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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오세영의 단편집 『부자의 그림일기』(글논 그림밭 펴냄)를 중3~고1을 즈음해서 처음 접했습니다. 학교에서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즐겁게 읽었죠. 책을 통해 오세영 만의 독창성이 자연스레 스며들었습니다.

10년 뒤 이웃 블로거에게 얻어서 다시 봤는데 처음 보는 것 같은 기분과 오랜만에 보면서 느끼는 감회가 교차했습니다. 마치 어릴 적 추억을 오랜만에 접하는 느낌?


저자의 단편선인 『부자의 그림일기』는 10편의 창작 만화와 3편의 월북 작가 단편을 그린 만화로 구성됩니다.


한편씩 보면서 재미와 공감을 한 번에 느꼈습니다. 어느 작품이 좋았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13편 모두 명작입니다. 첫 작품부터 독자를 매료시키더니 책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작품으로 독자를 한숨 쉬게 만들죠.


대부분 인디 영화에서 볼 법한 소재인데 그림은 인기 만화 못지않다고 할까요?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를 조용히 비추며, 독자의 관심을 이끕니다. 오죽하면 많은 언론에서 대서특필했을까요?


고도로 압축된 이미지와 군살 없는 대화, 그리고 진지한 문제의식이 겹치면서 마치 한 편의 사회소설 혹은 실험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다. 맛도 있고 영양가도 높은 음식을 곱씹는 것같다. 이른바 만화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통속만화에서 찾을 수 없는 그윽한 회화미가 배어나온다.

- 중앙일보

`만화가 이런 감동을 줄 수도 있구나`라고 놀란 이들이 많았다. 단편 13편을 모은 이 작품집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과 삶의 아픈 속살을, 때로는 무자비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드러냈다.

- 한국일보


내용을 따로 설명할 수 없는 『부자의 그림일기』, 이제 여러분이 볼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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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김은주의 글은 사람들의 눈을 끄고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직업 특성 상 관심을 끄는 창의적인 글을 쓴다지만 이 정도일줄 몰랐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런 글을 어디서든 접하지만 자주 읽으면서 활력과 위로를 얻고 팠겠죠.

그녀의 크리에이티브한 글이 삶이라는 주제를 만나 두 권의 책으로 나왔다면 놀라시겠죠? 바로 『1cm』(일 센티 첫 번째 이야기)와 『1cm+』(일 센티 플러스) (허밍버드 펴냄)입니다. 각각 아트디렉터 김재연과 일러스트레이터 양현정이 그림을 그렸네요. (고양이와 연관된 것도 같답니다.) 두 권에 담긴 글과 그림은 읽는 사람에게 근심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안정을 느끼게 하죠. 책 속 캐릭터들의 아기자기한 모습과 책 뒷부분에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미소를 짓게 하죠. ‘우리 인생에 더하고 싶은 1cm의 □를 찾아서’ 한번 읽어볼까요?


『1cm』 - 매일 1cm 만큼 찾아오는 일상의 크.리.에.이.티.브.한 변화


p12~15 ‘타조알 속에’

타조알 속에 새끼 타조

악어알 속에 새끼 악어

펭귄알 속에 새끼 펭귄

거북이 알 속에 새끼 거북


달걀 속에 삶은 달걀


인생이 흥미로운 것은,

감당할 수 있는 의외의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p78~79 ‘천생연분’

달걀 노른자를 좋아하는 남자와

달걀 흰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만나는 것.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남자와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가 만나는 것.


김치찌개밖에 못 끓이는 여자와

김치찌개 없인 밥 못 먹는 남자가 만나는 것.


늦잠자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와

팔베개해 주기 좋아하는 남자가 만나는 것.


눈물이 많은 여자와

가슴이 따뜻한 남자가 만나는 것.


천생연분-


짧은 글 속에 한 페이지를 채우는 그림이지만 흥미를 끄네요.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글이지만 그림과 만나고 멋지게 꾸민 티가 물씬 풍깁니다. 특히 이 글이 더 그렇죠.


p104~105 ‘다음 ()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으세요’에서

() 속 이름은 매번 바뀐다.


