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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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연일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기온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간질거리는 여름, 그 끝을 아쉬워하는지 8월의 더위는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찜통같은 무더위 속에 1964년 10월 10월에 있을 도쿄올림픽의 장대한 개막과 일본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노동자들은 12시간을 넘는 고된 노역으로 인간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 젊은이가 혹독한 육체노동으로 몸과 마음을 벼르며 프롤레타리아의 반역을 꿈꾸고 있다.


육체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담녀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 자본이 만들어낸 무한한 욕구가 품고 있는 비합리성,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밖에 없다.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 고향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피눈물이다.    -p.184


그리고 어느 날 올림픽을 몇 달 앞두고 경찰 최고간부이자 올림픽 경비의 총책임자인 스가 경감의 사저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뒤이어 나카노 경찰학교의 배선실에서 두번째 폭발이 발생했다. 올림픽을 앞 둔 시점에서 경찰과 공안부는 발칵 뒤집혔고, 초긴급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범인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올림픽을 인질로 배후에 있는 국가의 거대권력과 맞서려는 범인의 모습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며 소설은 매우 긴박하게 전개된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형의 죽음이 후 돌연 노동자계급에 대한 부채의식을 떠안고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 시마자키 구니오, 올림픽의 총경비책임자인 스가 경감의 둘째 아들이자 시마자키와 동창인 스가 다다시, 폭발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이 세 사람의 90일동안의 행적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폭발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묘하게도 세 사람 모두 국가라는 조직의 부당함과 내부권력의 힘을 느끼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사소한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캐릭터의 끌림이 전체를 압도하고, 현재를 통해 전달되는 과거의 복선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노동자의 목숨이란 얼마나 값싼 것인가. 지배층이 민중을 바라보는 시선은, 19년 전에 본토 결전을 상정하고 '1억 국민이 모두 불꽃으로 타오르자'라고 몰아치던 시절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게 전쟁이었고, 이제 그것은 경제발전이다. 도쿄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    -p.386


1권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작가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남쪽으로 튀어>였다.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된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이 이 책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시마자키 구니오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 아버지의 순결했던 젊은 시절, 자신이 주장해온 이론을 실천으로 옮겼더라면 분명 그 역시 시마자키 못지않은 과격함으로 가족이나 주변사람이 아닌 국가를 상대로 한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남쪽으로 튀어는 우리를 유쾌하게 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의식을 각성하게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시마자키가 겪은 빈부격차의 실체는 옛이야기같지만, 자본주의의 폐단은 21세기의 새로운 빈부격차와 피지배계층의 전락으로 프롤레타리아에게 더욱 뚜렷한 상실감을 맛보게 했다. 그래서 시마자키가 해석한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해석은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한 개인의 쿠데타를 순수하게 포장해주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2권을 읽기 전, 시마자키의 끝이 부디 불운하지 않기만을 수없이 되뇌어보았다. 그리고 개인의 저항이 결국 무력하게 끝나버릴것이라고 뻔히 예상하는 나의 생각을 확실한 반전으로 그가 뛰어넘어주길 바래본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금세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체재측에서도 노골적으로 경계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을 생각하는 지극히 순수한 사상이야.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서, 창출되어야 할 어떤 상태이지 그것에 따라서 현실이 바로잡혀야 하는 어떤 이상이 아니야,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실천적인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이야.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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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과 밤배 - 하
정채봉 지음 / 까치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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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다시 집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흘렀다. 나의 순수했던 시절과 조우하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책꽂이를 가장 많이 차지했던 <샘터> 잡지에서 "생각하는 동화"라는 글로 나의 철없던 시절 치기어린 마음을 잠재우던 정채봉 작가였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에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찾아 읽고 가슴에 새겼던 일이 멀지 않은 시간의 경험처럼 생생하다. 작가의 아이같은 웃음과 미소를 떠올리며 난나의 순수함에 물들고 싶은 나는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철부지 어른아이였다. 그 때 그의 책을 읽었던 순수한 열정을 되새기기 위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초승달과 밤배>를 읽게 되었다.
 

군부독재시절, 빨갱이로 몰려 행방불명된 아버지와 도망간 어머니. 부모에게 버림받은 주인공 난나는 곱추동생 옥이와 할머니, 외팔이 삼촌과 멀리 백령도가 보이는 바닷가 섬마을에 살고 있다. 가난하지만 고운 심성과 지혜롭고 곧은 마음을 지닌 난나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은 섬마을의 목가적인 분위기와 서울의 삭막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대비되어 난나의 심리적 변화를 뚜렷히 엿볼 수 있다.


