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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1월
평점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조선을 떠나며』(이연식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의 부제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아 기뻐했지만, 그곳에 있던 일본인들은 조국의 패전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패전의 멍에를 진 일본 정부의 어쩔 수 없는 무능함과 본토인의 멸시로 환영받지 못하는 같은 민족의 이방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히키아게샤(引揚者)’입니다.
2차 세계 대전 까지의 시대에 타이완 · 한반도 · 남양 제도 등의 외지, 일본에서 많은 이주민을 보내고 있던 만주, 소련 침공으로 인해 실효 지배권을 잃은 남쪽 사할린 등으로 이민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이 일본군의 패배 (항복)에 따라 일본 본토에 돌아간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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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히키아게샤, 특히 우리나라에 살았다가 떠나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들을 흔히 ‘식민자’ 또는 ‘지배자’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식민지에서 강제로 추방된 ‘패전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자국 동포로부터 인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자국 동포로부터 식민지 사람들을 착취하여 호사를 누른 대륙 침략의 첨병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잇따른 공습과 패전으로 거의 만신창이가 된 일본 사회는 이들을 본토인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식량이나 축내는 마뜩잖은 민폐 집단으로 무시했다.
- 6쪽 ‘책머리에’
일본 본토에서 대부분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당시 일제의 식민지로 이주해 뿌리내렸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이주하였고 대부분 지역의 노른자 땅에서 한마을을 이루었죠. 옛 지명이었던 혼마치(本町, 지금의 충무로), 메이지초(明治町, 지금의 명동)가 대표적인 일본인 동네였습니다. 대대로 살면서 자연스레 자기 나라 땅이라 여겼고, 같은 일본인끼리 만나던 터라, 자연스레 외곽지역에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들이 왜 우리나라에 계속 있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 살았던 일본인은 어쩔 수 없이 본토로 돌아왔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주지 못했고, 본토인도 어렵게 살아야 했던 상황에서 이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식민지에서 잘 살다 왔다, 전염병을 옮기러 왔다는 식으로 경멸했죠. 한때 자신의 터전이었던 옛 식민지에서 쫓겨났고, 돌아온 본토에서도 온갖 차별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국가에 대한 나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귀환자·제대군인·소개민은 전후 일본의 열등국민으로 전락했다. 그중에서 특히 해외 귀환자는 본토인의 뿌리 깊은 편견으로 인해 혼처를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중략)
패전 후에는 이러한 선입견 위에, 본토인에게 민폐만 끼치는 ‘귀환자’라는 또 다른 차별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 190~191쪽 6장 ‘모국 일본의 배신’ 중 ‘동포에게 당한 배신’에서
우리는 일본인하면 ‘우리나라를 착취한 나쁜 놈’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들에게 심한 착취를 당했고, 역사교육을 통해 그런 이미지를 굳혀나간거죠.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했던 만큼 일본인 귀환자들이 혹독하게 당하는 모습에서 한 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들도 어쩌면 같은 처지의 사람일텐데...’
우리는 어쩌면 일본인 귀환자들의 처지를 영영 이해하지 못하고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을 떠나며』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인식을 넓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