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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국민의 분노는 무장세력 아닌 정부를 향해 있다"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16> 국회, '파병 연기안'이라도 제출해야

 

  이라크 파병과 관련하여 한국 민간인이 납치 살해의 위험에 처하는 악몽이 현실화되었다. 이라크에서의 민간인 납치 살해의 성격과 함의에 대해 이 연재에 게재한 앞 글("이라크 저항세력의 '이지메의 군사학'")에서 자세히 논한 바가 있으니, 이 글에서는 현재의 급박한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의 방향에 대한 논점만을 짧게 제시하고자 한다.
  
  어처구니없는 '백지 파병안'
  
  현재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시민 한 사람의 납치로 인하여 파병이라는 국가 정책이 좌우될 수는 없다"는 안이한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 "중대한 국가 정책"인 파병을 결정하고 집행해 온 현재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파행적이었는가를 전혀 보지 않음으로서, 현재의 사태로 인하여 그렇게 파병을 결정한 국가 권력 전체(노무현 정권 뿐이 아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여야)가 지금 정당성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더욱 근본적인 위험성을 완전히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 국가란 기본적으로 국민 전체의 안녕과 국익을 지키는 집단이다. 그리고 '파병'이란 한 나라가 그 행위에 따라오는 모든 위험과 자신의 국익에 대한 철저한 심사숙고 끝에 내리는 무겁고도 비장한 결정이다. 따라서 그 국가의 개별 성원들 몇몇의 개인이 위기에 처한다고 해서 국민 전체를 생각하여 내린 그 '파병'이라는 상위의 정책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시비 여하를 떠나서 이러한 보수적인 논리가 정치 외교에 있어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해왔음은 분명하다.
  
  현재의 문제는, 그 '심사숙고'의 과정이라는 것이 국민들 모두가 보았고 게다가 수 많은 이들이 숱하게 지적한 바 있듯이 얼마나 엉터리로 이루어져왔는가라는 데에 있다. 대통령은 대중적 토론과 국민 여론 형성을 원천적으로 막아오다가, 논의 시작 하루 만에 파병 결정을 내려버렸고, 몇몇 관변 제도 언론들은 파병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쟁점들을 명시적 암묵적으로 호도하여 토론 형성을 저해하였고, 그 와중에서 예산도 구체적 계획도 파병 목적지도 관련 법률 근거도 모호한 전대미문의 '백지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해버렸다.
  
  쿠르드 지역에 파병을 하면서도 '21세기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저 일촉즉발의 쿠르드 민족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은 아예 묻기조차 쑥쓰러운 지경이다. 도대체 파병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묻는 의회 석상의 질문에 대해 NSC에서 나온 정부 관료는 "국익은 애매한 문제"이며 또 "자세히 말하기 힘든 예민한 문제"라고 하면서 답변을 사실상 거부해 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정부의 오만과 독주를 질책하고 들어갔어야 마땅한 여의도의 '국민의 대표들'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오히려 파병 찬성으로 돌아서 버렸다.
  
  "국민의 분노는 정부를 향해 있다"
  
