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수첩 - (외전)

요번 글은 그냥 외전입니다.
군대 있을 때 썼던 글에 제 설명이 붙은 게 아니라
그냥 제가 쓰고 싶은 데로 쓴 군대 관련 글이라고 할까요?!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맘 때
저는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교 다니는 것도 재미없고 해서 1학년 1학기만 달랑 마치고 휴학을 했지요.
빨리 군대에 가고 싶다고 병무청에 들락날락거리기를 수차례...
결국 입대 날짜를 받았으니 그 날이 바로 97년 11월 18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군대를 빨리 갔다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웬걸?
막상 입대 날짜가 잡히니깐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하더군요. 헐 헐 헐.

 

입대 날짜가 잡히고 나서
제 일상생활 중에 달라진 점 하나는
사람들이 저한테 “터치”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거였지요.

휴학을 하고 나서부터는 특별히 어떤 일을 했던 것도 아니고
그 좋은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며 반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허구한 날 늦잠이나 자고...

그래서 아버지와 엄마는 저한테 자주 잔소리를 했었습니다.
그러던 게 입대 날짜를 받아두니 잔소리가 싹없어 지더군요.
허 허 허 완전히 제 세상이었지요.

 

그러다 군 입대 몇 주 전...
하루는 엄마가 저한테 이런 이야기 하시더군요.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 접종을 한다고 하더라.
 그 주사를 맞으면 다른 감기도 함께
 예방이 된다고 하니까 너도 군대가기 전에 꼭 맞아라.”

라구요.


하지만 저는 예방 접종을 받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만사가 다 귀찮았거든요.
허구한 날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되풀이해서 그런지 움직이는 게 싫었고,
또 하나!
20살 넘게 먹은 사내 녀석이 쪽 팔리게 어떻게 주사 같은 것을 맞을 수 있냐는
되도 안한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추운 11월에 군대를 갔습니다.

 

 

신교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2주차인가에 덥석 감기몸살에 걸려버렸지요.
나름대로 동기들이 저를 챙겨준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엄마만 하겠습니까???

(외국 나가면 애국자 되고, 집 떠나면 효자 된다는 말이 참말입니다.)


아픈 몸으로 겨우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서 불 꺼진 내무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독감 예방 주사가 생각 나더군요.

엄마 생각이 너무 너무 간절했습니다.

'아~~~~~

 그 때 엄마가 독감 예방 접종을 받으라고 할 때 주사를 맞는 거였는데...

 그 때 주사를 맞았으면 지금 이렇게 감기 몸살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을 건데...

 그 때 주사를 맞았어야 했는데...

 왜 그 때 주사를 맞지 않았을까...

 그 때 주사를 맞지 왜 안 맞았을까.......'


주사를 꼭 맞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잠자리에서 동기들 몰래 모포를 뒤집어쓰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집 떠나와 엄마처럼 돌봐주는 사람 없이 아팠다는 서러움에
엄마 말 듣지 않아서 벌 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참 잘 나더군요.

 

다짐을 했지요.

제대하면 그 때는 꼭 독감 예방 접종을 받아야지.
남들이 뭐라 하든 안 하든 꼭 챙겨 맞아야지.
꼭 맞아야지, 꼭 챙겨 맞아야지.... 라구요.

 


나중에 제대하고 TV를 보고 있는데 한 의사가 나와서 이런 말하더군요.

"흔히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면 다른 감기도 함께
 예방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잘못된 속설입니다.
 독감과 감기는 다른 겁니다.
 독감 예방 접종은 독감에만 효과가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저희 엄마가 잘못 아시고 저한테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라고 하셨던 겁니다.
하지만 그게 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 아닙니까.

그 때 눈물 흘리며 느꼈던 그리움과 바로 그 서러움 때문에
제대하고 나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독감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 또 슬슬 예방 접종 시즌이 돌아오는군요.
오늘이나 내일 짬을 내서 독감 주사를 맞으러 가야겠습니다.


보건소에 가면 4000원인가? 5000원에 독감 주사를 맞을 수 있으니 짬을 내서 한 번 가보세요.

