. 돈 때문에...


 


신하정은... '사람'때문이었을까?... '사랑'때문이었을까..


역시나 '돈'때문일까?...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찾을게 아니였다.


 


"동생이 지금 이 자리에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으리라는 사실에 슬퍼하는 일. 삶의 마지막 순간 홀로 있었을 동생을 애틋해하는 일이었다. 지금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미안함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동생이 그리워서. 그것이 애도의 첫번째 순서였다." -p.267


 


그것이 애도의 첫번째 순서였다...


마지막 이 한문장... 이 '선'이였다.


애도의 첫번째 순서. '눈물' , 없음에 그리워서 마음으로 우는 것...


'복수'도 아니고 ,'집착'도 아닌, '원인'을 찾아내서 밝히는 것도 아닌 '애도'하는 것.


'사람'이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신기정, 윤세오, 이수호, 구기인, 신하정, 부이, 김우술, 신재형, 조미연


신기정과 윤세오는 신하정으로 윤세오와 부이는 조미연으로 이수호와 윤세오는 윤세오의 아빠로...


신하정과 부이 윤세오가 그렇게 연결되고 신기정과 윤세오 역시 그렇게 선이 되었다.


구기인과 이수호가 연결되었고 이수호역시 윤세오와 연결된다.


점과 점이 이어져서 결국 윤세오를 중심으로 모두가 연결된다.


 


신기정이 중심일수도, 이수호가 중심일 수도 있다. 모두가 중심이면서 주변이다.


그저 하나의 점들이 파국으로 인해 힘겹게 이어졌을 뿐이다.


 


'선'도 '악'도 없는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


살고 살아가면서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그 연결들 속...


어떻게든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그것이 <선의 법칙>은 아니였을까...


 


<선의 법칙>을 읽는 동안 정말 어지러웠다.


복잡한 선들의 꼬임에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라 앉았다를 반복하며


생각들역시 엮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한다.


 


무엇이라 답은 없다.


 


그져 무수히 많은 점들이 어떤 이유로 선으로 연결이 되었다.


또 어떤 이유로 끊어졌다를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이 되어간다.


 


많이 무겁고, 많이 무섭다.


 


선함도 악함도 아닌 '삶'그 자체가 남아 버렸기에.


 


그래서 이 글도 이리 저리 복잡하다.


균형을 잡을 수도 어떤 생각을 명확히 정리할 수도 없었다.


아직 살아온 날들의 경험이 미천하기에 깊이가 없는 탓이기도 하다.


 


신기정, 윤세오, 이수호, 조미연, 부이, 구기인, 신하정...


이들의 '삶'이 점과 선이 되어 만나고 흩어짐을 통해서...


<선의 법칙>을 아주 잠시 옅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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