  파병이라는 그 '중대 결정'이 이렇게 파행적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생겨난 최대의 문제는 무엇인가. 원래 국민들은 파병이라는 국가의 결정에 동의하고 진행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부와 똘똘 뭉쳐 헤쳐나가는 일 주체로서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준비에 필요한 정보가 조직적 체계적으로 차단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평화로운 지역에의 비전투병 파병"이라는 식의 반복되는 정부와 관변 여론의 선전으로 인하여, 국민들은 이라크 파병이 그저 "마을 회관 지어주고 예방 주사 놓아주러 가는" 정도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따라가는 호송 병력도 기껏 경계 근무나 서다 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벌어진 국내의 파병 논쟁이라는 것도 마치 "국익이냐 평화 인권이냐"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같은 고담준론 차원에서 벌어졌지, 그 누구도 내 아들이 내 아버지가 톱에 목이 잘릴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는 차원으로 논의를 걸지 않았다. 요컨대, 파병되는 젊은이들은 물론 심지어 김선일씨 같이 평범한 '우리' 조차 '참수'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은 한 번도 국민들에게 진지하게 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허술한 준비 속에서 파병이 진행되고 현재의 사건이 터지게 되었으니, 국민들은 이번 김선일씨의 일에 정말로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분노는 지금 이라크 무장 세력에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시키고나서 일이 터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파병 결정 변함없다"를 외치는 정부에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국민들도 안전하지 않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만에 하나 불상사가 터지고 이전의 미국인들의 경우처럼 그 광경이 전세계에 보여지게 될 경우 어떤 일이 생길까. 나아가, 한국의 국민들은 100% 안전한가. 스페인의 끔찍한 전례는 절대 없을 것인가. 그런 악몽이 현실화될 경우, 그 때에 사람들은 누구에게 분노할 것이며 무엇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국민들 다수의 여론과 감정이 "이러한 위기일수록 한마음으로 뭉쳐 정부와 함께 저 이라크 원수들과 싸우자" 쪽으로 갈 것으로 보는가. 아마도 어제 만두 파티에서 "한 사람 죽는다고 파병을 뒤집는단 말인가"라고 발언했던 유시민 의원 같은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상황을 풀어 나가는 열쇠는 의회가 그래서 의회가 쥐고 있다. 이 시점에서 그래도 소중한 자산은, 민주 노동당 의원들 전원을 위시하여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도 야당인 한나라당 민주당에도 적극적인 파병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포진하여 의회 내에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속하고 적극적인 단합된 행동으로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파병 철회를 이루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파병 연기안'을 시급히 제출하여 임박한 파국은 막아야 한다. "이라크가 안전한 상황"이라는 국방부 등의 상황 보고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기존의 파병안 통과는, 전황이 악화되고 파병도 이루어지기 전에 민간인들의 생명이 위태로와지는 현재의 시점에서 충분히 재검토할 이유가 있다.
  
  이것을 받아 안아 상황을 풀어나갈 열쇠는 과반수를 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있다. 열린우리당은 그러한 발의를 신속하게 공론화하고 의회 내의 방향을 '연기' 쪽으로 주도하여 안으로나 밖으로나 한국의 파병 여부를 일단 유동화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밖으로는 이라크 무장 세력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행동을 일단 유보하도록 이끌어야 하며, 안으로는 경악에 질린 국민 감정을 달래어 안정시키고 다시 이성적인 논의의 실마리가 찾아질 수 있도록 상황을 다듬어야 한다.
  
  "국회, 신속한 파병 연기안 처리해야"
  
  "파병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촌각을 다투는 현재의 상황에서, 도저히 접점이 보이지 않는 파병 철회론과 고수론의 호각을 지켜볼 여유가 없다. 파병이 국익을 위하여 여전히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는 쪽도 또 거기에 반대하는 쪽도 그 다음에 자신들의 의견을 차근차근 대중들 앞에 공개하고 설득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면 그만이다.
  
  파병 지역인 쿠르드에 지금 급박한 상황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김선일 씨의 '참수'의 가능성을 끌어안으면서까지 예정대로 파병을 진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 연후에 파병을 통해 어떤 '국익'을 얻게 되는지 혹은 잃게 되는지를 충분히 논의하면서 국민들은 그제서야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진 논의와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부나 열린우리당 또 한나라당은 결코 이러한 파병 연기의 제안을 이라크 무장 세력에의 굴복이나 국가의 권위 실추라고 받아들여서는 아니된다. 이렇게 납득할 수 없던 과정으로 나온 파병안은 어차피 진즉에 원점으로 돌렸어야 했던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이라크 파병 문제는 그래서 국제 문제가 아닌 우리 내부의 문제로 변해 있었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의 파병안 연기는 현재 이상의 사태 악화의 가능성에 처한 현 시점에서 근본적인 위기에 처한 국가의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예방조처이다.
  
  요약하겠다.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김선일 씨의 생명 뿐이 아니다. 파병 선택의 대가가 이토록 값비싼 것임을 뒤늦게 깨닫게된 일반 국민들의 안전도 위험해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험해진 것은, 기상천외와 임기응변의 정치 기술로 '파병'이라는 중대사마저도 뜻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현 정권과 국가의 도덕성 정당성이다. 신속한 파병 연기안의 통과야말로 김선일 씨의 생명과 분노하고 당혹한 국민 그리고 돌연 일대 위기에 처한 정권 모두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의 최소한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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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정치학자가 쓴 아주 명쾌한 글입니다. 많이 읽어보고 퍼가고 하시길...

릴케 현상 2004-06-2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

nrim 2004-06-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올려고 했는데 먼저 퍼오셨군요. 감사. ^^

balmas 2004-06-2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 제가 한 발 앞섰군요.

