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수첩 - (9)

: 9월 29일 (98년)...
김장수 병장님이 전역하시는 날이었다.
말년 휴가 복귀 할 때부터 계속 싱글벙글하던 김장수 병장님.
몇 개월 후임들 전투복도 손수 다려 주시던 김장수 병장님.

전역 당일날 후임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내 울먹이는
김장수 병장님을 보았다.

아쉬움이 담긴 눈물이 아니었을까?
어떤 아쉬움 때문에???

2000. 1. 17이 되기 전까지 난 그 기분을 알지 못 할 것 같다.
아마도...

/* 2000. 1. 17이 지나도 모르겠더군요. (-_-)a
   저는 아마 밑에 후임들을 덜 사랑했나 봅니다.   */

 

: 주희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군 입대 후 자주 편지를 써 주시던 아버지는 일 때문에 뜸하시고...
그나마 군대 있다고 챙겨 주는 건 동생 밖에 없다.
착한 내 동생.

9월 16일이 주희 생일 이였다는데
챙겨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아뿔싸!

얼마나 실망이 컸을까...
작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오빠로서 정말 미안해 죽겠다.

 

: 요즘 들어 짜증나거나 답답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뭐 꼬인 군번이라고 해야 하나?

그럴 때 마다 바깥 사회 사정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늦게 오거나 지금 밖에 있었다면 하는 것 없이
젊음이나 낭비하면서 빈둥대고 있었겠지...

/* 제가 입대하고 나서 그 다음주에 바로 IMF가 터졌습니다.
   저는 그 때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대할 때쯤 경기가 팍팍 풀릴 거라고 예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어째 요즘은 IMF 때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하네요. 

   쩝... 빨리 취업해야 되는데.....   */


: 유격 훈련장에 있던 간판에 씌어진 글이 생각난다.

강       자       존

육군 본부에서 이현세 작가님한테 주문해서 찍어낸
'까치병장'이라는 만화책을 보면
유격장 들어가는 문에 이런 글이 있다.

'훈련은 무자비하게'....

이 글 만큼은 아니지만 그 당시 봤던
그 세 글자는 정말 인상 깊었다.
강! 자! 존!

 

: 98년 10월 추석 연휴다
군대에서 맞이하는 2번째 명절.

휴일이 연속해서 4일이나 되지만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추석
명절 기분은 나지 않는다.

그저 일요일이 연달아 4번 있다는 정도.
그래도 지난 설날 때 보다는 좀 낫다.
명절 때 휴가를 나가면 참 좋을 텐데...

 

: 군대 와서 깨달은 것 하나!
  초코파이는

  1개 먹을 때 제일 맛있고

  2개 먹을 때 든든하고

  3개 먹을 때 만족스럽고

  4개 이상 먹을 때....

그 초코파이는 더 이상 초코파이가 아니다 라는 것...

 

: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게 대인 관계가 좋지는 못한 것 같다.
편지 쓰는 곳이 범장이, 태길이, 진혁이
그리고 우리집 밖에 없으니....

 

: 군대의 법칙...
악돌이는 순돌이가 되어서 돌아가고
순돌이는 악돌이가 되어서 돌아간다.

홀쭉이는 통통이가 되어서 돌아가고
통통이는 홀쭉이가 되어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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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반장 추억 수첩 - (8)

: 지금은 98년 9월 중순
다음 주에 유격 훈련이 있다.

말로만 듣던 유격 훈련

한편으로는 재미있을 것 같고, 할 만한 것 같아서 흥미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소 익히 들었던 명성(?)으로 겁이 난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나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내 머릿속을 좀 복잡하게 만든다.

내가 유격장으로 향할 때
범장이는 군대로 향하겠지.....


- 유격 자이언트 (군가)

야야야 야야야 야 야야야야야~~~ 헤이!

끝없이 넓은 산악 올빼미 사는 곳.

젊은 가슴 펴게 하는 유격대 훈련 야~~~~야!