사랑이 영원하냐고 묻는다면,

사랑은 영원하나

그것이 꼭 한 사람을 향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중략)


사랑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현재’다.


p148~149 ‘놀부를 이해하다’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버릇, 어떤 취향, 어떤 성격은

그의, 그녀의

스토리를 듣는 순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놀부 이야기에

그가 놀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스토리가 덧붙여졌다면

그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았을지 모른다.


『1cm+』 인생에 필요한 1cm를 찾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


전작보다 글이 많고 길어졌지만 재미도 더 커졌습니다. 삶을 향해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주는 이 글들은 지금 이 순간 읽고 싶게 만든 답니다.


p104~105 ‘코끼리를 예로 들어’

노아의 방주에 코끼리가 탈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가 곡예를 넘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코끼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과 사랑에 빠진 것은

당신이 어떤 것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당신이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영원히 코끼리 이고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당신은 당신이며,

코끼리가 멸종되지 않았듯

당신을 향한 내 사랑 또한 계속될 것이다.


p188~189 ‘지난 번 데려온 고양이가 말을 해’에서

꼭, 일생에 한 번 그 일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웃지 않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감동받지 않거나

또는 무표정으로 일관하지 마록

사소한 일에도 자주 웃고, 더 행복해하고, 가슴 뭉클해지고

호들갑 떨어봅시다.

읽어보니 어떠신가요?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라 말하고 싶네요. 두 권 다 한두 개 정도는 접어서 보라는 등 흥미로운 참여를 유도하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또 한 페이지의 다음 페이지는 특이하게 ‘숫자+1’로 매겨졌습니다. 책 속 글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전략이겠죠?


저는 작년 학교 도서관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1cm+』를 받았는데 전작도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1cm』도 샀습니다. 오랫동안 놔두다 이번에 두 권을 다 읽고 나니 마음 속 한 구석이 평온해지고 가벼워졌습니다. 그만큼 한 걸음 혹은 1cm 가까워졌다는 의미겠죠?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삶을 향해 1cm 가볍게 나아가는 길에 동참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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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안정효 작가는 영문학과로 진학한 1961년부터 책읽기와 영어공부를 시작, 문학에 심취하면서 자신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많은 소설과 콩트를 쓰고, 책도 펴냈는데 이 중 한 권이 제가 소개하려는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모멘토 펴냄)입니다.



소설을 쓰면서 배경•인물•줄거리를 정하고, 이야기를 다듬는 과정을 자세히, 익숙하게 얘기하는 이 책은 작가 혹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p510)

글쓰기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자유에서 비롯한다. 어떤 자영업자라 해도 출퇴근 시간만큼은 꼭 지켜야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일을 한다. 돈에 대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그처럼 행복한 직업과 인생은 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마당 - 단어에서 단락까지

둘째 마당 – 이름 짓기에서 인물 만들기까지

셋째 마당 – 줄거리 짜기에서 초벌 끝내기까지

넷째 마당 – 시작에서 퇴고까지

다섯째 마당 – 글쓰기 인생의 만보



책의 내용은 다섯 가지 마당으로 구성됩니다. 다 다루기 힘들어 일부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마당 - 단어에서 단락까지

글쓰기의 기초인 단어~단락을 공부하는 장입니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단어와 단락을 살펴보고, 안되면 창조적 글짓기를 하라고 조언합니다. 기초가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거죠.



(p20)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구상을 어떻게 하는지는 아직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아야 좋다. 여기에서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쓰면서까지도 남더러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글쓰기를 하면서 습관이 되기 쉬운 ‘장식적인 글쓰기’를 경계하라고 조언합니다. 옛날에는 대중을 위해 구전•서사로 이야기를 꾸몄지만, 개인 독자/대량 생산 시대의 요즘은 문장이 단순해져 겉치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문장을 간결하면서 힘 있게 쓰라는 의미죠.



(p52)

문장의 지나친 장식은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동차에 싣고 다니던 화장지 덮개나 전화 씌우개 그리고 텔레비전 장식장이나 마찬가지로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둘째 마당 – 이름 짓기에서 인물 만들기까지



소설이나 극대본을 쓸 때 익혀야 할 기술입니다. 저자는 기술과 과정을 설명하면서 재미있게 썼습니다. 일부를 가져올까요?