이게 싸게 치는 겁니다.   (^0^)

 


독감 주사 때문에 옛 생각이 나서 이것저것 끄적거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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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반장 추억 수첩 - (13)

: 98년 12월
요즘 대외적으로 군 사고가 많이 일어나 떠들썩하다.
나이키 미사일이 엉뚱한데 떨어져,
사병이 불발탄 가지고 놀다 사고나,
해병대에서 조명탄을 잘못 쏴서 민가에 떨어져...
오늘은 또 수류탄 폭발사고가 났다 한다.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줄줄이 잘리고
국회의원들은 연신 군을 비난한다.
군 기강이 헤이 해졌다느니, 국방부 장관을 사임시켜야 한다느니...

제기랄

그 작자들 중에서 군대 제대로 갔다 온 사람이 몇이나 되고
그 작자들 아들들은 또 군대에 가기나 했을까?

자격도 없는 것들이 사람 열 받게 해서 겨울을 따뜻하게 한다.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우리들 사기는 뚝 뚝 잘도 떨어진다.

절대로 우리 군대를 우습게 보지마라!


/* 대한민국 군대가 세계 최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날고 긴다는

   국회의원 아들
   연예인
   재벌3세
   언론사 사주 아들
   스포츠스타들도

   통과 못하고 떨어진 '신검'을 가소롭게
   통과한 국군장병 수가 60만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_-;)
   국방부에서 모든 육해공군을 특수부대화 하는
   작업에 들어갔나 봅니다.


   요즘 야구선수들과 연예인들 병역비리 때문에
   많이 시끄럽습니다.
   그러게 남들 다 갈 때 같이 갔다 왔으면
   요즘 같이 얼굴 붉힐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꼼수 부리다가 독박 썼지 않습니까! 꼬시다 짜슥들!!!


   얼마 전에 국회에서 발언을 하다가 쓰러진 의원이
   한명 있죠? 국가보안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애국자(?) 아저씨요...
   그렇게 나라를 사랑하고 안보를 걱정하는 분한테
   어째 군면제를 받은 아들이 3명이나 있는지...  (면제율 75%).
   나라를 사랑하는 만큼 자식을 사랑했나 봅니다 그려~~

   정승화라는 장군님은 빽을 써서(?) 장남을 월남전에
   참전까지 시켰는데... 쩝...
   하긴 정승화 장군님 같은 경우도 진짜 별난 경우이지요.

   언제쯤 우리는 사회 지도층(솔직히 이런 표현 쓰기가 싫지만...)을
   존경하고 믿고 따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대한민국 해병대가
   당나라 부대라는 소리 듣는 게 더 빠를까요??? --;

   아무튼 그 당시 국회의원들이
   J랄 지R 하는 거..   정말 싫었습니다.
   쒸파 자식들 군대나 보내고 그런 헛소리를 했나 모르겠습니다. */

 

: 자대 전입 와서 98.12.17까지 받은 편지를 통계 내어 봤다.
  아버지 6통, 주희 15통, 큰 누님 4통, 작은 누님 1통,
  범장이 7통, 동우 1통, 진혁이 4통, 태길이 1통

           총  39통....

/* 편지 하니까 생각나는군요.
   군 입대 하기 전이였죠.
   제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신데
   이런 말을 자주 했죠.

    "니 입대하면 우리 학교 여학생들을
              총 동원해서 편지 써줄께..." 라고요.
    
   그런데.. --; 제대할 때까지
   큰누나는 4통 작은 누나는 2통이 전부였습니다. (-_-;)

   그나마 군대있는 저를 챙겨준 건
   하나뿐인 여동생 밖에 없었죠. T-T

   뭐 편지 내용이야

      '오빠 보구잡다'

      '오빠 뭐해?'

      '오빠 뭐 필요한 거 있어'

   거의 이런 내용 이였지만...
   무관심한 누님들보다는 훠어얼씬 예뻐 보였죠.

