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 : 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5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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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아버지는 어렸을 때 망명하는 배에서 돌아가시고,
그후 페루 리마의 부유한 저명인사였던 삼촌의 집에서 자라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와 중학교에 다녔으나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학업성적도 좋지 않았다.
선원이 되어 배도 탔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후견인의 주선으로 베르탱 증권 중개소에 취직했다.
그는 여유있는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수입을 벌었으며,
결혼도 하여 안정되고 평화로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증권 중개소에서 일하면서 그림에 관심을 보인 폴 고갱은 
그림 전시장과 미술관을 찾아다녔고, 미술에 관해 토론하며,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제하며 그들의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는 방 하나를 화실로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에 출품도 했다.

이쯤에서 그의 아내는 메테는 
"남편에게 그림이 순수한 소일거리에서 
그를 완전히 사로잡은 열정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점점 불안해졌다.
메테는 고갱이 남편과 아버지로서 
의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p. 18).

고갱,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안정된 삶을 뒤로 하고, 
증권거래소를 그만두고 화가로서 새출발을 한 때가 대략 삼십대 중후반이다.

고갱이 화가가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이렇게 길게 쓴 것은
이 책이 부제이기도 한 그의 작품세계, 즉 그의 "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을 
이해해보고 싶어서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평균수명을 고려해 볼 때,  
삼십대 후반이라는 시기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도전하기가 쉬운 나이는 아니다.
하던 일이 실패했다든지 하는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는 평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게다가 아내의 거센 만류까지.

어쩌면 고갱은 증권 중개소를 그만 두기 그 이전, 배를 타는 선원이 되었을 때부터
도시생활에 실증을 내며 미개척의 땅, 원시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문명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의뿐 아니라, 
이후 문명세계에서의 실패와 좌절도 그 이유에 포함될 것이다.

아카데미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폐기하려는 욕구를 가진 인상주의 화가답게
독특한 기법을 추구했지만,
"성공에 대한 희망은 환상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그의 혁신적인 미술을 이해하지 못했다"(p. 24).
안타깝게도 고갱이 보란 듯이 화가로서 멋지게 성공했으면 좋았을 텐데,
고갱의 독창적인 기법은 눈길을 끌었지만, 그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는 포스터를 붙이는 노동도 해야 할 만큼 가난해졌다.
이후에도 계속 궁핍과 병과 싸우다 한 섬에서 심장마비로 고독한 생애를 마친다.
(이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그는 자살 시도도 한다.)
책은 그이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한다.
"마지막까지 그이 곁에 남아있었던 사람은 늙은 마오리족 주술사 티오카와
개신교 목사 베르니에였다.
이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원시인처럼 살고자 했던 한 유럽인의 
이중적인 본성을 드러낸다"(p. 126).


문명이 아니라, 원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고갱.
"품위 있는 삶을 약속했던 남편의 무능력한 실망한 아내 메테는 친정으로 가버리고",
이후 다소 문란하게 보일만큼 미개한 소녀(!)들과 사랑을 나누는 고갱.
(아버지의 부재 속에 성장한 그는 평생을 여성들 틈에서 살지 않았나 싶다.)
그의 그림 속의 원시적인 여성들은 모두 한결 같이 건강하고 활력이 있다.

나를 가장 매료시킨 고갱의 작품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가로 347센티미터, 세로 139.1센티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작품은
실존적인 물음을 가진 작품이다.
이 그림은 그의 사랑하는 딸 알렌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린 그림이며,
그는 이 작품을 마치고 자살 시도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 책에 없다. 
마로니에북스의 아트북 시리즈는 다소 딱딱한 내용의 책인 것이 아쉽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고갱의 작품은 
독창적인 기법을 바탕으로 다소 거친 붓질과 색감의 아름다움, 
그리고 원시적인 아름다움과 순수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하는 그림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에 인간 실존에 대한 깊은 고뇌와
문명세계에 대한 좌절과 실망이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사실 자신이 없지만.)

지금도 항상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며 도시에서 사는 나에게
고갱의 고달프지만 정열적이면서 고독했던 생애와 작품은 또다른 동경의 세계가 된다.
나는 고갱에게 깊은 우정을 느낀다.
고흐만큼이나 친구해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다독여주고 싶은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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