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삼국지 - 고전과 함께하는
구주모 지음 / 채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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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뒤늦게 <삼국지>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 10권이 되는 긴 흐름에 이제 겨우 반을 넘은 상황에서 이 책을 읽었다. 결론적으로 매우 적절한 시기에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일단 비슷한 상황의 다른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바뀌는 통에 전체적인 흐름과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았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삼국지의 긴 스토리가 한 눈에 들어왔고 짤막한 문장 한 줄로 사라지는 많은 모신들과 군웅들의 숨겨진 얘기까지 듣고 나니 삼국지가 달리 보였다. 그저 삼국시대를 통일하게 된 영웅들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진짜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거대한 삶의 터전처럼 느껴졌다.

지혜, 좌절, 기사, 역사, 선비, 풍운 총 6부로 나뉜 대전제안에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읽은 <삼국지>를 연의체로 구술한 <삼국지연의>를 기본으로 <삼국지> 정사를 비롯한 <사기>와 <세실신어>등 각 인물들을 구술한 현대서까지 다양한 책들을 참고로 삼국지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상상에 날개를 달아준다. 무엇보다 <삼국지>만 봤을 때 자세히 알 수 없었던 모신들과 군웅들, 따지자면 조연처럼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인물들의 후일담과 중심인물로 그려지는 조조와 유비,관우,장비의 새로운 면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역사서지만 객관적 사실이 아닌 승자의 기록으로 남은 <삼국지>의 진실에 접근하게 되었다고 하면 과장일 수 있으나, 내게는 필자가 원하는 해석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삼국지>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특히 <삼국지>를 보며 누구보다 영웅호걸로 표현되고 삼국지에서 맹활약해 호감을 품게 된 관우에 대한 인물평이나 유비가 제갈량을 맞기 위해 '삼고초려했다는 유명한 일화에 묻히고 말았다는 유표와 손책의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었다. 영웅들의 이야기가 강조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려지고 만 환관들의 부정부패를 요목조목 지적한 부분은 그 시대 황제들이 왜 그렇게 반란에 힘없이 당하고 밀려났는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또한 삼국지를 보다보면 군웅들이 한 지역을 정복할 때마다 발생한 수많은 죽음으로 그 사람들이 흘린 피가 강을 이뤘다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저 넘기고 말았던 표현인데 이 책의 역사면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구절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삼국시대 이전 5,600만명이었던 인구가 삼국시대에는 760만명까지 격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삼국시대를 살아있는 '아비지옥'이라 칭하며 실로 장쾌함을 주는 영웅들의 전쟁담이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를 둘러볼 수 있다는 마음은 싹 버리는게 좋다고 말했을 정도다.

중국사가 이중천은 "사실 높다란 왕관이 떨어진다고 해서 애석할 것도 없고, 왕조가 멸명한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그런데 (내란 와중에) 수천만에 달하는 무고한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성이며 마을이 훼손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장소를 거든다.   -p.201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삼국지>의 반을 읽었지만 마저 읽게 될 삼국지는 먼저 읽었던 부분에서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무엇보다 영웅들의 그늘에 가려진 많은 인물들이 달리 보일 것이고 짧은 한 문장으로 단순하게 묘사된 부분의 상상도 그려질 것이다. 언제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 찬연하다고 하지만 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을 되돌아보게 된다면 역사는 기록이 아닌 그 이상을 뛰어넘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듯이 삼국지는 인간사의 흥망성쇠를 보여줌으로서 많은 것을 일깨우는 고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거대한 탁류에 휩쓸리고만 더 많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삼국지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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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의 식탁을 탐하다
박은주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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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대를 거슬러 올라 대가나 위인들의 행적이나 업적을 쫓는 일이 아닌 그들이 즐겨먹던, 혹은 영혼을 살찌웠다고 말하는 '소을푸드'(Soul Food)를 찾는 즐거운 일에 동참했다. 대가의 식탁을 엿보고 그들이 사랑한 요리를 통해 그들에게 때론 영감을 주고 때론 위안이 되어주었던 다양한 음식들을 저자와 대가의 인터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간다. 그런 독특한 형식은 마치 그들과 식탁에 마주앉아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또한 지금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요리들은 대가들을 더욱 친근하게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혹 어떤 요리나 재료들은 자연스럽게 대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 글공장이라 할만큼 짧은 기간동안 무려 100편 이상의 소설과 두 해 동안 145편의 글을 썼다고 말하는 발자크의 경우는 커피예찬론자라 할만큼 어느 책에서나 쉽게 그가 커피를 즐겨마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하루에 50잔 이상을 마셨다는 그의 커피는 무엇보다 그가 글쓰기 노동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각성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서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의식을 불태우는 번역본으로만 11권에 달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의 마들렌은 잠재된 의식을 일깨우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냄새를 통해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 매우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마들렌, 비스코티, 굴 액즙 한 방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억을 되살려주는 감각이란 얘기네.
물론 나뿐 아니라 보들레르, 말라르메, 릴케등 상징주의 작가들은 향기를 여러 관능에 빗대어 애기했지. 냄새는 때로 죄악의 상징이자,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되지.    -p.200