   아무튼 군인한테 제일 큰 선물은
   첫 번째가 '전역증'이고
   두 번째가 '휴가증'이고
   세 번째가 '편지'인 것 같았습니다.   ^^;    */
     


: 98년 12월 중순경...
야간 보초 근무를 나갔다가 부사수로부터
여자에 대한 이런 저런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1. 여자의 눈물에 정말 속으면 안 된다!

여자는 아무 때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동물이라나?
내 부사수도 눈물에 많이 속았다고 한다.

조심하자

 

2. 진정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랑 자지 말아라!

이 이야긴 다른데 서도 들었던 것 같다.

 

: 무소유는 모든 번뇌(?)의 해결사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군 생활 가운데 휴가가 가진 의미는
모든 번뇌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휴가 생각을 접어두고 생활할 땐 군생활의 모든 것이 순조롭다.

시간 잘 가겠다. 의식주 걱정 없겠다.
무슨 애로 사항이 있으랴...


그런데 요놈의 휴가란 놈이 슬슬 고개를 들라치면
그 때 부터 군 생활은 꼬이기(?) 시작한다.

우선 그렇게 잘 가던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간다.
휴가 가는 전날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 고대하며 위병소를 나가도
별다른 감흥은 없다. 그저 담담할 정도...
기대에 비해 결과가 취약해서 사람을 실망시킨다.

또 한 가지...

뭘 한다, 한다 하며 계획을
잡았건만 제대로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예전의 나태했던 내 모습 그대로이다.

돈 씀씀이도 무시 못 한다.


무엇보다 복귀할 때 받게 되는 정신적 타격이 정말 크다.
위병소와 가까워질수록 느끼게 되는
그 이상야릇한 압박감과 답답함...
마치 군 입대 할 때 바로 그 느낌!


그러면서도 막사와 가까워 질 때 느끼게 되는
꼭 일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들어서는 느낌은
정말 사람을 혼란, 황당하게 한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되는 '한 턱 내야해...'라는 의무감(?)
마지막으로 다시 군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


결코 즐거운 일만 있는 휴가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많은 이들은 휴가에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을 얽매이게 한다.

마치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이 소유하려고 자기 자신을 얽매이게 하는 것처럼…….

차라리 모든 걸 잊고 군 생활에 충실한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 98년 12월 24일 자정이 좀 안될 즈음...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건빵과 자판기에서 뽑은 생강차 들고
담배 피는 계단으로 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건빵 봉지를 뜯어 의자에 놔두고
제사(?)를 지냈다


3년 전 먼저 하늘로 가버린 '야속한' 성중이 형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고 슬픔,
아쉬운 감정들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서 성중이 형에 관한 것들이
잊혀질까봐, 잃어 버릴까봐 두렵다.

나한테 친형 이상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성중이 형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지만...
지금 나한테 시간은 해결사가 아닌
동화 속에서 기억을 잃게 하는 마술약 같은 일만 할 뿐이다.

기억을 덮어 버리기엔 성중이
형은 나한테 너무 나도 크나 큰 존재였다.

가끔 가다 꿈속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가는지,
나 자신과 현실만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 가는지,
이젠 성중이 형을 생각해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 친하게 지냈던 형님 중에 성중이 형이라고 있었습니다.
   9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고로 그만 돌아가셨지요.

   그 형님 장례식에 가보지 못했던 게
   정말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습니다.

   "저 세상"이라는 곳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다시 만나죠.
   제가 군대에 별 탈 없이 잘 갔다 온 것도 아마
   성중이 형님이 저를 보살펴 줬기 때문일 겁니다. */

 


: 98년 12월 25일.
군대에서 2번째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지만
크리스마스 기분은 전혀 나지 않는다.

나야 뭐 기독교를 믿지 않으니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매달릴 것은 없지만 그래도 좀 그렇다.


뭐 작년 크리스마스 때
신교대에서 관물대에 다리 올리고
한 시간 동안 얼차려 받았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양호한 거지만.... --;

내년에도 크리스마스를 군대에서 보내야 하니... 쩝...


/* 97년 12월 25일이었죠.   (^^;)
   신교대 6주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롤링 페이퍼라나요?
   종이 한 장에 돌려가면서 그 사람한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거 있잖아요...