모모 2004-06-22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물론 퍼가고요 =) (이거 말고 다른 글도 하나 퍼갔었는데, 흐.) 마음이 갑갑하네요.

balmas 2004-06-2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사람 납치되어도 전 국민의 가슴이 이렇게 답답한데, 혹시 있을지도 모를(이런 가정 자체가 너무 끔찍하긴 하지만) 제 2, 제 3의 납치, 심지어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테러를 생각하면 ...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오직!

노무현 정부는 파병을 즉각 철회하라!

미국은 파병압력 중단하고, 이라크에서 즉각 물러나라!


조선인 2004-06-22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팍팍 추천해야 합니다요. ^^

balmas 2004-06-2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퍼날라야죠.^^
 

[조선일보 사설]

인질사건에 치밀하고 성숙한 대처를

이라크의 과격 무장 테러단체가 한국인을 인질로 삼아 한국군의 철수와 추가파병 철회가 없으면 처형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인질로 잡힌 김선일씨가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는 모습은 처절하고 안타깝다.

우리는 무엇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민간인에 대한 납치 테러 행위에 분노하고,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김씨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테러의 표적이 됐다면 이것은 한국과 한국민 전체에 대한 공격이나 다름없다.

한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돕자는 것이지 이라크 국민과 싸우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같은 한국의 파병 목적과 활동은 그동안 서희·제마부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라크인들의 마음에 새겨졌으며 추가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우리의 이러한 선의(善意)와 파병 목적을 이라크 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충분히 알려야 한다. 그것이 한국인에 대한 테러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지금 김씨를 구출하는 데 최대의 장애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당장 이라크의 종교지도자들을 통해 테러단체를 설득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필요하면 막후 교섭도 벌여야 한다. 일본은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했지만 납치된 일본인을 무사히 구해낸 경험이 있다.

이런 우방국들의 경험과 채널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신속한 외교 공조태세도 갖춰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중동지역 교민들의 안전 대책과 함께 국내 테러에도 대비하는 국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의 테러 예방 지침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도 스스로의 불행과 국가적 곤경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따라서 테러 예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난 뒤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대응 자세를 갖는가 하는 점이다. 테러에 굴복하는 것은 또 다른 테러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으로 이라크 파병의 원칙과 정신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떤 희생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예 추가 파병 자체를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황망한 상황 속에서 여당 일부 의원들이 이라크전과 관련한 반미 성명을 내고, 서울시내에서 이라크 추가파병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인질을 구출하는 데도, 나라의 어려운 처지를 돕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오마이뉴스] 기사

<조선>, 김선일 씨를 죽이자는 말인가?

신미희 기자

<조선일보>는 납치된 김선일씨를 죽이자는 말인가. 김선일씨 납치사건을 겪고도 조선일보의 파병불변 원칙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22일자(가판) '인질사건에 치밀하고 성숙한 대처를' 제하의 사설에서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한 이라크 파병 원칙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조선은 이라크 무장 저항세력의 김씨 피랍사건에 대해 민간인 납치행위를 규탄하고 테러 예방을 거론하면서도 "이라크 파병의 원칙과 정신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아무리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며 "테러 예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난 뒤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대응자세를 갖는가 하는 점"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조선이 강조한 성숙한 대응은 "테러에 굴복하는 것은 또다른 테러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가 그 이유로 내세운 근거는 "어떤 희생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예 추가 파병 자체를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이어 파병반대 운동이 피랍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까지했다. 조선일보는 "여당 일부 의원들이 이라크전과 관련한 반미 성명을 내고, 서울 시내에서 이라크 추가파병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인질을 구출하는데도, 나라의 어려운 처지를 돕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한 생명이 목숨이 달린 긴급한 상황에서 생뚱한 한국인 테러 방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의 파병목적과 활동에 대한 선의를 이라크 국민에게 신속하게 알리는 게 한국인에 대한 테러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한국인 피랍이 한국군 비전투병 파병의 취지를 알리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인가. 조선일보는 한국이 군대를 이라크에 보낸 것 자체가 이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며 즉각 한국군 철수를 요청한 김선일씨의 호소를 아직 듣지 못한 듯하다.

