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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
유병록 지음 / 미디어창비 / 2019년 11월
평점 :
나는 사람의 안간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안다. 뒤통수뼈에서 나온다. 울면서 무엇을 할 때, 또는 울면서 무엇을 하면 안 될 때 거기에 힘을 주면 어떻게든 나아가게 된다. 나는 그랬다.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서 운전 중에 시야가 뿌예질 때,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로 팔뚝에 눈물을 닦을 때, 울면서 걸을 때, 한밤에 깨어 버려 다시 잠들지 못하고 도대체 이게 언제 끝날까 절망할 때,뒤통수뼈에 힘을 주면 어떻게든 나아가게 되었다. 쓸 수 있는 힘 중에 제일 꺼내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안간힘이란 그런 것이다.
그가 아들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내가 제일 걱정한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깊이 생각하고, 더 깊이 생각하고, 아주 많이 생각해서 단어를 하나 고르는 사람. 알고 있는 단어가 많고 또 말을 선택하는 데 민감해서, 이런 저런 말들을 대보고 제일 맞는 것을 어렵게 고르면서 괴로워하고 사실 그 과정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 그는 생각을 잘하고 말을 잘 고르는 사람이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 속에서 그가 말을 잃을까 봐, 나는 그것을 제일 걱정했다. 생각과 말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깊은 생각과 예민한 말이 그를 더욱 괴롭게 할 것을 걱정했다. 스스로의 슬픔을 설명할 말이 너무 많거나 전혀 없어서 말을 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길을 걷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누군가와의 대화를 떠올리다가 나도 종종 울었다. 뒤통수뼈에 힘을 줘야 했다.
유병록 시인의 『안간힘』은 깊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생각과 말에 갇히지도 그것들을 버리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매만지고 만들어가면서 나아간 기록이다.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 안간힘을 쓰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몫을 다하려고 걸어나간 기록이다. 인간이 글로써 성찰하고 다른 이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울 것이고, 다 읽은 뒤에도 종종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슬픔과 함께 나아갈 것이고, 슬픔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것이다. 많이 깊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