   내무실에 있는데 기간병이 A4용지 2장을 주면서
   그간 조교랑 내무실장한테 하고픈 말이 있으면 적으라고 하더군요.

   동기들 전부다 서로 눈치를 보더니 틀에 박힌...

    "그동안 저희 가르친다고 수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항상 몸 건강하세요."

    "광주로 놀러 올 일 있으면 XX를 잊지 말아주세요"

    라고 아부성 글을 적고 있었죠.
    지극히 현명한 판단 이였는데... 허 허 허
     

    그런데...    --;
    조교 중에 제일 막내 조교가 와서 바람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야! 다 끝나는 마당에 뭘 눈치보냐?
     이럴 때 욕 안하면 언제해?

     안 그래?

     그리고 너희 그거 아냐?
     너희 계속 그런 식으로 적으면 내무실장한테 '벌점'받는다.
      
     괜찮으니까 욕 적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껏 적으라고..  (^o^)/
     다른 조교들도 다 이해해 주니까"


     그 말을 듣고 순진하게 믿어버린 동기들.

     "야! 사회에서 만나면 아는 척 하지마라. 죽는 수가 있다."

     "야이 XXX들아 내가 좀 참았기에 망정이지. 썅!!!
      사회에서 만나면 칼부림 날지 알아라!"

     "부산에 내려왔다가 부산 앞바다에 둥둥 떠 댕기는 수가 있다."

     "제대하고 몸조심해라"

     "머리를 갈아 마시겠다..."
       (요건 조교들이 저희한테 자주 썼던 말이죠.)

     등등등

     아무튼 욕이란 욕은
     다 적었습니다. 서로 신이 나서 말이죠.

     그런데....

     그날 점호 시간
     조교들 전부다 내무실로 쳐들어와서 한바탕 하더군요.

      "이 개XY들 뭐 어째?  그래 이 씹XY들아 해보자 엉?!"


      "이 쌕이들 잘해주면 안돼
       기껏 생각해서 좀 봐줬더니
       무서운 게 없지??? 앙?
       너희 아직 퇴소 안했어 이 쌕이들아~~~"


      "사회에서 만나면 조심해라고?
       그래 이 쌕이들아 우리집 주소랑
       전화번호 알려줄게
       인천시 ~~~~~~
       XXX - ABCD - EFGD이다
       이색이들아 빨리 받아 적어!! 빨리 받아 적으라고!!!"


      "업퍼 씹돽이들아!

       주먹 쥐어!!!

       다리 관물대에 올려!!! "


      흘 흘 흘
      그날 밤 정말 따뜻하게 잤습니다.
      사람 체온으로 실내를 뜨겁게 데워 보셨습니까?
      사람 체온도 무시 못 합니다.

      내무실장이 그 때 얼차려를 시키며 소선(훈련병 반 대표 같은거..)한테
      저희가 썼던 걸 읽어보라고 하더군요.
      흘 흘 흘 얼차려 받는 중이었지만 정말 골 때리더군요.
      소선은 그 때 얼차려 받으랴, 쏟아지는 웃음을 참으랴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 했습니다. 웃음 참는 게 보통 힘든 일입니까?
     
      조교들끼리 짜고 한건지 아니면 그 때
      그 막내조교가 벌인 단독 범행인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입니다 ^^;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그래도 퇴소식할 땐 서로 서로 웃으며 헤어졌습니다.

      그 당시 저희 내무실장이
      결혼을 했는데 동기들이 스스로 돈 걷어서
      부조금도 냈구요    ^^;

      그 때.. 퇴소식 마치고 자대로 가기 전에
      내무실장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만약 너희들이 전쟁터에서 다리가 다치게 되어
       꼼짝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 너희들을 끝까지
       끌고 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평소 너희를 가장 갈구고 가장 못 살게
       굴었던 고참일거다.
       자대가면 고참 말 잘 듣고 열심히 생활해라.

       .....

       그리고 한 가지 더!
       누가 뭐라고 해도
       육군 조교가 제일 힘들어 씨발...."