오늘도 밀림 속을 헤쳐 나간다.

My face is mountain

I love 링클, 로프

내 젊음 바칠 유~~~격~~대...에~~~~

/* “유격 자이언트”라는 군가입니다.  ^^;
   가사만 보면 유치하고 닭살이 돋는데...
   여느 군가와 마찬가지로 단체로 크게 부르면 꽤 흥겹고
   힘, 열정이 느껴지는 군가입니다. 
   유격 훈련을 뛰기 전에 당시 관측장교님한테 배웠는데
   막상 가서는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군가입니다.   --;
   당시 관측장교님이었던 권회한 중위님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실지....   */

 

: 유격 훈련을 뛰고 나서...

첫 번째 날

아침부터 비가 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얼마 되지 않고 그치는 비였다.

/* 비가 오면 유격 훈련을 하지 않고 배수로 정리를 하거나 하면서
   적당히 시간을 때울 수 있습니다.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비가 오면 그냥 꿀맛 같은 대기만 하게 됩니다.    ^^;
   군인들은 비를 무척이나 사랑한답니다.   (^o^)   */

여름 날씨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행군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오후부터 본격으로 시작했다.

힘은 들었지만 예상 했던 것 보다는 강도가 쌔지 않았다.
좀 만만하게 느껴졌었다.

 

두 번째 날

오전에 있었던 훈련은 정말 “죽음” 그 자체였다.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코스를 돌았으니...

표정 관리를 잘못해서 유격 교관한테 웃었다는 누명을 쓰고 정말 엄청 굴렀다.
'2번 코스 등판 오르기'
치가 떨린다.

내가 구르던 걸 본 사람들은 그 때 그 광경을 보고
정말 불쌍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아무튼 그 검은 모자를 생각하면.... 으....

/* 저는 힘들어서 인상을 쓴 거였는데 유격교관은 그걸 보고 웃었다고
   따로 저를 불러내지 않겠습니까.   
   진짜 복날 주인공처럼 굴렀습니다. T_T

   그 때 느꼈지요.
   “아~~~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행복했*던* 사람이었구나~~~!”
   라구요.

   나중에 고참들이 그러더군요. 
   “야. 너 아까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쌍했다.”   라구요.   */

유격 훈련 중간 짬짬이
숨 좀 돌리며 하늘을 볼 때마다
범장이 그 녀석 얼굴이 떠올랐다.

잘 있을까?

땅 바닥에 엎드리고 있을 때 배를 깔고 요령을 피우는데
바로 코앞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이름 모를 풀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풀 냄새가 향기롭고 달게
느껴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유격 중간 중간 내심 퍼지길 바랬지만

/* “퍼진다”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쉽게 말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숨넘어가기 바로 전 단계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퍼지면 강제로 계속 훈련을 받는 게 아니고
   정신 차리고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습니다.   */

살 많고 느리기만 한
내 다리에는 어째 쥐도 한 번 나지 않고 잘 버티는 게 아닌가.

오후에는 좀 널널했다.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교관도 조교도 많이 봐줬다.

저녁에 복귀 할 때 부대에 들어서니
꼭 내 집에 온 것 같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퍼졌으면 하고 나약한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지만
무사히 끝내니 기분이 무척 좋다.

'해냈구나'하는 성취감과 내년에 또 유격을
어떻게 뛸까하는 걱정이 동시에 든다.

유격 훈련 기간 내내 하루하루가 살면서 가장 긴 날들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여느 훈련처럼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 저희 부대는 유격 훈련을 2박 3일로 뛰었습니다.
   고참들 말을 들어보면 원래 육군 규정에 포병은 유격을
   2박 3일 받는 거라고 하더군요.

