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13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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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는 소리 백 번 해봐야 하나도 안 무섭다. 정말 무서운 건 실제로 앓아누워버리는 일이다. 이성복의 시는 앓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미 지독하게 앓고 있을 뿐이다. 다다이즘 미술이 충격적인 까닭은, 그것이 미친 세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미친 세계 안에서 스스로 미쳐버린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성복의 시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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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과 불교 불교입문총서 20
권오민 지음 / 민족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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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실상 이 같은 실제적인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으며, 진정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였다. 불타가 진실로 말하고자 하였던 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생겨남, 괴로움의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것이었다. -p.180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름 아닌 열반이며, 불교사상사는 바로 '열반'이라는 개념의 이해와 그것으로 나아가는 방법의 탐구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열반은 '불어서 끈다'는 의미를 지닌 니르바나의 음역으로, 괴로움의 원인인 탐욕과 증오, 그리고 무지라는 번뇌의 불꽃이 꺼진 상태를 말한다. (...) 열반을 성취한 이는 인간을 구속하는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로서, 완전한 평화를 갖는다. 평화란 대립과 투쟁과 혼돈이 종식된 상태이기에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p.204  

 
   

삶은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고통 속에서 비로소 인간으로 깨어 있을 수 있다. 오로지 고통 속에서만 인간은 자신의 삶과 오롯이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무한한 긍정은 얼마나 자주 극도의 고통 속에서 이루어지는가. 사바세계의 이전투구도 멀리서 보면 우주를 수놓는 아득한 무늬가 아닐까. 나는 아직 귀의하려면 멀었나 싶다. 고통의 무늬들을 찬찬히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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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Rachmaninov - Piano Concerto No.3 / Evgeny Kissin, Seiji Ozawa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작곡, 세이지 오자와 (Seiji Oz / 소니뮤직(SonyMusic)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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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거리는 비의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부글거리는 무언가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정령처럼 깃들어 있는 것만 같다.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숨죽인 채로 끝까지 듣고 나면 마치 한해가 지나간 기분이다. 하나의 거대한 순환 주기가 끝난 느낌. 키신의 라흐마니노프는 미려하기는 하나 글쎄, 마성(魔性)을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진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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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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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사회가 있다. 성스러운 사회와 세속적인 사회. 전자는 외계에 대한 경외감으로 충만한 고대 원시사회를 가리키고, 후자는 주술적 마인드 대신 과학과 합리정신이 지배적인 가치를 이루는 문명화된 근대 이후를 말한다. 엘리아데는 이 책에서 고대 여러 지역의 원시사회 문화 연구를 토대로 성스러운 사회의 원초적 세계관을 조망하고 있다.  

2. 원시사회 사람들이 미개하고 무지하다는 생각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근대적 인식이며, 그것은 사실 굉장히 폭력적이기도 한 관념이다. 영성적인 방면에 있어서 현대인은 원시사회 사람들에 비해 명백히 퇴화된 측면이 있다. 원시인들의 세계관은 현대인의 그것보다 훨씬 종교적이었으며 그만큼 신과 근접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의 현현인 자연에 유기적으로 귀속결합되어 있었으며, 자연과의 미메시스가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들은 대지와 나무와 연못과 바람과 소통할 줄 알았다. 외계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차 있는 그들에게 있어 '초자연적 영성체험' 혹은 '하이데거식 존재의 드러남'이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비현실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여기는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3. 이 책이 말하는 '성스러운 사회'는 '셈족 문화권'이 아니라 '인도 게르만 문화권' 이야기에 해당한다. 셈족 문화권이 인도게르만 문화권에 비해 보다 진보된 양태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셈족 문화권에서 잉태된 유대교의 특성을 살펴보면, 확실히 기존의 원시종교와는 차별화된 몇가지 양상들을 띠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인류보편의 전통적 상징들이 유대교의 교리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종교 역시 원시종교와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4. 예전에 바넷 뉴먼의 white zip이 천상계와 지상계를 연결하는 신단수로서의 상징을 갖는다는 미술평론을 읽고 이것이야말로 아전인수식 평론의 결정판이 아닌가 하여 실소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의 비웃음이 전적으로 나의 무지의 소치였다는 게 자명해졌다. 머쓱하다. 결코 엉터리 평론이 아니었다. <성과 속>을 읽어보면 '성스러운 사회'에서 '기둥'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상당하다. 즉, 기둥=세계수=신단수=세계 창건의 고정점(중심을 부여하여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변환시키는 결정적 존재)=초월적 세계와의 교섭을 가능하게 하는 제의적 상징물(하나의 존재양식에서 다른 존재양식으로 가는 존재론적 이행을 가능하게 함). 그 zip이 보통 zip이 아니었던 것.  