2004/06/21 오후 10:05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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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보기에 <조선일보>의 사설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의 입장을 정확히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상한 것은 <오마이뉴스>가 여기에 대해 흥분한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럴 이유가 있을까?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오마이뉴스>의 기회주의는 <조선일보>의 그것에 버금간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선인 2004-06-2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만 미친 거 아니에요. 외교부도 미쳤어요. 왜 굳이 파병불변 방침을 기자회견에서 밝힙니까? 노코멘트를 하거나 아직 논의중이다 이런 식으로 흐리면 될 것을. 으... 열불나.

balmas 2004-06-2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정부 내에 주체적인 시각, 전략이 얼마나 부재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겠죠.

릴케 현상 2004-06-22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어쩔 수 없다고 했던 진중권이 이라크 파병 반대할 자격 있냐고 묻는 거랑 비슷하네요

balmas 2004-06-2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씨가 그랬나요? 저는 모르고 있었네요.

모모 2004-06-22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아이 / 진중권이 그런 이야길 했다는 건 처음 듣는 데요. 어디서 한 이야기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으신가요? 진중권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그가 할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balmas 2004-06-2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씨가 그런 말을 분명히 하긴 했군요.

아래는 [디지털 말] 188호 2002년 2월 21일자, 고동우 기자와의 인터뷰 [내가 극우·극좌·북한추종자들과 전쟁을 벌이는 이유 ] 중 일부입니다.

파란색은 고동우 기자의 질문이고, 그 다음이 진중권 씨의 답변입니다.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한 유럽의 나라들이 미국의 아프간 전쟁을 지지하거나 직접 참여하는 것은 또 어떻게 봐야 하나요.

"중국은 어땠어요. 찬성했잖아요. 북한도 테러에 반대한다면서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 중요한 것은 자기 나라가 사는 것이거든요. 지금 상황 자체가 미국 말 안 듣고는 못 살아요. 미국 애들이 깡패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튀어버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사민주의 정권도 마찬가지예요. 왜냐하면 자기들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전체를 대변해야 하거든요.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미국한테 밉보여서 당장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이에요. 할 수 없이 그러는 것이라고 봐요. 또 유럽 국가들도 속으면 안되는 게, 사민주의 정당도 집권하면 전쟁물자 팔아요. 그럼 자국 내 이해관계도 따져야 하는 거죠. 우리 같은 경우도 봐요. 만일 미국한테 못 도와주겠다고 해봐요. 그럼 작살나는 것이거든요."

그럼 만일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이 집권해도 어쩔 수 없다고 보는 겁니까.

"전 물론 전쟁에 반대해요. 진보정당도 그렇죠. 그러나 정책결정을 할 때는 이상만 가지고 할 수 없다는 거죠. 정치라는 게 원래 더러운 거예요. 우리 이념, 원칙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어요. 진보정당이 국가권력을 잡아도 국가적 결정, 운영을 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국가는 합의에 따라 결정되고 운영되는 것이잖아요. 만일 거부하면 고립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럼 북한 꼴이 되든지, 이라크 꼴이 되든지 하겠죠. 우린 당장 무너져요. 한 3개월이면 경제 완전히 쪽박차고 개판나죠."

어려운 문제군요. 하지만 너무 패배주의적인 것은 아닌가요. 싸울 것은 싸워야 하지 않나요.

"싸우고 있잖아요. 그러나 북한의 경우만 봐도 싸움만 해서는 못 살아난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어차피 자본주의체제 속으로 편입되어야 하거든요. 그럼 고립되어서 살 수 없다는 게 증명된 것 아니겠어요? 어차피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어요. 물론 화끈하게 싸우겠다면 전 말릴 생각은 없는데, 민중들이 참 불쌍해질 것 같아요. 이라크에서 10만 애들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담 후세인은 아랍권에서 떡하니 폼잡고 있죠. 미국에 대항한다면서.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죠. 밥 굶는데 무슨 자주성이 필요해요. 그럼 인간적인 위엄이 없어지는 거예요."

진중권 씨는 분명히 자기의 이런 말에 대해 먼저 해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손석춘 칼럼]

과연 '올 것'이 온 것인가?

 

"제발 난 죽고싶지 않다. 난 살고싶다."

참수위기에 놓인 대한민국 국민의 절규다.

