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추섭 - (6)
: 일병 3호봉이 되어서야 느끼는 건데 좋은 후임은 되기 쉬워도 '진정한'
좋은 고참 되기는 참 힘들다.
/* 제가 군 생활을 하고 나서 깨달은 건데요.
무조건 잘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고참은 결코 좋은 고참이 아닙니다.
챙겨 줄 때는 챙겨주고 깰 때는 깨는 게 진짜 좋은 고참입니다.
말은 쉬운데 행동으로 옮기기는 참 힘이 들지요.
자식 키우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 */
: 98년 하지날 밤, 정말 많은 별들을 보았다.
여태 보았던 그 어떤 밤하늘보다
훨씬 멋지고 훨씬 많은 별들이
검기만한 밤하늘을 꾸며 놓고 있었다.
군대 와서 본 밤하늘 중에서
별들이 가장 많은 밤하늘이다.
마치 흰 종이에 먹물을 조금만 뿌린 것 같이 말이다.
: 먹는 것만으로,
잠을 푹 자는 것만으로
행복해 지는 곳이
바로 군대 아닐까?
: 자대에 전입 왔을 때가 생각난다.
집에서 전화가 왔거나 내가 짬을 내서 전화를 할 때면 괜히 목이 막히고
코끝이 찡한 게... 기분이 좀 그랬다.
군대오기 전의 말투로 전화를 주고받지 못하고 '다'나 '까'만을 써서 통화하던 그 때...
내 이름을 부르면 "예!"라고 하지 않고 "이병 한광양"이라고 관등성명을 대던 그 때...
그 때 내 목소리를 듣던 어머니도 기분이 많이 울적 하셨겠지....
/* 제가 군대있을 때만 해도 누가 저를 부르면 "예!"라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관등성명이 튀어나와야 했죠. 긍정을 뜻할 때에도 "예"라고 하지 않고
꼭 "예 알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라고 해야 했습니다.
"예???" 라고 말하는 게 듣기에 따라서 싸X지 없다고 많이들 싫어했거든요.
만약 누가 어떤 말을 했는데 잘 듣지 못했다면 "예??" 라고 하지 않고
꼭 "잘 못 들었습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 */
: 일병 때는 시간이 정말 잘 가는 것 같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일병 4호봉이니... 월요일이다 싶으면
수요일이고 좀 있으면 주말이 된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시간이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 98. 7. 27 새벽 약 1:55 경... 태어나서 처음으로 별똥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좀 있다 떨어지는 별똥을 2번 더 보았다.
무슨 징조일까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다.
며칠 뒤 범장이한테서 XXX 누나(친구 누나)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웅본색 2탄에서처럼 떨어지는 별똥은 나쁜 징조를 뜻하는 걸까?
그 누나가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 98.7.7 군대 생활 처음으로 보초 근무를 사수로 해봤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상대는 권태석 이병...
/* 보초를 설 때 사수, 부사수 이렇게 2명이서 근무를 서는데
사수는 짬밥이 좀 있는 고참이, 부사수는 그 밑에 후임병이 섭니다.
초소에서는 사단장, 군단장,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
바로 '사수'이기 때문에 ^^;
거기서 만큼은 사수가 대빵입니다.
그래서 사수가 되면 밑에 부사수한테 노래도 시키고
온갖 재롱을 다 부리라고 하고 느긋하게 구경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냥 조용히 있는 고참도 있고
같이 노가리 까는 고참... 가지각색 입니다.
얼마나 사수를 하고 싶었으면
처음 사수 섰던 것을 다 기억했는지... 원...
그것도 그럴 것이 제가 꼬인 군번이라서 밑에 후임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근 1년 동안 부사수만 하다보니 사수 자리에 대한 열망(?)이 엄청났었지요.
보통 다른 고참들은 일병 때, 그러니까 군 입대하고 6~7개월
만에 사수가 되었거든요.
마음 맞는 사람과 보초 서는 것만큼 재밌는 일도 없지요.
