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가지고 있던 육백여 권의 책은 나오기 전 박스에 넣어 창고에 쌓아두었다. 엑셀로 대략의 목록을 작성하며 두 번 보지 않을 거라 여겨지는 대부분을 처분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은 넘치고 공간은 부족하고 그 짐을 떠안아야 할 가족에 면이 안 섰다. 이제 정말 책을 사고 소유하는 일에 신중을 기할 시점을 맞은 것 같다.
삼십 대에는 좀 달랐다. 읽고 싶은 책을 부지런히 사 날랐다. 한꺼번에 배달되어 온 책을 책상 한켠에 쌓아두고 새 책 냄새에 흠뻑 젖곤 했다. 그 청량한 만족감은 말로 댈 것이 아니었다. 그 책을 어떻게 보관하고 처분할 것인지는 나에게 늙음과 죽음의 거리 만큼 아득했다. 하지만 청춘의 경계를 넘으니 이제 사물을 소유하고 이해한다는 것의 범주와 한계에 시선이 자꾸 머문다. 나는 영원히 살 수 없고 다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대안은 전자책, 킨들이었다. 킨들은 한국책을 읽을 수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 만큼의 터치감을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책의 물성을 느낄 수 없다.
이렇게 창가에서 햇빛이 만드는 격자가 책의 내용을 통과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없다. 낭비와 과잉 없이 남을 것들이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