   2박 3일짜리 유격이 유격이냐고 핀잔을 주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유격은 유격이었습니다.  --;

   PT체조를 할 때면 꼭 하나 해야 하는 게 바로 마지막 구호를 생략하는 거죠.
   예비역 분들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조교들이 PT체조를 시킬 때 하는 말
   "마지막 구호는 원기왕성하게(?) 생략합니다."
   -_-;


   만약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명이라도 마지막 구호를 붙였다간
   PT체조를 2배씩 곱으로 다시 해야 합니다.

   2배곱.... 이거 상당히 무서운 겁니다.

   행여나 PT체조 한다고 정신을 딴 데 팔았다간 여지없이 마지막 구호를 붙이게
   되고 그랬다간 진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립니다.
   손가락 안에 드는 왕고참이면 몰라도 일, 이등병이 그랬다간 군 생활하는 데에
   상당한... 뭐랄까나... 눈물어린 건빵 같은 쓴 맛을 경험하게 되지요.
  
   좀 잔인한 교관들은 3의 배수, 7의 배수 구호를 생략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PT체조 하면서 공배수를 한 번 계산해 보세요. 
   진짜 머리 뽀개집니다.

   원래 PT체조를 하는 이유가 몸을 충분히 풀어서
   각종 코스를 통과할 때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인데
   이상하게 변질이 되어서 여러 올빼미(훈련병)들을
   반 죽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코스 타는 게 훨씬 더 편합니다.

   유격이라는 훈련도 ‘김신조' 아저씨 때문에 생겼다고 하더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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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반장 추억 추섭 - (7)

: 신병 관리 하기는 정말 힘들고, 짜증나고, 신경 쓰이고, 귀찮다.
몸이 아프다면 진짜로 몸이 아픈지 아니면 꾀병을 부리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럴 때면 군기가 빠진 것 같아서 미워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 신병 때 힘들고, 서럽던 생각 때문에
안쓰럽게 느껴지고, 잘 해줘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허~~~ 사람 다루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군대에 와서 깨닫게 되었다.
있어도 힘들고, 없어도 힘들고...
이럴 땐 포반 이동이 없는 다른 분과가 부럽게 느껴진다.

/* 부대에서 제일 막내로 지내다가 밑에 후임병이 들어오면
   처음에는 기분이 엄청 좋습니다.
   그리고 첫 후임이니 잘해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처음 마음가짐과 다르게 그 생각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일단 이것저것 가르칠 게 많이 있고, 만약 밑에 후임(제일 막내)이
   뭘 잘못하면 고참들은 잘못을 저지른 후임(제일 막내)을 깨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윗고참(제일 막내 바로 윗고참)을 깨버립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그 윗고참을 깨냐구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후임병 교육을 잘못시켰다는 책임 때문이지요.
     
   자기가 욕먹을 양에다 후임 몫까지 다 짊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1 에서 10 까지 아니 1에서 100 까지 다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이뻐보이던
   후임도 3~4일이 지나면 애물단지로 보이죠.    ^^;

   챙겨 줄 때 챙겨주고 깰 때 깬다면 진짜 좋은 고참이라는
   소리 듣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깨고, 갈구는 것도 체질에 맞아야 잘 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사람이라는 게 간사하기 때문에 잘해주면 잘해준 만큼
   거기에 걸맞게 열심히 하는 게 아니고

   "아~~! 이 사람은 순하고 잔소리를 안하니깐
    만만하게 봐도 되겠구나!!"

   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참 웃깁니다.
   잘해주기만 하다가 한 번 깨버리면 후임들 대부분이

   "그래 저 고참도 다른 고참과 마찬가지야! 다 똑같은 놈이야!!!"

   라는 생각을 쉽게 가지는데요...
   허구한 날 갈구고 깨는 고참이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한 번 잘해주면

   "아니!!! 저 사람한테 저런 면이 있었다니..... "

   라며 감동을 한답니다.

   헐 헐 헐 웃기죠?     */



: 9월 초... 날짜 상으로는 가을이지만 때늦은 더위가 사람을 지키고 힘들게 한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보게 된, 보랏빛과 흰빛으로 곱게 물든 코스모스 몇 송이...

