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이러했다. 세계 최장기간 투병 메르스 환자 사망. 아래에는 추모 게시판. 혹여 그의 것일까 싶어 확인해 보지만 이것은 공과가 분명한 비교적 장수한 전직 대통령의 자리였다. 그의 죽음 앞에 망연하고 원통할 가족들의 심정이 상상되어 마음이 괴로웠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이 자명한 명제가 구체화될 때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어떤 회한이나 억울함이 게재되면 남은 사람들은 그를 제대로 떠나보낼 수가 없다.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수만번 복기되어 할 수 있었거나 했어야만 하는 일들은 끊임없이 들고 일어나 왕왕댄다.

 

네 살 아이의 아버지, 늦깎이로 새로운 분야 공부를 하고 직장에 출근했던 가장은 메르스 80번 환자가 됐다.메르스 초기 대응에서 많은 질타와 비난을 받았던 학습된 공포감은 암투병 중인 젊은 아버지 앞에서 과도하게 관료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이해할 수 없는 메르스 양성 반응과 음성 반응 사이의 자리는 제대로 된 검사, 치료에 소극적이게 했다. 간병인과 가족의 집중 케어를 받으며 이겨나가야 할 암투병은 격리병동에서 힘겹게 이어져 나갔다.

 

누구나 불확실성 앞에서 두렵다. 게다가 학습된 것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여러 전문가들, 심지어 WHO에서도 이 환자의 메르스 전염력은 거의 없다,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초기에 그렇게 했어야 할 행동이 하필 암투병 중인 이 젊은 아버지에게 가혹하게 발휘되었다. 가족들은 격리 병동에서 제대로 된 항암도 검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늘 네 살 아이에게 돌아왔어야 할 아버지는 떠나고 말았다. 그는 이름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80번 환자로 마지막 환자로 언론에서 요약되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시간들, 꿈꾸었던 것들은 저만치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잿빛 하늘 아래서 먹먹했다. 그 가족의 자리, 그의 자리, 질병관리본부,정부의 자리를 상상해 본다. 나의 대응은 어땠을까. 나의 자유의 권한, 나의 결정의 범위, 나의 재량을 넘어서는 자리에 정말 해야 하는 일, 진실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었을까.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들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나는 그냥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밀려나가는 것일까. 이 모든 불확실성 앞에서 두려움과 비겁함을 때로 밀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놓쳐 버리면 이렇게 된다. 신중함은 이런 곳에서 발휘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메르스는 종식된 게 아니다. 그냥 단순히 한 줄로 80번 환자의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을 게 아니다. 그 뒤에서 놓친 숱한 것들이 정말 중시해야 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존엄에 있었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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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5-11-2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자에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듯합니다. 기억하는 방법은 다시 이야기하는 거라는 것도 잊지 않으렵니다.

blanca 2015-11-25 23:14   좋아요 0 | URL
네, 아애님 말씀처럼 더욱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싶었어요. 유가족들한테 누가 안 되고 그 분을 추모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게 되었으면 합니다...

헤르미온느 2015-11-2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jtbc에서 미망인의 울먹이는 음성을 들었어요. 아픈 사람들의 더 아픈 이야기를 어찌해야 할까요.

blanca 2015-11-25 23:16   좋아요 0 | URL
아...그랬군요. 저는 차마 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가족분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그분이 어떻게 힘들게 가셨는 지를 기억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 미약한 의미나마 있기를 바라 봅니다.

웽스북스 2015-11-26 0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환자 사망, 메르스 종식. 이라는 워딩은 진짜 끔찍했어요 ㅠㅠ

blanca 2015-11-26 14:47   좋아요 0 | URL
.... 때로는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게 굉장히 두렵게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