(p129)

글은 읽히기 위해서 분투하고, 제목은 눈길을 끌기 위해 분투한다.

(p199)

작가 지망생들이 흔히 생각하듯, 갑자기 무슨 대단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다음 책상 앞에 앉으면 밤낮으로 손끝에서 글이 줄줄 흘러 나오는 그런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긴 글쓰기란, 집을 지을 때처럼 설계도를 만들고 기초를 닦은 다음, 땅을 밑으로 파고 들어가 지하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작업이다.



이건 뭔가요? 인물 만들고 이름 짓는 것도 머리를 차근차근 써야 된다는 거죠?



마지막 장인 ‘인물의 해석과 발췌’는 저자가 초고를 만들던 2005년 당시 황우석 박사 사태를 다뤘는데 실화를 작품으로 옮길 때 유의 사항을 다뤘지요. 저는 거기서 영화 ‘제보자’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보지 못했지만 저자가 그 영화를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는 조그만 상상을 했습니다.



셋째 마당 – 줄거리 짜기에서 초벌 끝내기까지



이번 마당은 소설쓰기에 대한 전문지식과 기법을 다룹니다. 저자 스스로 이론가의 견해를 수용한다고 언급했으니 말 다한 거죠?



(p221)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단편소설에서는 대부분 상황이 몇 시간이나 며칠로 끝나지만, 인물에 대한 작가의 이해는 총체적이고 완전해야 한다.

(중략)

훌륭한 단편소설은 필연적인 시작으로 시작되어,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필연적인 기승전결이 이루어지며, 설명과 묘사로 지면을 낭비하는 사치가 용납되지 않는다. 하나의 문장은 가급적이면 한 단어로 줄이고, 하나의 단락은 하나의 문장으로 줄이려는 습성이 단편 작가에게는 본능이 되어야 한다.



넷째 마당 – 시작에서 퇴고까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관심가질 부분이죠. 시작하면서 퇴고하기까지 순간순간 알아두어야 할 점, 삶의 중요함 등 쓸 만한 조언이 곳곳에 담겼습니다.



(p307)

어느 정도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콩트나 수필 같은 조각글을 써달라는 청탁서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오는데, 바로 이런 때가 성공한 다음의 몸가짐과 작품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다. 성공의 단맛에 도취되고 흥분하여 아까운 정보를 부스러기로 낭비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p317)

작가에게는 자신의 삶 자체가 밑천이다. 삶은 경험이요 교육이며, 훈련이고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마당 – 글쓰기 인생의 만보



이 책의 메인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한 독자의 취향, 문체, 주체와 철학 등을 다루고 있네요.



(p389)

돈이 안 되는 진지한 글쓰기는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이 가장 열심히 추구하는 차원의 소명이며, 힘든 도전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보람을 느끼게 한다.

(p392)

문학은 작가의 개인적인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만인의 진리를 반영하려는 철학과는 달라서, 헤밍웨이의 세계가 노먼 메일러의 세계와 일치해야할 필요성을 독자는 요구하지 않으며, D.H. 로렌스나 헨리 밀러처럼 작가 개인의 삶과 경험이 그가 엮어낸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름대로 일관성을 갖추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481~482)

문체는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반영하고,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된 세계는 그가 글쓰기를 하는 문체의 꼴을 결정짓는다. 한 작품을 풀어나가는 서술의 개별적인 관점도 그 작품의 문체를 규정짓는 원인으로 작용하며, 역으로 특정한 문체는 그에 알맞은 서술관점을 결정한다. 또한 관점은 화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서술체를 결정하고, 서술을 진행하는 화법은 대화체를 통해서 인물 구성의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와 곳곳에 그린 저자의 삽화는 미소를 짓게 하고, 흥미를 느끼게 해주죠. 저자가 소설가다보니 비록 소설 쓰기를 주제로 했지만 글을 쓰는 저도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흥미 있게 읽게 하는 교양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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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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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지대한 관심, 성실과 노력을 발휘했던 조선의 대표 지식인들을 만나는 책 `미쳐야 미친다(정민 지음, 푸른 역사 펴냄)`를 소개합니다.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민 교수는 18세기 이후 조선의 지식인이 보여준 열정과 광기의 기록을 따라가는 `미쳐야 미친다`를 쓰셨습니다.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노긍, 김영 등을 그 시대의 안티 혹은 마이너로 보았지요. 18세기는 조선에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영정조 시대, 지식인들을 대거 기용해 나라의 학문이나 기술 발전에 힘쓰도록 만들었죠. 다만, 당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개성을 지닌 탓에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 재평가 받았다고 할까요?