계절의 변화는 그 누구도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코스모스들이 날보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라고...

/* 별 것 아닌 것에 감동할 줄 아는 그대...
   우리는 그대를 군인 또는 군바리라고 말하지요.  -_-;  */

 

: 야포가

북으론 압록강 남에는 한라산

반만년 유구도 하다 우리에 역사

이 나라 이 민족을 어깨에 메고

아~~~아! 우리는 야전 포병대

/* '야포가'라는 군가 입니다. 모든 포병 출신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등학교로 치면 교가 같은 군가 입니다.  ^^;  */


: 요 근래에 (9월 초) 범장이한테 전화를 하면, 할 때마다 집에 붙어 있지 않다.
하여튼 범장이 이 녀석이랑 나랑 타이밍 못 맞추는 데엔 뭐가 있다.
기분이 많이 착잡하겠지.....

/* 제 거시기 친구 입니다.  ^^;
   요 때가 그 녀석이 입대를 얼마 남겨 두지 않았을 때 입니다.
   저야 어느 정도 짬밥을 먹어서 룰루랄라 하고 있었지만
   이 친구는 마음고생을 꽤나 했을 겁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났다는 말이 참 맞는 말입니다.  */

 

: 이규형이 그랬던가?
군대도 배움을 얻는 하나의 대학이라고...
지금 (일병 5호봉)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 쩝... -_-a... 요 때는 이런 글을 썼는데요.

   지금 생각은 그 때랑 조금 다릅니다.
   군대에 꼭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대신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라면 말이죠.
   2번 이상 군대에 가는 건 너무 잔인하고, 가혹해요...  TmT  */

 


: 난 서태지가 왜 은퇴했는지 그 심정을 약간 이나마 이해해 줄 수 있다.
  암! 그렇고, 그렇고 말고... -_-;

전입 신병 시절...
여러 고참들이 있는 자리에서 날보고 막 춤추고, 노래를 해라는
모종의 압력(?)이 사방에서 압박하는 게 아닌가?

군대 오기 전 나우누리 army란에서

'고참들한테 사랑 받으려면 잘 놀 줄 알고 뭘 시키면(춤,노래,축구등등)
잘하던 못하던 빼지 말고 막 해야 한다.'

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 그 가르침을 철썩 같이 믿고 거의 무대뽀
정신으로 얼굴에 철판 깔고 설친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솔직히 사회 있을 때 그렇게 잘 노는 편이 아예 못 되었는데
여기서는 ‘존나 잘 노는 놈'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끼'라는 것이 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그 날 이후 나는 무슨 행사가 있으면 꼭 나가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그런 불쌍한 처지가 되었다.

오죽 했으면 교회에서 오는 뻔하디 뻔한 위문 공연에서도 여러 사람들 앞에
나가 자리를 빛(?)내야 했을까.
그때 상품으로 '엠마뉴엘 셀렉션'이라는 테잎도 받았지만... --;

 

항상 히트(?)를 쳐야 한다는 주위에 압력은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온갖 소리를 다 들어야하니...
난 은퇴하던 그 서태지의 심정을 알 수 있다.
.....

뭐 설쳤던 덕분에 고참들한테 '괜찮은 놈'으로 찍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자 분장까지 해야 했던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속이 많이 쓰리다.

/* 무슨 단합대회 같은 게 있으면 정말 싫었습니다.  
   어떤 행사가 있으면 누가 한 명 앞장서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하는데
   그게 진짜 쉬운 게 아닙니다.
   한 번 해보신다면 김제동 아저씨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_-;

   따로 뭐 휴가증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마지못해 분위기를 잡곤 했는데
   잘하면 본전이요, 못하면 썰렁하다느니 레퍼토리를 바뀌라느니
   이런 요구 저런 요구를 듣지요.

   그 정도 요구를 다 들어 줄 정도면 벌써 방송국에 진출을 하고도 남았죠 뭐...