5. 생명의 끝없는 출현이라는 신비는 우주의 리드미컬한 갱생과 결부되어 있다. 이 때문에 우주는 거대한 나무의 형태로 상상된다. 코스모스의 존재양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이 갖는 끝없는 갱생의 능력은 나무의 생명에 의하여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게르만 신화의 이그드라실과, 메소포타미아의 생명의 나무, 아시아 지역 신화에 등장하는 불멸의 나무, 구약성서에 나오는 지혜의 나무, 메소포타미아, 인도, 이란 신화에 등장하는 청춘의 나무 등등(p.133). 우주를 상징하는 거대 수목은 현대에 와서도 예술 작품의 소재로 꾸준히 차용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레인트리 연작소설을 썼고, 클림트는 생명의 나무를 그렸으며, 가깝게는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의 단골 메뉴야말로 가지가 만발한 고목인 것이다.  

6. 거룩함과 신성함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세기를 초월하여 유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끝내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규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끊임없이 잃어버린 태곳적 가치에 천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시 인류의 생물학적 후예로서 갖는 본능적 향수인가. 유사 이래 최고의 '속'을 구가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기형성을 극복하기 위한 반동적 움직임일까. 알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초-합리적, 초-이성적, 초-과학적 가치들이 현재 내게 대단히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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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영국사 - 아서 왕에서 엘리자베스 2세까지 이야기 역사 9
김현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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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프랑스와 같은 대규모 유혈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혁명의 과정이 온건하고 장기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그 사이에 여러 완충지대들이 생겨났기 때문인 듯하다. 영국의 민주주의 발달사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야만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국의 경우도 그렇고 확실히 유럽 국가에서 군주의 입지는 동양권 전제국가에 비할 바가 못되는 것 같다. 군주가 결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없고 끊임없이 제후들과 상호 견제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영국의 민주주의가 자연스레 태동할 수 있었다면, 조선 후기 과열되었던 당파 싸움이 그토록 소모적이기만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당쟁은 무조건 국론분열을 초래하는 정치악이며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는 곧 나라의 기틀이 다져지는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식의 논조로 일관했던 국사 교과서의 필자들은 꽤나 보수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영국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참혹한 국론분열과 내전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인데.

이 책은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 영국'왕실'사>라고 해야할 것 같다. 찬탄을 거듭하며 영국 왕실의 역사를 훑고 나니 뭔가 가슴 벅찬 소회가 밀려온다. 왕실이 점차적으로 치국의 전면에서 물러나 의회와 국민 사이를 중재하는 완충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영국의 전통과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로 거듭나는 자연스런 일련의 과정들은, 그야말로 민주주의 초석을 세운 국가답게 지극히 이상적이다. 영국에 비하면 우리나라 근대 정치사는 참으로 내세울 것이 없구나.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달사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개도국의 전형 아닌가.

영국에서 정부가 노동당을 승인한 것이 조지 5세가 집권했던 20세기 초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년 전이다. 출범한지 세 돌을 갓 넘은 민노당마저 사분오열의 위기에 봉착한 한국의 현 정치 상황은 영국의 백년 전 수준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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