두려움에 질린 그 호소를 들었을 때 받은 첫 느낌은 결연했다. "올 것이 왔다"였다. 찬찬히 돌아 보라. 한국 정부는 6월 18일 이라크 추가파병을 공식 발표했다. 아랍 방송들이 곧장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알 자지라>도 마찬가지다. 다음날 이라크의 최대 일간지 <아자만>도 1면에 4단 크기로 편집했다. 특히 이 신문은 "한국군의 파병은 연합군에 세번째로 많은 병력"임을 보도했다.

이라크 민중이 <알 자지라>와 <아자만>을 보고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가는 자명하다. 김선일씨가 파병 공식 발표에 앞서 피랍되었으되, 발표 뒤 참수위기에 놓인 상황을 보라. 무장단체 또한 또렷한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파병철회와 한국군 철군을.

그래서다. 올 것이 왔다고 느낀 까닭은.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만 더 성찰해보아도 충분하다. 거듭 새겨보자. 과연 올 것이 온 것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김선일씨의 참수위기는 올 것이 온 것처럼 '필연'이 아니다. 얼마든지 그 '올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던가. 추가파병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예고하지 않았던가.

이미 지난 칼럼 '피로 물든 서울 도심을 상상하라'(6월 16일)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경고했듯이, 사태의 책임은 추가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정권에 있다. '마드리드 참사'를 거론하며 그 책임이 여론을 무시하고 파병을 결정한 스페인 집권당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지적하지 않았던가. 노 정권이 국민 여론에 귀기울여 추가파병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사태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두번째 이유이다. 올 것이 아직 다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김선일씨의 피랍과 참수위기는 '시작'일 따름이다. 피로 물든 마드리드처럼 '피로 물든 서울의 아침'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라. 미국의 '9·11 진상조사위원회'는 그 가능성을 실감나게 입증하지 않았던가.

알 카에다는 9·11 때 한국의 미국 시설물을 동시 테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미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태평양을 횡단하는 여객기를 납치해 공중에서 폭파하거나 일본이나 싱가포르 또는 한국 내 미국 목표물에 충돌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그 검토의 '프로그램'은 빈 라덴이 묻어두었을 뿐이다.

심지어 6월22일치 신문 사설에서 <조선일보>도 테러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무리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따라서 테러 예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난 뒤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대응 자세를 갖는가 하는 점이다."

참으로 가증스럽지 않은가. 테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언죽번죽 '성숙한 대응자세'를 주문하는 저 신문이.

그렇다. 문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김선일씨의 참수 위기는 '신호'이다. 설령 그가 다행히 목숨을 구하더라도 신호는 살아있다. 그 신호 속에 얼마나 큰 참사가 담겨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라크 민중 그리고 우리 민중이 어떤 실천을 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다. 명토박아 둔다. 올 것이 온 게 아니다. 필연이 아니다.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재앙'이다. 역사는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반드시 보복해 왔다. 그 역사가 '신호'까지 보냈는데도 이를 묵살한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노무현 정권에게 파병철회를 진지하게 요구하는 까닭이다. 그가, 그리고 저 17대 국회의원들이 거부한다면, 민중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 그것은 김선일씨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다.

그렇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 눈물의 절규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이어야 옳다. "제발 난 죽고싶지 않다. 난 살고싶다."

2004/06/22 오전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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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rim > 요리스 이벤스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2004.6.18 - 6.24 일주아트하우스 아트큐브
상영일정은 http://iljuarthouse.org/screen/s_view.html?e_uid=100 이곳을 참고...

오늘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을 다녀왔다.
요리스 이벤스의 작품세계에 대한 강연과 <바람의 이야기> <위도 17도> 두 작품을 보았다.

강연은 이번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김정아님(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이 해주셨고...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도 보았다. 사실 파병문제로 딴지를 걸고 싶었으나 그냥 참았다.

요리스 이벤스는...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얼렁뚱땅 정리모드..강연내용과 자료집을 토대로 요약 정리한 것으로 무언가 잘못 쓰여진 부분이 있다면 몽땅 내 책임;;;)

189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89년까지 20세기를 열정적으로 살다간 영화감독이다. 다양한 실험영화에서부터 정치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다큐멘터리까지 잡종 영화인이라 불릴 만큼 활동 영역이 넓었다고 한다. 거대자본을 위한 홍보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반면 세계노동운동을 위한 선정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그의 신념은 사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이용했던 전략가이기도 했다. 거대 자본이나 정부의 돈을 받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 <필립스 라디오> <인도네시아가 부른다>-, 로버트 카파, 쇼스타코비치, 브레히트, 폴 로베슨, 에른스트 부쉬, 피카소, 헤밍웨이 등 당대의 유명한 예술인들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아옌데, 주은래, 호치민 등 수많은 정치지도자와도 교류를 가졌다.