       정훈철 내무실장님...
       지금은 뭐하고 계시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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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04-09-2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대꾸할게요.

1. 여자의 눈물에 정말 속으면 안 된다!

그러나 "속았다" 는 척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할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속았다"는 척을 한번하면 평생, 죽을 때까지 "속아야" 한다고 생각해요(단 저도 아직 "평생"을 실행하지 안했으니까, 어떤지 ???)

2. 진정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랑 자지 말아라!

그러나 그 여자가 "그런 경험"이 있다, 없다는 것을  확인해서는 안되요. 널리 양해를 해줘요.

또한 상대가 바라는 "사랑의 표현"은 잘 생각해서 모양, 말로 밝혀 줘야 할 경우가 많애요(이것이 힘든다니까, 남자에 있어서는).


ChinPei 2004-09-2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이 "포반장 추억 수첩" , 정말 재미있어요. 회고록적인 소설 형식으로 잘 엮은면 좋은 소설책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혹시 출판하실 경우 최우선적으로 연락 부탁 드릴게요.

세벌식자판 2004-09-28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보신다니 다행입니다.
어째 코멘트를 달아주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 반응을 알 수가 있어야죠...

소설책이라.... 허허 제가 그렇게 글 재주가 좋은것도 아니고
종이낭비를 시킬수는 없죠 ^^a
그냥 인터넷 상에서 여러분들이 조금이나마 재미있게 읽어보신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아!
그리고 바로 위에 해주신 참고 조언은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
("대꾸"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대꾸"는 변명할 때 쓰는 단어구요... )

허허 평생 여자 손목을 잡아봤어야 뭘 알죠 뭐... 허허허
이론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데 실기는 언제 해볼지 통 모르겠네요.
뭐 언젠가는 제 반쪽을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 허 허

ChinPei 2004-09-28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소설" 출판이라고 한것은 농담이 아니구요.
그리고 님, 글 재주 좋지 않다고 하셨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구요.
다만, 저의 한국어 능력이 높지 못하니까 정당한 평가도 못할 것이지만.
그러나 내용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진짜.
글 재주보다 내용이죠.

세벌식자판 2004-09-30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 감사합니다. (^_^) (_ _) (^_^)
 

포반장 추억 수첩 - (12)

: 98년 11월 2일 드디어 상병 진급을 했다.
일병 때 시간이 너무 잘 가서 그런지 몰라도 별다른 흥분 같은 게
느껴지진 않지만 그래도 연두색 바탕에 검은 줄이 세 개 나 있는
상병 계급장을 보면 흐뭇해진다.

벌써 군 생활 일년이 다 되어간단 말인가...?

 

: 98년 11월 16일 상병 정기 휴가를 갔다.
14:23발 TMO를 타고 집에 가니깐 밤 9시 뉴스가 하는 게 아닌가.

/* 부대는 경기도 파주에 있고 집은 부산이니
   보통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 빼먹으면 며칠 놀지도 못합니다.

   집이 서울인 사람은 집에 가서 점심을...
   어떤 사람은 집에 가서 아침을 먹기도 하는데...
   참 불공평(?)하더군요  -_-;    */

제일 반가워하는 건
역시 어머니였다.

18일은 주희가 수능을 본 날이자 오랜만에
아버지가 집에 오신 날이다.

내년이면 환갑인 아버지이지만 아직까지 고생하신 다는 게
마음 아프고 아버지 얼굴을 볼 때마다
늙어 가신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또 한 번 더 마음이 아파진다.

간만에 아버지와 있었지만 이렇다할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TV와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 나 때문에....


14박 15일 동안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영준이를 만난 거다.

휴가 나왔다고 수원에서
내려와 나를 감동시켰고
그 녀석 주머니에서 나온
라이터와 담배가 날 놀라게 했다

하루에 10개비만 핀다는데.... 글쎄...

복귀 할 땐.... 담담했다

그럭저럭 적응도 되고...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야 그나마 후회되는 게 있다면
좀 더 많이 먹고 많이 마실걸 하는 거다.