어떤 책이든 처음 읽었을 때와 두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처음과 두번째 사이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생경함은 더해가고 전혀 다른 감동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13년전의 내 마음과 감동은 지금에와 느끼는 여운과는 전혀 다른 이상과 순수의 질문을 던졌었다. 정채봉 작가 특유의 사색과 깊이 때문인지 사춘기시절 나의 심미안은 고즈넉한 섬의 바람에 자갈처럼 단단히 영글어가던 난나의 맑고 투명한 성정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다. 

 
저는 일월의 들녘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텅 빈 들, 얼어붙은 개울, 앙상한 나뭇가지가 전부이지만, 이 들녘의 땅껍질을 가만히 떠들어보셔요. 풀씨들이 움을 준비하고 있고 개구리가 꿈결 같은 아지랑이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개구리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듯이 제 가슴도 그렇게 오는 봄을 향해서 두근거리고 있습니다. 나무 줄기에 물이 오르듯이 제 가슴의 가장자리에도 엽록의 빛이 스미기 시작하는 저는 일월의 들녘입니다.   -p.27(하)
 

하지만 다시 읽은 <초승달과 밤배>에서는 닮고 싶었던 난나의 때묻지 않은 천진함과 솔질함보다 청년이 되어 도시로 나간 난나가 겪는 열패감과 삶의 그늘, 고된 노동자로 하루를 살아가고 방황하는 모습이 더 크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거짓과 위선의 가면으로 어두운 내면을 감춘 도시인들의 불안함이 그에게 물들어가고 점점 피폐하게 변해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고요하고 잔잔한 수면에 무심코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큰 파문을 일으키듯 난나의 마음에 인 소용돌이가 성인이 된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변한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처음과 두번째의 간극사이 변해버린 내 마음을 원망해야 할 일이었다. 난나의 동생 옥이처럼 작고 낮은 것들이 착하다는 걸 잊고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운 과거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나를 일깨우는 소중한 책으로 기억에 새겨두기로 하였다. 
 

작은 것들을 왜 생각해? 큰 것들이 위대한 거야."

"작은 것들은 착한 걸."

"아니야. 큰 것들이 좋아. 나는 고래가 좋고 군함이 좋아. 빌딩이 좋고 거인이 좋아. 그래, 나는 고래잡이배의 선장이 되겠어."

"오빠와 나는 반대다. 나는 작은 것이 좋은데...... 눈송이가 좋고 피래미가 좋아. 피래미가 좋아. 돛단배가 좋고 초가집이 좋아. 냉이꽃이 좋고 아기가 좋아."    -p.220(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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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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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하면 영화나 원작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열성팬을 패러디한 많은 유머들이다. 미저리(애니 윌크스)를 그런 식으로 우스꽝스럽게 그린 개그나 유머때문인지 책을 읽으면서 애니가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사이코패스같은 잔인한 모습을 보일 때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눈을 찡그리는 잔인함에 몸서리 치면서도 애니에게 감금된 폴이 어떻게 탈출할 것인지, 복수는 하게 될는지 궁금해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는 책이었다. 이름만으로도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스티븐 킹과의 첫만남을 미저리로 시작했으니 다음 작품은 더욱 기대된다. 
 

미저리는 주인공 폴 셸던이 대중적으로 인정받게 된 베스트셀러의 제목이다. 미저리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실제 폴을 감금했던 애니의 이름이 미저리일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착각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그렇지만 폴의 묘사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애니의 외양과 섬뜩한 무표정만으로도 미저리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데는 더할 나위가 없다. 집으로 가는 길 폭설에 미끄러진 자동차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이 미저리의 작가 폴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 애니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감금한다. 사고때 다친 다리로 움직이지 못하는 폴에게 어떤 치료도 해주지 않고 -전직이 간호사임에도- 노브릴이라는 진통제만을 주며 그에게 종용한 미저리에서 죽은 미저리를 살려내라고 말한다. 
 

