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쾌락의 시대가 가고 노동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백 년 전 연인들이 제비꽃을 따며 거닐던 들판은 악취 풍기는 흙더미에 파묻혔고 트럭들은 끊임없이 흙 위에 또 흙을 쏟아붓는다. 15,16쪽

양모 자체에는 조악한 기름기가 돈다. 담요를 만들기에는 해로운 성분이지만 따로 추출하면 얼굴 크림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20,21쪽

포도주의 달곰함이 마치 향을 피운 것처럼 저장실에 가득하다. 23쪽 (달곰하다 : 달콤하다의 여린 느낌)

여기저기서 가스등 불꽃이 너울대지만 사실 실내를 밝히는 용도가 아니다......그저 포도주의 맛이 깊어지려면 많은 열이 필요해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24쪽

해 질 무렵, 인공조명과 실크 더미와 버스 불빛 탓에 마치 지지 않는 저녁노을이 마블 아치를 품은 듯 보이는 시각에 느긋한 걸음으로 걷노라면 거대한 리본 다발처럼 펼쳐지는 옥스퍼드 거리의 현란한 번쩍임이 나름대로 매력적이다. 반짝이는 물줄기가 끝없이 자갈을 씻어 내리는 강바닥처럼 모든 것이 영롱하게 빛난다. 30쪽

런던의 현대적 매력은 지속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런던은 사라짐을 목표로 세워진 도시다. 이 도시의 유리질, 투명성, 밀려드는 유색 회벽의 물결은 옛 건축가들과 그들의 후원자인 영국 귀족들이 원한 바와 다른 만족을 주고 그들이 꾀한 바와 다른 목표를 성취한다. 그들의 자부심에는 영속성에 대한 환상이 필요했다. 36,37쪽

여기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 날마다 새롭고 늘 신선하고 누구나 살 수 있게 가격도 저렴한 끝없는 아름다움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주일 내내 퐁퐁 솟아 오른다고 일반 대중을 설득한다. 옥스퍼드 거리에서 오래된 것, 견고한 것, 영구한 것은 생각만으로도 혐오스런 존재다.
그러므로 혹시 오후 산책 경로로 이 특정 도로를 택하는 비평가가 있다면 기기묘묘한 불협화음을 수용할 수 있도록 먼저 자기 음을 조율해두어야 한다. 38,39쪽

예술적 안목은 변변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들에게는 언제나 더 희소하고 흥미로운 재능이 있는 듯 하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거처를 마련하고, 탁자와 의자와 커튼과 카펫을 자기 이미지화하는 능력이다. 43쪽

이 집의 목소리는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목소리, 뜰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목소리다. 이곳에 거주하는 존재는 단 하나, 키츠 자신이다. 비록 벽마다 그를 담은 그림이 걸려 있지만, 키츠 역시 육신이나 발소리를 달지 않고 넉넉한 빛발에 실려 소리 없이 이곳에 찾아든다. 여기서 그는 창가 의자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잠잠히 눈길을 주며 그토록 짧은 생임에도 서두르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52,53쪽

55쪽까지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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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글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안토니오 타부키가 페소아를 위해 포르투갈어를 공부한 일이, 새삼 깊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불안의 글>을 배수아가 번역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배수아는 좋은 소설가이자 산문가, 그리고 훌륭한 번역자이다. 페소아를 읽으면서도 페소아를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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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읽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생각난다. 아..정말 제일 싫은 기억부터 제일 좋은 기억까지 훑어주네..하여간 싱숭생숭하다. 내 기억에 없는 줄 알았던 것까지 나온다.

* 예전에 교실에서 눈물 뚝뚝 흘릴 때 내 앞에 앉아서 같이 있어주던 너 누구였니? 얼굴 기억 못해서 미안, 진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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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끝으로 데려가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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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작가들 : 안토니오 타부키, 테리 이글턴, 최인훈, 김수영, 호시 신이치, 로베르트 발저, 줌파 라히리, 앨리스 먼로, 존 치버, 레이 브래드버리, 윌리엄 트레버, 오정희 등

읽을 책: 타부키 선집, 디어 랄프 로렌, 한 밤의 아이들, 호시 신이치 시리즈, 존 치버 단편집, 멜랑콜리의 묘약, 루시 골트 이야기, 애호가들, 이름 뒤에 숨은 사랑, 벤야멘타 하인학교,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김수영 산문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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