휴가 갔다 온 그 보름사이
부대는 산, 밭, 포상, 철조망 밖의 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것이 누런빛으로 바뀌었다.

 

: 추운 것은 힘든 것이다.
여름은 덥기만 하다.
덥다가 어느 순간 몸이 덜덜 떨게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겨울은 춥다가 조금만 움직이면 이내
숨을 헐떡거리며 땀을 흘린다.

덜덜 떨다가 이내 땀을 흘리고 그러다
얼마 안돼 다시 덜덜 떤다.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춥다가 계속 춥다면 그나마 나을 것을...

더워 죽기는 어려워도 추워 죽기는 쉽다

결론 : 겨울은 힘들고 춥다... (겨울 > 여름)

/* 겨울 군번이기 때문에 여름에 고생을 안 해봤습니다.

   여름이 힘드냐
   겨울이 힘드냐
   하는 걸 구분 짓는 게 사실 무리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겨울이 좀 더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위병소( 학교로 치면 교문 ) 밖에만 나가면
   한 겨울에도 따뜻하고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답니다.  홍 홍 홍.   (^o^)
   공기 부터 맑고 산뜻하고 깔끔하게 바뀌지요.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

 

: 내 자신을 위해 땀을 흘리고
  내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내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작자 미상)

/* 고참 관 물대에 있던 글 입니다.
    멋진 글인 것 같아 따로 적었던 겁니다.  */

 

: 98년 11월 18일
내가 군 입대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이라는 시간이 정말 길 것만 같았는데 뒤 돌아보면 금방인 것 같다.

이제 후임병들 한테도 폼을 잡으며

"내가 작년에 군대에 있을 때 말이야~~~~~"
하면서 으시댈 수도 있다.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을
한 번씩만 더하면 된다.
.... 그나저나 유격은 또 어떻게 뛰냐?!

 

: 휴가 가서 느낀 건데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하고
'할 일'이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무의미 하고 지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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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반장 추억 수첩 - (11)

: 98년 10월 29일.
우리 대대와 우리 포대가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연대 주특기 경연 대회 1,2,3등을
우리 대대 알파, 브라보, 챠리 포대가 싹쓸이 했고
그 중 우리 포대가 200점 만점으로 1등을 했다.
2등이 브라보 인데 199점을 받았다나?
(전포분과만 말하는 것임)


경연 대회에 참가한 인원은 전부 휴가를 간다고 한다.
우리 포대원들이 대회 참가를 위해 부대를 떠날 땐 좋은 성적 얻기를 바랬는데
막상 1등을 하고 나니 솔직히 배가 아프고 질투가 난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겪게 되는 실패나 좌절을 보면
안타까워하고 위로해 줄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성공한 모습을 보면
겉으로는 축하해 주지만 속으로는 시기, 질투를 한다고 한다.

나 또한 그러니 나도 그렇게 착한 놈은 안 되는 가보다.
...

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우리 전포반 사람들한테
진심으로 축하 해주자.

그 만큼 노력하여 땀을 흘리지 않았나!!!
역시 마음은 곱게 먹어야 한다.

/* 주특기 경연 대회라는 것은 일년에 4번
   연대 주특기 경연 대회, 대대 주특기 경연 대회
   이렇게 각각 2번씩 합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서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경연 대회... 포병 출신 예비역 분들은 아마 잘 아실 겁니다.
   말 그대로 각자 주특기를 누가 누가 잘하나 등수를 매기는 대회입니다.

   경연 대회인 만큼 실기, 이론 시험이 모두 있습니다.

   군인한테 웬 이론시험이냐고 질문하실 분도 있겠지만
   군인도 군대에서 공부를 합니다.   주특기 공부라고 하지요.
   사회에서는 하나도 쓸모없습니다.   -_-;

   부대 성적, 인사고과 성적에 상당한 비중이 있기 때문에
   간부님들도 아주 민감하죠.

   대회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합니다.
   낮에는 몸으로 때우는 주특기 연습
   밤에는 쉬는 게 아니라 주특기 이론 공부...

   TV같은 것도 눈치가 보여서 못 봅니다.
   이런 생활을 몇 주 하다보면 사람 돌아버립니다.


