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읽고 보니 이 책이 최근에 쓴 것이 아니라 파묵이 초창기에 쓴 책이란 것을 알았다. 초창기에 쓴 책이지만 번역가의 말대로 그 후 파묵의 작품 세계를 암시하는 것들이 이 책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읽을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묵의 작품은 <새로운 인생>,<눈>과 이 책을 읽은 것이다. 전작을 읽겠다고 다짐하기에는 뭔가 끌어당기는 것이 약한데 어느 순간 찾아읽는 것을 보면... 또 괜찮게 읽은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을 잡은 것은 제목때문이었다. 고요한 집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족간에 대화의 부재, 그런 문제들을 상상했던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터키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가족의 모습으로 녹여놓은 것이다. 파트마의 세 손자들을 둘러싼 다양한 성장기의 사건들을 읽으며 동서양 사상의 충돌이나 터키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들을 읽어낼 수 있다. 나는 세 손자의 이야기중 첫째 아이 파묵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역사가가 되기 위에 이야기에 집착하는 아이. 현실을 살지 못하고 진짜 내가 되고자 고심하는 흔적. 어딘가 나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트마가 마지막에 외친 것처럼 우리 인생은 오로지 한번이기 때문에 다시 맨앞으로 되돌아가 재생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집착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이곳 내 침대에 누워 생각했던 것처럼. 넌 삶을, 단 한번의 그 마차 여행을,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없어, 하지만 손에 책 한권이 들려 있다면, 그 책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호해도, 다 읽고 나서, 그 모호함과 삶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 원한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 읽은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 그렇지 않니? (2권 27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나 스스로를 굉장히 계획적이고 꼼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모습이지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게다가 요즘 내가 벌이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더 할 말이 없어진다. 나는 내가 굉장히 감성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감성적인 소설책을 읽으면서 별로 몰입이 안되는 것을 보면 나에게 공감능력이 부족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진부한 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내가 그 시기를 겪지 않았기 때문일테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변한다. 나의 젊은 시절도 뒷세대들에게 넘겨주어야할 그런 시기가 온 것이다. 윤이는 단이를 명서는 미루를 떠나보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들은 서로를 마주 하지 못한다. 서로의 상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서로를 필요로 할 것 같지만 너무 잘 안다는 것이 다시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 역시도 잘 안다. 하지만 윤은 용기를 내어 명서가 있는 곳으로 가려한다. 내.가.그.쪽.으.로.갈.게..라는 말.. 얼마나 해본지 오래되었는가. 이런 대수롭지 않은 말도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온 것 같아 유난히 더디오는 봄을 기다리는 요즘 조금 울적해지려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2-04-0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피필름님 짧고 강한 느낌이에요.
그쪽으로 가려고 결심하는 용기, 쉽지 않지요.
4월의 첫날이고 정말 봄이에요. 목련도 피었고 바람도 기분 좋아요.^^
울적은 조금만이요^^

스파피필름 2012-04-01 22: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용기가 필요한 날들입니다. ^^ 벌써 목련이 피었나요?
올해 첫 목련을 보게 되면 사진을 찍어 올려 봐야겠어요. ^^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장바구니담기


이미 일어난 생각은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그대들이 10년 동안 행각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나의 생각에는 불법에는 복잡한 것이 없다. 단지 평상시에 옷 입고 밥 먹으며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 <임제어록>-47쪽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철저한 부정 끝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긍정이 찾아올 수 있는 법이다. 결국 참된 자유 혹은 참된 해탈은 우리가 타자를 기억이나 기대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으로 응대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51쪽

깨달은 자의 마음은 맑다. 그렇지만 맑고 고요한 물이 외부의 바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맑은 마음은 타자에 대해 섬세하게 대응할 수 있는 마음이다. 번뇌에 사로잡힌 사람에 공감하면서도, 깨달은 사람은 그의 번뇌를 치유할 수 있다.
(...)
특정 사람만을 사랑하려고 고집한다면, 우리는 타자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유지할 수 없다. 손으로 연필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한다면, 컵, 책, 나아가 타인의 차가운 손도 잡아줄 수가 없다. 따뜻한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모든 사람들의 차가운 손을 어루만져주기 위해서, 우리는 매번 자신이 잡았던 손을 놓아주어야만 한다. -2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은 여행 - 만화가 이우일의 추억을 담은 여행책
이우일 글 그림 / 시공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나쁜여행이란 없다. 나쁜 기억이 있는 여행이 있을 뿐이다.

어딘지 조금 무기력하고, 소심한데다, 계획성도 없는 이우일작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쿡쿡..웃음이 나왔다.

많은 기대를 하고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도 일상과 같아서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손해보는 일이 있기도 하다. 단 2박3일을 여행하더라도 함께하는 이가 누군가에 따라 감정의 굴곡 또한 느껴지는 법이다. 일상을 벗어나고자 떠나지만 마음이 편치 않으면 떠난 그곳에서 조차 마음이 편치 않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일상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일상에 불평이 많은 자는 여행 가서조차 불평이고, 일상 생활 속에서도 보석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은 여행에서의 모든 것이 기쁨으로 다가온다.

별 기대없이 읽었다가 재밌게 봤다. 다큐멘터리 촬영 차 캄보디아에 갔다가 거미를 먹어야 했던 일.. 이거 어디에서 한건지 TV로 못본 것 같다. 맛있는 거 먹으러 도쿄도 가고 싶고..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많아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가의 구름빵이라는 그림책을 몇권 선물한 적이 있다. 같은 작가의 그림책을 또 사서 조카에게 선물해주었다. 나는 노랑색을 좋아하는데 전체적으로 검은 바탕에 노랑색이 너무 예쁘다. 날이 더워서 녹고 있는 달물을 받아다가 반장 할머니가 만드는 달 샤베트는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할까. 게다가 그것을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예쁜 마음이라니..  세세한 그림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보이는 그림책이다. 달이 없어지고 살 곳이 없어진 옥토끼들까지 반장 할머니를 찾아온다. 없어진 달은 다시 생겨날 수 있을까?  

실제로 달이 없어지는 일을 상상하는 건 끔찍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달을 보면 노랗고 환하게 빛나는 달 샤베트가 떠오를 것 같다. 더운 여름밤 식구들과 동네사람들과 에어컨에 의지않고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