나는 이 책을 통해 잊혀진 작은 영웅들을 복원해내고 싶다. 그들은 죄인으로, 역적으로, 서얼로, 혹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기생과 화가로 한 세상을 고달프게 건너갔다. 이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심지어 굶어 죽기까지 했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 잊혀졌지만, 어느 순간 나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했던 그들의 뜨겁고 따뜻한 마음만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 6쪽 `머리말`에서


이 책의 내용을 다 요약할 수 없지만, 되도록 책을 보고 쓰며 어떤 책인지 이해하도록 느낌을 담아내겠습니다.



1부_벽에 들린 사람들

처참한 가난과 신분의 질곡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맹목적인 자기 확신, 추호의 의심 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되는 삶을 살았던 옛사람들의 내면 풍경이 나는 그립다.



이 책의 제목처럼 자신의 관심사에 빠졌던 지식인을 다룹니다. 요즘 표현으로 치면 마니아 혹은 오덕후라 할까요? 여기 소개된 지식인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배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특이한 관심사에 빠져 활동하는 것도 힘들 텐데, 제약이 더 많았던 18세기에 오죽했을까요?



한 시대 정신사와 예술사의 발흥 뒤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어느 한 분야에 이유 없이 미치는 마니아 집단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에 뚜렷한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질 때가 더 많다. 하지만 한 시대의 열정이 이런 진짜들에 의해 안받침되고, 우연히 남은 한 도막 글에서 그들의 체취와 만나게 되는 것은 한편 슬프고 또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

- 31쪽 `미쳐야 미친다` 말미

학문의 성취가 높아질수록 주변의 질시는 높아만 갔다. 그는 세상에게 버림받은 채 학문에만 몰두하다가 평생을 따라다니던 곤궁을 떨치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 49쪽 `굶어 죽은 천재를 아시오?`에서


특히 박제가가 읽었다는 서문장 이야기를 접하면서 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와 겹쳤습니다. 둘 다 생전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 했고, 찌르고 자르는 차이가 있지만 귀에 상처를 냈었죠. 서문장은 서얼이었는데, 그런 삶이 불행했기에 같은 처지의 박제가가 보고 슬퍼했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해하는 용기가 없어 그렇지 나라도 같은 상황에서 저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했고요.



문장 공부를 버리고 경국제세의 공부에 몰두하고는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써먹을 데도 없다. 그래서 뜻 높은 이에게 마음을 슬쩍 비춰 보일 뿐, 세상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중략)

나는 껍데기의 삶은 살지 않겠다. 뼈가 썩은 뒤에도 길이 남을 정신으로 살겠다. 세상 사람들아! 나는 나다. 그의 이름이 어떻고, 신분이 어떻고,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어떻고는 묻지를 말아라.

- 103쪽 `송곳으로 귀를 찌르다`에서


지식인의 긍지를 갖고 살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슬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요.



품은 식견을 세상을 위해 쓰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김삿갓 같은 시인의 존재는, 지식인을 고작 말장난이나 하면서 경계인으로 떠돌다 죽게 만든 벼든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일깨운다.

- 105쪽 `그가 죽자 조선은 한 사람을 잃었다`에서


2부_맛난 만남

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다.



우리가 아는 지식들이 만난 사람들, 이들의 만남을 통해 얼마나 인간적이고, 삶에 큰 정점을 찍었는지 느껴지네요.