즐겁게 노가리를 까다보면 한 시간은 그냥 훌쩍 지나가 버리지요.
(노가리 까다 -> 이야기를 나누다)
그런데 성질이 사나운 고참, 혹은 사이가 나쁜 고참과 같이 근무를 서면
시간이 진짜 안갑니다. 온갖 갈굼을 다 받을 수도 있구요.
흔히들 계약서에서 쓰는 용어인 "갑"과 "을" 관계가 바로
"사수"와 "부사수" 관계랑 거의 똑같다고 보셔도 될 겁니다. */
: 여태까지 봐왔던 그 어느 때, 어느 날들의 하늘보다도
군대 있을 때 봤던 하늘이 제일 멋있고, 제일 깨끗하고,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군대 오기 전에는 왜 몰랐을까? 왜 보지 못했을까?
아마 젊은 날의 이 잠깐 동안의 구속이 여태까지 내가 깨닫지 못했던
행복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 허허허... (^_^)a
사람이 많이 단순해져서 인지 별것 아닌 것을 보고도
쉽게 감동이 되더라구요.
그 당시 보던 하늘.... 정말 멋있었습니다. */
: 요번 98년에는 수해 피해가 정말 많았다
우리 부대에서도 수해 복구, 대민지원을 많이 나갔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것 외에도 수해 복구 같은 위급한
일을 처리하는 노무자(?)가 되기도 한다.
솔직히 수해 복구 같은 일을 군인만큼 잘하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여튼 군인은 꼭 필요한 존재다!
/* 왜 군인들이 수해복구를 잘하냐구요?
주특기 교육을 하는 만큼이나 삽질, 마대 쌓기, 돌 나르기를 많이 하거든요.
아마 수해 복구를 따로 인부들을 구해서 일당 줘가며 일을 시킨다면...
엄청난 재정 적자가 생길 겁니다... --;
제가 병장 때 한달에 담배값까지 포함해서 15740원을 받았으니
15740 나누기 30을 하면 하루에 약 525원이 나오내요.
숙식 제공에 하루 525원만 주고 부려먹는 이 웃지 못할 조직....
요즘에는 한달에 35000원 정도 받는답니다.
쩝.... 그래봤자 하마 입에 건빵하나죠 뭐..... -_-;
지금 전화 주십시오!!! 한 달 내내 써먹어도 15740원!!!
15740원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흐흐흐 만약 이런 홈쇼핑 광고가 나간다면 진짜 대박이겠네요. ^_^a */
: 탈옥수 신창원이 활개 칠 땐 신창원 잡으러 가질 않느냐고...
수해가 나면 헬기 타고 사람 구조하러 가질 않느냐고...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군대와 나를 연관시켜 생각하고
걱정하는 우리 어머니...
어머니!!!
이 한마디가 지금 내게는 큰 힘이 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군인들 일병 때 전역 시켜주면
전부다 효자가 되어서 부모님한테 잘 할거라구요...
맞는 말 인 것 같습니다.
병장이 되면 군대가기 전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는 게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애인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고
그 외 군인들한테 어머니만큼 보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
: 범장이가 9월 24일에 군대에 간다고 한다.
범장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영준이 이놈은 틈나는 데로 삐삐 음성으로
편지 좀 쓰라고 닦달을 하지만 통 소식이 없다...
녀석들 뭐하고 있을까?
난 그 녀석들이 군대에 가면 편지 자주 해줘야지 꼭...!
: 꽃 보면 봄이요
날씨 보면 여름이고
하늘 보면 가을인데
내 마음은 한 겨울 같다...
98년 어느 여름 날 김재수 상병님한테 들은 말
김재수 상병님도 누구한테 들은 거라나?
/* 멋지지 않습니까?
군인들 마음을 아주 잘, 아주 멋지게, 아주 짧게
표현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김소월이라고 해도 군 생활을 '시'로
이것만큼 표현 못 할 거라고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