   경연 대회....   정말 '죽음'입니다...
   전부 실력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누가 실수를 안 하나 하는 걸
   겨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 한 명 실수로 말아 먹으면
   졸지에 역적이 되는 겁니다.
   그 '역적'이 되기 싫어서 서로 서로 경연 대회에 안나갈려고 하죠.

   '역적'이 되면 그 후유증으로 몇 주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거의 반 폐인이 되어버리지요.
   자격지심에.....아무튼... 그런 게 있답니다... ^^;


   제대한지 만 4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론지식들이 있네요.

   방열이라 함은 포를 방향과 고각상으로 표적에 지향하는 것이다.

   사향속이라 함은 2문 이상의 포가 동시에 사격할 때 형성되는
   횡적파열분포로서. 그 종류는 평행, 집중, 개방, 표준, 특별 사향속으로
   나눌 수 있다.

   등 등 등...  ^^a


   군대식으로 공부했으면 장학금 타고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까..용???
   .. 헐 헐 헐..  */


: 10월 29일.
오늘 범장이와 진혁이한테서 편지가 왔다.
반가웠다.
그런데 진혁이가 11월 26일에 입대를 한다고 한다.
내 아들 군번이 되나?
휴가 가서 꼭 만나봐야겠다.

 

: 난 평소 너무 자신감을 가지지 않고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을
괜히 위에서 무슨 소리 듣지 않을까 하며 혼자 걱정하고 혼자 주눅 들고...

앞으로 이러지 말자

마음만 쉽게 먹으면 한 없이 쉬운 것들 아닌가?
매일 매일 속으로 외치자.
'난 할 수 있다!'

 

: 군 생활을 편하게 한 것은 결코 자랑하거나 득이 되는 일이 아니다.

비록 남들보다 좀 더 불편하게 생활했어도,
휴가를 많이 가지 못 했어도,
고생을 더 많이 했어도

그 속에서 뭔가 얻고, 깨달은 것이 있을 때
자랑 할만 하고 득이 된다고 난 생각한다.

군 생활의 성공과 실패는 자기가 판단하는 것이지
남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고 싶다.

 

: 군 입대 초기엔 군 생활 내내 그러니깐
하루 종일 긴장감과 압박감이 따라다닌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답답함들...

하루를 열어가는 아침이 길게 느껴지고
또 싫어진다.

잠자리에 들면 떠오르는 생각이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군 생활 1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 신병 때에나
느끼던 그런 긴장감 & 압박감 혹은 답답함은
거의 없어졌다

아침이 와도 '아! 아침이구나.' 정도로 그냥
'싱겁게(?)' 받아들인다고 해야 되나?

마음을 비우며 살아간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나도 짬밥을 먹긴 먹었나 보다

/* 신병 때는 아침이 정말 싫었습니다.

   특히 기상나팔 소리... --;

   그 당시 너무 긴장을 하고 살아서 인지
   동절기엔 6시 반에 기상하는데 6시만 되면 꼭 눈이 떠졌습니다.
   사회 있을 땐 자명종 기계가 신나게 울려도 꼼짝달싹 안했는데 말이죠.


   자다가도 종종 눈을 뜹니다.

   지금은 새벽 6시 정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시계를 봤는데
   새벽 4시 일 땐

   "이야 앞으로 2시간 반은 더 잘 수 있구나"
    라며 혼자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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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반장 추억 수첩 - (10)

: 지금은 98년도 10월 중순.
산은 점점 옷을 벗으며 갈색, 붉은 빛으로 물들고
부대 근처의 논밭들도 조금씩, 조금씩 흙빛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군대라는 곳을 온지도 일년이 다 되어간다.
. . .
6장짜리 달력도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1장 밖에 안 남게 된다.
지난 1월 달에 '언제 저 달력을 다 떼나?" 했었는데 말이다.

 

: 여태까지 신교대에 있는 범장이한테 4통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편지를 붙여 줬는데도
이놈한테는 편지가 한통도 오지 않는다. 나태한 놈.
마음 같아선 독촉 편지를 하고 싶지만... 참자...