사고 직전 2년의 공을 들여 완성한 소설 [과속차량]을 폴의 눈 앞에서 직접 태우게 만든 애니에게 폴은 강한 증오심을 불태운다. 그리고 애니의 강요로 자신이 끔찍히도 벗어나고 싶어했던 미저리의 이야기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폴은 그 과정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며 빠른 속도로 애니만을 위한 [돌아온 미저리]를 완성해나간다. 그 사이 그에겐 비극적인 일도 일어나며 감금된 방을 벗어날 기회도 주어지지만 치밀한 애니의 눈을 속이기엔 역부족이었던 듯 더 끔찍한 재난이 기다린다.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움직이지만...... 인생이란 참으로 지랄맞게 난잡한 이야기이다.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대화가 오갈 때마다 흉한 꼴을 당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고상하고 인간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까? 현실을 소설처럼 깔끔하게 장으로 나누기라도 하란 말인가?    -p.539 


조울증으로 극과 극을 오가는 애니의 심리가 감금된 폴의 입장에서 씌었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공포스럽고 거대한 존재로 비친다. 소설의 긴 도입부만 읽었을 땐 애니가 이렇게 본색을 드러내며 괴기스럽게 변할 줄 몰랐다. 오히려 폴이 인질범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건 아닌가하는 짐작도 멋대로 해보았는데 나의 추측은 빗나갔고, 애니의 잔인함이 드러나는 순간 그녀에겐 일말의 동정도 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정신이상이나 살인에 어떤 계기나 과거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그녀를 더욱 사악한 살인마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캐릭터가 주는 공포심도 컸지만 눈 속의 외딴집, 움직일 수 없는 두 다리, 정신병자 살인마가 있는 폐쇄된 공간의 완벽한 배경이 소설의 으슬으슬 두려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피튀기는 잔인한 장면이나 디테일한 상황묘사로 자극적인 공포영화에서는 진짜 공포나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는데, 분위기나 캐릭터만으로 내면의 공포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역시 소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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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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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고집해오던 책읽기방식은 전작(作)인데 최근에 빠진 국내작가가 심윤경이다. 책쟁이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그녀의 처녀작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마치 나의 유년을 관통한 듯 아릿아릿했다. 뒤이어 읽은 <달의 제단>과 <이현의 연애>도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처럼 묘한 쾌감과 아픔, 혼란을 동시에 몰고 왔다. 그녀의 사고와 생각은 독특하다. 기성작가에게서 찾을 수 없는 강렬함과 관념의 틀을 깨버린 반항심, 지독한 극단, 정곡을 찌르는 간결한 문체와 묘하게 마음을 울리는 감정이 뒤엉켜있다.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평소 멀리하던 시대물에, 기피하는 분야인 연작을 써놓고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TV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예전에 읽은 <미실>덕분인지 오히려 질리게 보아온 조선시대보다 신선했고 파격적이었다. 삼국유사를 모티브로 쓴 글이라지만 이건 과장이 지나친데?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신라의 시대적 관습이나 제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 변화를 눈 앞에 두고 꿈틀거리는 거대한 이무기의 모습처럼 열정적이고 거침없으며 역동적인 서라벌 사람들의 모습은, 성장을 멈춘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를 꼬집고 있는 듯 했다.

 
왕족인 성골이면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칠척오치 거구의 연제태후, 신라시대의 청소년 수양단체로 알려진 화랑도에서 벌어지는 공공연한 동성애, 신이 되고자 했지만 오히려 추하게 변해버린 무열왕, 교합제라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정사, 간밤에 달게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원효대사의 비보이를 연상시키는 떠들석한 법회장면등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기 때문에 순수해보이기까지 한다. 많은 굴레와 시선에 억압받는 현실이 상당히 대조적으로 비춰졌고, 예의와 도덕이라 일컬어 우리를 가두려는 사회그늘에 목이 옥죄어오는 듯 갑갑했다. 

 
다행인 건 그들의 긍정적인 열정과 에너지가 책을 읽는 내게도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속에 정형화시켜버린 고리타분함을 벗고 21세기로 뚜벅 뚜벅 걸어들어온 서라벌의 사람들은, 일찍이 우리가 가져본 적 없는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듯 했다.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사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고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겠지만, 작가가 그들의 모습을 결코 미화시키지 않았다는 근거와 흥미로운 발견은 서라벌 사람들을 재해석할 수 있는 많은 여지를 남기고 있다. 지금 우리가 신라시대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매우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그리고 심윤경만의 매혹적인 글쓰기가 시대물에서 더 맛깔스럽게 빛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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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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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툼한 책 한권의 이야기가 소설이라니...차라리 실제라고 믿어버리게 되었다. 돈때문에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몰입해 읽는 동안 내가 주인공 행크였다면 어떠했을까 몇 번이나 생각해보았지만 살인만큼은 어리석은 행동같았다. 그렇지만 막상 눈 앞에 주인을 알 수 없는 돈뭉치 몇다발이 떨어져있다면 금새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목대로 단순해보이는 그의 계획은 뜻하지 않는 살인을 시작으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그 돈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가족가 친구를 살해한 한 남자가 있다. 
 