   그 땐 정말 매주 티비에 나와 여러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들이 정말 정말 존경스럽더군요....  -_-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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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반장 추억 추섭 - (6)


: 일병 3호봉이 되어서야 느끼는 건데 좋은 후임은 되기 쉬워도 '진정한'
  좋은 고참 되기는 참 힘들다.

/* 제가 군 생활을 하고 나서 깨달은 건데요.
   무조건 잘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고참은 결코 좋은 고참이 아닙니다.
   챙겨 줄 때는 챙겨주고 깰 때는 깨는 게 진짜 좋은 고참입니다.
   말은 쉬운데 행동으로 옮기기는 참 힘이 들지요.
   자식 키우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   */

 

: 98년 하지날 밤, 정말 많은 별들을 보았다.
  여태 보았던 그 어떤 밤하늘보다
  훨씬 멋지고 훨씬 많은 별들이
  검기만한 밤하늘을 꾸며 놓고 있었다.

  군대 와서 본 밤하늘 중에서
  별들이 가장 많은 밤하늘이다.
  마치 흰 종이에 먹물을 조금만 뿌린 것 같이 말이다.

 

: 먹는 것만으로,
  잠을 푹 자는 것만으로
  행복해 지는 곳이
  바로 군대 아닐까?

 

: 자대에 전입 왔을 때가 생각난다.
  집에서 전화가 왔거나 내가 짬을 내서 전화를 할 때면 괜히 목이 막히고
  코끝이 찡한 게... 기분이 좀 그랬다.

  군대오기 전의 말투로 전화를 주고받지 못하고  '다'나 '까'만을 써서 통화하던 그 때...

  내 이름을 부르면 "예!"라고 하지 않고  "이병 한광양"이라고 관등성명을 대던 그 때...
  그 때 내 목소리를 듣던  어머니도 기분이 많이 울적 하셨겠지....

/* 제가 군대있을 때만 해도 누가 저를 부르면 "예!"라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관등성명이 튀어나와야 했죠. 긍정을 뜻할 때에도 "예"라고 하지 않고
   꼭 "예 알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라고 해야 했습니다.

   "예???" 라고 말하는 게 듣기에 따라서 싸X지 없다고 많이들 싫어했거든요.
   만약 누가 어떤 말을 했는데 잘 듣지 못했다면 "예??" 라고 하지 않고
   꼭 "잘 못 들었습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  */

 

: 일병 때는 시간이 정말 잘 가는 것 같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일병 4호봉이니... 월요일이다 싶으면
  수요일이고 좀 있으면 주말이 된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시간이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 98. 7. 27 새벽 약 1:55 경...   태어나서 처음으로 별똥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좀 있다 떨어지는 별똥을 2번 더 보았다.
  무슨 징조일까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다.

  며칠 뒤 범장이한테서 XXX 누나(친구 누나)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웅본색 2탄에서처럼 떨어지는  별똥은 나쁜 징조를 뜻하는 걸까?
  그 누나가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 98.7.7 군대 생활 처음으로 보초 근무를 사수로 해봤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상대는 권태석 이병...

/* 보초를 설 때 사수, 부사수 이렇게 2명이서 근무를 서는데
   사수는 짬밥이 좀 있는 고참이, 부사수는 그 밑에 후임병이 섭니다.

   초소에서는 사단장, 군단장,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
   바로 '사수'이기 때문에  ^^;
   거기서 만큼은 사수가 대빵입니다.

   그래서 사수가 되면 밑에 부사수한테 노래도 시키고
   온갖 재롱을 다 부리라고 하고 느긋하게 구경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냥 조용히 있는 고참도 있고
   같이 노가리 까는 고참... 가지각색 입니다.

   얼마나 사수를 하고 싶었으면
   처음 사수 섰던 것을 다 기억했는지...  원...
   그것도 그럴 것이 제가 꼬인 군번이라서 밑에 후임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근 1년 동안 부사수만 하다보니 사수 자리에 대한 열망(?)이 엄청났었지요.