 

: 영준이랑 연락을 못 주고 못 받은 지도 5달이 다 되어간다.
일병 휴가 때 만나고 통 소식을 모르니...

삐삐도 끊긴 것 같고
뭐 하고 있을까 그 녀석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그 녀석한테는 안 통했으면 좋겠다.

 

: 군대에서 깨닫게 된 것 하나!
'밑에 사람 부리기'

1. 밑에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한다.

2. 밑에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된다.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밑에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다

/* 정말 입니다.
   장담 합니다. 위에 1, 2번만 지키면 리더십 있다는 말을 들을 겁니다.
   말은 참 간단한데 행동으로 옮기는 게 정말 힘듭니다.

   짬밥으로 밀어 붙여도 되긴 되지만 확실한 해결책은 못 됩니다.

   군대에서 사람 부리는 거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배운 것 같습니다.   */

 

: 'V'자 형으로 열을 맞춰 날아가는 철새들을 보았다 .
사회 있을 때에도 많이 봤던 광경 이였는데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곳이
군대라서 그런지 특별하게만 느껴진다.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해주는 또 한 가지의 광경이리라...

 

: 군대 와서 알게 된 것 하나!

--->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참 힘들다는 것.

유격 훈련을 받으며, 이런 저런 문제들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걸 느끼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자식 4명을 키우며
아직까지 고생하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분이란 생각이 든다.

그나마 전역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군대만큼 편하고 살만한 곳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흐... '사회'란 곳은 도대체 어떠한 곳일까?

 

: 물 먹은 위장망을 쳐보지 않고서
  포병을 논하지 말라!

/* 포병 나오신 분들은 이 말이 가진 의미를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
   물 먹은 솜 때문에 고생했던 당나귀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

 

: 10월 20일.
자정이 몇 시간 지난 지금!!!
보초 근무를 서는데 정말 추웠다.

나중에 보니 영상 2도...

이게 과연 한 가을의 날씨 & 온도인가?
부산 같았으면 바로 겨울 날씨다.

하긴 작년 10월 말에 여기선
첫 눈이 왔다고 하는데 뭐...   -_-;
군대의 계절을 여름과 겨울 밖에 없다는 말이
진실(?)인 것 같다
휴~~~ 이제 겨울이구나.

 

: 9월 (98년) 중순 어느 날...
야외에 나와 경계근무를 서다 문득 하늘을 보았다.
파랗디 파란 하늘. 맑디맑은 하늘.
너무 맑은 게 섭섭했는지 엷은 구름 한 조각이
하늘을 가로지르다 이내 사라져 버린다.

파 란 하 늘  -  푸근하게만 느껴진다.

 

: 98년 10월 말.
그렇게 센 바람도 아닌데 나뭇잎들이 눈발이 날리듯이 떨어진다.

일주일 전만 해도 녹색이 눈에 많이 띄던 뒷산은
보기 좋게 물들여져 녹색을 찾기 어렵게 한다.

부대 근처의 논밭들도 거의 다 벌거벗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나면 상병이 된다.
일병 때는 정말 시간이 잘 가는 것 같다.
벌써 군대에 온지 1년이 다 되어간다.
.....

 

: 10.22에 범장이한테서 편지를 받았다
군인이 된 범장이한테 처음 받는 편지였다.
너무 반가웠다.

/* 먹는 걸 좀 가리는 친구인데 신교대 첫 주에는 밥을 잘 못 먹었답니다.
   그러던 게...

   2주 째 부터는 깨끗하게 비웠다더군요.      ^^;
   역시나 배고픈 데에는 장사가 없나 봅니다.

   친하게 지냈던 고참 중에서 군대오기 전에 김치도 못 먹었던
   고참도 있었습니다. 허 허 허 물론 군대 와서 다 고쳤지요.


   아~~~ 문득 경기도 적성에서 맛봤던 부대찌개가 생각나는군요.
   소주랑 같이 먹으면 정말 정말 맛있었는데..... 

   캬~~~  ( > ㅠ < )==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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