이정은 허균보다 아홉 살 아래에 보잘것없는 화공의 신분이었다. 나이를 잊고 신분을 떠나 사귐을 나누었던 그가, 네가 못 오면 내 옆에서 웃고 떠드는 그림이라도 그려서 보내라고 부탁할 만큼 각별히 아꼈던 그가, 잘먹고 잘살라며 정성의 귀한 비단을 다 버려 놓고 달아났던 그가 이렇게 덧없이 훌쩍 가버리자 참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그림을 중하게 여겼지만, 나는 그 사람을 중히 여겼다는 말, 그가 죽자 풍류가 문득 다 스러지고 말았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 130쪽 `이런 집을 그려주게`에서


이래서 사람과 만남이 중요하나 봅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일이죠.



한 세상 건너가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쉽지가 않다. 벗이 있어 그 험난한 여정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옛 사람은 벗을 두고 `제이오` 즉 제2의 나라고 했다. 내가 품은 생각을 그가 홀로 알고, 그의 깊은 고민을 내가 먼저 안다. 지기나 지음이니 하는 말은 차고 쓴 세상을 견뎌내는 동지애적 연민을 수반한다.

- 138쪽 `산자고새의 노래` 서두


서로 짧은 글로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당시 지식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짧은 글 속에 작품세계를 심으며 대화를 나눴다는 건 서로 터놓고 얘기할 정도로 친하다는 걸 반증하지요.



척독은 지금을 치면 엽서쯤에 해당하는 짤막한 편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략)

척독은 결코 시간이 없어 짧게 쓴 것이 아니다. 긴 편지를 쓰는 것 이상으로 애를 써서 작품성을 의식하고 제작된 글이다, 척독을 읽고 나면 정경이 떠오르고, 그림이 그려진다. 절제된 비유와 간결한 표현, 말할 듯 하지 않고 머금는 여백의 미를 추구한다.

- 213쪽 `돈 좀 꿔주게`에서



3부_일상 속의 깨달음

고수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그들의 눈은 남들이 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을 단번에 읽어낸다. 핵심을 찌른다.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는 맑고 깊은 눈,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일깨움을 이끌어 내는 통찰력이 담겨있다.



작가는 평범한 소재에서 남들이 보지 못 하는 걸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통찰력을 가졌다는 게 대단한데 지식인들도 가졌다는 사실에 놀랐지요.



이옥이 지은 《연경》이란 책이 발견되었다. 골초였던 그는 담배를 사랑한 나머지 담배의 역사를 기록으로 정리할 생각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중략)

˝부처님에게는 향로가 있어 아침 저녁으로 향을 사른다. 향로에 향을 사르고 나면 향은 반드시 연기가 된다. (중략) 화로에 태워 연기가 되고 나면 향 연기도 연기이고, 담배 연기도 또한 연기이니, 담배 연기나 향연기나 똑같은 연기여서, 똑같은 연기 가운데 이 연기와 저 연기일 뿐이다. 부처님이라 해서 어찌 다만 향 연기만 좋아하고 담배 연기는 좋아하지 않겠는가?(후략)˝

- 246~248쪽 `연기 속의 깨달음`에서


기발함이 느껴지죠? 이번에는 문장에 관한 홍길주 이야기입니다.



홍길주는 두 차례 행차 사이의 맥락 문제를 문장가가 문장지을 때 끊어졌다 이어지는 기변과 연관짓는다. 한 편의 글은 여러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단락이란 생각의 덩어리이다. 여러 개의 생각들이 여러 개의 덩어리를 이루고, 그 덩어리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총체적인 형상을 빚어낸다. 그러기에 하나 하나의 덩어리들은 각기 독립된 개채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밀한 연계가 있어야 한다.

- 296쪽 `천하의 지극한 문장`에서


당연해 보이는 설명을 심오하게 다루지요? 우리는 글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 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 단학의 수련도 결국은 마음공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결코 속세를 떠나 가족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깊은 산 속에서 풀뿌리나 캐어 먹으며 사는 삶을 부추기는 것일 수 없다. 생식하고 고기 안 먹고, 잠 안 자고 수련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략)

하늘을 훨훨 나는 신선이란 것도 결국 잡념을 걷어가 해맑아진 마음을 얻게 되는 대자유의 경계를 비유한 것이 아니겠는가?