그는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라 불릴만큼 20세기 사회변혁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녔다. 소련, 쿠바, 칠레, 스페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 한번 갔던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세계 곳곳의 격동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중 그가 가장 애착을 느꼈던 곳은 중국이었다. 1939년에 중국을 배경으로 <4억의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찍은 후, 1976년에는 중국 문화 대혁명을 다룬 12시간의 12부작 다큐멘터리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나>를 찍었고, 세상을 떠나기 한해 전인 1988년에는 그의 영화 전반을 정리하는 <바람의 이야기>를 중국에서 찍었다.

사진사였던 할아버지, 사진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때부터 카메라와 친해졌던 이벤스는 카메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적 추구를 하게 된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이벤스는 단편, 과학, 카툰, 홈무비등 영화 미학적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영화 청년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그때 기회를 얻어 소련을 가게 된다. 소련 방문 이후 그는 작품 세계는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과 관련을 맺게 된다. 그는 또한 영화에 대한 대중매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변혁 운동의 현장에서 직접 촬영을 하고 그 투쟁을 대중과 공유하는 요즘으로 치면 비디오 액티비즘과 유사한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의 특징중 하나는 시적 영상.  바람과 구름은 그의 시적 영상에 가장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이다. 초기작 <비>에서 시작하여 그의 시적 표현은 <세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그리고 그의 유작 <바람의 이야기>로 집대성 된다. 고흐, 샤갈, 보티첼리, 중국 서예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자기 작품에 인용하는 것도 그가 즐겨사용한 방법.

그의 한 쪽 눈은 삶에 깃들여져 있는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또다른 한 쪽은 불의와 가난 그리고 착취가 가득한 모순적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요작품

1928. 다리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와 경이. 산업화의 주역인 기차를 타고 또다른 주인공인 (움직이는)다리를 이 구석 저 구석 살펴보는 것. 오늘날까지 아방가르드의 대표적 작품으로 실험영화에 영감을 주고 있는 작품.

1929. 비
비의 다양한 이미지를 형상화 한 작품으로 그의 시적 영상을 잘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

1931. 필립스 라디오
필립스사로부터 회사홍보영화 제안을 받고 작업한 작품이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거대 공장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인 노동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노동자들의 모습, 생산라인의 움직임과 함께 구성해 마치 교향악처럼 만들어 냈다.

1933. 신세계
네덜란드 간척사업을 다룬 영화

1934. 보리나제
벨기에 탄광 노동자 파업을 다룬 영화.

1937. 스페인의 대지
프랑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스페인 민병대의 투쟁을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 당시 '너무 끔찍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현실을 잘 드러낸 작품. 헤밍웨이와 함께 작업.

1939. 4억의 사람들
일본과 장개석 정부 사이의 전쟁을 필름 르포르타쥬 형식으로 만든 작품. 로버트 카파와 함께 작업. 국민당 정부의 엄격한 검열하에 촬영된 영화로 공산당과 마오쩌둥에 관한 이야기는 드러내질 못했다.

1946. 인도네시아가 부르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가, 일본의 식민치하에 있던 인도네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연합국이 인도네시아로 향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이벤스에게 의뢰한 작품. 그러나 연합국이 인도네시아로 가기전 인도네시아는 자체적으로 해방 선언을 하게 되고 연합국에는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자 이벤스는 자신의 조국인 네덜란드와 연합국의 부당함을 알리는 목적으로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되고 그후 얼마동안 네덜란드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1954. 강의 노래
세계노동조합연맹이 제작비를 댄 작품으로 세계 6대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노동자들의 현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쇼스타코비치, 브레히트, 폴 로베슨, 피카소등 유명 예술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1957. 세느가 파리를 만나다
프랑스 세느강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벤스의 시적 리얼리즘이 잘 드러나는 작품.