눈이 잔뜩 쌓인 겨울 아침, 행크와 형 제이콥 그리고 제이콥의 친구 루는 부모님의 기일을 맞아 묘소로 가는 길에서 갑작스레 여우를 만나 급정거를 하게 된다. 여우를 쫓아간 제이콥의 개는 산 속으로 사라지고 그 개를 쫓아 셋은 눈밭을 헤매게 된다. 그러던 중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하고 조종사는 이미 죽어 까마귀밥이 된 상태였다. 조종석 뒷자리에서 끌어낸 큰 꾸러미 안에서 셋은 4백 4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찾아냈고 주인을 잃은 돈을 신고해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형과 루의 돈욕심에 주저하던 행크 역시 눈이 녹아 비행기가 발견되고 돈의 실체가 밝혀지기까지 자신이 돈을 보관한 후에 출처가 확실해지면 셋이 나누자고 제안한다. 
 

비밀은 오직 셋만 공유하자던 처음의 계획과 달리 행크는 자신의 부인 사라에게, 루는 여자친구인 낸시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사라는 행크에게 비행기가 발견되더라도 비행기에 접근한 사람이 없다는 표시로 50만달러를 추락한 비행기에 넣어두라고 말한다. 다음 날 새벽 행크가 비행기에 돈을 두는 데는 성공하지만 망을 보고 있던 형은 갑자기 나타난 피더슨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그에게 폭행을 가해 실신시키고 이를 보던 행크는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죽지 않았던 피더슨을 행크는 목졸라 살해하고 그가 타고있던 스노모빌위에 그를 태우고 다리위에서 밀어 사고사로 위장한다. 이 후 행크의 살해사실을 루가 알게 되고 루는 그의 살인을 빌미로 자신의 몫을 요구하며 돈을 달라고 행크를 협박한다. 또 다른 계략으로 루를 옳아매려했던 행크는 계획이 실패하자 루와 낸시, 친형까지 살해하기에 이른다.


뒤이어 돈을 지키기 위한 그의 살인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으나 돈의 정체가 밝혀지며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돈의 댓가는 혹독했고 그가 저지른 살인만큼 잔인했다. 돈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정된 직장과 사랑하는 부인, 곧 태어날 아이가 있는 행크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과 미래가 보장된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돈 앞에 그 일상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거듭된 살인을 정당하다 주장할만큼 죄책감마저 무뎌지게 했다. 그의 주장은 억지스럽고 살인은 용서할 수 없는 큰 죄였지만 그가 보여준 인간 본연의 탐욕은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 우리는 한계를 넘어셨으며, 돌아갈 수 없다. 그 돈 덕분에 꿈꿀 기회를 얻었지만 그 때문에 현재의 삶을 경멸하게 되었다. 사료상의 일, 알루미늄으로 옆면을 댄 집, 주변마을. 우리는 그 모두를 이미 과거의 것으로 보고 있었다. 백만 장자가 되기 전의 과거, 형편없고, 우울하고, 시시한 과거. 그러므로 어찌 어찌하여 그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 해도, 의미 있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듯이 다 잊고 옛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옛 생활을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았던 때로, 옛 생활을 평가하고 값어치 없게 여겼던 때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회복될 수 없는 상처였다.    -P.169
 

처음 돈을 발견하고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던 사라의 말대로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욕심은 먼 곳에 뻔히 늪이 보임에도 눈 앞의 화려함에 취해 늪으로 발을 들여놓게 만들었다. 그러나 행크를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평생에 한 번 만져보기 힘든 돈 앞에 우리 안에 내재한 욕망이 고개를 들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아니라고 부정하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자신을 비극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부분은 행크 한사람뿐만 아니라 인간전체가 욕망의 노예-혹은 돈의 노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왠지 서글퍼지는건 그의 억지주장에 감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 있었다. 한 인간의 나약함과 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참혹한 진실앞에,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책의 내용이 다른 각도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한 일이 끔찍하긴 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악한 건 아냐. 우리가 올바르지 않았던 것도 아냐. 우리는 살아야 했어. 자기가 한 일, 자기가 쏜 총알, 모두 정당방위였어." 

아내는 몸을 틀어서 손으로 눈가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나를 보면서 내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내 말이 옳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타일러야 한다. 우리가 한 일은 그럴 법하고 용서될 만한 일이라고. 우리 행동의 잔혹함은 우리 계획과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상황에서 나왔다고. 그래서 우리 잘못은 전혀 없다고. 우리는 스스로를 이 비극의 가해자로 볼 것이 아니라 그저 비극 속에서 불행하게 희생되는 여러 조연 가운데 두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뿐이었다.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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