- 316쪽 `신선의 꿈과 깨달음의 길`에서



신선의 꿈을 꾸었다는 허균의 이야기에서 저 같은 사람은 신선처럼 될 수 없다는 체념을 했고, 이 세상이 얼마나 어지러웠으면 신선을 꿈꾸었을까하는 생각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을 진정으로 닦는 게 어렵다고 말하네요.



18세기 지식인들의 열정, 성실, 기행을 보면서 나도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 스스로 그렇다고 자부했었지만, 이들의 모습에 겸손해져야겠더군요.



지식인의 삶 속에서 만나는 삶의 지혜, 뚜렷한 목표의식, 평범함을 거부한 개성! `미쳐야 미친다`는 흥미로우면서 우리가 배울 게 뭐가 있을 까하며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에 나온 지식인들과 저자인 정민 교수님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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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 개정판
공광규 지음 / 문학의전당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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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인의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화남 펴냄)은 시 이론 교재, 교양서 기능을 합니다. 두꺼운 책 크기에 당황하는 분이 있겠지만, 정성을 담았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겁니다.


시를 공부하고 있거나 공부해 보려는 분들을 위해 기획한 이 책은 그 동안 필자의 창작 경험과 창작 강의를 정리하여 묶은 강의 자료집입니다. 특히 강의실 안과 밖에서 사람들이 물었던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쓰는 겁니까?˝에 대한 이야기를 곁드린 대답입니다. 어려운 이론에 갇힌 시론이나 창작론을 깨기 위해 곳곳에 다소 느슨한 야유와 독설을 섞었습니다.

- 5쪽` 책을 내며`에서

1부 `창작 원리; 이론적 접근`과 2부 `창작 실현; 제재적 접근`으로 나누고 각각 15주차로 쓴 뒤 실제 강의·수강 분량을 옮겼습니다.


저는 같은 작가인 지인에게 소개 받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대출기한 내에 다 읽기 힘들어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길고 지루하게 느낄 때가 있었지만, 끝까지 읽다보니 이런 시나 기법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만 읽기 아까워, 소장하며 계속 읽고 배워야 할 책이었고요.


이론과 실천을 담은 책이라 내용을 설명하기 힘드니까 저에게 와 닿은 부분을 써보겠습니다.


빨래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벌어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 윤동주, 「오줌싸개 지도」 전문

오줌은 물의 성질이 있으므로 물의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핍한 식민지 시대에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가 돈을 벌러 가족과 이산을 해야 하는 현실을 아이가 오줌을 싼 사건을 가지고 그리고 있습니다.

- 128~129쪽 `윤동주의 상징`에서


사나운 뿔을 갖고 한 번도 쓴 일이 없다
(중략)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두어 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족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 신경림, 「뿔」 전문


주체적 인간의 삶, 깨우치지 못한 민중의 삶을 동물인 소의 일상을 통해 우화적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소의 평생을 통해 남에게 부림만 당하지 주체적 사고와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인간의 비애를 우화를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뿔이라는 무기가 있음에도 평생 사용하지 못하고 외양간과 논밭만 오가다 주인의 밥상에 오르는 소를 통해 비주체적 인간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 146~147쪽 `신경림의 우화`에서


시 쓰기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작업이며, 시인은 자기 자신에게 묻지만, 그 물음의 효과는 동시대와 후대 사람에게까지 윤리적, 도덕적 각성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시의 형식은 고백의 형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고백을 통하여 진정한 자아와 접촉을 하게 되는 것이며, 자아와의 접촉을 중시하는 문학은 낭만주의 문학의 전통입니다.

- 438쪽에서


여기에 나온 시들은 흔히 접했을 시들도 간간히 보입니다. 국어·문학 시간에 배웠을 시 혹은 방법을 더 친숙하고 자세하게 쓰기 위함이죠.


한번만 읽기에 아깝고, 빨리 읽기에 길면서 아쉬운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이었습니다.


저처럼 좋은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필독서, 언어 영역 중 시를 연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참고서, 시의 아름다움 알고 싶은 사람에게 교양서라 생각합니다.


길지만 아름다운 책, 읽고 배우며 시에 눈을 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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