   보통 다른 고참들은 일병 때, 그러니까 군 입대하고 6~7개월
   만에 사수가 되었거든요.

   마음 맞는 사람과 보초 서는 것만큼 재밌는 일도 없지요.
   즐겁게 노가리를 까다보면 한 시간은 그냥 훌쩍 지나가 버리지요.
   (노가리 까다 -> 이야기를 나누다)

   그런데 성질이 사나운 고참, 혹은 사이가 나쁜 고참과 같이 근무를 서면
   시간이 진짜 안갑니다. 온갖 갈굼을 다 받을 수도 있구요.

   흔히들 계약서에서 쓰는 용어인 "갑"과 "을" 관계가 바로
   "사수"와 "부사수" 관계랑 거의 똑같다고 보셔도 될 겁니다.    */

 

: 여태까지 봐왔던 그 어느 때,  어느 날들의 하늘보다도
  군대 있을 때 봤던 하늘이 제일 멋있고,  제일 깨끗하고,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군대 오기 전에는 왜 몰랐을까?    왜 보지 못했을까?

  아마 젊은 날의 이 잠깐 동안의  구속이 여태까지 내가 깨닫지 못했던
  행복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 허허허...  (^_^)a
   사람이 많이 단순해져서 인지 별것 아닌 것을 보고도
   쉽게 감동이 되더라구요.
   그 당시 보던 하늘.... 정말 멋있었습니다.  */

 

: 요번 98년에는 수해 피해가 정말 많았다
  우리 부대에서도 수해 복구, 대민지원을 많이 나갔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것 외에도 수해 복구 같은 위급한
  일을 처리하는 노무자(?)가 되기도 한다.

  솔직히 수해 복구 같은 일을 군인만큼 잘하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여튼 군인은 꼭 필요한 존재다!

/* 왜 군인들이 수해복구를 잘하냐구요?
   주특기 교육을 하는 만큼이나 삽질, 마대 쌓기, 돌 나르기를 많이 하거든요.
   아마 수해 복구를 따로 인부들을 구해서 일당 줘가며 일을 시킨다면...
   엄청난 재정 적자가 생길 겁니다... --;    

   제가 병장 때 한달에 담배값까지 포함해서 15740원을 받았으니
   15740 나누기 30을 하면 하루에 약 525원이 나오내요.
   숙식 제공에 하루 525원만 주고 부려먹는 이 웃지 못할 조직....
   요즘에는 한달에 35000원 정도 받는답니다.
   쩝....  그래봤자 하마 입에 건빵하나죠 뭐.....   -_-;


   지금 전화 주십시오!!! 한 달 내내 써먹어도 15740원!!!
   15740원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흐흐흐 만약 이런 홈쇼핑 광고가 나간다면 진짜 대박이겠네요.   ^_^a  */

 

: 탈옥수 신창원이 활개 칠 땐 신창원 잡으러 가질 않느냐고...
 
  수해가 나면 헬기 타고 사람 구조하러 가질 않느냐고...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군대와 나를 연관시켜 생각하고
  걱정하는 우리 어머니...

        어머니!!!

  이 한마디가 지금 내게는 큰 힘이 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군인들 일병 때 전역 시켜주면
   전부다 효자가 되어서 부모님한테 잘 할거라구요...

   맞는 말 인 것 같습니다.

   병장이 되면 군대가기 전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는 게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애인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고
   그 외 군인들한테 어머니만큼 보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

 

: 범장이가 9월 24일에 군대에 간다고 한다.
  범장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영준이 이놈은 틈나는 데로 삐삐 음성으로
  편지 좀 쓰라고 닦달을 하지만 통 소식이 없다...
  녀석들 뭐하고 있을까?
  난 그 녀석들이 군대에 가면 편지 자주 해줘야지 꼭...!