인터뷰어가 된 저자의 질문은 이미 고인이 된 인터뷰이들이기에 다소 노골적이고 시원하게 긁어주었으면 하는 예민한 부분까지 재미있게 전달되고, 예리한 지적으로 긴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책의 주제가 되는 대가의 요리에 대한 에피소드는 생각해보지 못한 대가의 전혀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도 한다. 나폴레옹의 경우 미식가라는 역사가들의 평가와 달리 그는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즐겼고, 황제가 된 후에는 닭요리를 먹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가 잊을 수 없고 사랑한 요리는 '치킨 마렝고'라는 승전후 맛본 닭요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어디까지가 추측이고 사실인지 모호한 대답으로 일말의 의문을 남기지만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듯 이런 요리들이 있기에 그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식당에서 일했고 보티첼리와 술집을 차렸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요리를 하며 발명했다는 스파게티면과 포크, 와인따개와 냅킨은 사실일까 미덥지 못했지만, 실제 그가 고안하고 설계했다는 다양한 요리도구의 설계도는 그를 '최후의 만찬'의 화가보다는 요리도구 발명가로 떠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한 영화같은 인생의 주인공이자 로큰롤의 제왕이 된 엘비스 프레슬리와 정크푸드는 원조 스타마케팅의 그늘에 가려진 한 가수의 슬픔을 관통한다. 살아생전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던 반고흐의 감자에 대한 이야기도 건실한 생에 대한 절박함과 순수한 애정이 묻어난다.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리다" 라는 브리야 사바랭의 유명한 구절은 이 책을 한마디로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다. 대가들이 즐겨먹은 요리는 그 사람의 인생전부를 부연할 수 있을만큼 사연과 추억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 화려한 인생을 살았거나 존경받는 위인이었지만 오히려 외로움과 고독에 깊이 절망했던 한 인간을 위로하기에 한 잔의 커피와 향기나는 쿠키, 맛있는 요리 한 접시에 그들이 위로받고 안식을 찾았다는 것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온기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들의 식탁을 엿보기전 인터뷰를 통해 대가들의 인생에 쉽게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듯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소울 푸드란, 뭔가 거창한 게 아니라, 어쩌면 자기의 가장 비참한 인생이 아름답게 녹아 있는 그런 음식들인지도 몰라요. 가난한 소년의 기억은 가수왕이 된 나에게는 영원히 아프고 영원히 그리운 기억이었는지도 몰라요.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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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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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이라... '내 인생의' 라는 단서가 붙으니 사뭇 거창해지는데 만화책이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살짝 가벼워진다. 그리고 어떤 책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성인이 된 지금보다는 학창시절에 읽은 만화책의 양이 훨씬 많았고, 내 인생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친 만화책은 그 시절에 읽은 것들이었다. 내게는 감수성 예민한 여고시절 늘 끼고 살았던 순정만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에는 순정만화에 대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책이라 90년대에는 한번쯤 언급할 줄 알았는데 없다보니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보니 저자는 [소년챔프], [영챔프], [주니어챔프]등의 소년잡지의 편집장을 지낸 분이셨다.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만화책을 기준으로 시대별 만화를 정리하다보니 순정만화는 당연히 제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1990년대까지 거슬러올라왔지만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둘리나 독고탁, 까치의 캐릭터말고는 딱히 공감되는 부분이 별로 없기도 했다. 그러나 애정이 묻어난 캐릭터위주의 설명과 해석은 전혀 접하지 못한 만화였지만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친숙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우리네 이웃처럼 익숙하고, 잘났지만 밉지 않고,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책 속의 여러 캐릭터들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은 고바우가 그저 일상의 틀에만 안주할 수 있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정치는 혼란했고 사회는 어지러웠다. 민중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잠든 의식을 깨워줄 시대의 증인으로서의 열활이 필요했고 더구나 정론지에서 만화라는 독특한 표현수단을 갖고 있다는 조건들이 고바우의 변신을 부채질했다.    -p.39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로는 1940년대 찰리채플린같은 면모를 보인 김용환의 코주부와 신문에 연재 후 50주년동안 사랑받아온 김성환의 고바우, 문명사회의 병폐를 지적하고 성을 생활양식으로서 담론화시킨 박수동의 고인돌, 공룡캐릭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둘리와 90년대 누이의 초상을 그렸다는 김동화의 이화는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다. 특히 박수동의 고인돌하면 떠오르는 아이스크림 스크**와 CF음악은 만화를 보지 못했어도 고인돌을 기억에 오래 각인시키고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지면에서 튀어나와 살아움직이게 만든 영상의 힘보다 생생한 캐릭터가 갖는 매력에 있는 듯 했다. 책의 지면을 통해 할애된 4컷이나 16컷만화는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 스토리와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한 캐릭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은만큼 지금의 만화가들 역시 책임과 소명의식을 갖고 좀 더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책이되 만화책이라면 부정적이고 불건전한 오락거리쯤으로 여겨왔던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만화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만화와 캐릭터는 허황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 힘들고 우울했던 시대를 함께 살아갔던 평범한 샐러리맨(김수정의 고도리)이거나 아이들의 순수함을 공감한 명랑만화 캐릭터들(땡이, 요철이, 꺼벙이), 그리고 성인만화의 영역을 넓힌 한희작의 여자와 변금련등의 만화는 동시대의 현실성을 그대로 반영했기에 시간이 지나 다시 읽고 곱씹을수록 진한 맛을 더해가는 것이다. 

 
뒤돌아서면 씁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만화를 읽는 동안만큼은 시름을 잊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만화가 주는 긍정적 효과라는 것을 일깨우는 책이었다. 그리고 TV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만화책을 보는 이들이 많이 줄었지만, 다시 100년이 흐른 뒤에도 지금의 시대상을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는 만화와 한국인만의 정서를 담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와 이 책에서처럼 회자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풍요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화를 찾아 읽는 이유는 현실에서 얻지 못한 삶의 위안을 만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중압감을 덜거나 행복해지고 싶고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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