1963. 발파라이소
아옌데의 후원으로 1962년 산티아고를 방문한 이벤스는 산티아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화 이론과 제작을 가르쳤다. 이를 계기로 칠레의 독특한 항고 도시에 관한 영화 <발파라이소>가 탄생.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시적인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1968. 위도 17도
그의 세번째 부인인 마셀린 로리단과 함께 베트남전을 기록한 영화. 16mm 경량 카메로 폭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장을 기록.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혁명전을 치르는 베트남 민중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976.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나
중국 문화혁명의 현장에서 5년간 12부작으로 완성된 장대한 서사시이다. 이 영화는 때로는 기나긴 인터뷰가 이어지고, 때로는 아무런 설명없이 중국 변방의 시골 공회당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편집 없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담는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의 우공들이 어떻게 봉건주의라는 산을 저리로 옮기고, 사회주의라는 산을 옮겨 오는지를 "마음으로" 보여준다.

1988. 바람의 이야기
이벤스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성찰한 내용이자 세계 속에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고찰한 영화. 마르셀린 로리단과 공동으로 작업. 중국을 배경으로 바람을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서, 그리고 문화 사회 혁명의 변화들을 나타내는 은유로서 포착하고자 했다. 1988년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상영되어,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현장 구매, 예약만 가능.. 오늘 본 바람의 이야기는 매진에 입석까지 있었다.

바람의 이야기, 위도 17도는 오늘 보았고..
예매한 영화는

20일 8시 필립스 라디오, 스페인의 대지
21일 8시 센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24일 8시 강의 노래.

좀 무리했다. 그래도 이번 기회아니면 또 언제보나 싶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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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rim >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스페인의 대지

스페인의 대지
1937년 / 52분

스페인 내전을 영화로 담겠다는 이 프로젝트는 이벤스가 뉴욕에 머물던 1936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본래 스페인의 내전을 찍은 뉴스 영화를 편집하여 제작하기로 했었다.그러나 아카이브 자료들을 대출하는데 높은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자료의 상태 또한 좋지 않았고, 프랑코으 ㅣ정치적 입장을 찬성하는 것들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벤스는 스페인으로 직접 날아가 이 전쟁을 다룬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만들 것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를 잇는 도로에 인접한 한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페인 내전의 최전방의 광경, 프랑코의 폭격으로 인한 공포와 죽음, 그리고 파시즘에 대항하는 농부들의 투쟁과 노동 사이의 갈등이 영화의 긴장감을 더한다. 이벤스는 시가전의 현장뿐만 아니라 전방의 다른 측면, 즉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존 페르노의 인상 깊은 촬영과 헬렌 반 동겐의 파워풀한 편집,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해설이 만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편집을 맡은 헬렌 반 동겐의 세삼한 작업은 이벤스가 지시한 세 가지 지침을 따라 완성되었다. 첫째, 각 쇼트를 유동적이고 연속적으로 편집할 것, 둘째 매우 감각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할 것, 셋째 감독이 가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입장을 충분히 드러낼 것이었다.

영화의 시연은 백악관에서 있었다. 그 자리엔 루즈벨트 대통령과 가의 부인, 헤밍웨이와 이벤스가 참석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화의 내용과 완성도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며칠 후 LA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열린 친구들의 조언으로 인해 영화에 큰 변화가 생긴다. 당시 영화 해설을 맡은 이는 오손 웰즈였으나 그의 목소리가 이 영화에 비해 '너무 아름답다'는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헤밍웨이가 해설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엔 미국과 유럽에서 이 작품에 대한 비판이 많았으나, 이벤스는 자신의 영화가 그의 원칙대로 완성되었다고 확신했다.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영화평에 대해 이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은 파시즘과 반파시즘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반드시 확고한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극적이고 정서적이며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감독은 반드시 어느 한 편의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들도 마음속에 매우 단순하지만 한 가지 입장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나면 당신은 이쪽이나 저 쪽 편에 가담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총에 맞을 테니까요. 아니면 군대의 감옥에 감금될 수도 있겠죠. 양쪽 편에 가담하는 일은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원칙은 군인과 마찬가지로 감독에게도 적용됩니다."

- 자료집에서.


감독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드려내는 아주 선동적인 영화였다. 어제본 <위도 17도>와 같은 관점의 영화로 자신들의 땅을 떠나지 않고 계속 저항하며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스페인의 대지>에서는 수로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를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황무지가 된 땅에 물을 공급하면 수도 마드리드로 10배 넘는 식량을 보낼 수 가 있고 그건 바로 우리의 힘이 될 거라는 그들의 신념.

헤밍웨이의 목소리는 강건하고도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하지만 오손 웰즈의 나레이션 또한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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