 

: 꽃 보면 봄이요

  날씨 보면 여름이고
 
  하늘 보면 가을인데
 
  내 마음은 한 겨울 같다...

  98년 어느 여름 날 김재수 상병님한테 들은 말
  김재수 상병님도 누구한테 들은 거라나?

/* 멋지지 않습니까?
   군인들 마음을 아주 잘, 아주 멋지게, 아주 짧게
   표현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김소월이라고 해도 군 생활을 '시'로
   이것만큼 표현 못 할 거라고 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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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반장 추억 수첩 - (5)


: 대한민국에서 징병제가 유지 되는 한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들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 저희 숙모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친척 형님이 군대에 가고 나서는 어디를 가다가 군인을 보면
   꼭 한번씩 더 봐지더래요.

   그리고 일요일 마다 했던 '우정의 무대'를 빠뜨리지 않고 꼭
   보셨다고 하더군요.
   지금 보면 참 유치한 거였는데도 말이죠.   ^^;

   요즘은 KBS1에서 “청춘 신고합니다.” 라는 비슷한 프로가 합니다.
   예전에 한 번 본적이 있는데 눈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서 도저히 못 보겠더군요. 허 허 허 -_-;


   그러던 게... 그 친척형님이 제대하고 나서는
   '우정의 무대'를 한 번도 안보셨다네요.    --;  

   누가 뭐래도 아들 군대 보낸 어머니들 마음은 다 똑같을 겁니다.

   간첩으로 비상 떨어졌다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군대에서 사고 났다고 뉴스 터지면 혹시나 하는 맘에 안쓰러워하고

   TV에서 수해복구 작업한다고 비 맞으면서
   삽질하는 군인들 보면 혹시 내 아들도
   저렇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

 


: 98년 1월 28일 수요일...
  살면서 보냈던 설날 중에서
  가장 지루한 설날이였을꺼다.

/* 군대에서 처음 맞이하는
   설날을 보내며 그 날 느꼈던 것을
   간단하게 표현한 글입니다.
   그 땐 정말 집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  */

 

: 검이 짧으면 일보 전진하라.

            (포대 중앙 복도에 있던 글)

 

: 건빵에 관하여...

  "먹는 즐거움과 영양 밸런스를 동시에"

  부식으로 나오는 건빵의
  봉지 뒤에 조그마하게 적혀 있는 글이다.
  이 글 만큼 건빵에 대해
  가장 잘 표현 할 글도 없으리라...

  신교대 때가 생각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건빵을 주는데
  그 당시 먹던 건빵이 왜그리 맛있던지...
  지금도 맛있다.

  배가 고프던 부르던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오묘한 맛!
  사제 건빵보다도 군용 건빵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쩝 --;

  군대오기 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기름에 튀겨 설탕을 살짝 뿌린 건빵도 색다른 별미다.


/* 저는 건빵을 참 좋아했습니다.
    민간인이 된 지금도 좋아하고요.   ^^;
    부대 마다 사정이 다른데, 부식이 잘 나오는 부대에서는
    건빵은 거들떠보지도 않죠.

    신교대 때가 생각나네요.
    스무살 넘게 먹은 젊은이들이
    건빵 한 봉지에 행복에 겨워하던 모습을 말입니다.  */
     


: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던가?!
  짬밥 역시 그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내가 짬밥을 한 그릇 먹을 때 고참이나
  밑에 후임은 곱빼기로 먹는 것 같다

  고참들은 금방 상병이나
  일병 말 호봉이 되는 것 같고
  내가 그렇게 기다려 겨우 된
  일병도 밑에 후임들은 별 고생 없이
  그냥 바로 일병이 되는 것 같다.

 

: PRI는 장난이고

  화생방은 죽음이고

  각개전투는 지옥이다.

  신교대 훈련병 시절...
  어느 훈련용 야상에 적혀 있던 글이다.
   ...........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 예비역 여러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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